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퇴를 하든, 완주를 하든…"
        2010년 06월 14일 10: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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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2008년 총선의 덕양갑 단일화 시도, 2009년 재보선의 울산북구 단일화에 반대해 진보신당을 탈당했던 시민이다. 나는 단일화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수도 있다. 나는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연정’ 논의를 시작했을 때, 민주노동당이 연정 반대가 아니라 ‘조건부 연정론’을 세우기를 바라기도 했다. 비록 소수정당이지만 연합을 통해 다수정당이 중단기적 정책을 수용케 할 수 있다면야.

    다만, 정책조건이 아닌 선거공학을 중심으로 세우고 진행하는 단일화는 반대한다. 내용 없는 단일화는 되레 범한나라당 진영을 결집시킬 뿐더러, 정치를 혐오하는 서민층 비투표자들을 그대로 고립시킨다. 결국 단일화에 나선 각각의 정당에도 도움이 되기 힘들 것이다. 김기식 씨의 ‘연합정당론’이 대안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당적이 없는 처지지만, 진보신당 서울시장 후보의 저조한 득표도, 경기도지사 후보의 중도 사퇴도 안타깝다. 분당 이후에도 투쟁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아 나가던 민주노동당의 단일화 방침이 너무 단순하였다는 데도 신경이 쓰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밟히는 것은 진보정치진영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일화나 연합을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길이 있을 터이므로, 더 안타깝다.

    경기도지사 후보직을 사퇴한 심상정 전 대표는 그간의 ‘좌파적 이미지’를 깨고 마치 오랫동안 숨겨놓은 속내를 털어놓듯 ‘정계개편론’을 꺼내들었다. 끝까지 달린 노회찬 대표조차 단일화 논의 자체에 항변하기보다 ‘한명숙 후보에게도 단일화 실패의 책임이 있다’는 수위의 반론에 머물렀다. 단일화 자체를 물리칠 만한 강한 독자성을 확보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대안적 단일화를 모색할 수 있는 전략이 있는 것도 아니다. 너무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앞으로는 더욱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민주노동당의 경우, 이 정당이 수도권에서 기초단체장을 배출한 것은 진보정치의 역사에서 분명 경사에 해당하는 사건이다. 특유의 뚝심으로 지역에 투신했던 대가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과거 한미FTA 등에서 대립각을 세웠던 쪽과 이제 연합하게 된 배경은 두고두고 설명 혹은 해명해야 할 주제로 남을 것 같다.

    내가 진보정당에 조금이나마 기대한 건 ‘2등일 때는 단일화하고, 3등일 때는 버티는’ 자세가 아니라, 가치와 정책을 우선 기준으로 두고 꿋꿋이 완주할 수도, 과감히 양보할 수도 있는 결기였다. 그러나 그간의 과정을 복기하자면 진보정당은 거기까지 가지는 못했다. 연합에 적극 나선 민주노동당이나, 5+4 연석회의에 들어갔다가 나온 진보신당이나 그점이 부족했다.

    ‘반한나라’가 아니라 ‘보편적 복지’를

    한편, 이번 선거에서 도드라진 것은 지방의원, 특히 기초의원 선거에서 일어난 제 정당 혹은 시민사회의 연대였다. 구미 지역 역시, 재야 세력의 연대로 구미풀뿌리희망연대의 출범이 있었다. 내가 그 일원이 된 이유는 이 연대가 한나라당의 지방자치독점에 대한 반사작용, 그 이상이었던 덕분이다. 구미풀뿌리희망연대는 발족선언문에서 “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서 경제적 민주주의의 후퇴로 인한 사회 양극화는 또 다른 사회적 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밝히고 “지역 중소상인의 경제적 어려움,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등의 민생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천명했다.

    풀뿌리 무소속 시민후보로 출전한 나는 이 바탕 위에서 ‘반한나라당’ 담론을 넘어서는 선거운동을 펼칠 수 있었다. 이미 지역구에서는 한나라당에 대한 혐오 정서가 팽배해 있었지만, 나는 유권자들에게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한나라당, 친박이나 민주당이나, 이마나 마빡이나, 그게 그거 아닙니까. 단순히 한나라당을 싫어하는 걸 넘어서서 우리 갈 길을 갑시다”라고 말했다.

       
      ▲ 경북 구미에서 무소속 시의원으로 출마한 김수민 당선자 (사진=김수민 블로그)

    이는 내내 ‘우리가 진짜 친박이다’를 외치던 한나라당과 친박연합과 대비되었다. 선거 연설이 있을 때마다 나는 우리네 삶이 지금 과연 자연스럽고 올바른지를 유권자들에게, 또 스스로에게 거푸 질문했다. “이명박 정권이…”라고 한마디 운을 뗄 때마다 행인들이 순간 돌아보는 현상을 마주하면서도, 결론과 대안(주민참여예산제와 마을협동교육, 책임보육, 어르신 복지)을 시종일관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비록 민주당을 지지하는 주민들이 기권하거나 한나라당 출신 무소속 후보를 멋모르고 지지하는 사례를 제대로 막지 못했지만, ‘보편적 복지’ 담론으로 철저히 승부해 우리동네에서라도 새로운 구도를 쓰려고 노력한 성과는 얼마간 거두었다.

    예전 진보정당 후보들의 선거운동을 도울 때는 ‘3, 40대 고학력 회사원’들이 주요 지지층임을 매번 실감했지만(그리고 이런 사정이 자유주의 정당도 마찬가지인 탓에 진보개혁진영의 기반이 한정적임을 깨달았지만) , 이번은 사뭇 달랐다. ‘정말로 새로운, 없는 사람을 위한 정치를 바란다’는 서민층의 지지를 체감했다. 그래서 당선 직후 기간제 노동자로서 민주노총 경북일반노조에 가입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고, 지역구에 곧 불어닥칠 전통시장 탄압에 대비하는 어깨가 무겁다.

    아마 이처럼 다른 지역의 진보 개혁 성향의 지방의원 후보들도 ‘한나라당 반대’를 넘어서서 포지티브한 담론을 펼쳤을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의의는 ‘작은 곳에서의 변화와 승리’에 있다. 다만 이것이 왜 좀 더 큰 영역으로 확산되지 못했는지 아쉽고, 또 앞으로의 선거가 우려스럽고 걱정된다.

    진보의 가치와 정책이 먼저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은 이제부터라도 그동안 유예했던 ‘진보적 가치와 정책’을 고집스레 내세우고 선거연합의 조건으로 걸 준비를 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도 한미FTA반대에 귀납적으로라도 접근(SSM 규제, ISD의 지방자치 훼손 등)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총선과 대선에서 이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공공부문 노동자 정규직화’도 이번 선거의 이슈가 될 수 있었다. 다음 총선과 대선은 더 큰 선거이니 만큼 그에 걸맞는 정책조건을 걸어야 할 것이다. 조세 및 재분배, 교육혁신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국가보안법 폐지, 선거제도 개편 등 자유주의 진영과 진보 진영이 예전부터 접점을 형성했던 과제들은 두말할 것도 없다.

    선거에서 완주를 해도 좋고 양보를 해도 좋다. 그 폭은 유연하게 잡아달라. 그러나 반드시 정책조건, 우리가 그동안 싸우며 지향했던 가치들을 전면에 내세워달라. 블록버스터의 엑스트라로 전락하기보다 독립영화의 연출가, 작가, 주연이 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만일 이게 성공한다면, 설령 중도 자유주의 세력과 손을 잡고 더 거대한 판을 만드는 경우에도 단순한 ‘반MB’가 아닌 ‘서민복지동맹’의 초석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무조건적 반한나라당연합이나 ‘연합정당론’은 물론, 진보양당의 재통합론이 폭력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각자가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뚜렷이 견지한 채 상당한 공통점을 찾아나가고 연대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나는 구미에서 진보양당의 당원들, 민주노동당을 나왔지만 진보신당에 들어가지 않은 분들, 나처럼 당 바깥에 있지만 진보정치를 지향하는 분들을 규합하는 일을 모색하고 있다. 뭉치는 게 그저 좋아서가 아니라, 각자가 달고 있는 간판의 차이를 뛰어넘어 개개인간에 서로 통하고 공감하는 바가 크다는 걸 벌써 확인했기 때문이다.

    1991년 지방선거와 이듬해 총선, 어린이였던 나는 어쩌다 구미 지역 민중당 후보들의 활약을 보았고, 이를 가슴에 품은 채 자랐다. 진보정당에서 항의 탈당을 하고 운동의 전망을 찾다가 풀뿌리 정치에 도전하게 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지만, 한편으로는 무소속이라는 것이 서글펐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이 자신의 강령으로 다시 돌아가서, 고립을 감수하건 연합에 나서건 이에 철저히 바탕하기를 바란다. 우리에게 닥친 실험을 돌파한다면 언젠가는 각자가 처한 질곡을 뚫고 진보정치의 바다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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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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