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우리의 목숨줄과 같다"
By 나난
    2010년 06월 25일 03:26 오후

Print Friendly

“영진씨, 여기 밥 있으니깐 먹어요.”
“예,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박경순 씨는 이영진(가명) 씨와 나누던 대화가 귓가에 맴돌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23일 “쾌활하고 사랑스럽”던 이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매일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밤 9시부터 새벽 6시까지 지하철 2호선 구석구석을 쓸고 닦던 그였다.

허기진 배 움켜쥐다 스스로 목숨 끊어

주변인들에 따르면 이 씨는 1,500여 만 원의 사채 빚을 지고 있었다. 한 달 내내 별 보며 출근해 해 뜰 때 퇴근해도 이 씨가 손에 쥐는 돈은 고작 85만 여 원이었다. 부족한 돈에 결국 독서실에서 생활한 그는 밥을 해 먹을 수도, 비싼 식당 밥을 매일 사먹을 수도 없었다.

자연히 굶는 날은 늘었고, 이 같은 소식은 함께 야근 근무를 하는 청소노동자들에 의해 퍼지기 시작했다. 식사시간이 겹쳐 밥을 해 먹어야 하는 주간 동료들은 이 씨의 몫을 더해 밥을 넉넉히 했다. 그는 동료들이 남겨 놓은 밥으로 늦은 밤에야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독서실에 있으면 밥을 해 먹을 수 없으니 늘 굶고 왔어요. 우리가 낮에 해 놓은 밥을 따로 챙겨주면 영진 씨는 늘 ‘아줌마, 고맙게 잘 먹겠습니다’라며 해맑게 웃었고, 다음날 출근해 보면 어김없이 밥그릇이 깨끗이 비워져 있었어요. 하지만 이 마저도 지난해부터 회사에서 취사를 하지 못하게 해서 챙겨주지 못했지요.”

   
  ▲ 한희정 씨는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은 "목숨줄과 같다"고 말했다. (자료=이은영 기자)

빠듯한 형편은 모두가 비슷했다. 주간 청소노동자들이 도시락을 싸오기 시작하면서 영진 씨가 끼니를 챙기지 못하는 날은 자연히 늘었다. 그리고 보금자리를 독서실에서 쪽방으로 옮긴 그는 생활고와 빚에 시달리다 지난 초겨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례 치를 돈이 없어 동료들과 전국여성연맹은 각 지하철 역사마다 모금함을 설치했다. 그렇게 몇 천 원 또는 몇 만 원씩 꺼내놓은 주머닛돈으로 그의 장례는 치러졌다. 박 씨는 “이왕 죽을 거 밥이나 많이 먹고 죽지… 너무 배고프게 죽어서… 그게 자꾸 마음에 걸린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밑빠진 독에 물 붓는 심정

문제는 이 씨와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이들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특히 고령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태반인 청소직의 경우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지하방에서 살며 지체장애자인 남편을 대신해 홀로 가장 노릇을 해야 하는 A씨, 딸의 사업실패로 그 빚을 고스란히 넘겨받은 B씨, 겨울이면 코끝까지 시린 월세 옥탑방에서 강아지 한 마리와 살고 있는 C씨 등.

박 씨는 “최저임금 밖에 되지 않는 우리 월급으로는 최소한의 생활조차 어렵다”고 말한다. 그는 “동료 중에는 영진 씨만큼은 아니더라도 정말 어려운 사람이 많다”며 “빚이 없거나, 남편이 함께 벌면 그나마 낫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85만 여 원으로 한 달을 살아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3월 민주노총이 조사한 저임금 노동자 14명의 가계부를 들여다봐도 이 같은 실태는 확인된다. 지난 2009년 12월과 2010년 1월 두 달간 작성한 가계부에 따르면, 이들은 보조직업으로 인한 수입 등을 포함해 평균 129만 원의 소득을 벌어들이지만 163만 원의 지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달 34만 원의 적자가 쌓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지출내역을 순위로 매겼을 때 식비가 17.95%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이 부채상환 12.51%로 나타냈다. 보건위생비가 10.5%, 저축이 9.96%, 광열수도비가 9.93%로 그 뒤를 이었다. 결국 최소한의 의식주와 부채상환만으로도 이미 지출이 수입을 넘어버리는 것이다.

한희정 씨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심정”이라고 말한다. 지방에서 건물 청소만 14년째하고 있는 그는 “큰 아이 결혼 때 진 빚을 갚고 각종 세금과 보험금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말한다.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늪

일용직 건설업에 종사하는 남편과 그의 월급을 합하면 250만 원이 조금 넘는다. 하지만 장마철이나 비 오는 날이 많은 달에는 남편이 일을 하지 못해 이마저도 안 된다. 그는 “열심히 일하면 내 집 장만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편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벌써 14년째 건물 청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가장 두려운 것은 가난한 삶이 또 다른 가난한 삶을 낳을 것이란 우려다. 한 씨는 “엄마 때부터 시작한 청소 일을 결국 내가 하고 있다”며 “가정 형편이 어려워 우리 아이가 결국 내가 걸은 길을 하게 될까봐 겁이 난다”고 말했다.

박 씨 역시 “한 번 빚이나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게 되면 다시 회복하기 힘들다”며 “돈이 없는 사람들은 가난도 되물림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들 청소노동자들의 임금은 많이 받아야 100만 원이 조금 넘는다. 대게가 올해 최저임금인 85만8,990원 수준이거나 이마저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3월 4일 1차 전원회의를 시작으로 열린 최저임금심의위원회 논의는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최저임금은 우리의 목숨줄"

경영계는 지난 18일 열린 전원회의에서 현 시급 4,110원의 0.2% 즉 10원 인상안을 제시했을 뿐이다. 애초 경영계는 “원래 36.2%를 삭감해야 하나 양보해 동결안을 제시한 것”이라며 4,110원 현행유지를 주장해 왔다.

한 씨는 “시급 4,110원, 하루 3만2,880원으로 시장에 나가보라”며 “돈이 없어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청소 일을 나오는 늙은 여성의, 빚에 허덕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사람의 마음을 돈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느냐, 최저임금은 우리의 목숨줄과 같다”며 울분을 토했다.

김윤희 고려대병원 청소노동자 역시 “우리도 텔레비전의 배우들처럼 멋 자랑하며 좋은 옷 입고 손자 손녀와 맛있는 음식 먹으러 가고 싶지만 우리의 현실은 매일 새벽 대충 찬밥에 김치 한 점 올려 먹는 것”이라며 “이렇게 일을 해도 생활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명절이라 큰맘 먹고 찾은 도매시장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들었다, 놨다”를 한참하다 결국 돌아서는 이들이다. 김 씨는 “최저임금으로 최대한 아껴 배고파 울부짖지 않을 정도로 먹고 사는 게 청소노동자들이며 저임금 노동자”라며 “우리에게는 희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희망”은 2011년 최저임금 결정 법정시한인 오는 29일 결정된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