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태'는 섹스만을 원하는가?
        2010년 06월 30일 09: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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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화여자대학교의 레즈비언인권운동모임 특별기구는 재밌는 이름을 가졌다: “변태소녀 하늘을 날다.” “변태”로 간주된 소녀가 사회의 폭력을 딛고 비상하는 멋진 시상의 내러티브가 내포된, 하나의 환성된 시다.

    필자가 학부시절 회장이었던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의 명칭은 “사람과 사람”이었다. “변태소녀 하늘을 날다”만큼의 아름다운 명칭은 아니지만 거의 비슷한 의미를 함축한다고 본다. “우리를 변태가 아닌 사람으로 봐 달라”는 호소이다.

    “변태”는 하늘을 날지 않는다. “사람”만이 그런 자유를 누린다. “변태와 변태”가 아닌,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사람과 사람들의 모임들이다. 변태소녀(그리고 소년)도 변태이기 전에, 사람이기 때문에.

    “동성연애자”에서 동성애자로

    커밍아웃을 안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일단 커밍아웃을 하면 성정체성이 다른 정체성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사회는 우리를 “사람”으로 보기 전에 “변태”로 본다. 자기 능력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커밍아웃 성소수자에게는 변태 꼬리표가 평생 따라다닐 위험에 처해있다. 이는 여성이나 장애인들과 같은 다른 소수자들이 받는 차별과 내용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도 스스로를 자신의 소수자 정체성이기 전에 한 개인, 혹은 남들과 똑같은 인간으로 생각할 것이다.

    성담론에서는 동성애를 “취향”으로 분리시키는 경향이 있다. 동성애가 성적 취향이라는 말, 참 거슬리는 말이다. “풋 페티쉬”를 가진 자에게 “족(足)성애자”라는 정체성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성담론 맥락과는 달리, 동성애는 “취향”이 아니다. 동성애는 사랑이다.

       
      ▲ 뉴욕에 있는 ‘LOVE’, 로버트 인디애나 작

    이런 이유로 성소수자 운동권은 성담론과 성소수자를 분리하려고 한다. “섹스를 하는 사람”이 아닌 “성소수자인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사는 동성애를 성적 취향이 아닌 하나의 생리학적 정체성으로 인정받기 위한 투쟁의 서사다. 즉 성담론과의 분리의 역사다. 1973년 미국심리학회(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는 동성애를 질병의 범주에서 제외시켰고, 그 이후 만들어진 거의 모든 동성애와 관련된 책자, 팸플릿, 보고서 등에 포함된 이 사실은 미국 성소수자 운동권의 가장 큰 원동력으로 남아있다. 변태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첫 인증인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동성연애자”라는 표현을 “동성애자”로 대체하게 되었다. 전자의 표현은 동성애를 단순히 “연애”나 육체적인 욕정의 해소로 한정시킨다. 후자의 표현은 동성애를 성행위의 형태가 아닌, 사랑의 형태로 계승시킨다.

    성소수자들이 원하는 것은 섹스를 할 권리도 아니고 우리의 섹스가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들의 사랑이 사랑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동성애는 섹스가 아니라 사랑이다

    이 글은 필자가 맡은 성정치 연재의 마지막 글이고, 다음 달은 다른 분이 다른 이야기들을 풀어나갈 예정이다. 우리 운동사와 걸맞게, 이 글과 나의 연재를 러브 스토리로 끝내고 싶다.

    진보신당이 5월 12일 국회 의정회관에서 주최했던 주거권 토론회에서 장애인 대표자분이 발제한 이야기다. 시골에 있는 장애인 시설에서 실질적으로 감금을 당하고 있던 이 여성 장애인분은 그 시설에서 어느 한 남성 장애인분을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 이 남성분이 먼저 사회에 나가자 따라 나가려다 시설의 직원들로부터 저지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탈출했다. 어느 날 밤, 그녀는 휠체어를 버리고 깜깜한 어둠 속에서 1km의 시골길을 손발로 기어갔다. 이윽고 지나가던 사람이 차에 태워줘 파출소로 데려가 끝내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 남성분과 결혼해 행복하게 살고 있다.

    토론장에서 이 이야기를 들으며 그분의 대범한 행동에 감탄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의 남자친구를 상상하고 있었다. 그를 위해서라면 누가 저지하든 기꺼이 휠체어를 버리고 깜깜한 밤 시골길을 기어가며 탈출했을 것이다. 변태소년, 하늘을 날았을 것이다.

    사랑을 하는 누구나, 마찬가지였을.

                                                             *  *  *

    필자소개 – 정일 / 진보신당 성정치위원회

    2003년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 ‘사람과사람’의 회장이었을 당시 1년의 노고 끝에 모임을 학내 공식인준 동아리로 이끌었다. 그 이후 성소수자들과 관련된 크고 작은 인권 활동에 틈틈이 참여하면서 한 개인의 ‘액션 수위’를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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