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상정을 버려서는 안 된다”
        2010년 06월 10일 09: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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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진 변호사의 글을 잘 읽었다. 이념적, 조직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활동가와 평당원의 정서를 잘 대변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중시하는 평소의 그다운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그것 때문이기도 하다.

       
      ▲ 사진=심상정 블로그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난 그와 생각을 달리한다. 진보신당은 심상정 전 대표를 놓아주어서는 안 된다. 진보신당에게 더 나아가 진보정치세력에게 심상정은 결코 버릴 수 없는, 버려서는 안 되는 리더십 역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김정진 변호사 같은 중간 리더십 혹은 하위 리더십 역량들이 심상정 전 대표의 문제의식의 핵심을 받아 안아 진보정치의 새로운 노선과 전략의 설정을 위한 토론을 이끄는 데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진보신당, 심상정 담을 수 있는 큰 그릇 돼야

    진보신당은 그녀의 바람직하지 못한 문제 제기 방식이나 속셈, 그리고 향후 행보 등을 주요 의제로 삼아 시간과 힘을 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진보신당은 너무 작고 여린 신생(파생) 군소정당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아직 정비되지 않아 그렇지, 진보신당은 현실 진보정치세력 중 진보 이념과 전략, 정책을 새롭게 재구성하고 그것을 조직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가장 큰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는 정치세력이다.

    ‘아직’ 진보신당의 주변에는 혹독한 반독재민주변혁 운동 과정에서 훈련되고 진보정당운동과정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은 유능한 이념-정책 및 정무 역량들이 느슨하나마 끈을 놓지 않고 관계를 갖고 있다. 관건은 새로운 노선과 전략을 갖고 그러한 인적자원을 다시금 동원해내고, 그것을 위한 조직적 차원에서의 ‘유인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럴 때, 진보신당은 심상정 같은 ‘큰 정치인’을 담아 안을 보다 큰 그릇으로 다시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 즉 ‘뭣 좀 해볼만 하겠다’는 마음을 갖게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진보신당이 잘 안 되고 있는 것의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도 바로 그와 같은 마음을 줄 수 없었던 데 있지 않은가.

    심상정 전 대표는 노회찬 대표, 조승수 의원과 함께(권영길 민노당 의원을 경과하며) 조봉암 이후 한국의 진보정치가 반독재 민주화 운동 과정을 포함해 30여 년의 세월 속에 키워낸 ‘유일한’ 대중적 정치인이다.

    그 세월이 아까워 그녀를 버려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란 원래 그렇게 대중들이 알아먹는 지도자를 통해 총화되고 구현되는 실천이기 때문이다. 또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알겠지만, 민노당의 침체는 바로 그러한 리더십을 제약함으로써 내부 정파갈등을 조정, 통제할 수 없었던 데다가, 유권자들이 정당일체감을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유인책을 스스로 분해시켜버렸기 때문이었다.

    일심회 사건을 빌미로 한 분당 사태는 바로 그 과정의 결과였을 따름이었다. 진보정치 세력이 우습게 여기는 자유주의 개혁세력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지속적으로 진보-개혁 유권자의 대표자 지위를 유지했던 것의 이면에는 바로 김영삼, 김대중이라는 걸출한 정치지도자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진보신당에는 누가 있는가?

    진보신당을 포함, 진보정치세력에게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말고 유시민, 송영길, 김두관, 안희정, 이광재보다 대중과 더 가까운 지도역량이 누가 있는가? 또 현직 정치인 중에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보다 더 진보적인 정치인이 누가 있는가? 진보정치세력은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와 같은 ‘현직 정치인 중에 가장 진보적’이고 ‘진보정치세력 중에 가장 대중적인 지도역량’을 통해 성장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한국 민주화 이후의 정치현실이고 진보정당운동 20여 년이 걸어온 길이다. 우리는 심상정의 결단을 그러한 역사적, 현실적 관점에서 파악해야 한다. 특히 진보정치의 성장을 보다 큰 그림 속에서 조망해야 하는 이론가-전략가-활동가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난 그 문제 제기 ‘방식’이 바람직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심상정 전 대표의 결단이 매우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진보신당이 그녀의 문제의식을 가장 생산적인 방식으로 잘 소화할 수 있다면 진보정치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때 난 그녀의 노선 구상의 핵심에 ‘적실성 있는 정당(relevance party)’(유력 정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난 이를 ‘유효정당’이라고 부른 바 있다)이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타 정당과의 관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고, 그 힘에 바탕해서 ‘진보를 위한 진보가 아닌 서민과 사회적 약자에게 실질적으로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에게 실제로 무엇인가를 줄 수 있는 정당

    사실 이는 정당이 종교적 결사체나 시민사회단체가 아닌 이상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사항이다. 하지만 그간 진보정치 세력은 가시적인 차원에서 보수정당과 차별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당이 당연히 갖추어야 할 그러한 보편적 역량의 구비보다는,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새롭고 진보적인 이념과 정책의 표방과 제시, 강한 당내 민주주의 제도의 구비 등에 주력해왔다. 그것은 일정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민노당의 원내진출 이후 경험한 것은 그것의 약발이 다했다는 것이었다.

    원내진출 이후의 민노당의 침체, 더 나아가 진보신당의 성장 지체는 이념, 정책의 지속적인 갱신의 부재라기보다는 그동안 제시한 이념, 정책의 현실적 관철을 위한 힘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회양극화로 이미 생명을 위협받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인민에게 필요한 것은 치료제이지 영양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더 비싼 치료제를 확보하고 공급하려면 힘이 필요했다. 정당정치에서 그러한 힘은 집권 가능성의 확보 혹은 연합을 형성하거나 그것을 파기하겠다고 협박할 수 있는 능력의 확보를 통해 가질 수 있고 발휘될 수 있다. 집권가능성이 낮은 군소정당의 경우 기댈 것은 당연히 연합정치 역량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민노당이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힘을 가장 크게 발휘했던 것은 지도부가 머리를 밀어버리고 목숨을 걸고 전개했던 국보법 폐지투쟁이나 한미FTA 반대투쟁을 전개할 때가 아니라, 제3당(제2야당)으로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를 오가는 ‘공조 혹은 공조파괴’라는 연합정치를 구사했을 때였다.

    민노당이 가장 잘 나갔을 때는 바로…

    즉 원내진출 이후 민노당의 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시기는 민생정치를 명분으로 제1야당이었던 한나라당과 함께 신용불량자 문제와 집값 폭등 등을 의제로 삼아 집권여당 열린우리당을 압박했을 때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라크 파병 문제 등을 갖고 역시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에 공세를 펼칠 때였다.

    이는 한나라당과 공조한 것이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민생파탄에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집권여당을 야당으로서 다른 야당과 함께 힘을 모아 견제할 때,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기억하는 사람은 기억하겠지만 이 시기 민노당의 지지율이 가장 높을 수 있었던 것은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이 민노당 지지자로 인입되었기 때문이었다.

    진보-개혁적 성향의 유권자들마저도 진보정당에게 바랬던 것은 함께 반독재 민주세력이었다는 역사적 기원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이념 정책적 거리에 놓여 있다고 간주되는 노무현 정부와 집권 여당 열린우리당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야당다운 야당으로서 정부 여당을 효과적으로 견제하는 힘을 발휘해달라는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지방선거의 핵심적 특징은 한국의 유권자들이 그것이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간에 권력을 가진 자에 대한 균형과 견제를 가장 중시하며, 한국의 민주주의는 바로 그러한 유권자들에 의해 사실상 주도되어지고 있다는 것의 확인이다.

    난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심상정의 결단을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한다. 그러한 맥락의 정치현실을 상당히 정확하게 읽어낸 안목과 그것에 바탕한 문제 제기의 과감성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지난 민노당 시절과 다르게 바뀐 것이 있다면 현재 연합정치 구사의 방향은 반노무현이 아니라, 반MB일 따름이다. 이는 심상정의 결단을 반MB 자유주의 개혁세력과의 연합정치라는 차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군소야당의 역할의 수행을 위한 전략의 모색이라는 차원에서 파악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동시에 심상정 전 대표가 현재의 반MB 세력을 진보재구성의 고정 동력으로 몰아가는 것과, 그녀의 결단을 반MB자유주의 세력으로의 투항으로 몰고 가는 것 모두 과도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심상정 사퇴와 문제제기는 전략적 관성 깨기 위한 시도

    난 심상정의 결단이 한국 진보정당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연합파와 ‘절연’하고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모색했던 것, 전위정당노선에서 합법적 대중정당 건설 노선을 설정하고 그것을 실천했던 것, 민주노총의 주도적 참여 속에 국민승리21을 지속시키면서 민주노동당을 건설하였던 것, 그리고 주옥같은 진보적 사회 정책들과 담론들을 이 땅의 정치현실에서 다시금 복원시켜내면서 (선거제도의 효과에 직접 힘입은 것이긴 하지만) 원내진출에 성공했던 것에 비견되는 사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난 진보정치세력이 침체에 빠져들어 군소정당으로 고착되어가는 상황임에도 민노당 시절과 전혀 다르지 못한 진보신당의 전략적 관성을 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나 역시 그 방식과 관련해 가슴 한 구석에 석연치 못한 마음이 도사리고 있긴 하다. 하지만 내가 보는 진보신당의 현실에서 심상정의 ‘변명’은 변명이라기보다는 당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으로 들린다.

    끝으로 진보신당은 단지 리더십을 시험받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즉 진보신당은 팔로우십(followship)을 시험받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좋은 리더십은 좋은 팔로우십을 조건으로 한다. 그만큼 팔로우십 또한 중요하다.

    진보신당의 활동가들과 당원들은 간지(奸智)를 발휘해야 한다. 이때 이미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심상정과의 이별은 좋은 팔로우십이 아니다. 노선 토론을 하기도 전에 그것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더더군다나 그렇다.

    위대한 정치가 처칠은 수상 재직 시절 자신의 정치적 거짓에 대해 비난이 일자 ‘거짓은 너무나 중요한 진실을 지키기 위한 방패’라는 말을 남겼다. 심상정은 거짓을 저지르지도 않았다. 그는 진실을 진실로 지키고자 나섰다. 그래도 역시 심상정이다 싶다. 진보신당의 지도부, 당직자, 활동가, 당원들의 ‘현명한’ 전략적 행보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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