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도 산재처리가 되나요?"
By 나난
    2010년 06월 17일 05: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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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어린 손님들이 반말을 한다거나, 양반이 상놈한테 ‘무조건 하라’는 식의 말 있잖아요. 그런데도 회사의 담당은 매일 무조건 친절할 것을 강요해요. (스트레스로 인해) 정말 대인기피증이 생길 정도예요.”(A백화점 식품 매장에서 일하는 박 아무개(39) 씨.)

서비스 노동자들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산재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고객을 대면하는 서비스직 종사 노동자의 경우 사고에 의한 물리적 상해보다는 언어폭력이나 인격모독 등으로 인한 정신적 상해에 쉽게 노출된다.

이에 전국민간서비스산업연맹(이하 서비스연맹, 위원장 강규혁)은 “서비스직 종사 노동자, 즉 감정노동자들의 직무 스트레스로 인한 발병도 산재로 인정해야 한다”며 이들의 건강권과 감정권 보호를 강조하고 있다.

   
  ▲ 서비스연맹이 감정노동자들의 건강권과 감정권 보호를 위해 ‘민간 서비스 노동자 삶의 질 연구를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한다.

서비스연맹에 따르면 백화점이나 대형할인점 등의 고객만족센터에서 일해 온 김지혜(29) 씨는 “하루에도 수십 명의 고객을 상대하며 고객의 불만을 싫은 표정 한 번 짓지 못하고 다 받아”줬다. 이에 그는 언제부턴가 “불안과 가슴이 답답해지는 통증을 느꼈고, 결국 상태가 심각해져 직장을 그만두”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이젠 사람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난다”며 “대인기피증으로 집에서만 1년여를 생활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은 10여 년간 의류판매업에 종사한 이지연(가명, 36)씨에게도 나타나고 있다. 현재 이 씨는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 “(손님이) 말도 안 되는 시비를 걸어오면 다리에 힘이 빠지고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그는 “소리를 지르고 대항하고 싶지만 폭발을 못 시키고 안으로만 참다보니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참아낼 수가 없다”며 “가끔 심할 때면 화장실에서 안정제를 먹고 한참 앉아 있는 것으로 겨우 고비를 넘긴다”고 말했다.

이에 서비스연맹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녹색병원․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함께 ‘서비스 노동자 삶의 질 연구를 위한 설문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번 설문조사는 유통 및 외식업은 물론 카지노와 호텔 및 골프장, 그리고 퀵 서비스, 학습지 교사 등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1만 여 명이 대상이다.

서비스연맹은 이번 조사에서 임금수준, 근무형태, 근무시간, 특근 횟수, 고객으로 인한 스트레스, 회사 및 관리자의 관리감독, 작업장에서의 사고나 질병 등을 조사해 근무 조건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사업장 내 건강권 확보를 요구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특히 이번 설문조사에는 감정노동에 대한 항목을 삽입함으로써 서비스 노동자 스스로 ‘감정 스트레스’를 진단할 수있도록 했다. 항목으로는 △내 기분과 관계없이 항상 웃거나, 즐거운 표정을 지어야 한다 △일을 하거나 고객을 대할 때 보여주어야 하는 기분을 실제 내 기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등이다.

이성종 서비스연맹 정책국장은 “흔히들 산재는 제조업에서 많이 발생하는 줄 알고 있지만 서비스업에서도 산재 발생률이 대단히 높다”며 “이번 설문조사를 토대로 서비스 노동자들의 직무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피해도 산재로 인정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실태조사는 오는 21일부터 서비스연맹 산하 각 사업장에서 실시되며, 분석 결과는 오는 8월 중순경 발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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