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아줌마, 왜 한나라당 찍었나?
    2010년 06월 21일 08: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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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이미 ‘단일민족’의 나라가 아니다. 극우파와 민족주의자들이 아무리 단일민족을 부르짖든 말든 이미 여러 인종과 민족이 뒤섞인 나라가 되고 있다. 한국사회는 많은 ‘이주민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중국과의 수교 이후, 많은 조선족들과 중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1993년 산업연수생 제도가 실시되면서 아시아 전역에서 산업연수생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또 한 편 대학에서 교환학생제도를 ‘지구화’(혹은 세계화)를 매개로 전세계의 대학생들을 유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어’에 대한 강박증세는 E-2 비자로 수 많은 ‘네이티브’들을 한국으로 소환했다.

이주민에 대한 하나의 그림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했던 많은 외국인들의 이야기가 낯설지도 않은 시점이 되었다. 그리고 다른 한 편에서 ‘도망치지 않는’ 베트남 여성을 비롯한 많은 여성들이 결혼을 매개로 한국에 들어왔다.

지금 여기, 이주민에 대한 하나의 그림이 존재한다.
2009년 10월 26일. 이주노동자 밴드 <스탑 더 스맥 다운>의 보컬 미누가 한국에서 추방당했다. 18년 동안 한국에서 일한 경력은 ‘고용허가제’가 양산하는 ‘불법’이라는 딱지 때문에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정부는 노동력 ‘공급’ 조절을 위해서 이주노동자들을 적당한 시점에 한 번씩 단속하고, 영세 기업들은 그들을 적당한 ‘임금’과 ‘노동조건’을 통해 관리하고 있다. 전국의 공장에서는 컨테이너 박스 안과 ‘하꼬방’ 등에서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코리안 드림’을 또 다른 한 편에서 꿈꾸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국가에서 국경을 넘기 위해 엄청난 돈을 브로커에게 지불하면서 출국 과정에 들키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한국에 들어와서는 또 정부에 의해 쫓겨나지 않기 위해 불안해한다. 그들에게 ‘포근한’ 정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여기에 많은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대책 협의회> 등 많은 흐름들이 존재한다. 다른 한 편 그들에 대한 ‘공포’가 존재한다.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공포, 그리고 ‘범죄’와 연동되는 생각들, 즉 그들은 왠지 위험하다는 생각.

120만-12만-11만-2만명

하지만 이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다. 또 다른 ‘이주민’들이 있다.
잠깐 여기서 멈춰보자. 이 숫자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120만. 12만. 11만. 2만.

120만 명. 현재 한국에 있는 외국인의 숫자이다. 12만 명. 한국에 결혼해서 들어온 결혼이주자의 숫자이다(이중 절대 다수가 여성이다). 11만 명. 한국사회에서 결혼이주자들이 한국인들과 결혼하여 낳은 자녀들(코시안)의 숫자이다. 2만 명. 현재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코시안의 숫자이다.

대한민국에 있는 사람의 2.2%가 외국인이고, 0.22%가 결혼이주자이고, 그 만큼의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 중 1/6이 학교를 다닌다. 쉽게 말하자면 당장 3년 안에 현재 고등학생인 6,600명 중 상당수 코시안들이 대학에 입학한다.

물론 <러브 人 아시아>에 나오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결혼이주민들의 이야기, 그리고 ‘다문화사회’라는 어느 순간부터 정부와 미디어를 통해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이는 물론 한 측면을 보여준다. 난 프로젝트로서의 ‘다문화사회’의 당위성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미 다문화사회는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주자는 끊임없이 늘어날 것이다. 또한 결혼이주자의 수는 급증하고 있고, 그 증가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 너머에는 훨씬 더 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오히려 질문하고 싶은 건 지금 좌파가 이주민들을 어떻게 그리면서 한국사회를 바라보고 있냐는 말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보면서 내가 가장 주목했던 것은, 노회찬과 심상정의 엇갈린 선택이 아니었다. 노회찬 때문에 한명숙이 떨어졌다는 ‘대연합’주의자들의 성토도 역시 아니었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어떤 아줌마의 당선이었다.

선거 후 만난 필리핀 아줌마들

선거 며칠 후 몇 명의 필리핀 아줌마들을 만났다. 그 아줌마들은 구로 구청에서 진행하는 TESOL 강의를 듣고 있었다. ‘영어 잘하는’ 필리핀에서 온 아줌마들에게 왜 또 TESOL을 배우러 왔냐고 물었다.

그녀들은 한국에서 ‘영어 강사’가 되기 위해선 더 ‘자기계발’에 매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TESOL을 수강하고, 한국 사람들이 더 선호하는 ‘미국식 발음’을 익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인 ‘엄마’들과 협상하기 위해서는 프로페셔널한 한국어 구사 능력도 필요하다고 했다.

한참의 수다가 이어진 뒤 그녀들 중 한 아줌마가 ‘생뚱맞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이겨서 좋았다는 것이다. 아줌마에게 물었다. 누구 찍었냐고. 그랬더니 그녀는 구청장 한 명을 빼고 모두다 민주당을 찍었다고 했다. 나머지 한 명은 한나라당이라고 했다. 왜 그러냐고 다시 물었다. 그건 그 한나라당 후보가 가장 ‘다문화사회’와 ‘이주여성’들을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어떤 아줌마의 이야기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몽골 출신의 그녀는 2003년에 남편을 따라 이주해서 7년을 살면서 다문화 가정에 대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활동을 토대로 ‘의식화’되면서 ‘정치적인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한나라당 경기도의회의 비례대표 1번으로 최초의 ‘다문화’ 도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원유철 한나라당 경기도당 위원장과 이라 당선자.

이번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국민참여당, 자유선진당은 6명의 ‘다문화 후보’를 공천했다. 아이러니 한 것은 ‘다문화’ 정치인들을 끌어내기 시작한 흐름에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이 있었다는 것이다. 달리 이야기하자면, 다문화가정과 다문화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그네들의 정치적 통로가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에는 없었다는 이야기다. 단순히 그들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까?

다문화 후보를 공천한 정당들

난 여기에서 어떤 편견을 발견하는 것만 같다. 이는 이주민에 대한 어떤 전형적인 무언가인 것 같다. 단순히 ‘보호’받아야 하고 ‘인권’을 존중받아야 하는 피해자들로 바라보는 태도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싸움에 연대하지만, 그들을 ‘정치적 주체’로는 보지는 못한다. 그러는 사이 정치권력과 행정력을 가지고 있는 우파들은 그들에게 알량한 보조금을 제공하고, 적당한 ‘정치적’ 위치에 배치하고 있다. 누가 그들에게 더 큰 ‘우군’인가? 좌파는 그네들의 욕망을 알기는 하는가?

그네들은 전형적인 ‘미등록 노동자’이거나 ‘베트남/몽골 아줌마’가 아니다. 그들은 이미 ‘계급적으로 분화’되고 있다. 공장에서 일하는 어떤 ‘미등록 노동자’는 한 달에 80만 원을 간신히 손에 거머쥐지만, 필리핀 여성들처럼 ‘영어’ 자원이 있는 사람들은 한 달에 200만 원이 넘는 수입을 얻으며 집에서의 ‘생계부양자’를 자처하기도 한다.

또한 그네들의 욕망도 단순하지 않다. 공장에서 하루에 12시간씩 일하면서도 TV에 나오는 아이돌에 대한 ‘팬심’이 있고, 연애를 하고 싶은 젊은 이주 노동자가 있고, 코시안 아이를 키우면서 ‘TESOL’을 수강하고, 자기계발을 통해 자신의 커리어를 더 키우고 싶은 ‘영어 강사’가 있다.

게다가 그네들은 한국의 ‘정치’에 대해서 무감하지 않다. 자신이 한국사회에서 한 명의 ‘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내가 만났던 필리핀 아줌마는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좌파는 여기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엇부터 질문해야 하고 어떤 눈으로 그네들을 바라봐야 하나? 우파들은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대답하기 시작한 것 같다. 좌파는 어떻게 말을 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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