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양이 사냥과 마녀 사냥
        2010년 07월 06일 08:49 오전

    Print Friendly

    얼마 전, 밤새 비가 내린 다음날이었다. 출근길에 나섰던 동생이 부리나케 돌아와 함께 나가보자고 했다. 나가보니 자그마한 아기 고양이 하나가 위로는 자동차가 쌩쌩 달리고 아래로는 자동차 수리 센터가 있어 이런저런 차들이 드나드는 사이 비탈진 둑 나무 덤불 밑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하필 주위에는 커다란 개 두 마리가 겅중겅중 뛰어다니고 있었다. 둑과 길 사이에는 수로가 나있어 조그만 그 고양이는 오도가도 못 하고 있었다. 동생이 수로를 넘어가 고양이를 구하려고 보니 덤불에 엉켜 꼼짝도 못하는 상태였다. 그러니 어미를 따라 가지도, 혼자 비를 피할 곳을 찾아 가지도 못하고 밤새 내리는 비를 꼬박 맞고 있었던가 보다. 그 아기 고양이를 집에 들이는 것 말고 다른 선택이 없었다.

    그리고 며칠 지나 ‘고양이 은비’ 사건이 불거졌다. 술에 취한 20대 여성이 ‘은비’라는 이름의 아무 저항도 못하는 순한 이웃집 고양이를 때리고, 발로 차고, 내동댕이치고, 하이힐 신은 발로 짓밟고, 도망가면 따라가서 괴롭히던 끝에 고층 오피스텔 창밖으로 내던져 죽인 끔찍한 사건이다.

       
      ▲ 술에 취한 한 20대 여성이 고양이를 폭행하는 장면이 CCTV에 찍혔다

    아무런 목격자가 없는 시간에 한 오피스텔 복도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반려동물을 잃은 주인의 애만 태우다 끝내 종적을 찾을 수 없었던 다른 많은 개나 고양이의 경우처럼 묻혀버릴 수도 있었다. 그래서 고양이 은비를 폭행하고 창 밖에 내던져버린 사람은 주인이 찾으러 왔을 때 시치미 뚝 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게 된 지 오래인 이 사회에는 좀 산다 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면 어디나 24시간 들고나는 사람의 움직임을 기록하는 CCTV가 설치되어 있다. 마침 범죄가 벌어진 건물의 CCTV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으며, 관리도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범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CCTV, 모두는 잠재 범죄자

    CCTV는 일상화된 감시 시스템이다.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을 지킬 권리보다 공동체가 범죄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관리 체제를 더 필요로 할 정도로 이 사회는 위험하다. 어린 소녀가 학교 운동장에서 납치되어 유린당하고, 보호자 없는 소녀가 동네 사내들에게 집단으로 강간당하고, 심지어 멀쩡하게 자기 집 안에서조차 피붙이인 아비나 오라비에게 몇 년씩 짓밟히는 일들이 벌어진다.

    이런 폭력을 CCTV로 다 잡아낼 수는 없다. 오직 폭력에 희생된 당사자나 가까운 사람의 신고가 있어야만 알 수 있다. 막상 알려진대도 처벌이라는 게 참 별 것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친딸을 몇 년씩 성적으로 유린해도 생계가 어쩌고, 나머지 가족의 탄원이 저쩌고 하면 슬그머니 풀려난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 아이를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될 정도로 짓밟아도 술에 취했다고 하면 심신미약이라며 오히려 형량이 줄어드는 마당에 하물며 술에 취해 고양이 하나 때려 죽였다고 대단한 처벌을 받게 될 리 없다는 걸 누구나 안다.

    생명에게 고통을 주거나 목숨까지 끊어버리는 일에 대해 이 사회는 너무 관대하다. 대개 폭력에 희생되는 것은 여성, 어린아이, 또는 동물이다. 그러니까 남성, 성인, 인간에 비해 약자들이다. 강한 자에게는 비굴하지만 약한 자에게는 군림하는 것이 법이요, 권력인 사회에서 약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넘쳐나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이런 범죄를 막는 것은 처벌의 강도를 높인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먼저 약자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하고 그 보호의 책임은 사회가 함께 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어야 한다.

    중형으로 막을 수 없다

       
      ▲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포스터

    <고양이를 부탁해>에서는 도시 주변 빈민가에서 부모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새끼 길고양이를 구해 친구에게 생일 선물로 주는 무직의 여상 졸업생 지영(옥지영)이 살던 집이 무너져 할머니 할아버지가 죽자 뜬금없이 살인범으로 몰리게 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집안도, 학벌도, 경제력도 갖추지 못한 젊은 아가씨는 길고양이 새끼와도 같다. 혼자서는 살 수 없지만 아무에게도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심지어 해롭고 위험한 존재로 꺼려지고, 심판 받는다. 자신이 부탁한 아기 고양이를 함께 보듬는 친구들이 있기에 지영은 이 세상에 절망하지 않을 수 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는 결혼을 통해 신분상승을 꿈꾸는 도시 빈민 아가씨 홀리(오드리 헵번)가 고양이에게 정을 붙이고 살다가 꿈이 좌절되는 날 퍼붓는 빗속에 고양이를 길에 내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다가 문득 마음을 바로 잡고 고양이를 다시 찾아 품에 안는 순간 홀리는 허황된 욕망보다 진실한 사랑의 소중함을 알고 자신을 긍정하게 된다.

    <배트맨 2>에서는 권력의 추악한 속내를 알게 되자 살해당한 소박한 아가씨 셀리나(미셸 파이퍼)가 평소 돌보던 길고양이들의 도움으로 자신을 죽음으로 내몬 권력에 대해 응징하기 위해 캣우먼으로 되살아나 처절하게 싸운다.

    쥐가 양곡을 축내던 시절, 다락이며 광에 들끓는 쥐가 시끄럽던 시절, 전국적으로 ‘쥐 잡는 날’이 있던 시절까지만 해도 고양이는 지금처럼 천덕꾸러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전래동화에서는 고양이가 마음씨 고운 할머니 할아버지를 부자로 만들어준 파란 구슬을 훔쳐 간 옆 동네 심술보를 찾아가 구슬을 되찾아오는 기특한 동물로 그려지고, 이 이야기는 예전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었다.

    그런데 쥐가 집집마다 냉장고 속에 들어있는 음식을 훔쳐 먹지 못하게 되면서 고양이도 미움을 받게 되었다. 그 미움의 근거는 ‘고양이가 요물’이라는 편견이다. 이 편견은 서양 크리스트교 역사에서 가장 비이성적이던 중세 마녀 사냥의 그림자다. 마녀는 이단이고, 마녀는 고양이를 키운다는 억지. 그러니까 약자인 여성과 약자인 동물의 연대에 대한 처벌.

    마녀는 고양이를 키운다?

    이 마녀 사냥은 중세 유럽에서 크리스트교에 포섭되지 않는 약자를 없애면서 동시에 고양이까지 없애 버렸다. 그러면서 크리스트교가 퍼지는 만큼이나 세차게 쥐가 옮기는 흑사병이 창궐해서 당시 유럽 인구의 삼분의 일이 흑사병으로 죽어나갔다. 고양이가 없는 세상의 문제는 당연히 쥐떼가 넘쳐나는 것이다. 쥐떼와 그릇된 기독교 문화는 도시 전체의 아이들을 한 순간에 잃게 만든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람> 이야기로 남아 전해진다.

       
      

    고양이를 함부로 해도 문제가 안 되는 세상은 살아 있는 모든 존재를 함부로 해도 문제가 안 되는 세상이다. 개나 고양이에 대한 학대나 살해는 한 존재의 생명을 짓밟는 행위이며, 이런 가혹 행위에 대해 관대한 세상에서는 동물이든 사람이든 약자의 생명은 존중받지 못하게 된다. 사랑스러운 눈빛 때문에 <슈렉> 시리즈의 최고 인기 캐릭터가 된 장화 신은 고양이는 원작 동화에서는 가장 약한 사람에게 힘을 보태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한다.

    <장화 신은 고양이>나 <파란 구슬>같은 동화처럼 고양이와 힘없는 사람이 함께 하면서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 것인지,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람>에서처럼 고양이 없는 세상에서 미래의 희망조차 잃어버릴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사회의 몫이다.

    동물학대에 대해 생명의 존엄함이라는 기준으로 다가갈 때, 이 사회에서 약자에 대한 범죄를 막을 수 있는 인식의 지평은 더 넓고 깊어진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정말이지 ‘고양이를 부탁해’도 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