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돈'컵, 천안함 그리고 걸그룹
By mywank
    2010년 06월 15일 07:3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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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이 모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출전해 있는 상황에서 남도 북도 모두 경기를 마음껏 즐기지 못하고 있다. 그게 다 세계의 눈과 귀가 몰리는 스포츠 행사를 거대한 돈 잔치로 만든 FIFA의 장삿속 덕분이다.

세계적 돈 잔치

   
  ▲ 2010 남아공 월드컵 우승 트로피

SBS가 독차지한 중계권이 휘두르는 권력이 어찌나 큰지 남한에서는 중계권을 독점한 방송사 말고는 경기 실황 중계는커녕 연예 오락 프로그램이든, 시민들의 길거리 응원이든 어느 누구도 카메라를 들이 밀지 말라고 한다. 심지어 한국과 그리스 경기가 열리던 날, 거리 응원 행사를 취재하려던 KBS마저도 취재를 제지당했다.

1966년 잉글랜드 대회 이후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북한은 천안함 침몰과 맞물린 5.24 대북 교류와 교역 중단조치로, 북한 지역 중계권도 확보하고 있는 SBS의 양해 없이는 볼 길이 막혀 버렸다. 그러다보니 세계에서 유일하게 합법적인 월드컵 중계권 자체가 차단되어있던 북한은 지난 12일 저녁 조선중앙TV를 통해 남아공과 멕시코의 남아공 월드컵 개막전을 무단으로 중계했다.

말하자면 자기 나라 선수가 뛰는 세계적 규모의 ‘공차기 돈 잔치 행사’를 해적방송으로 보게 된 셈이다. 이어서 14일에도 조선중앙TV는 한국과 그리스의 경기를 중계하면서 방송사 로고가 노출되는 원래 화면의 아래 위를 가려 어느 나라 방송 신호를 가져다 쓴 것인지는 숨겼다.

여러 해 동안 공들여 국가대표를 키운 것이 FIFA도 아니고, SBS라는 일개 상업방송사도 아니건만 이렇게 돈을 앞세운 장삿속에 속이 뒤틀리는 마당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월드컵을 보고 싶어 하고, 어디서나 월드컵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축구가 참 대단한 스포츠이긴 한가 보다.

이렇게 축구가 자신이 직접 뛰고 달리는 스포츠가 아니라 보고 감탄하는 스포츠가 되도록 만든 것이 미디어의 힘이다.

미디어의 힘

미디어는 모든 것을 볼거리, 스펙터클로 만들어낸다. 기 드보르에 따르면 스펙터클은 축적된 자본이다. 스펙터클은 지배경제의 이미지이며, 전문화된 매개체들에 의존해서 세계를 바라보게 만들며, 현실의 빈곤함을 이미지에 대한 집착으로 바꾸어내면서 ‘허용된 것’과 ‘가능한 것’ 사이에서 분리를 완성해낸다.

이렇게 스펙터클로 완성되는 분리가 어디 축구뿐인가. 한쪽에서 축구를 둘러싼 스펙터클이 문제가 되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걸그룹’을 두고 어처구니없는 스펙터클 소동이 일었다. 커다란 전함을 두 동강 낼 정도로 어마어마한 폭발을 일으킨 화학반응과 바다 속 험한 환경 속에서도 선명히 남아있는 놀라운 파란 유성 매직으로 ‘1번’ 이라고 표시된 어뢰 조각의 스펙터클이 천안함을 침몰시킨 것이 북한이라는 결정적 증거가 되었다.

   
 

그러더니 2004년 6월 남북 군 당국간의 합의에 따라 전면 중단되었던 대북방송을 부활시키겠다며 국방부가 대북 심리전을 위해 세웠다는 계획이 소녀시대, 원더걸스, 애프터스쿨, 카라, 포미닛 등 가요계를 휩쓸고 있는 ‘걸그룹’들의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무지무지하게 커다란 전광판을 세워 북쪽 병사들에게 틀어주는 거란다.

그러다가 ‘걸그룹’을 이용하겠다는 발상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북한이 대북 심리전을 사실상의 침략행위로 규정하면서 서울까지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강하게 반발하며 안팎으로 몰리자 슬그머니 “전광판 하나 설치하는 데 13억에서 15억 원 정도로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든다"며 비용문제를 이유로 대북 전광판 설치를 보류하기로 했단다.

‘걸그룹이 진리?’

‘걸그룹’의 이미지는 한마디로 ‘섹시’다. 이성과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와 분리되어 몇 년씩 집단생활을 하는 젊은 남성들을 다스리는데 이 ‘섹시함’은 아주 효과적인 처방이었다. GOD의 김태우든, 신데렐라 언니의 주인공 천정명이든 군대에 있는 동안은 ‘걸그룹이 진리’라고 입을 모은다.

군대 위문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국민가수 조용필이 아니라 노출 심한 의상에 가슴, 허리, 엉덩이를 최대한 유혹적으로 강조하는 춤을 추는 걸그룹이 맡는다.

<우정의 무대>를 비롯한 군부대 공연에서 노래 잘하는 가수보다 섹시한 가수가 더 환호 받고, 베트남 전쟁을 다룬 영화 <님은 먼곳에>(이준익 감독, 2008년)에서 참한 아내 순이보다 미니스커트 차림의 ‘써니’가 더 사랑받고, 한국 전쟁 당시 주한미군을 방문한 마릴린 먼로의 공연은 전쟁의 화약냄새를 달착지근하게 지우는 위안이었다.

   
  ▲ 영화 <님은 먼곳에>(왼쪽)과 마를린 먼로

이렇듯 남성이 주도하는 전쟁의 역사에서 여성의 섹시함은 군대가 자기 병사들을 ‘위문’이라는 이름으로 길들여 안으로 불거질 수도 있는 불만을 잠재우는 수단이었다. 얼핏 생각하기에 나라를 위해 총을 든 사내들에게 그 정도 위안을 즐기도록 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극단은 종군위안부까지 나아간다.

전쟁이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이 되는 순간, 여성의 섹시함조차 군대를 지탱하기 위해 징발되는 것이다. 일제처럼 가혹하고 극단적이 아닌 경우라면, 대개는 기지촌이라는 매춘의 형태로 나타난다.

섹시함 동원의 끝, 종군위안부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년)에서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고 북진을 하기에 앞서 부대원들은 한꺼번에 기지촌에 찾아간다. 이렇게 애인도 아니고, 아내도 아닌 여성에게 군인들이 집단으로 성욕을 해소하는 것이 영화 안에서든 전쟁 당시 현실에서든 부도덕한 행실이 아니라 최고의 ‘위안’으로 여겨지도록 만드는 것이 군대요, 전쟁이다.

   
  ▲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한 장면

그런데 국방부의 ‘걸그룹’ 해프닝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이제 여성의 섹시함을 안으로는 ‘위안’으로 삼고, 대북 심리전에서는 ‘도발’로 삼겠단다.

한미군사합동훈련 중에 온갖 첨단 장비로 무장한 전함이 침몰하면서 젊은 병사들의 생목숨을 잃은 무참한 상황에서 기껏 생각해낸 전술이 소녀들의 가슴과 엉덩이로 북한 병사들의 ‘정신줄’을 놓게 만들겠다는 것인가? 이런 군대라면 정말로 전쟁이 벌어지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제 나라 여성들을 제물삼아 무슨 짓이라도 할 기세가 아닌가?

국방의 의무가 특권층이 못되는 ‘보통 남성’에게만 강제되는 나라에서 군대 가야 하는 남성들의 희생과 고생이 아무리 크다지만, 그 보통 남성들 아무도 ‘걸그룹’이 총 대신 가슴과 엉덩이로 대북 심리전에 나서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국방부는 자신들이 제대로 군을 이끌지 못하고 있는 현실의 빈곤함을 ‘걸그룹’의 이미지에 대한 집착으로 바꾸어내면 국민들이 안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으리라 착각한 것이다. 그러니까 군은 걸그룹의 이미지를 스펙터클로 이용하는 것이 ‘가능한 것’ 이라고 판단하고, 그 가능성을 ‘허용된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아니라는 오판을 한 것이다.

무능한 군부의 ‘좌빨 드립’

이렇게 경계에 실패하고, 전함을 잃고, 교전도 아닌 훈련 중에 병사를 잃은 무능한 군대가 반성과 쇄신은커녕, 허위 보고, 보도 통제, 진실 은폐로 오락가락하면서도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죄다 ‘좌빨’로 몰아 재갈을 물리려 한다. ‘좌빨’ 또한 실체 없는 이미지일 뿐이다. 심지어 스펙터클조차 없는 이미지인데도 ‘좌빨 드립’ 앞에서는 모두 조용해진다.

이렇게 이미지가 실체를 압도하는 동안 벌어진 한국사회의 풍경은 그야말로 기 드보르가 꿰뚫어본 ‘스펙터클의 사회’ 그 자체다. 경쟁적인 스포츠에서 선거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끊임없는 사소한 대결들이 가소로운 이해관계들을 동반하며 거듭 설정되는 허위적인 선택과 공허한 특질들을 둘러싼 투쟁이 전개되는 사회.

있는 그대로 보면 빨갛기로야 ‘좌빨’이 아니라 축구 응원단이 더 분명하게 실체가 있는 빨간색이다. 나라 돌아가는 일 가운데 천안함이며, 4대강 문제가 축구보다 더 중요한 문제인 것도 분명하다. 그래도 대그리스전 거리응원단에 빨간 옷 차려입고 나선 인파는 100만이 넘는다지만 그 ‘붉은 악마’들이 나랏일에 그만한 열정을 가지고 모이지는 않는다.

월드컵이 계속되는 동안, 그리고 특히 한국팀이 경기를 치르는 동안 저들이 또 어떤 이미지를 실체와 분리시키는 작전을 세울지 참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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