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련 사회주의는 어디로 갔을까?
        2010년 07월 04일 10: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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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이 글을, 아버지의 고향을 한 번 보라고 데리고 온 제 아이가 자고 있는 사이에서 상트페테르부르그의 한 호텔에서 쓰고 있습니다. 어제 왔고 내일 모레 아침이면 떠나야 하는 아주 짧은 체류인데, 매우 슬픈 생각만이 공연히 깁니다.

    고교 시절 애독 잡지들

    어제 밤을, 제가 자랐던 부모님의 댁에서 보냈는데, 거기에는 지금도 페레스트로이카, 즉 1987~91년간의 잡지들이 듬뿍 쌓여 있습니다. 그 전의 잡지들이 스탈린주의적 도그마주의가 심해 별로 볼 재미가 많지 않고, 그 후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이나 러시아 민족주의에 거의 정복당해 역시 볼 재미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 기간 만큼은 아주 볼만합니다.

    제가 고교에 다닐 때에 계속 애독했던 그 잡지들을 보면, 약 1990년까지는 주된 기조는 ‘사회주의 폐기’라기보다는 ‘사회주의 개조’였습니다. 필자마다 성향이 조금씩 달라 어떤 이들이 ‘레닌주의 원칙’을 다시 세우자 했고, 어떤 이들이 차라리 사민주의적 색깔의 ‘민주적 사회주의’가 좋다고 하여, 일당 독재를 용인한 레닌을 힐책하고 사회주의적 다당제를 원했던 멘세비키 마르토프를 옹호했는데, 어쨌든 ‘사회주의’는 공통된 코드이었습니다.

    잡지 필진 뿐만 아니고 제가 기억한 대로는 다수의 ‘일반’ 노동자들은 약간의 민주성과 제한적 시장경제적 요소의 도입을 통한 물자 부족 해소를 원했으면 원했지, 사회주의를 아주 버리자고 한 사람들은 아주 드물었어요. 그리고 사회주의 자체를 의문시하는 사람도 병원에 갈 때에 돈내고 가는 사회를 실제로 상상조차 못했지요. 즉, ‘자본주의’를 이야기해도 그게 뭔지를 거의 실감 못했죠.

    분수령은 1989~90년이었던 것 같아요. 동독을 위시한 동유럽의 몰락과 소련 안에서의 각종 민족 독립 주장들의 고조에 힘입은 엘친 등 구 공산 관료계급의 상당 부분은, 아예 소련 해체, 사회주의 폐기, 급진적 자본화의 길을 택했어요. 1991년 소련의 해체와 함께 이 선택은 ‘기정사실화’ 돼버렸습니다.

    놀라운 게 무엇입니까? 그 때까지만 해도 대체로 – 레닌적 사회주의든 사민주의든 – ‘사회주의적’ 사회를 지지한 듯한 다수는 새로운 주인들의 선택을 그냥 따랐습니다.

    사회주의는 어디로 사라졌나?

    자본주의 도입의 초기 9~10년은 아예 지옥적 혼란기였고, 그 다음은 경제가 나아져도 소득 격차가 거의 남미 이상으로 벌어져 일부 계층(연금 생활자, 상당수 막노동자, 하급 공무원 노동자 등)은 고질적인 구조적 빈곤에 허덕이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원칙적 반대’는 놀라울 만큼 약했어요.

    일부 고령층 및 장년층, 특히 연금생활자와 대기업 노동자 등이 스탈린주의 시절에 대한 상당한 향수를 계속 간직해왔지만, 그게 꼭 ‘사회주의’에 대한 향수라기보다는 스탈린이 달성한 ‘부국강병’과 그 당시 대기업 노동자들의 상대적으로 나았던 처지에 대한 향수지, 혁명의 원칙이나 사회주의적 국제주의 등에 대한 향수는 절대 아닙니다.

    예컨대 스탈린주의적 러시아연방 공산당의 지지자 중에서도 소련이 월남의 호지명 선생과 그의 항미독립, 통일운동에 부었던 원조에 대해 "공연한 퍼붓기"라고 욕하고 "이민족을 돕는 게 손해"라고 보는 사람들은 아두 많더라고요.

    소련이 꼭 호지명이 좋아서만 지원한 것도 아니고, 북월의 승리로 얻을 수 있는 지정학적 이득을 보고 한 것임에도, 그럼에도 "이민족에의 퍼붓기"에 회의적 사람들이 그토록 많다는 것이죠. 그러면, 늦어도 1990년대까지 ‘일반인’ 사이와 잡지들의 필자들에게 계속 영감이 됐던 ‘사회주의’는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요?

    마르크스가 발명한 진리들 중에서는 가장 탁월한 진리 하나는, "시대마다 지배계급의 생각이 전 사회를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배계급이라고 하죠. 지배계급의 헤게모니를 뒷받침하는 계층은 바로 ‘주류적 지식인’이라는, 저들의 지배에 핵심적으로 중요한 계층입니다.

    주류적 지식인과 지배 헤게모니

    예컨대 소련의 사례를 끝까지 보자면 소련의 몰락과 자본화가 거의 확실시되자 절대 다수의 지식인들은 갑자기 자유주의자 아니면 민족주의자, 아니면 자유주의형 민족주의자로 돌변했어요. 갑자기 텔레비전 화면부터 신문, 잡지 지면까지 ‘보이지 않는 시장의 손’에 대한 예찬과 ‘신을 믿지 않았던 범죄적 공산주의자들이 감히 시해한 우리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와 그 천진무구한 공주님, 황자님’에 대한 장송곡으로 채워졌습니다.

    소련이 망하자마자 텔레비전에서 ‘아담 스미스의 돈 세계’라는 인기 프로그램이 신설되고, 러시아정교회가 ‘범죄집단이 악마적으로 시해한 황제님’을 성인으로 시복하여 교회마다 왕관을 쓴 그의 성상을 걸어놓았어요.

    몇년 있다 보니 ‘성인이신 우리 황제님의 유해’까지 ‘기적적으로’ 어디에선가 발굴(?)돼 엄숙한 의례를 통해 황족의 묘에 안치됐죠. 뭐, 북한만이 단군의 뼈를 파서 찾나요? 제가 지금 제 주위의 다수의 러시아인에게 ‘성인이신 우리 최후의 임금님’이 한반도를 놓고 일본과 대결했다가 결국 전쟁을 도발하여 수십만 명을 죽이게 한 전범 중의 한 사람일 뿐이라고 이야기하면 얻어맞을 확률은 대단히 큽니다. 북한인에게 김정일 아저씨의 진짜 아명이 제 아이와 똑같은 ‘유라’라고 이야기할 때의 효과와는 꽤나 비슷하죠.

    지배계급은, 그들의 피해자들까지도 그들의 생각을 자발적으로 따르게끔 유도할 만한 무서운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직시해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저들이 전지전능한 것도 아니고, 저들의 헤게모니는 꼭 영원치도 않죠.

    러시아 혁명의 비결

    어떤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서는, 지식인 계층 사이에서는 지배자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비주류는 거의 주류만큼의 권위를 갖게 될 수 있죠. 러시아에서 변혁적 내지 혁명적 지식인들이 1917년 이전에 이미 언청난 권위를 갖고 있었다는 것은, 적어도 초기에 성공한 (하지만 결국 보수화돼 자기부정하게 된) 혁명의 비결이 되기도 했죠.

    그러나 지식인 계층 안에서의 혁명적 전통의 역량은, 거의 한 세기 동안 부단히 축적돼온 것이었죠. 한국의 변혁적 인텔리겐차는 이와 같은 아주 지루하고 긴 역사적 과정을 과연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할 수 있을까요?

    제정 러시아의 가시적 후진성과 대비되는 한국의 표면적 ‘선진성’, 한국 자본의 세계적 및 지역적 위치 등을 생각하면 성공은 전혀 보장돼 있지 않은 것 같기도 해요. 어려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되는 것이지만, 자본주의적 성공은 꼭 비판적 정신의 요람이 되기가 쉽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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