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드립이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
    2010년 07월 08일 09: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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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맑스와 얼마나 닮았는지를 증명하기 위해 글을 쓴다. 또, 상대가 얼마나 맑스와 다른지를 증명하기 위해서도 글을 쓴다. 그것이 어떤 가치를 의미하느냐에 대한 논쟁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 이미 ‘합의된 것’이기 때문이다.

주입식 사회주의

새롭게 주류운동에 끼어드는 세대에게 허용되는 것은 그 경로에 대한 토론뿐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사람들의 욕망도 변화하지만, 추구해야 할 사회상은 답습될 뿐이다. 새로운 세대는 자신의 욕망에 대해서 이야기할 권한을 얻어내지 못하고, 오로지 선배들이 자주 인용하는 사상가가 누구냐에 따라 자신의 욕망과 얼마나 닮았는지를 추측할 뿐이다.

집에서 자다 나와서 얼떨결에 운동에 뛰어든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당혹스럽기 그지 없다. 역사의 성과를 물려받기보다는 선배들의 역사 자체를 답습해주길 바라는 주류 정서에 포섭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일단 사람을 만나면 어느 단체에서 활동하는지부터 파악하고, 그 다음에는 “어느 학교 몇 학번”이 따라붙는다. 그리고 그것으로 상대를 다 파악했다고 믿는다. 카메라가 있는 곳에서는 “동지가 혁명의 주체”라며 두둔하면서도,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는 “형 말 들어, 임마”가 일상적이다. 난 이걸 농담삼아 ‘주입식 사회주의’라고 부른다.

내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겠다고 대들면 순식간에 낙인이 찍힌다. 대체로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말들, “또라이 or 개량 or 몽상적 or 철없는 새퀴” 같은 것들. 찍히고 찍히다 보니 이젠 그 과정들이 귀찮아져서, 처음 사람을 만날 땐 “그냥 취미로 운동하는 잉여입니다. 요즘은 선거에 매몰되어 있고요, 인생 날로 먹는게 꿈입니다. 어우 전 빨간색 싫어해요”하고 자신을 소개해버린다. 그러고 다니다 보면 어느새 ‘괴짜’라는 낙인이 찍힌다. “쟨 원래 저러니까.”

괴짜가 되고 나면 더이상 면박을 당하거나 할 일은 없어지지만, 내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들의 귓속에서 ‘괴짜’라는 편견이 필터가 되어 내 입이 말하는 것들을 고풍스러운 이야기들로 정제하기 때문이다.

"젊은 활동가가 왜 줄어드냐고?"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은 결국 허공에 묻히고, 시간이 누적될수록 피로만 쌓인다. 결국 “안될 거야”가 승리한다.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는 가슴에 묻어두고, 아저씨들이 원하는 대로 말하고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 튀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자원봉사하는 기분으로 운동을 이어간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 피곤한 귓등으로 아저씨들의 한탄이 들려온다. “왜 젊은 활동가들이 점점 줄어들까?” 왜긴.

며칠전의 어떤 집회에서 젊은 잉여들과 둘러서있다가, 아주 잠깐 그 정서를 공유했던 경험이 있다. 권위있는 노동운동의 간부가 쇳소리를 내며 과장된 수사로 마무리 발언을 하는 동안, 한 청소년 활동가가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왜 한국말인데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걸까요?”

   
  ▲ 김슷캇 블로그 이미지

물론 이 이야기는 그 공간 안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그들과 공유되지 않는, 멋모르는 어린 것들의 투정일 뿐이다. 대답은 하나, “아직 정치를 모르는구만?” 강요되는, 따라하기는 결코 싫고 공감도 안되는 언어들이 귓가를 맴도는 동안 할 말은 점점 없어진다. 그러다 일부는 포섭되고, 일부는 나처럼 이상한 노래나 부르고 다니는 잉여가 된다. 겉으로는 그럴듯한 말과 너스레로 일관하지만 가슴속에는 원대한 개드립의 꿈을 품고 있는.

물론 그들은 간혹 청년들을 이해하는 척한다. 좋아하는 척하기도 한다. 주로 그것은 포섭되지 않은 자들을 향한다. 젊은이들의 발랄한, 그러나 자기 조직의 젊은 활동가가 하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분명히 문제삼을 그런 활동들을 보여주며 "참신하다"고 떠든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주장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들의 패션과, 그들의 선전물들, ‘참신’이란 고작 그것들 뿐이다.

문제는 나같은 불순분자가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불순분자들은 저마다 어떤 단체, 어떤 계보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언뜻언뜻 불순한 말들을 뱉어내곤 한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렇다면 불순한 인간들을 제대로 모아보면 어떨까. 경계선에 펜스를 쳐놓고 둘러앉아서, 아저씨들 몰래 음모를 피워보면 어떨까.

나는 입당이 아니라 개드립을 권유한다

아니, 사실은 그렇게 해야하는 것 아닐까? 조병훈은 젊은 사람들을 만날 때 진보정당 입당을 권유한다는데, 나는 젊은 사람들을 만날때 개드립을 권유한다. 치사하고 비열하고 음모적인 개드립을 함께 쳐보지 않겠냐고. 물론 그 개드립이 어떤 것들인지에 대해 여기서 밝힐 수는 없다. 그러면 음모가 아니니까.

꿍꿍이가 뭔진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거동이 심히 수상한 젊은이 셋이서 레디앙에 [진보, 야!] 라는 꼭지를 이어가고 있다. 뭘 낚으려는 건지는 몰라도 초장부터 따분하네 심심하네 같이 놀자 어쩌고 하면서 거대 떡밥을 휙 던지더니, 고기가 안 잡히니 풀이 죽었는지 요즘은 시시한 이야기만 하고 있다.

그네들이 뭘 낚고 싶었는지, 지금은 왜 이렇게 시시한 이야기만 하는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만, 좀 자의적으로 해석하자면, 그네들은 ‘젊은 주체’들을 대상으로 “한없이 빛나는 개드립을 함께 쳐보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뭘 해야 할지, 뭐부터 말해야 할지는 모호하지만. 그렇다면 내가 그들에게 요구하고 싶은 것도 뻔하다. “더 크고 아름다운 개드립을!” “담대한 개드립이 만선을 만든다!”

선거 참여율이 어쨌네, 시민사회와의 연대가 어쨌네 하는 시시한 이야기는 그만 하자. 기왕에 떡밥을 던졌으면 인정이고 의리고 개념이고 다 갖다버리고 낚시대를 화려하게 휘둘러주는 게 물고기들에게도 예의다. 설마하니 잡은 물고기를 도로 방류해주겠다는 착한 생각을 하고 있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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