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 좌파, 학벌 그리고 돈
        2010년 07월 09일 08: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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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주의’ vs ‘혁명적 맑스주의’?

    지금의 구도는 홍명교의 글만 읽어보면 마치 ‘진보적 자유주의자’ 조병훈과 90년대의 언어로 ‘대장정/전국학생연대회의/행진’ 출신의 ‘혁명적 맑스주의자’ 홍명교의 논쟁처럼 보인다. 전통적인 ‘문건’에 익숙한 사람들은 홍명교의 글이 ‘정합적’이라며 ‘개념 글’이라고 추어올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과연 그런가? 일단 조병훈이 ‘자유주의자’를 말할 때 ‘전통적인 좌파’가 ‘자유주의 계열의 운동’을 공격했다는 표현일 뿐, 그는 ‘자유주의’적인 어떤 것도 자신의 입장으로 이야기한 적이 없다. ‘다양한 부문 계열 운동’의 구체적인 ‘자유주의적’ 양상들을 언급하지 않는 이상 ‘자유주의자’라는 말이야 말로 홍명교의 말처럼 ‘유령’에 불과하다.

    그리고 홍명교의 말을 그대로 돌려주자면 홍명교는 ‘자유주의자’ 범주 바깥의 운동, 예컨대 1990년대 <문화과학>과 ‘문화연대’ 그룹 같은 문화운동 진영, 반자본주의적 청년 생태주의자 ‘KEY’ 같은 좌파 생태주의자 그룹, 학생회 바깥에서 다른 방식의 ‘일상의 정치’를 말하기 시작했던 급진적 여성주의자들 등에 대해 ‘몽매’하다고 표현해도 억울하면 안 될 것 같다. “이런 입장은 뻔하다”라고, 그리고 “불만이 많았을 것”이라며 ‘도덕주의’라는 단어를 동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도덕주의적 비난’에 대한 이야기가 되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진정성’ 이야기만 남는 것은 아닐까. 어떤 조직이 진정성 있게 ‘학우대중’과 함께 했냐며, ‘자본주의’의 회로를 타격했냐며 논쟁할 것인가?

    또한 홍명교가 생각하는 ‘자유주의’가 무엇인지 너무나 궁금하다. 그 근거에 대해서 입증 책임은 오롯이 홍명교에게 있다. 그것을 엄정하게 밝히지 않으면 ‘드잡이’만 하자는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학생운동권의 정황에 대해서 ‘알고/모르고’가 쟁점이 된다면 학생운동권 바깥의 모든 사람은 아무 이야기도 할 수가 없다. “내가 겪어서 안다”라면서 이야기를 계속 할 것인가?

    ‘메이저 캠’이란 말

    그런데 여기서 올 초 있었던 ‘김예슬 선언’이 생각난다. 아니 정확하게는 김예슬 선언을 조명하는 기성 언론의 기술하는 태도 말이다. 힐난하는 태도의 평가라며 욕을 먹었지만 ‘김예슬이 고대생이 아니었다면?’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가 담겨 있었다.

    2000년대 초반 학생운동 선거와 관련한 ‘집계’를 해주는 사이트들(예컨대 http://stunet.jinbo.net-지금은 불통-그리고 다음 카페의 ‘학생운동’ 카페 http://cafe.daum.net/HAKSANG ) 이 있었다. 그 집계는 내가 가지고 있는 상식과 늘 다른 결과들을 보여주었다.

    좌파 그룹의 학생 운동권은 늘 몇 학교(예를 들어 부산대, 상지대)를 제외하면 서울 인근의 몇 개 대학에서만 총학생회든 단과대 학생회 선거든 출마하고 당선이 되곤 했다. 절대다수 학교에서는 NL(한총련-한대련)과 비권의 경합이었다. 그리고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어떻게 되었나? 서울의 5~6개 학교만 ‘좌파’ 운동권이 남아있을 뿐 다른 학교에서는 아예 찾아볼 수도 없었다. NL도 다수이긴 하지만 거의 소멸했다.

    여기서 운동권에서 흘러 다녔던 ‘메이저 캠’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매번 어떤 운동권들은 ‘메이저 캠’에서의 학생회 선거 승리가 중요하다며 이야기하곤 했다. ‘유의미한’ 다양한 운동권들의 선거가 가능한 학교는 몇 개가 되지 않았다.

    1993년 한총련 출범 이후 NL이 한 번도 총학생회를 하지 않았던 학교가 서울대밖에 없었다는 점은 흥미로운 점이었다. 즉 굉장히 보편적으로 들리는 ‘NL/PD’라는 구도조차도 사실은 특정 몇몇 학교에서만 유지된 경향이었을 따름이다.

    가장 ‘좌파적’인 성향을 유지하려면, 한국사회에서 가장 ‘좋은’ 학벌을 갖춰야 한다는 이야기도 경험적으로는 성립이 된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학생 운동가조차 거의 없다. 이렇게 보면 몇 학교의 학생운동 이야기를 전반적인 ‘학생운동사’처럼 1990~2000년대를 기술하는 것이야 말로 판타지에 불과하지 않을까. 얼마나 많은 지역적인 차이가 있는가. 게다가 대학 바깥의 젊은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라면?

    20대의 정치화와 돈

       
      ▲ 필자

    좀 다른 시선으로 20대 혹은 젊은이의 ‘정치화’라는 걸 이야기해볼 수도 있다. 역설적이지만 ‘정치화’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위에서 언급했던 ‘메이저 캠’이 아닌 이상 기존의 ‘운동’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통상적인 ‘운동가의 자질’을 언급하자면 말이다.

    ‘헌신’적으로 대중들(학생이든 아니든)과 함께 뭘 하려면 늘 돈이 든다. 2000년 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등록금은 인문계의 경우 200만 원을 조금 상회했다. 그런데 지금 2010년 대학생의 등록금은 500만 원에 근접하고 있지 않나.

    거기에다가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과 술 한 잔씩 마시고, 나름의 ‘정치적 활동’을 하기 위해서 드는 돈은 한 달에 얼마씩 들까? 1년에 드는 돈을 추산해 보자. 1000만 원에 조금 못 미치는 등록금과 ‘활동비’. 결국 활동비를 벌기 위해서는 휴학을 하고 알바 하면서 돈을 벌거나 학교를 다니면서는 알바나 과외를 뛰어야 한다.

    여러 가지 종류의 알바를 하면서 학교를 ‘온전히’ 다닐 수 있을까? 그나마 과외가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조건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과외를 할 수 있는 조건은 서울에서는 ‘메이저 캠’ 몇 군대에 다니는 경우다.

    한 주에 2시간씩 두 번을 한다고 했을 때 받을 수 있는 과외비는 40~50만 원 정도가 SKY 대학과 몇 군데 ‘상위권’ 대학을 다닐 경우이고, 이른바 ‘중위권’ 대학을 다닐 경우는 30만 원 이내인 경우도 태반이다. 아, 물론 ‘운동’을 하지 않아도 과외를 하고, ‘운동’을 할 경우에도 과외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현실적인 조건으로 학생이라는 신분과 운동을 동시에 재생산하기 위해서 물적 토대를 가장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과외 아니었나? 그런데 한 건으로 쉽지는 않을 것 같고 최소한 2개의 과외는 뛰어야 하는 상황, 아니면 엄마한테 받은 용돈을 보태거나.

    물론 ‘물적 토대’를 만듦에 있어서 자기 손으로 벌 필요가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중간계급’ 이상의 부모가 있는 경우다. 5월 22일 있었던 ‘분개한 젊은 래디컬의 비명’에서 권용만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혁명은 엄마 돈으로!”라는 말을 비웃을 수 있을까?

    바디우를, 지젝을, 랑시에르를, 고진을, 발리바르를 읽었거나 말았거나 이 문제에서 아무도 자유로워지지 않았고, 그 강박은 대다수에게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구조적인 불안정 노동과 취업대란 상황에서 운동을 접고 고시나, 취업 준비를 선택하는 것도 어쩌면 필연적이었다.

    그래서 결국 2000년대 이후 20대의 ‘정치화’와 관련해서 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 아무도 말하기 쉽지 않았지만 ‘돈’이었다. 학생회비를 연대하는 단체들 때문에 쓰거나, 어떤 정치적 ‘행동’을 위해서 쓸 때마다 여기저기서 문제가 되었던 것도 ‘운동’을 위해서 쓸 수밖에 없는 ‘운동권’과, 그 돈을 ‘학생들의 복지’를 위해 쓰겠다는 비권(비운동권)이 선거에서 붙었던 것이다.

    조병훈이 말하듯이 결국 어떤 정파의 운동권이든 학생회 선거를 할 때에는 ‘비권’과 닮지 않을 수 없었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인 과연 ‘비난’이기만 할까? 그리고 이는 1985년 근처의 ‘학도호국단’을 철폐할 때의 학생회를 부활시키고자 했던 이들이 ‘운동’을 말할 때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기도 하다. (이와 레닌주의적인 조직론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으나 이는 기회가 되면 다음에 하겠다.)

    학생회의 ‘정치화’가 늘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학생회에 기반을 두었던 학생운동들이 분해되어가고 것도 이해되지 않나.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학생위원회 같이 정당을 경유하거나, ‘행진’처럼 다른 방식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른 방식의 운동, 개인들 그리고 좌파의 정치

    또 젊은 세대들의 ‘운동’ 전반은 학교를 경유하거나, 혹은 하지 않으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학교에선 기존의 ‘조합주의’ 운동으로 불리면서 맹비난을 받았던 ‘생협’도 재편되기 시작했고, ‘생태주의’라는 이념들을 흡수하면서 더 급진화되기 시작했다.그리고 그 안에서 다른 방식의 ‘반자본주의’ 운동을 꿈꾸는 코뮨주의자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박가분을 위시한 ‘공동생활전선’이 바로 그렇지 않나?).

    또 다른 방향에서 ‘20대 당사자 운동’이랄지, 시민운동, 생태운동 계열에서 ‘급진화’되면서 등장하는 조류들도 있다. 그리고 이들은 ‘자립’이라는 측면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이념적 ‘급진성’보다 엄마와 떨어진 상태에서의 생활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이랄까. 그 이야기들이 구체적으로 나와 논쟁이 나오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게다가 기존의 ‘정치적인 것’ 바깥에서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기 계발하는’ 주체였던 개인들이 조금씩 변하는 경우도 있다. 2008년 촛불을 계기로 진보 정당에 들어온 젊은 ‘개인들’이 있다. 이들을 ‘진보적 자유주의자’라고, 노빠 출신이라고, ‘강남 좌파’라고만 할 수 있을까? 다른 명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많은 20대들이 진보신당 언저리를 많이 거닐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많은 경우 여러 경향들의 젊은이들이 5월 1일의 두리반의 경우처럼 마주치면서 다른 방향의 ‘정치’를 상상하고 있는 듯하다. (이 ‘정치’에 대한 규정도 다음 기회에 이야기했으면 한다.)

    ‘자유주의’ 유령을 잡을 때가 아니라, 전통적 방식의 이야기 바깥, 지금까지 나오지 않은 ‘급진적 정치’ 이야기들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보이지 않던 ‘몫이 없는 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해야 하지 않을까.

    문제는 오히려 기존의 진보정당과 단체들이 그들의 ‘생태계’와 어떻게 관계 맺을지를 잘 모른다는 점에 있는 것 같다. 정확히는 학생운동권이 문제가 아니라 ‘윗세대 활동가’들이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 아닐까. 그들을 기존의 좌파 담론의 프레임으로 분류하고, 평가하며 꾸짖는 습관의 문제 아닐까.

    이미 새날은 왔는데 해가 뜨지 않은 것만 같다. 그리고 당 내부의 젊은이들에게 진보정당은, 각종 진보적 단체들은 얼마나 ‘환대’를 하고 있는가? 매번 ‘자립적이지 못하’다며 뒷담화와 앞담화로 ‘20대 개새끼론’등을 외치는 좌파 단체와 진보 정당의 지도부는 과연 자기 공간 안의 젊은이들에게 얼마의 활동비를 주고 있나?

    ‘헌신’만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제는 ‘문화적 감수성’이 중요하다면서 얼마나 많은 ‘문화비’를 주고 있나? 엄마한테 ‘의존’하는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삶의 존엄에서 조금 비껴나간 활동가들의 저소득의 ‘찌질한 삶’을 포장하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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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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