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소노동자들의 '1박2일' 투쟁 승리
        2010년 07월 08일 04: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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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 밥 한 끼 먹을 곳도 없는 열악한 근무환경, 사회적 편견과 무시. 최근 일부 청소노동자들은 이 같은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투쟁에 나서고 있다. 쉽지 않은 싸움에서 이들이 종종 승리를 기록하는 것은 그만큼 요구가 절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노동조합’이라는 울타리 밖에 있는 대부분의 청소 노동자들은 여전히 ‘투명인간’처럼 지내고 있다.

    지난달 27일, 인천공항 청소노동자들이 여객터미널 지하에서 밤샘농성 끝에 체불임금을 받아낸 사건은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이들은 수도권종합개발(주) 인천공항사업소노조 라는 노조에 가입돼있었지만, 어용노조로 사실상 활동을 해본적 없었다. 사실상 노조가 없는 곳에서 이들이 들고 일어나서 일궈낸 승리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체불임금을 받아낸 후 기존 노조를 탈퇴하고 공공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에 가입했다.
     

    “몇 달 전부터 아주머니들이 술렁였어요. 월급명세서를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인천공항에서 청소일을 하는 정명선씨(44)는 매월 급여명세서를 보면서 휴일근무수당이나 시간외 수당이 너무 작은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만, 적극적으로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고 했다. 용역회사에 속한 비정규직이라는 사실 때문에, 청소일을 하는 다른 동료들 역시 그랬다고 한다.

    “그런데 몇몇 용기있는 아주머니들께서 급여명세서를 들고 지역의 노동청을 찾아갔죠. 그곳 공무원과 상담한 아주머니들이 시간 외 수당을 덜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덜 지급된 시간외 수당을 따져보니, 지난해 3월부터 올 2월까지 월 8만 6천여원씩, 1명당 1백만원 이상이나 됐다. 이 사실은 곧 다른 동료들에게도 알려졌고, 용역회사에서도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나섰다.

    1년간 미지급 수당 100만원 넘어

    “회사에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했던 아주머니에게 전화로 그랬대요. 인천공항과 계약된 조건상 지금 지급하는 급여 외에 더 줄 수 없다고.” 정 씨의 말이다.

    청소노동자가 이를 수긍하는 것 같지 않자, 회사는 다음날 오후 갑작스럽게 청소용역 노동자들을 교육장에 모이게 하고, 해명에 나섰다. 정씨는 "그런데 이 해명이 오히려 ‘불난 집에 기름 부은 격’이 됐다."고 말했다. 

    정 씨가 전하는 당시 상황은 이렇다 “용역회사 관리자들이 나와서 우리에게 ‘줄 꺼 다 줬다’는 거예요. 시급, 기본급 모두 엉터리로 계산해서 얘기하면서. 그러면서 ‘요구하는 대로 다 주면 명절 떡값, 김장철 보너스는 못 준다’고 그러더라구요. 분명히 시간외 수당 미지급은 근로기준법 위반이고, 노동청 공무원에게도 임금이 덜 지급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 회사가 그렇게 나오니까 황당하고 화가 났던 거죠. 4조 3교대로 일하는데 그 자리에서 오전조, 야간조 근무자들도 다 오라고 연락했어요.”

    이렇게 해서 ‘본의 아니게’ 인천공항 여객터미날 지하에서 200여명의 청소노동자들은 자동적으로 ‘농성 대열’을 이루게 됐다. 

       
      ▲ 지난 27일 200여명의 청소노동자가 인천공항 여객터미널에서 농성했다 (사진=공공노조 인천공항지부)

    정 씨는 “같은 공항에서 일하지만,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어요. 그래도 그 순간에는 회사의 행태에 모두 분개했기 때문에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여기서 차가운 바닥이라도 지키고 앉아야겠다’ 했던 거죠.”라고 말했다.

    인천공항 청소노동자들은 3조 4교대로 오전, 오후, 야간으로 나눠져 일한다. 일하는 장소도 여객터미날과 탑승동으로 나뉘어졌고, 층간에도 동쪽, 서쪽으로 분리돼 있다. 몇 년 동안 일했어도, 얼굴도 못 보는 동료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당신 누구세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농성 당일 웃지 못할 일도 생겼다. 정 씨는 “저는 당일 휴가였는데, 동료한테 전화를 받고 온 거였거든요. 제가 앞에 나가서 얘기를 하니까 동료들이 ‘당신 누구냐’고 하더라구요. 그날은 제가 근무복을 입고 있지 않았거든요.“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농성하는 노동자들이 서로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일사분란한 모습이었을 리 만무했다. 농성에 참여했던 한 사람은 “회사에 뭘 얘기하려면 대표라도 있어야 하는데, 서로 다른 시간에 다른 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막 뒤섞여 앉아있으니 이래선 아무것 도 안되겠다 싶었죠.”라고 말했다.

    이 소식을 들은 공공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가 조심스럽게 지원에 나섰다. 이들은 인천공항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여 약 2년 전에 결성한 노조다.

    “노조에서 우리 모습을 지켜보더니, 회사와 교섭할 협상단을 꾸리라고 일러주더라구요. 그래서 근무조, 근무지 별로 각각 남자 3명, 여자 3명씩 협상단을 만들었어요.”

    인천공항지역지부 소속 조합원들은 농성 당일 빵과 우유 등을 사다 나르면서 난생 처음 농성하는 청소노동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협상단이 나서서 당일 오후 3시경부터 용역회사 소장, 본부장 교섭에 들어갔다. 소장은 “그동안 떡값, 김장보너스 등으로 시간외 수당을 다 줬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다 본부장이 올 3~5월치 수당을 계산해 주겠다고 했지만 성이 차지 않았다.

    회사, 24시간 만에 항복

    밤은 깊어 갔지만 농성은 계속됐다. 50~60대 여성들은 찬바닥에 주저않고, 제대로된 급여를 주지 않으면, 밤을 새더라도 농성을 풀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회사는 고집스레 버텼다.

    자정쯤 본부장이 다시 농성장에 나타났다. 하지만 그는 현장에서 농성중인 노동자들과 한바탕 말싸움만 하고 갔다. 진전된 안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낮에 했던 얘기만 똑같이 반복했다. 시급도 엉터리로 얘기하고, 급여는 맞게 계산됐다고 억지를 부렸다. 투쟁하는 짧은시간에 노동자들은 변해가고 있었지만, 그는 예전처럼 노동자들을 우습게 보고 무시했던 셈이다.

    용역회사는 다음날 오후 3시가 돼서야 올 3월치 시간외 수당부터 제대로 산정해 지급할 것과 기본급 3만원을 인상하겠다는 안을 들고 나왔다. 물론 농성 대열은 하루 밤을 꼬박 새고도 그때까지 유지되고 있었다.

    정씨는 “하루 지나 타협안이 기본급 3만원 인상"이었다며 이 안에 "반대하는 동료도 있었지만, 대다수가 찬성해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회사와 합의 후 약 360명의 청소노동자는 인천공항 비정규직노동자들이 결성한 노조에 가입했다. 정씨는 “지금 계속 가입 신청서가 들어오고 있다”며 “워낙 어용노조에 대한 불신이 커서 새로운 노조에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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