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예천 남기호, 정옥례 미숫가루
        2010년 07월 13일 02: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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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최고 맛있는 음식은 몇 가지나 될까? 아마도 ‘세상의 어머니 수’ 만큼이라는 말이 가장 근접치에 다가서는 답이 아닐까 싶다. 오십을 넘어가는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지만 ‘내 아이들의 아버지’, ’부모’의 컨셉보다는 여전히 내 생각과 판단을 지배하는 것은 어머니 아버지로 부터 내리 받은 위치와 존재감이다. 참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추세로 보면 아마도 평생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받은 느낌과 뜻 속에서 살다가 갈 것으로 보인다.  

    입맛, 추억, 가르침, 헌신, 내리사랑….
    그로 인해 풍부해진 내 인생,
    그로 인해 살맛 나게 살아가는 지혜를 얻게 된 내 인생…. 

    그게 인생이라면 당연히 기꺼이 받아들일 일이지 싶다.
     

       
      ▲ 우리 집 아침상 메뉴중의 하나. 미숫가루를 우유에 타서 먹기도 하고, 가루로 내와 복분자 갈은 것과 함께 소스로 활용하기도 한다.

    감자, 고구마, 가지, 당근, 단호박… 제철에 나오는 먹거리를 중심으로 은근한 불에 한참을 구워내면 표면은 쫄깃거리고 속은 알맞게 익은 아주 괜찮은 맛, 아주 낯익은 맛이 나온다. 여기에 죽염 살짝 찍고, 후식으로 토마토 정도 나올라 치면 근사한 아침상이 되는 것이다. 우리식구들의 아침은 가벼우면서도 실속 있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여기다 한가지 더, 미숫가루가 추가되면 완벽한 맛의 조화와 영양을 섭취하게 될 뿐만 아니라 “야! 진짜 아침 제대로 먹었네” 탄성이 나오게 마련이다. 미숫가루는 다른 것들과 어울려 전체를 완성시키는 존재다. 덕분에 공복감이 없는 근사한 아침이 완성된다.

    언제봐도 정겨워… 미숫가루.

       
      ▲ 쌀아지매 황토방선식(미숫가루)

    찹쌀·멥쌀 또는 보리쌀을 쪄서 말린 다음 다시 볶아서 가루로 만든 식품으로 녹말이 호화(糊化)되어 물에 분산이 잘 되고 소화도 잘 되며 볶는 과정에서 고소한 향미가 생긴다.

    미숫가루는 미수(米水)라고도 한다. 찹쌀·멥쌀·보리쌀·콩 등을 찌거나 볶아서 가루로 만든 식품으로 주로 꿀물이나 설탕 물에 타서 차게 마신다. 주로 여름철 음료로 이용하며, 다식과 암죽을 만들 때에도 쓴다. 찹쌀 외에 보리·콩·율무 등 서너 가지를 섞어 만들면 맛도 좋고 영양가도 풍부해진다.

    어려서부터 자주 미숫가루를 먹어서 그런지 미숫가루를 보거나 연상을 하면 항상 정겨움이 느껴진다. 여름에 더울 때는 얼음 동동 띄워서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한 물에 타서 식사대용으로 마시곤 하던 추억의 미숫가루. 우리에게 대표적인 추억의 하나인 것이다.

    며칠 전 미숫가루를 냉동고 알알이 얼음을 몇 개 띄우고 마시려는데 불현듯 훅…!
    옛날 생각이 났다.

    아! 그랬지…!
    그냥 엄마 생각이 나서 전화 드렸다. 막상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길래 “더위 먹지 마셔~” 딴 이야기만 엉뚱 거리다가 끊었다.

    유년시절은 대전시 태평동에서 살았다. 지금이야 아파트촌으로 시내 한복판 번화가가 되어 내가 다닌 태평국민학교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지만 40년 전에는 아주 변두리촌이었다. 당시 집집마다 냉장고 TV, 세탁기가 없던 시절이었고 여름에 얼음을 구하려면 동네 ‘어름집’에 그릇들고 가 한덩어리 사와서 바늘로 콕콕 찍어 조금씩 깨서 미숫가루에 타먹었다. 얼음 당번은 맏이인 나였고 둘째(두살아래)와 막내여동생(5살아래)은 아직 어렸다.

    집이 가난하더라도 큰 부담없이 보리가루나 곡물가루 볶고 갈아서 만든 미숫가루는 종종 먹을 수 있던 간식이자 별미였다. 손님이 방문하였을때도 말간 유리컵에 미숫가루한잔 내오면 그만이었다.

    6학년 여름 어느 날, 엄마는 중간 크기의 스텐양푼에 미숫가루를 타고 내가 뛰어가 사온 얼음을 쪼개 넣고 골고루 잘 저어서 가루가 엉키지 않게 한참을 저으셨다. 우리 3남매는 평소 단맛보기 힘든터라 아주 맛나게(게걸스럽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얼음 크기가 제 각각이라 미숫가루를 다 먹고나면 나머지 크고 작은 얼음덩어리를 입에 넣고 오도독 깨트리거나 녹을때까지 이리저리 굴리던 뒷맛도 괜찮았다. 엄마는 설탕대신 단맛 내는 ‘뉴슈가’를 타주셨다. ‘뉴슈가’는 아주 단맛이 독해서 조금만 넣어도 달디단 맛을 냈다. 바깥은 찌는듯 폭염이었지만 엄마랑 미숫가루 파티때는 마냥마냥 천국이었다.

    쨍쨍쨍 셋이서 숟가락 부딪히는 다툼도 있고 작은 아우성도 벌어지곤 했다. 엄마가 장사(생선장수) 나가시는 날에는 주섬주섬 내가 어설프게 미숫가루를 찾아 동생들과 타먹기도 했다. 그 해 여름에는 내가 핸드볼 선수생활도 하던터라 시합에 자주 나가게 되어 며칠 만에 들어오기도 했다. 그럴 때 엄마가 여러가지 챙겨 주셨고, 미숫가루도 그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우리 3남매가 같이 미숫가루 먹는 것은 그 해 여름이 마지막이었다.

    내 국민학교 졸업식을 달포 정도 남겨놓은 어느 겨울날, 둘째가 시름시름 앓다가 병으로 하늘나라로 날아갔다. 부모님은 내게 병명을 알려주지 않았고 나도 물어볼 생각도 못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아이의 증상이 뇌염(?)이 아니었나 싶은데…. 그후로도 어머니에게 묻지 않았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의 마음에 비할 바가 못되었기 때문이다.

    방학이 끝나 개학식 조회를 서면서 교장선생님이 아우의 죽음을 전교생들에게 알리고 명복을 빌 때 울었고, 대전중고등학교(중고등학교가 한울타리안에 있다) 다닐 때 그 아이가 잠시 입원해있던 병원 ‘녹색십자가’가 생각이 나서 학교 가는 길에 있는 병원들 앞을 지나기가 싫어서 몇 년을 뒷길로 돌아다녔다.

    그렇게 내 형제끼리 나눈 그리움중에 특별하게 기억나는 것은 한 겨울 ‘태평동 하평 뚝방길에서 연날리며 엄마 기다리던 일’하고 여름에 ‘미숫가루 타먹던 일’이 생각난다.

    여하튼 이후로도 미숫가루는 여러모로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대학 다닐 때 자취생활 6년 동안 비상식량으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거 한 봉지 크게 구입해 코딱지만한 찬장안에 잘 모셔두는 날이면 나나 룸메이트 친구녀석이나 든든하기 그지 없었다. 엄마가 자취생 아들에게 보내주신 고향보따리 한켠에서도 늘 한몫을 차지한 녀석이었다.

       
      ▲ 자연속에서 엄마아빠와… 아주 많은 이야기가 담긴 풍경

    우리 아이들이 아주 어릴때였어요.
    그땐 저희가 들에 일하러 나가면 할머니가 손주들을 봐주시면서 (옛날초가집의) 부뚜막이 있는 부엌에서 찬장속에 숨겨두었던 미숫가루를 스텐레스 밥그릇에 타서 아이들한테 간식으로 주곤했었지요.

    그때 우리 큰아이가 4살쯤 되었을때였는데 점심때가 되어 들에서 일하고 돌아왔는데 부엌(나무문)앞에 큰돌위에 나란히 쪼그리고 앉아 스텐레스 그릇에 무엇인가를 들고 입가 가득히 하얗게 묻은 상태로 맛나게 먹으면서 저를 보고 반갑다고 소리치면서 엄마도 미숫가루 먹어보라며 내미는데 왠지 색깔이 노란 것이 이상하다 싶어 맛을 보니 아.뿔.사. 볶은 콩가루를 물에다 타서 그리도 맛나게 먹고 있었지요.

    할매가 타주던 것을 보았던터라 할매가 마루에서 잠시 잠드신 사이에 부엌에 들어가서 콩가루를 미숫가루로 생각하고 그릇에 타서 두 형제가 그리도 맛나게 먹고 있던 것이 쑥떡을 묻혀먹던 달짝지근한 볶은 콩가루 였답니다.

    온통 얼굴에 풀칠이 되어서 맛나다며 입맛을 다시던 그 아이들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있답니다. 그땐 간식꺼리가 유일하게 미숫가루가 최고였었거든요. 지금은 두 아이들 모두 군대도 제대하고 성인이 되었지만 아직도 가끔 그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답니다. [쌀아지매추억]

    인터넷 친정엄마

    경북 예천군 개포면 가곡1리에 ‘우리 친정엄마(고객들이 붙여준 컨셉)’가 있다.
    올해 40대 중반을 갓 넘어선 정옥례씨가 그 주인공이다.

    올해 영농 26년차, 인천에서 만나 결혼하고 시어머님이 편찮으셔서 5년만 병구완 해드리고 올라오자며 내려간 시댁이 경북 예천이다. 그 예천에서 지금은 70여 마을농가와 인근농가가 연합하여 친환경농사를 짓고 알콩달콩 사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전국 4,000여명 고객들의 친정엄마로 살아간다.

    쌀아지매란 이름 때문에 사람들은 선입견을 갖는다. 나이도 많고, 억척스럽고 약간은 뚱뚱하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
     

       
      ▲ 쌀아저씨 남기호, 쌀아지매 정옥례

    대한민국의 농업적 현실, 그것도 특별한 특산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볼거리가 풍부한 마을도 아닌 곳에서 한 농가가 전자상거래를 통하여 자신이 생산한 것뿐 아니라 인근지역의 농산물까지 판매를 감당하기에 이른다. 체험학교를 비롯하여 ‘찾아오는 농촌의 전형’을 만들어 내기까지의 과정이 너무나 드라마틱하여 호기심의 천국이 되고 말았다.

    몇 년 전 ‘도시와 통하는 농촌쇼핑몰’이란 책을 쓰면서 마음속에 품었던 ‘도시민과 소통하는 컨셉’과 너무나 정확히 일치하는 쌀아지매의 활동을 눈앞에서 마주하는 일은 아주 큰 즐거움이었다.

    또 농촌쇼핑몰이 갖는 유의미한 가치를 실재로 느끼게 해 주는 요소가 많아 쌀아지매를 공부하면 할수록, 현장에 내려가 살펴보면 볼수록 배울 것이 많았고, 비례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픈 마음이 굴뚝같아졌다.

    친정엄마가 딸에게 보내는 고향보따리

    어느 날 60대 중반을 넘긴 어느 고객이 울먹거리면서 전화를 했다. 쌀아지매가 바리바리 야물게 꾸려서 보내준 상품 보따리를 풀어보고, 그 안에 앉아있는 마음이 느껴지는데 영락없이 젊었을 때 친정엄마에게서 받은 마음 그대로라 엄마 생각난다면서 전화를 한 것이다. 20여년이나 어린 쌀아지매에게서 친정엄마의 뜻을 얻은 것이다.

    보통의 여자들, 엄마들에게 친정엄마는 어떤 의미일까?

    20대 30대 새댁의 친정엄마 다르고, 40대 엄마의 친정엄마 다를 것이다. 쌀아지매보다 나이 많은 50대 60대 엄마들은 이미 그 자신이 친정엄마임에도 불구하고 쌀아지매를 보고 친정엄마의 정감을 느낀다. 참 신기한 일이다.

    나이를 먹어도 엄마는 영원한 엄마고 엄마의 그 마음 앞에서는 마냥 작아지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엄마는 참 ‘감성적인 홀로그램’이기도 하다. 살아계시든 아니든,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세대가 한 바퀴 흘러 내가 죽을 때까지 엄마의 뜻은 남는다.

    엄마가 이뻐서일까? 아니다 예쁜거로 치면 영화배우 탤런트 따라 갈수야 있겠는가? 그런데 그 엄마가 그리 좋은 이유는 마음일께다. 자식에게 무엇이든지 주고픈, 일방적인 마음 때문에 딸자식들은 감동 먹고, 시큰하고 잊은 듯 부지불식간에 뜨거워지는 것이다. 엄마로 인해,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해 내 삶은 영원한 공명을 울리는 것이다. 친정엄마의 주파수에 맞춰서….

    친정엄마가 보내주는 고향보따리에 담긴 마음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다.

       
      ▲ 필자가 주문해서 받아든 황토방선식(미숫가루), 곳곳에 쌀아지매의 손길, 마음길이 느껴진다.

    황토방선식(미숫가루)

    쌀아지매 미숫가루는 자연농법으로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12가지 곡물을 원료로 한다. 보리15%, 현미찹쌀15%, 현미15%, 기능성현미10%, 흰콩10%, 찹쌀5%, 율무5%, 서목태5%, 수수5%, 흑임자5%, 약콩5%, 속청5%를 쓴다.

    주문이 들어온뒤 바로 볶아서 생산을 한다. 미리 생산해 놓을수도 없다 흑임자 같은 원료가 같이 들어가 있으므로 산화되거나 산패되기 쉬우므로 언제나 최선의 상태에서 준비하는 것이다. 최상의 곡물로 만들어서 고객들에게 보낼 때 곱게 키운 딸을 시집 보내는 마음으로 망설이듯 망설이듯 정성들여 보낸다.

    토종잡곡류에는 몸 안의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도와 몸 속에 쌓이는 해로운 물질을 몸 밖으로 빼내는데 효과가 있다고 하니 기분까지 산뜻하게 해주고, 입맛도 추억에 젖게 만드는 미숫가루의 매력에 빠질만도 하다. 

       
      

    필자가 지난 5월 예천 기곡리 쌀아지매가 사는 마을을 방문했을 때 논둑이며 밭둑이며 온통 풀밭이었다. 자연스런 논의 풍경, 모나지 않는 밭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제초제를 쓰지 않으므로 논밭에서 인간의 욕심으로 크는 벼와 작물에 해충이 생기면 자연스레 풀밭에서 천적이 생긴다. 마을전체가 환경친화적인 컨셉으로 농사를 짓는다 마을과 이웃마을까지 합하여 77농가가 연대를 하여 다양한 결과물을 생산해낸다.

    미숫가루의 활용

    아무리 맛이 있고 의미가 있는 거라도 아침식사 대용이나 건강간식으로 여름내내 쓰다보면 자칫 애물단지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요즘에는 철을 안가리고 년중 활용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망설여질 때 있는 법이다.

    입자가 고우므로 여러가지 제과 제빵의 재료로 쓸 수 있고, 찹쌀경단에 미숫가루 옷을 입히기도 하고 칼국수 반죽할 때 미숫가루를 5 :1 정도 섞어 면을 만들면 시원한 육수와 잘 어울려 한끼식사 너끈히 뒷받침한다.

    미숫가루는 다른 요리와도 궁합이 맞는 편이다. 다른 재료에 자연스럽게 묻어가면서 흔적을 남기지 않지만 전체적인 맛을 업그레이드 시킨다. 겉절이 김치 버무릴 때 한 큰술 뿌려주면 매운맛이 살짝 줄어들면서 감칠짭짜롬한 맛이 난다. 어느 삼겹살집에서 미숫가루를 활용한 소스를 내온 집이 있었다. 기름기에 물리는 느낌이 한결 덜했다.

    마땅한 끼니꺼리가 없을 때에는 죽처럼 되게 만들어서 ‘이거 밥이다’하고 먹어도 좋다. 미숫가루는 시간이 지나면서 속이 든든해진다.

    만인의 추억이 스며있는 먹을거리 미숫가루
    사람사람 마다 수십가지 추억으로 녹아있고 애환으로 살아나는 미숫가루….
    그러고 보면 세상에 미숫가루 이야기는 끝이 없는 무한대일것 같다.

    어쩌면 앞으로도 살아있는 동안 가까이 여미고 만나야 할 존재….

    쌀아지매의 황토방미숫가루로 인하여 내 아이들과 추억의 끈을 잇고, 살아온 지난날을 반추해본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감을 기꺼워한다. 

    필자소개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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