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편 복지, 진보정당 없이 불가능
        2010년 06월 28일 12:0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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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보편적 복지’가 유행이다.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의 무상급식이 이 유행의 시작이었다. 김 교육감이 특정 학년의 모든 아이들에 대한 무상급식 정책을 제시하자, 한나라당은 ‘가난한 아이들에 대한 선별적인 무상급식 정책’으로 대응했다.

    보편적 복지의 승리

    이 때문에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대립이 촉발되었다. 일단 1라운드는 보편적 복지가 이긴 것 같다. 지방선거가 시작되자 너도나도 보편적인 무상급식을 내걸었고, 심지어는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도 무상 학습준비물 공약을 내걸었다.

       
      

    선별적 복지가 가난한 사람을 상대로 하는 시혜적 복지인 반면, 보편적 복지는 부유층과 저소득층을 가리지 않고 단지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인간에게 혜택 받을 권리가 주어지는 복지이다.

    따라서 선별적 복지는 착한 임금이 힘없는 백성들을 생각해서 베풀어주는 일종의 시혜, 또는 잘 나가봐야 극소수의 빈자에게 법적 수급권 보장해주는 것인 반면, 보편적 복지는 그 자체가 하나의 국가 시스템이다. 즉 보편적 복지국가는 그 자체로 새로운 공화국이다. ‘보편적 복지’라는 개념 자체가 미래에 건설될 새로운 사회체제를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개념인 것이다.

    그런데 이 보편적 복지의 나라는 어떤 경로를 통해 이루어질 것인가? 이와 관련해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눈에 띄는 한 가지 새로운 현상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민주노총의 민주당 지지 활동이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이른바 반MB 후보 단일화에 광범위하게 합의하면서, 민노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세력인 민주노총이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한 것이다.

    민주노총 경기본부는 심상정 후보를 뺀 채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후보와 정책협약식을 가졌고,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와 민주노동당 이상규 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가 이상규 민노당 후보가 민주당의 한명숙 후보와 후보단일화를 이루자 갑자기 "민주노총은 어떤 후보도 지지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연합전략과 독립전략의 귀결

    이는 내용상으로 노회찬 지지를 거부한 것으로 민주당 후보에 대한 우회적 지원이었다. 이밖에도 상당수의 지역에서 민주노총은 정책협약을 맺는 등의 형태로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

    물론, 이를 두고 민주노총과 민주당의 본격적인 관계 수립이 시작되었다고 규정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민주당 지지는 매우 민감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사회변혁의 경로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라는 문제와 관련이 깊다. 우리의 머릿속에 유러피언 드림을 탑재할 것인지, 아니면 아메리칸 드림을 탑재할 것인지의 문제와 관련된 사안일 수 있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역사적으로 미국의 노동세력은 독자세력화를 포기하고 미국 민주당이라는 기존세력과 연합하는 길을 택했다. 이른바 ‘연합 전략’이다. 반면, 유럽의 노동세력은 전술적인 선거연합 등을 한 바는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노동세력의 ‘독립 전략’을 추구했다. 그 결과, 수십 년에 걸친 반복적인 보통선거의 과정에서 노동당이니, 사회당이니, 사민당이니 하는 새로운 정당들이 태어나고 정권을 잡았다. 이른바 독립 전략이다.

    이를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미국 민주당으로 상징되는 노동세력의 ‘연합 전략’은 아메리칸 드림을 낳았고,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들로 상징되는 노동세력의 ‘독립 전략’은 유러피언 드림을 낳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아메리칸 드림이 ‘보편적 복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의료보험조차 민간보험회사에 의존하고 있는 오늘날의 아메리칸 드림은 노동절의 기원을 만들어냈을 정도로 열심히 싸웠던 미국 노동세력이 ‘독립 전략’을 포기하고 대신 ‘연합 전략’을 택한 것에도 그 책임이 있다.

    민주노총, 민주당 지지 아주 민감한 문제

    굳이 길게 논하지 않아도, 우리는 보편적 복지의 구현은 이를 보장할 수 있는 정치세력의 형성을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보편적 복지는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료, 주거, 교육, 보육 등 삶의 기초영역 전반에 걸쳐서 하나씩 만들어 나가야 하는 지난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얼마나 강력한 배후의 정치세력을 형성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가 구현할 수 있는 보편적 복지의 질과 수준이 규정 된다. 스웨덴 복지국가는 거의 60년이 넘는 스웨덴 사민당의 장기집권 결과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민주노총을 비롯한 한국 노동세력은 자신들의 ‘민주당 지지’가 얼마나 민감한 부분인지 인식할 필요가 있다. 노동세력의 독립 전략은 보편적 복지의 정치적 조건 중에 하나이다. 최근 며칠 동안 월드컵 축구 경기가 한국의 보편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축구를 보지 않아도 옆집에서 나는 소리만으로도 우리가 이겼는지 졌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이웃집에서 "와~!" 소리가 나면 한 골 들어간 것이고, 조용하면 진 것이다.

    과거에는 이렇게 16강이니 8강이니 하는 인위적으로 설정된 목표에 집단적으로 울고 웃는 이상한 현상을 두고 국가주의의 광풍이 아닐까, 걱정하는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이제 이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6월 초에 펼쳐지는 대규모 길거리 응원은 본격적인 장마가 오기 전에 집단적으로 초여름 밤의 정취를 즐기기 위한 거대한 핑계거리라는 의미가 있다. 사실 여름밤에 친구나 연인들끼리 모여 소리 지르고 놀고 싶은 욕구는 인간의 거의 보편적인 심리이다.

    월드컵 길거리 응원은 축구 규칙을 잘 아는 사람이건 전혀 모르는 사람이건, 심지어는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건 아닌 사람이건 상관없이 모두가 참여할 수 있다. 누구나 월드컵을 핑계로 광장에서 수많은 동시대인들과 모여 하나의 구호를 외치고 함께 환호하며 거대한 군중의 파도 위에 몸을 실은 채, 함께 소리 지를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 있는 것이다. 이 순간만큼은 자장면을 시켜도 배달을 거부하고 응원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점에서 무척 평등한 잔치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보편적 축구의 대유행이 한바탕 지나가는 이 대목에서 보편적 복지의 정치적 조건을 생각해 보고 싶다. 시청 앞 광장에 붉은 옷을 입은 100만 대군이 모여 ‘대~한민국’ 대신 ‘보~편 복지’를 외치는 꿈을 꾸어 본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보편적 축구의 오랜 슬로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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