• "싸우기 싫으면 당하고 살라는 남편 말에…"
        2010년 07월 14일 11: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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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가 뜨겁다고 느끼기도 전에 몸과 마음이 먼저 뜨거워졌다. 남들은 평생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는 파업, 두 번째다. 지역 언론사에 있을 때 사주의 편집권 침탈에 맞서 ‘언론개혁’이라는 화두를 놓고 파업에 참여했다.

    지난 2007년 KBS로 직장을 옮기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국민의 방송’이니까. 최소한 공영방송으로써 기본은 있겠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생활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취재수첩을 서랍에 넣고 자물쇠로 잠가버리는 일 따윈 없겠지…. 그렇게 안도했다.

    무엇보다 파업이라는 상황이 죽기보다 싫었다. 하고 싶은 일 못하는 건 둘째 치고, 파업 반년이 넘어가자 생활이 힘들어졌다.(남편과 한 직장에 있었다.) 그래서 당시 신뢰도 1위, 영향력 1위의 KBS에 입사했을 땐 천직이라 믿는 기자질 원 없이 할 수 있겠구나 싶어 좋았다. 이제 내 인생에 파업은 없겠구나 싶어 남몰래 시시덕거렸다.

    하지만 이불 속에서 같이 시시덕대던 남편의 입에서 “이제 KBS 안 본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파업상황에서 출산을 맞았던 그 시절을 돌이켜보라며 구질구질한 항변을 늘어놨지만 가문의 영광이던 그 KBS가 언젠가부터 내게도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오직 진실만을 말하기 위해 …바보 같은 진실은 바보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 진실은 마음에 들지 않게,
    슬픈 진실은 슬프게 말하는그런 방송을 위해…”

    지난 2년, 매순간 KBS는 ‘그러고도 공영방송이냐’는 시청자들의 혹독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국민의 방송 KBS’라는 광고성 문구가 TV 화면을 채울 때 그 비판의 크기만큼 자부심은 작아지고, 부끄러움이 커졌다. 취재원을 설득하는 논리는 자신감을 잃었다.

    무엇보다 두려웠던 건 아이템 발제를 하면서, 또 기사를 쓰면서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자기검열을 하고 있다는 의식조차 희미해져갈 때 두려움은 더욱 커졌다.

    다시 파업이라는 선택의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노동자가 파업을 하는 건 배짱이 좋아서도, 믿는 구석이 있어서도 아니다. 자존심이 누구보다 중뿔나게 세어서도 아니다. 파업을 하는 노동자는 누구나 두렵다. 파업은 양날의 칼이란 걸 짧은 순간 몸으로 체득했기에 더 두려웠다. 사측의 회유와 협박을 끝까지 견딜 수 있을지 두렵고, 징계도 두렵고,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현실은 더 두려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두려운 건 서늘한 시청자들의 눈, 그리고 영혼 맑은 동료들의 눈, 그리고 순간의 안락함을 선택했다가 평생 나를 몰아세울 ‘후회’다.

    파업 전날 밤. 남편은 1980년 5월을 이야기했다. 군사정권이 광주를 학살하고 있을 때 방송은 거짓 뉴스를 내보냈단다. 분노한 광주시민들은 MBC와 KBS 건물을 불태웠다고 했다. 당시 방송은 광주시민을 폭도로, 반란자로 매도했단다. 군사정권의 총칼에 죽어가는 시민의 비명을 짓누르고 권력을 향해 ‘용비어천가’를 틀어대던 방송은 수치 그 자체였다.

       
      ▲ 송명희 KBS 기자(보도국 사회2부)

    그런데 지금 남편의 눈에는 KBS가 3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신료를 올리려는데 혈안이 돼 있단다. 좋은 프로그램은 없애고, 권력을 쥔 자들을 포장하고 홍보하는데 급급하단다.

    공영방송, 영향력 1위라는 자존심도, 국민들의 기대도 ‘말끔히’ 저버렸단다.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면서 국민의 방송이라 말하는 자가당착.

    파업하면 이길 수 있을까…. 남편, 한마디로 쐐기를 박는다 “싸우기 싫으면 당하고 살든가!”

    두렵다. 두렵지만 파업해야겠다. 파업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더라도 이 파업을 해야겠다. 어느 세계 언론사 창간자의 말처럼

    ‘오직 진실만을 말하기 위해…바보 같은 진실은 바보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 진실은 마음에 들지 않게, 슬픈 진실은 슬프게 말하는’ 공영방송 KBS를 다시 세우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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