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때도, 지금도 난 감옥에 있다
        2010년 06월 30일 05: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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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로 전노협이 출범한 지 벌써 20년이나 흘렀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출범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라니…

    나에게 전노협이란 무엇이었을까. 나는 지금 감옥에 있다. 공교롭게도 20년 전 전노협이 출범할 당시에도 나는 감옥에 있었다. 감옥에서였지만 환호로 맞았던 전노협 출범 소식과 20년 이후 다시 전노협을 돌아보는 나의 가슴은 정말이지 만감이 교차한다.

    나는 88년 말 안양지역에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87년 대투쟁을 거치면서 민주노조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으며 투쟁의 불길은 멈추지 않고 88년까지 이어졌고, 그 여세를 몰아 89년 임투를 맞이하게 되었다. 89년 임투는 노동운동에 시금석이 될 수밖에 없는 해였다.

       
      ▲ 1988년 거리 행진 (사진=한내)

    민주노조 건설 운동은 이미 몇 지역에서의 지노협 건설로 확산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전국조직 건설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89년 임투를 위해 경기남부 지역에서도 지역투본이 결성되었고 전국적으로는 전국투본이 건설되면서 89년 투쟁의 성과를 모아 전국조직을 건설해간다고 하는 계획으로 구체화되고 있었다.

    이런 대중적 흐름과 함께 정치적 노동운동을 지향하는 세력들은 써클적 형태로 존재하면서 89년 임투를 최대한 지원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런 실천들을 모아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적극 추동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내가 속해있던 써클 역시 이런 기조 하에 89년 임투에 적극 결합하기로 방침을 정하였고 우선적으로 집중점을 4월 30일 지역 임투 출정식에 맞추게 되었다.

    출정식은 군포에 있는 금성전선(지금은 LG)에서 열렸다. 우리는 여기에 참가하여 "1989년 임투는 전국 노동자 조직 건설로 전진해나가야 할 중차대한 시기로서 건설될 조직은 전평의 정신을 이어받아…노동해방의 깃발을 높이 들어야 한다.”는 내용의 유인물을 뿌렸다.

    이 유인물을 뿌린 것이 계기가 되어 우리는 치안본부 대공 분실의 집중 수사를 받게 되었고 그 해 여름에 조직사건으로 구속될 수밖에 없었다. 조직의 명칭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임투 출정식에서 뿌렸던 ‘안양지역 민주노동자 일동’이었다.

    재판 도중 민자당 합당 소식과 함께 전노협 출범 소식을 동시에 듣게 되었다. 감옥 안에는 노동운동 조직사건으로 구속되었던 많은 동지들이 있었고 우리는 모두가 환호하였다. 역사는 한편으로 부르주아 반동으로 치닫고 있었지만, 노동자들이 드디어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는 벅찬 감동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날 전노협 정신과 노동해방의 깃발은 온전히 휘날리고 있는가? 전노협 해산과 함께 통 큰 대단결이라는 명분 속에 새롭게 출범하였던 민주노총이 이런 정신을 충실히 되살리고 있는가?

    나는 이번에는 쌍용차 투쟁으로 구속되어 재판이 진행 중에 있다. 작년에 쌍용차 투쟁 때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77일의 파업기간 동안 조합원들은 물과 의약품, 부식조차 차단당한 채 굴하지 않고 싸우면서도 한 가지 희망은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이 투쟁을 고립된 채 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조합원들의 절실한 요구에 진정한 연대와 투쟁으로 화답하지 못하였다.

       
      ▲ 점거 농성이 한창이던 쌍용자동차 공장 모습 (사진=쌍용차지부)

    당시 도장공장 옥탑에서 전체 상황을 지켜보았던 나로서는 민주노총의 무기력한 투쟁보다는 이에 실망한 조합원들을 설득하는 것이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회사와 경찰의 기고만장한 선무방송에도 치를 떨어야 했다.

    “아! 통쾌하도다. 아! 민주노총이여! 경찰들이 한 번 밀고가자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혼비백산하여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버렸습니다. 그런데도 민주노총에게 기대를 하고 있는 여러분들은 너무나 어리석습니다. 연대를 하려고 했다면 진짜 투쟁을 해야지 시늉만 하는 것이 어찌 연대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경찰에게조차 조롱거리로 전락한 이런 민주노총의 태도는 바뀌지 않고 계속되었다. 작년 노동법개악 저지투쟁에서 한국노총에게 뒤통수를 맞더니 올해에는 타임오프위원회에 거의 구걸하다시피 참석했다가 또다시 한국노총에게 배신당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함을 여실히 보여주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노총의 이런 모습에 실망하면서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초심 하면 으레 떠오르는 것이 전노협이고 전노협 정신이다. 오늘의 우리에게 과연 전노협이란 무엇이고 전노협 정신이란 또 어떤 의미일까.

    지금 민주노총은 80만 조합원 어쩌고 하면서 양적 규모를 자랑하기까지 한다. 이에 반해 전노협은 20만을 넘은 적이 없다. 하지만 오늘날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한다고 하면 정권과 자본은 물론이거니와 보수언론에게조차 ‘물파업’ ‘뻥파업’이라는 조롱거리로 전락한지 오래되었다.

       
      ▲ 사진=한내

    반대로 전노협이 파업을 결의하고 선포하면 관계장관회의부터 시작해서 정-경간 테스크포스팀이 구성돼서 여기에 대처하느라 밤잠을 자지 못했다는 얘기가 언론에까지 유포될 정도였다. 경찰들의 살수차에 밀려 민주노총 대오가 힘 한번 써보지 못한 채 퇴각해버린 것이 쌍용차 지원투쟁이었다면, 경찰의 최루탄이 난무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리봉오거리와 청계천로 등에서 일진일퇴의 격전을 벌였던 것이 전노협 시기의 투쟁이었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우리도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모든 것을 풀어나가야 한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맞다. 노동조합운동에 있어 대화와 타협은 중요하다. 하지만 자본과 정권 역시 한 발 물러날 줄 아는 태도를 가지고 있을 때 대화와 타협은 성립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을 보라. 쌍용차에서 정리해고를 어떻게 밀어붙였으며 또 철도노조의 파업을 어떻게 응징했는지를. 공무원노조와 전교조를 와해시키기 위해 또 얼마나 혈안이 되어있는지를.

    이런 점에서 오늘날 전노협과 전노협 정신을 되살리자고 말하는 것은 과거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회의주의자들의 그것이 아니며 과거로 다시 돌아가자고 하는 복고주의자의 그것도 아니다. 시대가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과 정권의 변하지 않는 본질을 분명히 보자는 것이다. 이런 자본과 정권에 맞서기 위해 최소한의 원칙을 갖자는 것이다. 정책적 대안을 제출하기에 앞서 그것을 뒷받침할 투쟁력을 어떻게 만들어나갈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바로 전노협의 투쟁력은 현장으로부터, 현장의 하나 된 힘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임을 일깨우고자 함이다. 또한 전노협 정신은 노동자는 하나인데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치기하는 자본에게 맞서는 것이며, 만국의 노동자는 하나인데도 내국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를 갈라치기하는 자본에 맞서는 것이며, 결국 사업장 내의 노동조건과 임금인상을 넘어 노동해방의 새날을 열어젖히는 그날을 향해 쉼 없이 진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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