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소민주주의’의 재미 보여준 선거
        2010년 06월 10일 02: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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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자는 없고 패자만 낳은 선거.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그렇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선거패배를 인정하긴 했지만, 현재 한나라당 내부에서 일고 있는 ‘쇄신’바람이 과연 폭풍이 되어 정부정책의 방향전환으로 옮겨갈지, 아니면 찻잔속에 태풍으로 그칠지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현재 여권내 움직임이 청와대의 인식변화는 고사하고, 여당내 계파질서를 가로질러 새로운 질서형성으로 이동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당과 청와대에 대한 쇄신요구를 가장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있는 초선모임의 경우, 이들의 결속력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태인데 그 동안 기존 계파구도에 오히려 충실했던 이들이 ‘민심’이라는 무정형의 힘에 지탱하며 구심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매우 회의적이다.

       
      

    오히려 현재 여당의 ‘쇄신정국’은 청와대가 이번 선거 후폭풍에서 벗어나는 계기로 작용할 공산이 더 크다. 친이-친박의 대립구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결국 논쟁의 폭발지점은 당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패자인 정부와 한나라당의 후속조치보다 야권의 선거이후 정치의 향방에 더 관심이 간다.

    민주당은 선거결과에 대해 한껏 몸을 낮추고는 있지만, 내각총사퇴 요구, 세종시 수정안 철회를 위한 충청지역 광역자치단체장간 공동대응, 무소속으로 당선된 김두관 경남도지사 당선자를 포함한 자당 출신 광역자치단체장 당선자들의 4대강사업 중단요구 등 반MB 의제들에 대한 대립각을 계속 첨예화하고 있다.

    한나라당 견제 강화하고 야권 묶는 민주당의 행보

    이와 함께 당선된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의 인수작업에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 등을 포함시킴으로써 반MB연대에 대한 관리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러나 중앙정부 구성과 달리 지방정부 구성에서 역할과 지위의 배분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공동정책의 추진을 위한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협력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반MB연대’의 지속성과 파괴력은 바로 자유선진당의 미래와도 연관되어 있다. 즉 반MB연대가 선거 이후에도 일정한 파괴력을 가지고 지속된다면, 이회창 전 대표가 언급한 보수대연합 구상의 실현에도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드러난 결과만을 놓고 보면, 이번 선거의 최대수혜자는 민주노동당이다. 수도권 최초의 기초자치단체장 2명을 포함 모두 143명의 당선자를 냈다. 하지만 ‘반MB연대’는 실리적 차원에 그치지 않고, 이후 민주노동당의 성장에 근본적인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

    강기갑 대표는 2012년 선거에서 ‘단일화’는 당연하다고 밝혔다. 국회의원 선거, 그리고 대통령 선거는 지방의회 선거와는 파이의 크기가 다르다. 단일화와 정체성에 대한 딜레마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아마도 민주노동당의 실질적인 선거평가서는 다음 달 선출된 새로운 지도부의 면면이 될 것이다.

    진보신당은 당의 존립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결과적이지만, 창당 이후 ‘진보의 재구성’에 대한 구체적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 바로 선거결과로 이어졌다. 그래서 이번 선거평가는 다시 진보의 재구성에 맞춰져야 한다.

    이와 더불어 정부와 여당은 제18대 국회 후반기 개원과 더불어 개헌의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할 예정이다. 정부와 여당의 경우, 일차적으로 선거구제를 비롯한 선거제도 중심의 ‘정치개혁’을 슬로건으로 매우 공격적으로 이 문제를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

    민주당은 이를 정국전환용으로 의심하며, 민생이 우선이라는 입장이지만, 세종시 문제를 국회에서 결정한다는 청와대의 출구전략이 가시화되고, 4대강 문제가 장기화될수록 정치개혁은 새로운 화두로 메인이슈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도 이 문제에 대해 원론적인 입장만을 되풀이 할 수 없게 된다.

    이번 선거 이후 그 결과만큼이나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 여론조사였다. 여론조사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것이다. 호남, 제주를 제외하고 한나라당의 완승, 혹은 몇몇 지역의 박빙우세를 점쳤던 ‘여론조사’에 ‘진짜여론’이 없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여담이지만, 이번 단일화 국면에서 어김없이 활용된 여론조사로 떨어진 후보들도 한번쯤은 그 결과의 신빙성에 대해 의문을 가져볼 만 할 것이다. 앞으로 여론조사로 후보단일화가 계속돼 나갈지도 주목된다. 뭐 딱히 다른 수단이 발견될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실제 선거결과와 큰 격차를 보인 ‘부정확한’ 여론조사의 원인이 조사방식에 있었는지, 아니면 어떠한 조사방식으로도 찾을 수 없는 ‘복병 종이 짱돌들’에 있었는지는 세밀한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러한 괴리는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특히 2008년 촛불정국을 계기로 우리의 정치적 민주주의가 정체 내지 후퇴하고 있다는 사회적 인식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 같다.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와 같은 기본적인 민주적 권리들이 공권력에 유린당하는 현실에서 공포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반 시민들이 가졌을 정권에 대한 ‘불신’이 여론조사를 우회해서 나타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쉐보르스키(A. Przeworski)라는 정치학자는 민주주의를 ‘불확실성의 제도화’로 정의한 바 있다. 이는 대의민주주의에 있어 경쟁성과 정권교체의 가능성을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기본조건으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이러한 최소주의적인 민주주의, 즉 선거민주주의가 갖는 불확실성의 묘미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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