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남자의 자격>은 무개념방송?
    2010년 06월 14일 09:3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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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격>이 남아공 월드컵 현장으로 갔다. 공항에서 해설위원이 이렇게 문제를 제기했다.

“이번에는 KBS가 중계를 하지 않습니다. (SBS의) 단독 중계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SBS가 독점 중계하는 월드컵경기장에서 KBS 방송팀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얘기였다. 이경규는 이렇게 답했다.

“저희 남자의 자격 나름대로의 어떤 비책을 가지고 시청자 여러분께 전달해드릴 겁니다.”

그러면서 이경규는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썼다. 자신들의 진정성을 이해해달라고. 진정성? 이 얼마나 순박한 말인가.

   
  ▲ KBS <남자의 자격> 방송 장면

월드컵 중계권 문제는 첨단 자본주의의 계약에 의해 이루어지는 ‘소유권’ 문제다. 첨단 자본주의라는 말을 쓴 건 월드컵 등 세계 스포츠이벤트가 지구촌 상업화의 진행을 상징하는 것으로 변화하기 있기 때문이다. 특히 스포츠 경기는 미디어의 상업화와 대단히 관련이 깊다. 스포츠 경기 독점중계가 미디어의 이익극대화를 위한 대표적인 방편이기 때문이다.

이경규는 독점중계가 문제가 되고 있는 월드컵에 가면서 ‘진정성’을 말하고, ‘나름대로’ 알아서 잘 해보겠다고 했다. 정말 순박한 얘기였다. SBS가 눈을 부릅뜨고 있는 판인데 말이다. 이 글을 쓰다가 포털을 보니 SBS가 <남자의 자격>의 월드컵 특집에 대해 벌써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순박해서 욕먹은 1박2일

위의 장면을 보면서 과거에 사직구장에서 국민적 욕을 먹은 <1박2일>이 떠올랐다. 당시 KBS의 <1박2일>은 사직구장에서 이벤트를 벌였고 경기를 중계하던 MBC-ESPN이 이를 대단히 부정적으로 내보냈다. <1박2일>은 야구장에 가서 민폐를 끼치고 경기에도 악영향을 미쳤다고 질타를 받았다.

그후 MBC-ESPN의 해설자였던 허구연이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당시 무엇 때문에 자신이 그렇게 화를 냈었는지를 설명했다. 그때 깜짝 놀랐다. 허구연이 야구인으로서 야구팬에게 민폐를 끼치고, 야구장을 예능판으로 만든 것에 대해 분노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허구연이 1차적으로 거론한 것은 놀랍게도, ‘중계권’이었다.

자신들에게 중계권이 있는데 <1박2일>이 치고 들어왔다는 얘기였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야구경기나 야구팬을 위한 공공성이 아닌, 중계권이라는 자신들의 독점적 이익을 우선적으로 거론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허구연의 말에 실망했다는 글을 썼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었었다.

   
  ▲ MBC <무르팍도사>에 출연한 허구연 씨(사진 오른쪽)

하지만 이렇게 방송사가 중계권을 사서 해당 경기에 대한 모든 권한을 독점적으로 가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국민적 스포츠는 점차 돈 많은 방송사, 즉 국내 대자본이나 다국적 방송자본의 소유물이 되고 국민은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내야 하며, 스포츠 세계는 독점적 이윤논리, 상업논리에 오염될 것이다. 이미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특히 한국은 방송사간의 독점중계 암투가 치열해서 남의 나라에 돈을 퍼주고 있다고 한다. 예컨대, 미국여자프로골프의 경우 한국 방송사가 미국 방송사보다 훨씬 많은 중계권료를 냈었다.

허구연의 <1박2일> 질책이 더 실망스러웠던 건, 중계독점을 넘어 경기장 내의 모든 이벤트를 소유한 듯한 태도 때문이었다. 당시 <1박2일>은 무작정 쳐들어간 것이 아니라 롯데구단과 협의 하에 이벤트를 진행한 것이었다. 중계사는 중계나 하면 그만이다. 구단과 예능프로그램이 벌인 이벤트하고는 상관이 없었다. <1박2일>도 자신들은 중계프로그램이 아니므로 중계사하고는 달리 협의할 생각을 안 했을 것이다. 그런데 허구연은 그런 것에까지 문제를 제기했다. 이렇게 중계권을 소유한 방송사가 경기 자체를 소유한 것처럼 말하는 ‘소유권의 확대’ 시대에 <1박2일>은 순박했다.

누가 국민의 축제를 소유할 수 있는가?

요즘 다시 중계권과 소유권이 문제가 되고 있다. SBS가 월드컵 중계권을 독점했고, 더 나아가 월드컵 이벤트 자체를 소유한 듯이 행동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1인 매체인 ‘미디어 몽구’가 월드컵 응원을 취재하다가 SBS가 아니라는 이유로 취재를 제지당했다는 믿기 어려운 소식까지 전해졌다. 이제 대한 한 네티즌의 댓글이 재밌다.

‘지들이 월드컵 중계권을 따낸 거지, 월드컵에 관한 거 다 지들 거라고 생각하는 거같아’

광장에서도 소유권 분쟁이 벌어진다. 서울광장에서 응원하려면 자기들의 통제를 따르라는 후원사들의 압박이다. 2002년에 서울광장 응원은 ‘개나 소나’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것이었다. 이젠 돈을 낸 기업의 눈치를 봐야 한다. 소유권의 폭주다.

도대체 ‘국민의 축제’를 누가 소유할 수 있단 말인가? 돈을 낸다고 다가 아니다. 소유권은 절대불가침의 자연적 권리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에 불과하고, 각 나라마다 제도마다 소유권의 양상은 상이하다. 대체적으로 소유권을 극단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영미식 체제이고 특히 부시 정부에서 그런 경향이 심했으며, 일본이나 서유럽은 다른 방식을 취한다.

   
  ▲ 지난 12일 삼성동 코엑스몰 근처에서 펼쳐진 길거리 응원 모습

한국은 한국의 방식을 만들어가야 한다. 어느 선까지 소유권을 인정할 것인가? 돈만 내면 무엇이든 팔고 살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하나? 그렇게 되면 한국은 부자의 천국이 되고 국민은 보편적 서비스로부터 배제당할 것이다.

국민 여론으로 종지부 찍어야

월드컵은 국민적 축제다. 누군가가 돈이 많다고 이것을 독점한 다음, 차차 이에 대한 요금을 요구하기 시작하면 결국 돈 없는 사람은 월드컵을 향유할 수 없게 된다. 사진 한 장, 영상 한 장면도 마음대로 쓸 수 없을 것이다. 그가 광고료를 비싸게 받으면 제품값이 올라 국민이 그것을 부담하게 될 것이다.

기업의 광장독점도 문제다. 힘 있는 권력이든 돈 많은 기업이든 광장을 배타적으로 소유할 수 없다. 광장은 국민에게 개방되어야 한다. 기업이 아무리 돈을 풀어도 광장을 통제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후원사가 광장에서의 국민응원에 감 놔라 배 놔라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월드컵 같은 국민적 관심사에 대한 접근권은 보편적 권리로 보호돼야 한다. 제도적으로 독점중계를 막고, 설사 독점중계를 하더라도 독점적 권리를 최소한으로 묶어야 한다. 근본적으로 공공의 이익, 공공의 관심사에 사적 소유권자가 독점적 권리를 주장해선 안 된다는 원칙이 세워져야 한다.

<1박2일>이나 <남자의 자격>같은 ‘순박한’ 정신이 필요하다. 소유권, 독점, 이윤원리 등은 모든 분야에서 보다 느슨해져야 한다. 영미식 극단적 소유권 사회는 결국 소유권자, 즉 돈 많은 사람의 천국일 뿐이다. 방송사도 독점 경쟁을 멈춰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그냥 두면 한국은 최악의 미국식 소유권 사회로 진화할 것이 틀림없다. 월드컵 독점중계와 서울광장 사태는 그 전조다. 오직 국민의 여론만이 폭주를 막을 수 있다. 국민의 힘으로 이 볼썽사나운 독점중계, 광장독점 파문에 종지부를 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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