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도 다른 '구당원'과 '신당원'
    By mywank
        2010년 06월 10일 09:4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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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더 이상은 아닌 척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심상정 전 대표의 경기도지사 후보 사퇴 과정에서 불거진, 진보신당의 당원 구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다양한 논의들이 불거져 나왔으나, 진보신당이 직시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는 않은 것 같다. 진보신당의 당원 구성의 문제 말이다.

    2008년 촛불시위 당시 진보신당에는 매일같이 수많은 신입 당원들이 들어왔다. 민주노동당과의 분당 과정에서부터 함께한 구 당원들보다, 촛불시위 과정에서 유입된 신입 당원들이 비율상으로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당시 들어온 신입 당원들은 민주노동당과의 분당을 겪은 구 당원들에 비해 비교적 ‘친 개혁’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동당과의 갈등의 역사, 민주당 계열의 정치세력과 지금까지 쌓아온 비판적 지지 강요 및 협박의 일대기 등을 알지도 못하고 그에 대해 큰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진보신당 당원 구성에서 상당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 2008년 여의도 공원에서 진행된 봄소풍 행사에 참여한 진보신당 당원들 (사진=레디앙)

    반면 인터넷에서 진보신당 지지를 표방하고 비판적 지지론자들과 논쟁을 주도하는 당원들은 어지간한 정치평론가 수준으로 정치적 문제에 대해 많이 알고 있고 또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력한다. 문제는 이와 같은 적극적 여론 생산층이 사실상 진보신당 당원 중 다수가 아니며, 오히려 소수에 속한다는 데 있다.

    비공식적으로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진보신당의 경기도지사 후보 적합성을 묻는 당원 여론조사에서 유시민이 심상정보다 두 배 가량 높은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나를 포함해 유시민이라면 이를 가는 수많은 당원들에게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사실이겠으나, 이것이 현실이다.

    후보 사퇴 과정에서 독단적으로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먼저 돌려버리는 등의 행동을 옹호할 수는 없다. 심 전 대표가 말한대로 그는 그러한 몇몇 행위에 대해 당 차원에서의 징계를 받아야 하고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벌어진 이 후보 사퇴 사건을 그저 심상정 한 사람을 몰아내고 비난하는 것으로 마무리짓는다면 진보신당은 이후의 생존을 보장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나는 예측한다. 심상정의 후보 사퇴를 압박한 집단은 민주노총과 민주당과 국참당 뿐만이 아니었다. 엄연히 진보신당 당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적지 않은 수가 그에게 경기도지사 후보 사퇴를 요구했다. 

    ‘선량한 시민’들의 평범한 정치적 오류

    여기서 진보신당 지지자들은 한 가지 오류에 쉽사리 빠져든다.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극렬 유시민 지지자들에게 너무도 질려버린 나머지, 노무현과 유시민에 대한 단순한 호감을 표시하는 사람들의 정치 의식에 대해서도 일종의 선입견을 가지고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거의 모든 매체에서 정치 지형을 ‘MB 대 반 MB’로 몰아가고 있는 현 시점에, 이른바 ‘정치 오타쿠’가 아닌 다음에야, 현 정부 들어서 가시화된 몇몇 사회적 사건들을 보고 양심의 가책 혹은 쓰라림을 느끼는 사람들이 노무현을 추모하고 그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 정도까지는 그냥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무턱대고 지난 정권을 옹호하려 하는 극렬 지지층은, 진보신당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지켜내고자 하는 사람들만큼이나 한 줌의 세력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바로 그런 ‘선량한 시민들’이 진보신당 당원 구성의 대다수를 점하고 있다. 그것이 진보신당이 현재 처한 현실이다. 그들은 교육받은 적이 없고 올바른 정보를 접한 적이 없기 때문에, 노무현 시대에는 경찰이 덜 폭력적이었다가 이명박 들어서 컨테이너 쌓고 사람 때려잡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 민주노동당이 비약적인 성장을 거두었다는 사실만을 보았기 때문에, ‘민주세력’의 성장이 진보진영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보았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과연 기존의 진보신당 지지자들이 학을 떼는 ‘노빠’, ‘유빠’와 동일한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교육되지 않은 당원들은 ‘노빠’와 ‘유빠’들의 레토릭을 구사하고, 진보신당의 이념적 지향을 훼손한다는 사실을 알거나 모르는 상태에서 민주대연합에의 참여를 요구하며, 노회찬을 지지한다고 생각하지만 투표장에서는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한명숙을 찍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진보신당의 내부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을 어떤 식으로건 포섭하고 진보신당의 ‘내부’로 끌어들이는 것이야말로 이번 선거의 뒷풀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별다른 고민 없이 본인이 막연하게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런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자신이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밀어붙이는 것과, 특별한 지식 및 교육이 부재한 관계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천지차이다. 나는 진보신당의 당원으로서 존재하는 ‘선량한 시민’들의 ‘평범한 정치적 오류’를, 이제는 더 이상 못본 척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심상정의 남은 역할은 무엇인가

    문제는 저 당원들의 목소리가 여태까지 제대로 수면 위로 올라와 논의의 대상이 된 적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데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고 추측된다. 진보신당의 당원 관리 체계가 워낙 느슨하기 때문에, 자신이 진보신당에 가입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별다른 활동 없이 매달 자동이체로 빠져나가는 당비만 쳐다보는 ‘통장 당원’들이 많다. 그런데 그들을 직접적으로 대변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진보신당에 속한 (사실상 이질적인) 대다수의 경향은 지금까지 적극적인 논의의 대상이 되지도 못했다.

    심상정 전 대표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바로 이렇게 ‘대변되지 않은 당원’들의 목소리를 수면 위로 올라오게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나는 그 당원들이 한국의 정치와 진보의 미래에 대해 잘못된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당원들의 입장을 직접 듣지도 못하고 그저 관념속의 ‘노빠’, ‘유빠’들을 상대로 공허한 논쟁을 벌여야 하는 현 상황이야말로 더 큰 문제라고 판단한다.

    현재 진보신당에는 막연한 ‘변화’, 막연한 ‘개혁’, 막연한 ‘진보’를 요구하는 다수의 목소리가 혼재되어 있다. 이것을 끄집어내지 못하는 한 ‘진보의 재구성’도 불가능하다.

    다소 과격하게 표현해보자. 만약 일각의 비판처럼 진보신당 안에 ‘유빠들이 암약’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들을 그대로 암약하게 내버려두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모든 세력은 각자의 대변인을 가져야 하고, 그 대변인을 통해 자신들을 표현하고 또 비판받을 수 있어야 한다. 진보신당 게시판을 포함해 여러 곳에서 비판하는 것처럼 심상정이 ‘유빠’들에게 백기투항했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이야말로 ‘당내 유빠’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을 비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닌가?

    민주노동당의 가능성이 엿보이기 시작하자 종북주의자들이 대거 입당하여 ‘당원 직접민주주의’를 빌미삼아 민주노동당을 집어삼킨 역사를 이미 진보신당 지지자들은 경험을 통해 확인한 바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촛불 시민’들이 대거 입당하여 자기 당의 대표인사가 아닌 외부의 누군가를 경기도지사 후보로 밀자고 말하는 그 상황이 비슷하게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주사파가 입당하는 것을 그저 ‘쉬쉬’하고 숨기던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지금은 진보신당 내에 끼어들어 있는 이질적 다수를 가시화하고 토론하여 결국 포용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도지사 선거를 독단적으로 사퇴함으로써, 또한 유시민에 대한 지지를 선언함으로써 당원들에게 막대한 허무와 허탈을 안겨준 심상정 전 대표가 진보신당을 위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고 대표되지 않았던 당원들의 대표가 됨으로써, 그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드러내고 비판받을 수 있게 하고 공공의 토론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말이다. 그것이 진보정치를 위한 진정한 ‘희생양’으로서의 갈 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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