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성'의 시대가 온다"
    2010년 07월 13일 09:1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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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지 뉴스위크 7월 6일자에서 ‘앞으로 여성이 세계의 경제를 지배할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했네요.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원인이랍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칩니다. 어감은 조금씩 다르지만 여성들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는 예언들은 오랜 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종교 경전, 예언서, 구루들의 가르침 등에서 숱하게 언급되었죠.

과학기술의 발달로 근육의 힘이 무가치해졌기 때문에 남성 권력이 약해진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생활환경의 변화도 영향을 미치겠죠. 인터넷의 발달, 산업구조의 변화, 고용의 불안정, 탈조직 현상 등이 모두 전통적인 남성 지배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정치에서도 여성들이 권력 핵심에 많이 접근해 있죠. 아직은 정치 지형을 바꿀만한 정도는 못되지만 여성 총리나 여성 대통령 등 여성 지도자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여성의 시대가 온다

역사적으로 보면 여성성이 지배하던 시대와 남성성이 지배하던 시대는 순차적으로 반복되어 왔습니다. 동북아시아의 경우에는 주(周)나라의 건립(BC 1046)을 기점으로 남성성의 시대, 곧 패권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과도기가 있긴 합니다만 대개 주나라 이전은 덕(德)으로 통치하는 시대였고, 왕권도 세습이 아닌 추대 형식으로 전해져왔죠. 그러던 게 제후국인 주(周)가 천자의 나라인 은(殷)을 쿠데타로 멸망시키면서 권력은 힘으로 찬탈하는 것이 되고, 왕조내에서의 권력은 세습됩니다.

   
  

이런 변화는 경전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역이라고 부르는 역경(易經)은 주나라 이전에는 귀장역이라 불렀습니다. 귀장역에선 64괘중 첫 번째가 땅(여성성의 상징)을 뜻하는 곤(坤)괘였습니다. 주역은 주나라의 역경이란 뜻입니다. 여기에선 하늘(남성성의 상징)을 뜻하는 건(乾)괘가 처음이 됩니다.

이제 다시 여성의 시대가 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다만 경제나 정치에서의 권력 관계가 달라지는 것으로만 이해된다면 너무 표피적인 것 같습니다. 단지 권력의 주체가 달라질 뿐이라면 세상을 위해 이로운 게 뭐가 있겠습니까? 남

성 지배의 시대가 부정적이었던 것은 패권, 규율, 경쟁, 폭력, 억압 등 남성성의 잘못된 표현 때문이었습니다. 여성의 시대가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의미를 갖는다면 그것은 수용, 포용, 평화, 공존 등 여성성의 긍정적 가치가 세상을 바꾸어낼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므로 다가오는 변화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되려면 정치경제적인 범위를 넘어 여성성이란 내면적 가치가 사회적으로 실현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남성 여성의 편향된 입장을 떠나서 ‘전체성’이란 관점에서 세상을 바꿔나가야 할 것입니다. ‘전체성’이란 성적 정체성이 사라진 중립적인 개념이 아니라 음과 양, 남성성과 여성성이 유기적인 균형을 이룬 상태를 말합니다.

가령 인도의 신들은 남성 신과 그의 부인인 여성 신의 짝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파괴의 신 시바와 부인 삭티, 유지의 신 비슈누와 그 부인 락쉬미 등이죠. 여성 신은 남성 신의 여성성을 상징한 것이라고도 합니다. 현실에서는 남녀로 나뉘어 나타나지만 신의 본 모습은 양성합일(兩性合一)의 상태라는 거죠. 우리는 이것을 태극이라고 부릅니다. 거창하게는 우주의 탄생부터, 사소하게는 먹고 싸는 모든 일상과 존재가 태극이라는 균형을 향해 움직입니다. 꼭 신의 영역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죠.

전체성-양성합일-태극

인도 출신의 어느 구루는 남성들이 여성적인 수용성을 가져야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반면 여성들은 남성적인 규율과 절제를 익혀야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 말은 남성과 여성이 서로의 긍정적 가치를 수용함으로써 ‘전체성’에 다가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느 영성가는 ‘앞으로의 지도자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디 지도자들 뿐이겠습니까? ‘전체성’은 앞으로 바람직한 인간상의 필수조건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남성이 여성성을 수용한다는 게 동성애나 성전환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선택이야 개인의 문제이고 저마다 존중받아야 하겠지만 양성성의 유기적인 균형이라는 목적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죠. 육체적인 성 정체성은 부정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한의학에서 남자와 여자는 병 자체가 다릅니다. 같은 병이라도 원인이 전혀 다릅니다. 똑같은 모양이라도 남녀에 따라 전혀 다르게 기능합니다. 가령 형상의학으로 볼 때 남자가 코가 크면 기가 허하다고 합니다. 여자가 코가 크면 기가 실하다고 합니다. 여자가 귀가 어두워지면 주로 화병이라 하고 남자가 귀가 어두워지면 주로 아랫도리가 부실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아무리 겉모양이 바뀌고 성취향이 달라진다 해도 남자의 병이 여자의 병으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기독교의 어느 유파는 ‘음양이 나뉜 것은 마귀의 장난’이라면서 ‘하나님의 성품은 중성이므로 모두 중성의 순수성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종교에서는 ‘개벽이 오면 모두가 중성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세상에서 양성은 있으되 중성은 없습니다. 혹 죽으면 모를까.

문제가 있다면 음양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 나눔으로 에고만 강화시키는 데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각자의 성 정체성을 제대로 살핌으로써 그 한계와 모순을 극복하고 ‘전체성’이란 전혀 새로운 관점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성역할의 분리와 우열관계를 넘어 새로운 인간관계,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길잡이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신심명이란 시의 한 부분을 소개하면서 이만 잡설을 접겠습니다. 즐거운 한 주 되세요.

지도무난(至道無難) 유혐간택(唯嫌揀擇)
단막증애(但莫憎愛) 통연명백(洞然明白)  

무상의 도가 어렵지 않네, 버릴것은 오직 간택심 뿐,
밉다 곱다 마음 없으면, 툭 트이어 명백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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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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