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포의 허파, 잘려나가기 일보직전”
    By mywank
        2010년 06월 22일 05: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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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마포구의 유일한 ‘자연숲’ 성미산이 사학재단의 학교 이전 계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학교재단 홍익학원은 성미산 일대에서 부설 초중고등학교(현재 홍익대학교 내 위치) 이전 공사를 강행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성미산마을 주민들은 자연환경 훼손과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 안전 문제 등을 지적하며 반발하고 있다.

    성미산은 서울시가 구분한 ‘비오톱(야생동식물의 안정된 서식지, 즉 자연생태계가 가능한 공간)’ 등급 중 대상지 전체지역에 대해 자연보호 가치가 있는 1등급 평가를 받았으며, 천연기념물인 붉은 배새매와 서울시가 지정·고시한 보호종인 오색딱다구리가 서식하는 등 생태적 가치가 높은 곳이기 때문이다. 또 주민들에게는 쉼터로, 학생들에게는 생태학습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공사현장 펜스에 붙어있던 성미산 일대의 지도. 오른쪽 하단이 홍익학원 측의 사립학교가 들어서는 곳 (사진=손기영 기자) 

     이와 함께 성미산 공사현장과 얼마 떨어지 않은 곳에는 국공립학교인 성서초등학교와 경성중고등학교가 자리하고 있으며, 공사현장 주변을 따라 나있는 비좁은 도로는 이곳 학생들의 유일한 통학로이다. 결국 공사가 강행될 경우, 발생되는 소음과 분진은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며, 통학로를 드나드는 중장비 등으로 안전사고가 우려되고 있다.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홍익학원의 요청을 받아들인 마포구청은 지난 2008년 성미산의 학교 이전 예정지를 체육시설부지에서 학교부지로 변경해줄 것을 서울시에 요청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7월 서울시의회 시정질의 과정에서 주민들과 충분히 상의하고 만일 합의가 여의치 않을 때는 대체부지 마련도 고민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단 한 차례의 모임을 주선했을 뿐, 그동안 실직적인 협상에는 나서지 않았다. 서울시도시계획위원회는 관련 안건을 기습 상정한 뒤 지난해 9월 학교 이전을 승인했고, 서울시교육청도 지난달 20일 이를 승인했다. 결국 모든 행정절차를 마무리한 홍익학원 측은 지난 8일 포클레인을 동원해 성미산 일대에 나무를 벌목하며 공사를 강행했다.  

       
      ▲학교 이전 공사를 막기 위해 주민들이 설치한 천막 농성장 (사진=손기영 기자) 

     지난 2008년 ‘성미산 생태보존과 생태공원화를 위한 주민대책위(이하 성미산 주민대책위)’를 구성한 주민들은 △학교 이전 공사 중단 △학교시설 승인 및 건축허가 재심의 △대체 부지 마련 △성미산 전체 생태공원화 등을 요구하며, 지난 8일부터 공사현장에서 천막을 치고 마포지역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관계자들과 함께 24시간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와 함께 이들은 현재 서울시교육청과 홍익대학교 앞 1인 시위, 촛불문화제(지난달 24일부터)도 진행하고 있다. 22일 오전에 찾아간 성미산 공사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마포의 허파, 성미산이 잘려나가기 일보직전”이라며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또 공사현장 주변 주택가 베란다에는 학교 이전을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들이 내걸리기도 했다.

    공사현장은 주민들의 출입을 어렵게 하기 위해 철제 펜스로 둘러쌓여 있었으며, 농성장 인근에는 홍익학원 측이 설치한 ‘감시용 천막’도 볼 수 있었다. 며칠 전까지 이곳에 감시요원들이 상주했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주민들의 농성으로 이날 공사는 진행되고 있지 않았지만, 성미산을 파헤치려는 세력과 이를 지키려는 주민들 간에 ‘전쟁’은 앞으로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사립학교 이전 공사를 위해 성미산에 있는 나무들이 벌목되었다 (사진=손기영 기자) 

     

       
      ▲사진=손기영 기자 

    성미산마을에서 6년간 살아온 박미라 씨는 “그동안 이곳 주민들은 ‘저탄소 마을’을 만들려고 노력해왔고, 성미산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아왔다”라며 “홍익학원 측의 학교 이전 공사로 성미산이 파괴되면 공동체까지 파괴될 수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어떤 주민은 며칠 전 성미산 공사현장에서 나무들이 뽑혀질 때 눈물을 흘린 분들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곳에서 7년간 살아온 박재웅 씨는 “바로 코 앞에 학교들이 있는데, 도대체 왜 이곳에 학교가 또 들어서는 이유를 모르겠다”라며 “특히 이곳에 사립초등학교가 들어설 경우 대부분 잘사는 다른 지역의 학생들이 입학할 텐데, 학생들 간에 위화감이 생길 것 같다”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날 성미산 공사현장을 찾은 오진아 진보신당 마포구 기초의원 당선자는 학생들의 안전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성미산 주변에 비좁은 도로는 이곳 학생들이 이용하는 통학로인데, 중장비들이 드나들게 된다면 사고의 위험이 생긴다"라며 "서울시교육청이 통학로에 사립학교의 스쿨버스가 다닐 수 있도록 허가한 점 역시 걱정이 된다”라고 지적했다.

       
      ▲22일 오전 성미산 공사현장 앞에서는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들이 주민들과 함께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였다 (사진=손기영 기자)

    이미 학교 이전을 위한 행정절차가 모두 마무리 된 상황에서, 성미산마을 주민들의 고민을 클 수밖에 없다. 물리력으로 공사를 저지하기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주민들은 행정절차 과정에서 발생된 문제점들을 취합한 뒤 법적 대응에 나설 예정이다. 또 진보성향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에게 학교시설 승인 및 건축허가 재심의 등을 촉구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날 현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소수이기는 하지만 사립학교 이전에 따른 주변 땅값 상승, 상권 활성화를 기대하는 분들도 있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이날 공사 현장에는 ‘남쪽 버려진 땅에 홍익 초중고 이전을 대대적으로 환영한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한편 이날 오전 10시 30분 성미산 공사현장에서는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환경정의 등 환경운동단체들이 주민들과 함께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서울 도심의 아마존이라고 불릴 수 있는 성미산을 지켜낼 수 있는가 없는가는 2010년 서울의 생태인식 수준을 드러내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최승국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산을 허물고 학교를 짓겠다는 홍익학원 측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다"라며 “생태계가 파괴되고, 마을 공동체가 무너질 위기에 놓인 이곳에서 홍익학원 측은 학생들에게 도대체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는가”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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