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논쟁은 지겨운 역사 퇴보다"
    2010년 06월 21일 08: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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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지방선거가 끝났다. 여전히 설왕설래하는 분위기가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스스로를 객관화시킬 수 있는 다소 냉정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래서 다소 길지만 두 가지를 말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논란이 되고 있는 6.2지방선거 ‘완주’의 의미, 두 번째는 ‘진보좌파의 재구성’과 관련된 문제이다.

먼저, 완주와 관련하여 중도 사퇴한 심상정씨는 선/악, 윤리 운운하며 ‘완주’의 의미를 폄훼한 바 있지만, 실제 그런 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이들이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진정 대중적 정치 리더라면 최소한 ‘자당’의 후보가 포함되어 있는 ‘완주한 후보들’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좋은 모습이 아니라는 점만을 지적하겠다.

이 문제와 관련, 이미 필자는 <참세상>에 기고한 「심상정의 사퇴와 ‘진보좌파정치’의 재구성」이란 글에서 이번 선거에서의 완주가 6.2지방선거라는 공간에서 진보좌파가 걸어야 할 마지노선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진보좌파의 정치학은 ‘조화와 통합’이 아니라 무엇보다 모순과 차이, 적대와 갈등의 지점을 분명히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고, 그런 의미에서 진보좌파 연대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완주’는 그것에 부합되는 최소한의 행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이것이 ‘진보좌파의 독자성’을 왜곡하는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자유주의정치세력들과의 ‘선거연대’ 가능성 자체를 닫아두거나, 심상정씨가 말하는 ‘광장’을 외면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진정한 광장은 ‘제도 대(對) 비제도라는 부르주아 이분법의 정치틀’을 넘어 재구성될 때 생기는 것으로 그녀가 말하는 ‘연합’은 단지 과거의 재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방선거 이전, 모 인터넷신문에 기고한 글을 통해 ‘5+4모임(4+4모임)’이 자유주의정치세력의 들러리라는 점이 확인된 상황에서 진보좌파는 4반세기 이상 지속된 비판적 지지의 또 다른 형태인 ‘반MB 묻지 마 연대’에 미련을 두지 말고 애초 자신의 깃발이 아닌 ‘비판적 지지’를 원래의 주인인 자유주의정치세력에게 돌려줌으로써, 역으로 6.2지방선거에서 그들이 진보좌파에 대해 ‘비판적 지지’를 할 수 있는지 여부를, 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자유주의파는 진보좌파를 ‘비판적 지지’할 수 있는가?

이러한 필자의 생각은 이미 신자유주의좌파가 된 자유주의정치세력이 ‘더 많은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한 헤게모니정치세력으로 기능할 수 없다는 사실, 무엇보다 그들의 독자적인 집권능력 부재 등과 연관되어 있다.

주지하다시피 그들은 3당합당, DJP연합, 그리고 노무현/정몽준 연합의 합의와 실패 등의 궤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 동안 수구정치세력의 일부와 연대하면서 자신들의 집권을 이어왔다. 노무현정권이 정몽준의 합의 파기로 뜻하지 않게 독자집권을 하게 되었지만, 정치적 위기에 처하자 ‘대연정’을 제안한 것도 이러한 궤적을 다시 확인해주는 것 그 이상이 아니다.

하지만 수구정치세력은 이를 거절하였고 결국 자유주의정치세력은 자신들의 마지막 패를 보여주며 스스로 사망선고를 한 격이 되었다. 물론 그들은 한 가지 패를 더 가지고 있었는데,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과 함께 ‘소연정’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카드를 꺼낼 수 없었던 바, 그 이유는 그것이 진보좌파세력의 ‘정치적 시민권’을, 그들의 주도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보는 바로 거기까지인 것이다. 오직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들에 대한 선거에서의 ‘비판적 지지’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4대강사업과 관련하여 “수장당할 각오로 이명박정권과 싸울 것”이라고 하는 그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신자유주의 관련 법안의 관철을 위해 그들과 한 몸이 되어 행동해 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것은 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된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신자유주의 공약들’을 대강 살펴보더라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문제는 그들과 진보좌파와의 다름을 드러내주는 가장 핵심적인 정치전선인데도 이런 ‘정치적 의미’를 간과한 채, 신자유주의가 ‘추상적’이라는 주장을 넘어, 이제는 “반신자유주의의 현실적 모습이 반MB”라고 역설하는 이들이 있으니 이를 접하는 것은 고통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재차 부탁하고 싶은 것은 이번 지방선거 과정에서 왜 자유주의정치세력이 집권기의 신자유주의 행보에 대해 반성하라는 요구를 그토록 완고하게 거부했는지, 왜 지금도 그들이 그것을 정책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려 그렇게 애를 쓰고 있는지, 따라서 진정 ‘정치’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숙고해보라는 것이다.

왜 자유주의파는 신자유주의를 ‘정책’이라 말하는가?

이런 상황이기에 새로운 헤게모니 플랜을 더 이상 구축할 수 없는, 그런 의미에서 역사적 임무가 종료된 자유주의정치세력이 할 수 있는 능동적인 일이란 아무 것도 없었다. 과거 촛불정국 혹은 지난 용산투쟁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대중투쟁 혹은 진보좌파들이 주도한 투쟁을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키는데 이용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만 빠져 있었을 뿐이다.

용산투쟁의 말미에 나타나 사진을 찍던 민주당 대선 후보 정동영씨의 모습은 그 백미였다. 그렇기에 이번 6.2지방선거를 앞두고서도 그들이 한편으로 진보좌파의 정책을 베끼고 모사하는 것, 다른 한편으로 ‘노풍’이 불기를 기대하며 거기에 풀무질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진보좌파 또한 개입역량의 빈곤에 시달려야 했다. 그나마 ‘진보정치세력의 연대를 위한 교수-연구자 모임’이 결성되어 선거에 개입하고자 하였으나 시기적으로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았고 그 진위 여부와 무관하게 이 모임이 ‘친(親)진보신당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시각의 상존은 애초 그 활동의 폭을 크게 제한하는 것이었다.

특히 민주노동당의 경우, 이 모임에 별 의미를 두지 않았을 가능성이 큰데, 그들의 인식, 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이미 그 뒤에는 자유주의좌파(개혁자유주의)의 헤게모니 아래 있는 다수의 ‘지식인-연구자들’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창비주간논평」이라는 시리즈가 <오마이뉴스>, <프레시안>은 물론 <레디앙>에도 실리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현실은 지금 제도 안팎의 진보좌파가 어떤 이념적, 실천적 지형 위에 둘러싸여 존재하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증거이기 때문에 그렇다.

바로 이런 조건이었기에 이번 선거를 ‘거부’하는 이들이 아니라면, 진보좌파가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관심사항이 될 수밖에 없었으며 필자에게 그 고민의 답은 ‘완주’였다. 필자에게 완주는 독자적으로 승리할 가능성이 없는 자유주의정치세력의 ‘반MB 단일화’ 압박이 민주노동당 등을 매개로 드세어지는 선거정국 속에서 진보좌파가 내밀 수 있는 유일한 카드였다.

‘완주’가 유일한 카드였다

그렇기에 진보좌파가 완주할 경우, 가장 일반적으로 가해질 비난, 즉 진보좌파 때문에 수구정치세력이 승리하게 되었다는, 이른바 ‘한나라당 2중대론’에 근거한 세평을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것은 자유주의정치세력의 이데올로기이지, 진보좌파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4반세기 이상 ‘민주대연합’을 말하며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헤게모니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 과거 전국연합, 지금의 민주노동당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지, 그와 다른 가치와 행보를 걷겠다고 분당하여 평등, 생태, 평화, 연대 등 4대가치를 말했던 진보신당, 혹은 사회당 등 진보좌파가 고민해야 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상한 대로 선가가 끝나자 노회찬씨의 완주에 대한 비난이 꼬리를 물었다.

그런데 진정 이 지점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상이 현실로 드러났다는 것이 아니라, 그 예상이 역사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진보좌파라면 누구나 할 수 있었다는 것, 즉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정치는 항상 그 누군가의 ‘저주’를 동반하는 것이기에 새삼 그것에 주눅이 들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무엇 때문에 누가 누구를 ‘저주’하는가를 분별하고 대응하는 것이며, 바로 그것이 정치인 것이다.

이 지점에 필자가 완주를 강조하는 이유, 그 와중에 심상정씨의 사퇴를 비판한 것, 나아가 진보신당의 지방선거에 대한 일관된 방침부재와 동요에 대해 아쉬워하는 이유가 있다. 즉 이번 6.2지방선거에서 자유주의정치세력이 진보좌파를 더 이상 자신들의 들러리로 취급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 힘을 모아 진보좌파연대를 구체화, 실질화시켜 2012선거에 대응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고 설상가상 그 도중에 내부 장애를 만나며 뒤틀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번 6.2지방선거에서의 완주, 따라서 ‘자의적 사퇴’에 대한 ‘양비론적 평가’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독자집권이 불가능한 자유주의정치세력이 2012년의 총선, 특히 대선에서 진보좌파와의 선거연대를 원한다면 자신들이 추진해왔던 신자유주의정치에 대해 수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또한 공당의 대표에게, 그것도 이념, 정치의 의미를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후보사퇴를 요구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철부지’들에게 교훈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잘 나가는 민주노동당’과 동급으로 보지 말라는 정확한 메시지를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심상정을 고민하자는 주장은 의미 없다

그렇기에 지금 필자에게 친노세력 등 ‘자유주의좌파’를 포함하는 ‘연합’을 말하는 심상정씨의 언술, 혹은 그녀가 던진 화두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들은 아무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지금 진보좌파에게 필요한 것은 4반세기 이상 물리도록 해온 그런 비생산적인 논쟁을 계속 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이 섬뜩해 할 만큼 냉정하게, 자존과 품위를 지키면서, 뒤도 돌아보지 말고 제 갈 길을 가는” 그런 대중적 리더쉽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비판적 지지’를 저들에게 넘겨 이제 진보좌파의 도움이 필요한지 여부를 당신들이 결정하라고 압박할 수 있는 그런 리더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 진보좌파에게 필요한 것은 심상정씨의 행태를 둘러싸고 “조직적으로는 문제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해한다”고 평하며 마치 자신들만이 ‘인간적인 것’처럼 포장하는 이들이 아니라, 또한 심상정씨의 사퇴에 대한 징계문제에 대해 “매우 무거운 정치적 사안”이라며 상층엘리트들의 행보에 더듬이를 대고자 하는 이들이 아니라, 스스로 그 사태를 객관화시키며 진보좌파의 이름에 맞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아래로부터의 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또한 필자는 심상정씨가 후보사퇴의 변으로 말한, MB정권의 승리로 대중이 처할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도 큰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 이미 밝힌 대로 필자는 그 삶의 고통은 어차피 대중이 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정 이 땅의 비정규직여성노동자들, 삶의 거처를 빼앗기는 도시빈민들, 이주노동자 등 소수자들은 그 고통 속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스스로 세우는 만큼만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재현 그 자체가 지니는 한계를 부정할 수 없기에, 제도 안팎의 그 어떤 진보좌파정치세력들 또한 단지 대중들의 고통을 자기화하면서 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중장기적 기획자, 촉매자의 역할만을 할 수 있을 뿐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 그런 역할을 해야 할 진보좌파정치세력조차 자기 스스로를 세우지 못하지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그렇게 대중의 고통을 뼈저리게 생각하는 이가 자기 스스로도 세우지 못한 채, 다른 이들에게 기대어, 그것도 역사적인 역할이 끝난 신자유주의좌파인 자유주의정치세력들에 기대어 자기를 세우겠다고 말하고 있으니 난감할 뿐이다. 그렇기에 거기에 대고 또 무엇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이제 갈 사람은 가야 한다. 가서 실험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면 굳이 잡을 필요가 없다.

떠나고 싶으면 따나라

이제 두 번째 ‘진보좌파의 재구성’에 대해 말할 차례이다. 진보신당과 관련해서는 과거 <레디앙>에 기고했던 「총선참여론에 묻힌 진보의 재구성」, <참세상>에 기고했던 「진보의 재구성 이제 시작이다」라는 비판적 글을 참조하길 바란다. 필자는 그 글이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화된 상황들도 존재하기에 좀 더 부연하고자 한다.

첫째, 진정 지금이야말로 생태, 평화, 젠더, 평등 등의 가치문제를 자기화하고 실천하는 진보좌파의 재구성이 되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정치, 따라서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그 전제로 한다. ‘민주주의의 급진화’는 정치의 위계화, 중심화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연대를 가능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기우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중심을 부정한다는 것이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는 점, 그것은 ‘그 모든 것이 나의 것’이라는 점을 인식, 실천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진보좌파의 민주주의가 결국 ‘꼬뮌주의’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 이상이 아니다.

그렇기에 노동자계급은 젠더, 생태, 평화주의자들에게 자신의 ‘중심성’을 인정하라고 말할 수 없다. 다만 당신들이 진정한 민주주의자라면 그 부당한 착취관계의 해소, 극복을 위해 함께 싸우자고 연대를 요청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그렇기에 ‘노동자계급’ 또한 여성을 억압하고 생태를 파괴하고 평화를 유린하는 관계에 대해 누구보다도 첨예하게 싸워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 현재의 진보좌파들은 누가 과연 진정한 민주주의자인가를 두고 제도 안팎에서 실천하며 경쟁해야 하는 것이지, 그 어떤 중심성을 인정받기 위해, 혹은 자신들의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자기화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의 행태에서 볼 수 있듯이 그러한 발상과 행태는 진보좌파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것은 기껏해야 자신들이 담당하는 운동영역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착각하면서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조합주의적 운동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지금까지의 관행들, 자신들의 조직, 정파가 있기에 어려움이 없지 않겠지만, 이러한 방향을 지향하면서 모든 논의와 교감과 연대가 축적되고 확대되지 않는다면, 향후 진보좌파정치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도, 또한 존재 가능성도 찾기가 힘들 것이다.

민주노총과 거리 두어야

이런 맥락에서 진보좌파정치는 조합주의화한 기존 조직들, 특히 민주노총 등을 매개로 한 대중적 기반의 구축, 확대라는 발상으로부터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지금은 ‘87년 체제’, ‘97년 체제’를 둘러싼 논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양할 가시적 행보가 필요하기 때문인데, 여전히 민주노총은 양 체제 사이를 진자(振子)운동하는 ‘조합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런 문제의식의 전제 위에서, 가능한 세력들이 참여하여 연대를 위한 논의를 진행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구조와 인적구조를 가진 진보신당을 중심으로 하자.”고 말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진보좌파의 재구성’을 위해 내놓겠다고 말하면 된다. 그런 표현은 솔직한 것 같지만, 오히려 말 뿐이었던 ‘진보의 재구성’ 실패에 대한 자기성찰이 없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괜한 오해만을 불러일으킬 뿐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필자는 이미 과거 진보신당연대회의와 사회당, 그리고 지금은 해소된 초록정치연대의 통합을 주문한 바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6.2지방선거에서 드러난 진보신당과 사회당과의 교호가 더 진전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통합은 단순한 조직의 통합이 아니라, 진보신당이 내세운 ‘4대가치’와 사회당의 ‘사회적 공화주의’가 발전적으로 만날 수 있는 지점 위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필자는 ‘민주주의의 급진화’가 그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양자의 정책적 차이가 크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다양한 형태의 논의들, 실천들이 더 진전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사회주의계급정당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정치세력, 즉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공동실천위원회(사노위)가 ‘진보좌파의 재구성’이라는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기를 바라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그 성과의 구체화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생태, 젠더, 평화 등의 가치에 대해 조직적, 실천적으로 더 고민해 왔던 세력이 사노준 이후 이들 세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필자는 이들이 6.2지방선거에서 최소한 ‘진보좌파의 독자성’을 옹호하는 방침을 제출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고민들은 ‘제도정치 대(對) 비제도정치라는 부르주아적 이분법의 정치’를 넘어서는 것 속에서 실현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 대해 사노위 또한 부정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능한 제도정치에 능동적으로 개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고민과 실천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 오랜 자기성찰이 ‘진보좌파의 재구성’을 위한 논의와 연대의 중요한 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물론 기우에서 다시 말하지만, ‘진보좌파의 재구성’은 그 어떤 조직적 통합으로 환원될 수 없다. 그 이유는 그것이 많은 시간을 요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직 그 자체가 아니라 다양한 연대의 틀을 만들고 함께 논의하고 실천하는 경험의 축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떤 계기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더 심화, 확대시키고자 하는 적극적인 시도가 중요하다. 과거 진보신당연대회의가 조합주의적 행보를 걷다가 ‘진보의 재구성’에 실패한 것은 그 좋은 경험이며 그것은 오늘 진보신당을, 나아가 진보좌파 전체를 어렵게 만든 구조적 요인이 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이 그 계기이며 그렇기에 무엇보다 아래로부터의 강한 압력이 요구되는 시기이다. 과거 진보신당연대회의 시기, 반짝 일어났던 말 뿐인 ‘직접행동’이 아니라, 진보좌파를 세우기 위한 아래로부터의 진정한 힘 말이다.

좌파 연대의 시험대, 7.28재선거

그런데 지금 향후 진보좌파의 연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시험대가 다가오고 있다. 7.28재선거가 그것이다. 특히 ‘은평을 선거’가 관심사가 되고 있다. 필자는 이 선거가 수구정치세력인 한나라당, 자유주의정치세력인 보수 민주당, 여전히 개혁자유주의 정치세력이고자 하는 국참당과 이미 6.2선거직후 2012년까지 ‘반MB연합정치’를 강조한 바 있는 ‘그들의 우당’ 민주노동당, 그리고 진보좌파의 3파전으로 치러지기를 바란다.

분명 이 선거에서 진보좌파는 패배할 것이지만, 이 과정 속에서 진보좌파가 무엇을 위해,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지를 확실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자유주의정치세력의 헤게모니 이데올로기였던 ‘비판적 지지’가 더 이상 진보좌파 안에서 숨 쉴 수 없다는 점, 그렇기에 향후 ‘비판적 지지’는 권력을 원하는 자유주의자들의 진보좌파에 대한 전술로만 존재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확인시켜주어야 한다.

기우에서 이지만, 당 내부의 문제가 산적해 있다는 핑계로, 대중적 인물이 없다는 핑계 등으로 사분오열되어 이 선거를 그냥 보내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6.2지방선거에서의 실수를 이를 통해 마무리하지 않으면, 자유주의정치세력과 민주노동당에 휘둘려 얼마 남지 않은 2012년의 선거를 희망적으로 맞이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것만이 그들을 더 좌측으로 끌어올 수 있는 의미 있는 방책으로 존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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