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와 싸우는 진보정당인가?
        2010년 06월 24일 09: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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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지방선거 이후 진보정당운동이 갈 길에 대해 말들이 무성하다. ‘심상정 논쟁’이라고도 하고 ‘진보신당 논쟁’이라고도 할 만큼, 논의의 초점은 현재 진보신당의 상태와 전망으로 모아지고 있다. 답답한 것도 진보신당 자신인 만큼 당연하다.

    이런 시기의 논쟁에서는 남의 상차림에 감놔라 배놔라도 좋고, 온갖 가정법과 독심술에 근거한 논의들도 탓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극히 유감인 것은, 적잖은 주장들이 왜 우리가 진보정당을 가지고 이야기하는가 하는 아주 기초적인 전제를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는 점이다. 좀 건방지게 표현하자면, 지금 독자생존 대 연대-연합정치 노선의 구도는 ‘기본’이 안 된 대립구도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 2008년 진보신당 창당대회 (사진=진보신당)

    거슬러 올라가 환기해보자. 1992년 총선에서 민중당이 당선자를 내지 못하고 해산의 길로 접어들었을 때, 많은 논자들은 ‘민중당의 실험’은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대중조직에 기반하지 않은 소수 명망가와 운동세력의 진보정당은 성공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리하여 진정추 등 정파조직들은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로 각개 약진했고, 97년 국민승리21을 거쳐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까지 ‘민주노동당 모델’이 만들어지고 이내 성과를 거두었다.

    민주노총, 전농 등 대중조직이 결합하고 제도적으로도 정당명부 투표 도입 등 우호적인 조건이 만들어진 덕으로 설명된다. 반면 같은 시기에 사회당은 선거에서 성적을 내지 못하고 위축되었다. 지금 사람들은 진보신당이 ‘사회당의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사회당의 실패’를 반복하지 말자고?

    나는 이런 판단들이 일면의 객관성을 담고 있기는 하나, 일부 상황 관계와 평가의 왜곡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진보정당운동의 주체로서 할 만한 판단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우선 고유명사 ‘민중당’이 첫 시험 문턱을 넘지는 못했지만, 때문에 독자 진보정당운동은 해봐서 잘되면 계속하고 안 되면 그만두어야 하는 ‘실험’이었던 것일까?

    90년대 초중반 독자정당 건설이 실물적으로 진전되었더라도, 그러한 실험은 계속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리고 대중조직의 지지 지원과 진보정당 운동 세력의 선도적 독자조직 건설은 논리적으로 또 현실적으로 배타적인 ‘모델’인 것인가?

    또한, 사회당의 위축은 과연 독자 진보정당 노선의 필연적인 결과였던 것일까? 그리하여 진보신당이 독자 생존을 중심으로 나아가면 3%의 울타리에 갇히게 되고, 종국에 사회당처럼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또 하나, 대중조직이 기반이 된 ‘민주노동당 모델’은 과연 계속 지향해야 할, 또는 지향할 수 있는 모델인가? ‘87년 체제’의 지연된 효과를 더 이상 누리기 어려워진 상황이 6.2 선거에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좌충우돌 반MB 합류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닌가?

    이미 여러 필자들이 이야기했듯, 독자적 정체성의 정치는 다른 세력과의 연대나 연합을 배제하지 않으며 ‘진보의 재구성’은 진보신당의 기득권 포기를 수반할 수 있다. 그러나 왜 이야기는 겉돌고 추상화되는 것인가?

    왜, 어떤 진보정당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가, 놀랍게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힘이 없으니 우선 힘을 키워야 하지 않겠느냐는, 그러기 위해서는 연합정치를 고민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소박한 논리가 정치공학 공방만을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기 위해 ‘힘’이 필요한가? 그 힘을 어떻게 만들어야 그러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아주 단순한 질문에 서로 진지하고 솔직하게 대답해야 찬성이든 반대든 논의를 진전시킬 수 있다.

    지금 ‘진보’가 가리키는 방향과 내용을 누구나 알고 있거나 동의하고 있고 그것의 힘만 키우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노회찬, 심상정이 진보의 상징이므로 여기에 세를 붙이면 수권 진보세력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 어떤 진보정당인가?

    애초에 진보정당은 치열함이고, 또 그래야 인정받고 성공하는 진보정당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치열함이란 시대의 ‘절박함’에 부응하고 그것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그릇을 만드는 일이다. 이 시대의, 이 시기의 절박함이란 무엇인가? 87년, 92년, 97년, 2002년, 2006년과 다른 지금의 절박함이란 무엇인가?

    김상봉 선생이 한 칼럼(「다시 역사가 용기있는 자를 부른다」, <경향신문>, 4월 20일)에서 한나라당은 북한과 싸우고 있고 민주당은 이명박과 싸우고 있으며 민주노동당은 외세와 싸운다고 이야기했던 것은 바로 각 세력의 절박함을 표현하고 있다.

    6.2 선거에서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에겐 김대중과 노무현 민주주의의 복원과 명예회복이 구체적인 절박함이었고 그 절박함으로 유권자를 호명했다. 그러나 진보신당에겐, 그래도 진보가 살아서 성장해야 한다는 추상적 호소 말고는 구체적인 절박함이 없었다.

    심상정이 사퇴하여 분개스럽고 완주한 노회찬이 욕먹는 것이 안타깝지만, 선거 기간 중 절박한 진보를 외친 심상정과 절절한 진보의 요구들을 전달한 노회찬이 있었던가를 생각하면 회의스럽다. 그리고 이 절박함의 결핍은 지금 진보의 재구성 논의에서도 연장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진보신당 논쟁의 해법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김상봉 선생은 진보신당은 누구와 싸울 것인지를 넌지시 묻고 있다. 북한과 싸우고 이명박과 싸우고 외세와 싸우는 그 절박함에 우리는 동의하거나 만족할 수 있는가? 그것이 이 시대와 세대의 고통과 불합리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러한 정치세력들과 지반을 공유하면서 치열한 문제제기와 해결을 위한 실천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누구와 싸우는 진보정당인가?

    할 수 있다면, 그 치열함을 이제부터 보여주면 된다. 이 시대의 절박함이 굳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다섯 가지 정도를 먼저 들겠다. 무엇보다 삼성으로 대표되는 기업권력의 문제다. 둘째, 4대강을 파헤치는 토건개발 자본주의의 문제다. 셋째,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의 일과 권리의 문제다. 넷째, 양극화와 시장화를 제어하는 보편적 복지의 문제다. 다섯째, 민족주의와 군사주의로 풀리지 않는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의 문제다.

       
      ▲ 필자 (사진=레디앙)

    진보신당은 ‘평등, 생태, 평화, 연대’의 지향으로 이러한 문제에 맞설 것을 천명했다. 그러나 창당 후 2년 동안, ‘일단 대표선수를 보아주세요’라며 수줍게 본색을 감추었고 사업 개발에 매진하지 못했다. 선거평가와 당의 발전방향을 세우는 토론에서 다시 끄집어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절박함에 바탕하여 세력 재편과 당 구조 개편에 나서야 한다.

    연대와 연합정치가 중요한가? 그렇다면 예컨대 이 다섯 문제에 적극 동의하고 헌신할 수 있는 세력이 누군지 제대로 따져보고 ‘실제로’ 대화에 나서자. 그것은 민주당인가, 국민참여당인가, 사회당인가, 민주노동당인가, 사노위인가?

    마땅한 세력이 있다면 먼저 연합을 해도 좋고, 합당을 해도 좋고, 여기에 소극적인 필요는 전혀 없다. 아직 구상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연합정치 얘기를 찔끔찔끔 흘리는 건 생뚱맞기만 하다.

    그리고 이 다섯 문제가 당장 표가 되든 안 되든 진보정당이 지금 해야 할 책무라면, 진보신당의 조직과 사업도 이를 중심으로 개편하자. 당 내에 삼성권력 해체 운동본부를 만들고, MB 토건성장 저지 운동본부를 만들고, 비정규기금을 알차게 사용하여 노동운동의 분기점을 만들 기획을 세우고,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을 사회연대전략으로 발전시키고, 정직하고 진지하게 평화를 요구하는 꾸준한 활동을 벌이자.

    그래서 이러한 절박함을 진보신당은 이렇게 중앙과 지역에서 열심히 실현하려 하고 있느니 우리 세력을 인정하고 표도 달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진보정당 본령의 치열함이 없을 때 엉뚱한 것이 오래 치열하게 되고 논의는 공중으로 떠다니기 마련이다. 진보신당은 무엇을, 누구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짜임새 있게 논의하는 당대회 준비 과정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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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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