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전 재통합이 올바른 대안인가
        2010년 06월 23일 02:5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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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월 31일 “전력산업구조개편촉진법”이 만료됨에 따라 그동안 중단되었던 전력산업구조개편의 후속방안에 대한 재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그간 추진되었던 구조개편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하고 한국개발연구원 (KDI)에 후속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의뢰한 상태이다.

    6월 중순으로 예정되었던 KDI의 용역결과가 6월 말로 한 차례 미뤄진 가운데 그 결과를 놓고 한전, 발전노조, 정부를 비롯한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관심이 다시 한 번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과연 이번 구조개편 제2라운드 논의의 문제점은 어떤 것인지 환경적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형평성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의 전력산업구조개편은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당시 한국이 받아들인 IMF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안은 공기업의 민영화, 시장경쟁의 도입 그리고 노동유연성의 확대가 그 핵심이었는데 한전의 전력산업구조개편 역시 이런 신자유주의적 국가경제 재편의 맥락에서 급물살을 타게 되었던 것이다.

       
      

    소비자가 전기공급자를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소매경쟁체제를 10년안에 도입할 것을 목표로 했던 구조개편은 2001년 한전의 발전부문이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을 비롯한 6개의 자회사로 분리됨으로써 제한된 발전경쟁을 시작하게 된다. 이 후, 자회사중 하나인 남동발전의 민영화가 추진되었으나 시장여건의 악화와 노조의 반대로 2003년 중단되었고, 참여정부 시절 노사정위원회의의 권고를 통해 사실상 구조개편계획이 전면 중단되었다.

    IMF 이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노사정위서 중단

    이후, 신자유주의적 기조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에서 다시금 전력구조개편의 논의가 촉발되었으나 전기부문 민영화를 임기 중 추진하지 않기로 결정된 상태이다. 현재 발전사업은 한전이 100%지분을 소유한 6개 발전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송배전 및 판매는 한전이 독점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최근 재논의 되고 있는 전력구조개편의 방향은 기존 민영화 및 경쟁도입중심의 구조개편계획을 재추진하기보다는 한전으로부터 분리되었던 발전자회사들을 통합 (혹은 부분통합)하는 쪽으로 설득력을 얻고 있는 듯 보인다. 한전으로의 재통합의 명분은 무엇보다도 통합을 통해서 얻는 경제적 이익이 민영화할 경우보다 크고, 프랑스의 EdF와 독일의 E-ON과 같이 한전을 국가대표기업 (National Champion)으로 발전시켜 세계 전력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재통합을 통해 그동안 분산되어 왔던 연료구매를 단일화하여 구매협상력 (buying power)을 높일 수 있고 안정적인 해외 에너지 자원 확보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특히, 작년 말 한전의 UAE 원전 수주로 인해 그 기대가 커지고 있는 원전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전문기술인력을 가지고 있는 한수원과 브랜드파워를 가지고 있는 한전의 통합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전력산업의 구조에 대한 다양한 이슈에 대해 최근 다시 국회와 정부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10년 전과 비교해 볼 때 그 주요 의제에 있어서는 사실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즉, 그동안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이끌어 왔던 “싸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한 전력산업의 구조는 어떠해야 하나” 하는 것이 이번 전력산업구조개편 논의에서도 역시 주된 의제로 논의되고 있다.

    단지 차이점이라면, 10년 전 외환위기의 상황에서는 전력시장 개방과 경쟁체제 도입을 통해 외국투자를 유치하고 효율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논리가 우세했던 반면 지금은 대형 수직통합형 전력회사를 만드는 것이 규모의 경제를 이용한 안정적 전력공급은 물론 세계 에너지 시장 진출에 보다 유리하다는 논리가 더욱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외자유치 논리에서 외국진출 논리로

    전력산업개편의 중요한 의제 중의 하나인 환경 및 사회적 문제는 경제적 이슈에 밀려 여전히 중요한 어젠다로서 논의되고 있지 않다는 점 또한 10년 전 상황과 비슷하다. 특히, 커다란 환경,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의 원자력 중심의 에너지체제에 대한 논의가 부재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재통합의 근거로 제기되고 있다는 점은 구조개편 재논의 과정의 심각한 문제점이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추진을 뒷받침하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따르면 2007년 35.5%인 원자력의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전체 발전량의 60%로 끌어 올린다고 한다. 하지만 원자력 산업을 저탄소 녹색기술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원자력 발전은 방사성 누출과 폭발과 같은 상상하기 힘든 위험을 가지고 있으며, 아직까지 폐연료의 안전한 처리방법이 존재하지 않으며 온실가스 저감의 측면에서도 그 실효성에 논란이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마어마한 원자력 발전소 해체비용 (decommissioning costs)을 고려한다면 결코 다른 전력원에 비해 싼 전력원으로 볼 수 없다. 핵폐기물 처리시설과 발전소 입지를 두고 벌어지는 사회적 갈등과 환경부정의 문제 또한 심각하다. 한전과 노동조합측은 이러한 환경적, 사회적 문제가 있는 국내 원자력발전 확대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한전의 통합적 구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구조개편 이전 한전은 공기업으로서 엄청난 자금력과 전력산업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바탕으로 원전을 비롯한 대규모 발전소 및 송전탑 건설을 통해 커다란 환경적 피해, 지역간 갈등과 불평등 문제를 유발해왔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그동안 환경운동 진영은 한전의 독점적 구조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고 일부에서는 한전의 분할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구조개편안에 대해 찬성 의견을 표시하기도 했었다. 만약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전력산업구조개편에 대한 논의의 결과, 한전이 한수원등을 통합하여 대규모 원자력중심 회사로 새롭게 태어난다면 환경의 지속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심각한 퇴행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지금 비용절감과 공급안정성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통합적 모델은 기존의 중앙집권적 전력시스템을 고착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확률이 매우 크다. 즉, 한전의 대규모 전력시설을 통한 공급위주의 정책이 지속될 것이며, 이는 에너지 효율개선과 소규모 재생가능 에너지 중심의 분산형 전력 시스템과 같은 지속가능에너지 모델의 발전 가능성을 저해할 수 있는 것이다.

    사용자의 에너지 필요를 효과적으로 충족시키는 수요 중심의 전력정책보다는 더 많은 양의 에너지를 공급을 통해 한전의 자산과 수입규모를 키우는 방향으로 진행될 확률이 높은 것이다.

    수요 아닌 공급 중심 전력정책

    10년 전 전력산업구조개편 정책이 한국의 전력산업의 특성 (요금수준, 전원구성, 설비예비율, 시장운영경험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외부적인 조건에 떠밀려 급속하게 추진했던 경험이 있다. 만약 구조개편이 계획대로 추진되었다면 과연 영국이나 미국의 켈리포니아주가 겪었던 심각한 부작용을 과연 피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다시 전력산업구조개편에 대한 재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의 시점은 그 때와는 달리 보다 폭넓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황이다. 당장 발전부문을 매각해서 부채비율을 줄이고 민자를 유치를 통해 설비확장을 꾀할 절박한 조건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는 논의의 경과는 이미 선택의 폭이 상당히 제약된 모습이다. KDI의 연구는 부분통합에 대한 몇 가지 안을 제출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전망이고 정부는 그 연구결과를 가지고 공론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이미 사회적 선택의 폭이 제한된 가운데 공론화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까?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전력거래모델개발은 전력구조개혁의 중요한 목적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아니 더욱 중요한 장기적 과제는 환경적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형평성 및 민주성을 담보하는 “에너지 전환”을 실현하는 것이다. 대규모 화력발전과 원자력을 기반으로 하는 에너지 시스템에 의존하기보다는 지역의 에너지 자원과 효율향상을 통한 에너지 절약, 그리고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에너지 체제 (local energy system)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번 전력산업구조개편 재논의에서 이러한 대안에너지 모델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그 발전을 위한 정책에 대해 사회적 공론화노력이 필요하다. 보다 현실적으로, 기존의 구조개편안인 시장경쟁 모델보다는 일정 정도의 수직통합적 구조가 지금 있는 발전원의 안정적이고 효과적인 관리에 있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전과 같이 중앙집중식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데 촛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재생가능에너지와 열병합 발전과 같은 분산형 전원이 쉽게 망에 접근할 수 있는 구조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만약 이러한 전망과 계획이 구조개편 재논의 과정에서 부재한 가운데 단지 효율적인 방법으로 대규모 원자력 발전과 화석발전의 운영과 확장을 위한 구조개편을 한다면 이는 지난 10년의 시간을 더 되돌리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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