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진보신당에 입당 안해?"
    2010년 07월 05일 07:1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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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원이에요?"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적당할 때 정당에 가입했냐고 물어본다. 상대가 대부분 젊은 사람들 중에 정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 제한되긴 하지만, 안 그런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보았다가 슬쩍 물어보기도 한다. 지방선거 이후 정당에 대한 입장이 바뀌는 변곡점을 찾아보고 입당을 독려하려는 속셈인데, 유행까지는 아니지만 상징성 있는 그룹들이 입당을 고려하는 중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젊은 이들과 입당

80년대에 태어난 젊은이들과 진보정당 입당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어느 당에 가입할 것이냐 하는 문제보다 정당 가입 여부가 더 중요한 질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전통적인 좌파들은 정치운동의 약화가 동구 사회주의의 붕괴를 본 좌파 운동권의 와해로 득세한 90년대 자유주의 계열의 운동을 공격하기도 했지만, 2000년대에 20대가 된 젊은 세대의 눈에 비친 사회에는 마르크스주의와 자유주의의 갈등이라기보다는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억압하는 기득 권력이 있었고, 이에 대항하는 그룹으로 노동운동 전통에 있던 운동권과 각 부문으로 나뉘어 활동을 시작했던 시민운동이 있을 뿐이었다.

기득 권력에 대항하는 대학 내 그룹이었던 이른바 ‘학생운동권’은 NL과 PD로 나뉘어 단과대와 총학생회를 잡으려고 경합하고 있었지만, 2000년대는 이미 이들에 대한 관성적 지지조차 신자유주의 경쟁의 바람에 의해 줄어드는 상황이었고, 학내 민주화나 다양하게 촉발된 지역, 혹은 부문별 시민운동의 요구가 새롭게 등장한 시기이기도 했다.

기존의 학내운동권이 권위를 상실한 것은 학생사회에서 제기된 두 가지 주요 문제에 대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IMF 이후 대학에 생존형 경쟁이 가속되면서 대학이 투쟁의 전위여야 하는가에 대한 보수주의 학생들의 전통적인 비난과 함께, 다양한 부문으로 분화된 저항운동의 요구를 학생회에서 포괄하지 못했다는 비난이 그것이었다.

두 가지 다른 진영의 비판이 학생사회의 민주화라는 어쩐지 미심쩍은 주장으로 학생운동권을 공격하는 형국이 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수배까지 받고 있던 지도부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집행부 중심일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학내운동권으로서는 외부와 내부의 두 가지 저항을 해소할 여력이 없었고, 점차 기득 권력에 친화적인 ‘비권’들에 권력을 내주는 빈도가 잦아지다가 결국 잔류하던 기존 운동권도 ‘비권’과 같은 공약을 내걸지 않고는 학내 권력으로 생존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대학 운동권 권위 상실 이유

특히 두 번째 문제는 학생운동권이 지도부 중심 운영과 함께 학내의 또 다른 권위주의를 야기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새로운 활동가를 재생산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이탈한 학생들은 학교 밖으로 활동영역을 바꾸어 ‘광역화된 부문운동’으로 분화되었다.

이 시기에 각 시민사회가 대학생이나 청년단위를 만드는 등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면서 ‘시민사회단체 인턴’이라는 특이한 유행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시민사회 인턴십의 경험을 대학에서 학점으로 인정하거나 기업의 취직 요건에 포함시킨 것은 자본을 위시한 기득 권력의 발 빠른 대응이었던 반면, 피해자 의식이 강했던 학생운동권은 이탈에 속수무책이었으며 이들을 ‘부르주아 자유주의 운동’이라며 오히려 격리했다.

당시 민주노동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정책연합 등을 위시한 연대활동을 이어왔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학생사회는 학내 학생회 집권을 목표로 하는 학생회그룹과 학생회그룹의 ‘꼰대로움’에 질려 대학 밖으로 자리를 옮긴 학생 개개인으로 분리되었다.

정치적 연대가 형성되는 것은 각 그룹이 동시에 ‘연대 필요’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대학에서 이루어진 저항적 학생들의 분리는 "학우대중의 지지가 줄었다"는 애매모호한 외부요인 탓이라기보다는 학생운동권 지도부가 기득 권력과 자신 모두에게 비판적인 학생들을 받아들이기 위한 구조변혁을 하지 않는 것이 이익이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학생 운동권의 기득권 유지

실제로 NL과 PD 사이의 경합에서 살아남은 학생운동권은 조직능력이나 학교당국과의 협상능력의 우위를 내세워 ‘등록금 투쟁’을 전문으로 하는 소수의 조직운동집단으로 생존을 유지했는데, 학생회 선거에서 패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비권’과의 차이가 희미해졌지만, 예의 비판적인 학생들이 학생회 선거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운동권 완장’은 유지됐다. 그러나 라이벌을 상실하자 자신의 세도 빠르게 줄어들었다.

다행인지 학생운동권의 몰락이 바닥을 칠 때 즈음 이명박 정권이 등장하면서 학생운동권과 학교 밖으로 흩어졌던 젊은이들의 ‘연대 필요’가 공유될 기회가 다시 생겨났고, 거의 동시에 등장한 20대 담론이 이론적 근거로 제공되었다.

구체적 배경으로는 학생회 선거에서 위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보수주의그룹에 대항하기 위해 뒤늦게라도 구조변혁을 일으키려는 움직임을 시작하는 한편, 자신이 선택한 부문운동 내에서 세대차별을 경험한 청년들이 자기조직화의 필요를 찾은 것이다.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문화 부문에서 활동하던 이론가나 활동가, 문화와 생태를 기치로 건 대학 총학생회 선본의 출현, 철거와 농성현장에 달려가는 음악가 등을 매개로 분리된 활동 영역이 연대하기 시작했다. 2010년 두리반에서 열린 노동절 파티는 그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런 움직임이 즉각 견고하고 강력한 연대를 보장하지는 않았다. 20대 담론에 대한 반응은 즉각 20대 내의 계급 차이며 문화적 차이에 따른 20대의 다양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20대가 다 같은 20대가 아니다’는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 연대를 방해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뚜렷한 입장 차가 있을 때 연대의 필요와 가능성도 보다 명확하게 도출될 수 있다.

20대의 전면적 연대

지금은 명박반대나 청년실업해결과 같은 다소 일반적인 목표를 공유하는 실정이지만 청년문제와 이어지는 구체적인 목표가 설정된다면 그 때가 이들이 전면적으로 연대하는 시점이 될 것이다. 이들에게 핵심은 ‘연합 우선’이 아니다. 공유할 만한 구체적인 목표나 정책위에서 나오는 전략이 중요하다.

덧붙여 주목해야할 것은 이들 서로간의 연대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들은 기존 학생운동권이 당시 새롭게 등장한 여성과 소수자, 환경, 평화, 문화 부문의 활동그룹들과 적극적으로 연합하는 대신 자기의 전통에 기대 수세적인 생존을 선택한 것이 결국 학생운동권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반성을 공유한다.

이를테면 이들의 연대는 공통적인 메커니즘이 만들어내는 더 다양한 문제에 저항하기 위한 연대이고, 필연적으로 새로운 지향을 요구한다. 조금 더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지지율이 올라간다거나 "대세를 위해 연대해야 한다." 따위의 수를 부리면 상대가 코웃음 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선거 후 진보신당을 둘러싸고 터져 나온 논의 중 어느 쪽이건 정권교체를 위해 정치 연대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원천 반대하는 것 같지는 않다. 어떤 식으로든 선거 연대는 필요하다는 동의에 기초해서 통합당으로 갈 것이냐 각각의 정당을 유지할 것이냐를 두고 논쟁하고 있는 상황인데, 워낙 작은 동네다 보니 서로 잽만 날리면서 우왕좌왕이랄까.

급기야 조용하던 분들까지 힘을 보태려고 가세하는 형국인데, 대부분은 해묵은 욕잔치가 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통합론이나 독자론 모두 그다지 새로운 당원을 염두에 둔 논의가 아니라는 것이 더 답답하다. 솔직히 새롭게 입당을 고려하는 사람의 입장에 서서 냉정하게 보면 지금 상황은 “이래서야 입당할 맛 나겠냐?”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어쨌거나 2000년대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을 주로 만나다보니 대개 그들에게 “당원이야? 왜 진보신당에 입당 안해?” 라며 묻는다. 글쎄,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답을 내리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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