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어떻게 1등 당선이 됐나?
        2010년 06월 12일 10:1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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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진아 당선자.(사진=진보신당 마포당협) 

    6월 3일 새벽. 서울 마포구 공덕동 공덕초등학교 개표 현장.

    이제 마포에서 마지막 구의원 선거구 투표함을 남겨뒀다. 이미 시간은 6월 2일 선거일을 하루 넘긴 새벽. 함께 출마한 오현주 후보는 20%가 넘는 득표율을 보였지만, 3등으로 석패했다.

    오진아 후보가 당선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농담처럼 한명도 당선자가 없으면 모두가 ‘태종대’로 가서 떨어져 죽자고 했는데.

    첫 번째 동의 개표가 시작됐다. 결과는 600표가 넘는 차이로 3등. 2위로 당선되기 위해서는 600표를 따라잡아야 하는데, 가능할까. 상대방 후보의 운동원들의 전화기가 바빠졌다. 1위를 한 민주당 운동원이 얼굴에는 여유가 흐른다.

    "정말 당선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이렇게 늦게까지 한다고 해서 당선되는 거 아닙니다. 정말 당선된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선거운동 기간 중에 한나라당 후보의 사무장격인 사람이 밤 11시경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진보신당 오진아 후보의 배우자에게 한 말이다. 떨어지는 건가, 그 말이 맞는 건가. 머리 속이 복잡해지는 순간, 마지막 남은 한 개 동의 표가 개표기를 통과하며 카운터가 시작됐다.

    마포 지역 최대의 유권자가 모여 있는 곳. 다른 곳의 두 배에 달하는 인구가 살고 있는 성산2동의 개표가 시작됐다. 오진아 후보는 바로 이곳에서 처음부터 1위를 달렸다. 타 당의 후보를 완벽하게 제압하며 단숨에 600표 차이를 극복하고, 이제는 차이를 100표, 200표, 300표 차이로 벌리기 시작했다.

    이럴 수도 있구나, 정말 당선되겠구나 하는데 이제는 한나라당 1위 후보와 차이가 없다. 그리고 마지막 대역전. 2만9천명의 투표 중에 7천1백88표(25.31%) 득표로 1위. 2위인 한나라당 후보와는 2백68표, 3위인 민주당 후보와는 1천2백64표 차이를 보였다.

    사실 2인 선거구에서 당선되기란 여간 어려워 보이는 게 아니다. 정당 지지율이 3~5% 남짓한 상황은 그런 압박을 더욱더 심하게 만든다. 그래서 1위 당선은 꿈도 꾸지 않았다. 선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난, 4개월 동안 정말 꿈에서도 그런 일은 없었다.

    오진아 후보가 출마한 지역은 성산2동과 상암동.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이 있는 곳이고,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을 했던 지역이다. 마포구 내에서 인구 수가 가장 많은 동네이며, 아파트 밀집 지역이기도 하다. 기초생활수급권자가 가장 많은 지역이고, 장애인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지역 현안보다는 교육문제로 접근

    우리는 지난해 7월경 오진아 후보의 출마를 내부적으로 결정하면서, 교육문제를 첫 번째 화두로 삼기로 했다. 교육감 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지방선거라는 점 외에도, 해당 지역이 교육문제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는 곳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다른 정당은 지역 현안 문제에 포커스를 맞추고 사업을 진행했지만, 우리는 반대였다. 주민과의 인터뷰를 통해, 쓰레기 소각장 기금 사용 등 지역 문제는 속칭 유지들의 관심사이지, 전세를 사는 대다수의 주민들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유지들과는 달리 지역 내에서 발언권조차 없이 사는 사람들. 이런 유권자를 묶어낼 수 있어야 선거에 승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진보정치의 여러 요소 중에 하나가 기존의 질서를 허물로 새로운 질서, 즉 기존의 질서에 편입되지 않은 주민을 새로운 조직으로 묶어 내며 공동체를 이루는 일이다.

    오진아 후보는 해당 선거구에서 짧은 기간에 교육문제를 연결고리로 삼아서 400여명의 학부모와 관계망을 형성했다. 전체 유권자 수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수치일 수는 있지만, 바로 그 400명은 정치와 정당을 처음 접하는 순수한 유권자들이었고,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마포지역 공동선거본부 발족식 모습(사진=진보신당 마포당협) 

    민주노동당과의 예비경선에서 승리 후 야3당 단일후보로

    마포는 공동체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곳이고, 여성민우회, 함께하는 시민행동, 녹색교통, 환경정의 등 시민사회단체가 자리를 잡고 있는 지역이다. 지난해부터 성미산 공동체가 속한 지역에서는 구의원 출마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또한 민주노동당 역시 지역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었고, 서울시 유일의 시의원인 민주노동당 이수정 의원이 출마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진아 후보의 선거구에는 이수정 서울시의원과 민주노동당 구의원 후보가 동시에 출마를 했다.

    몇 차례의 민주노동당과의 협상 끝에 민주노동당 후보와 오진아 후보가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화 경선을 치르기로 합의했다. 국민참여당에서도 선거 준비를 차곡차곡 하고 있었다. 국민참여당의 경우, 오진아 후보의 선거구에 기초의원을, 진보신당 오현주 후보의 선거구에도 기초의원 후보를 내고 선거에 대응할 예정이었다.

    마포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은 공동선거운동본부를 구성해 지방선거를 대응하기로 결정했는데, 문제가 되는 지역은 진보신당이 출마하는 두 개의 기초의원 선거구였다. 이미 오진아 후보가 민주노동당 후보와 단일화 경선을 치르기로 한 상황에서 국민참여당까지 합세할 경우 난전이 예상됐다. 협상을 통해 국민참여당 예비후보의 사퇴를 요구했다. 또한 진보신당 오현주 후보의 선거구에서 출마를 할 예정이었던 전직 구의원의 출마포기를 국민 참여당에 요청했다.

    진보신당 마포당협 내부적으로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공선본에서 탈퇴할 예정이었고, 이 같은 결정 사항을 시민단체와 공선본에도 직간접으로 알렸다. 결국 진보신당 후보와 겹치는 선거구의 후보가 출마하지 않았고, 오진아 후보는 민주노동당과의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에 간발의 차이로 승리하게 되면서 야3당 단일후보가 되었다.

    직장인 선본의 위력

    오진아 후보의 선본 명칭은 ‘직장인 선본’이었다. 상근 인력이라고 해봐야 고작 위원장과 상황실장이었고, 후보는 두 명이었다. 위원장은 회의에 바빴고, 상황실장은 선거 업무에 정신이 없었다. 후보를 수행해 줄 선거운동원조차 없는 상황에서, 출퇴근 시간에 당원들의 헌신적인 결합이 없었더라면 선거 승리는 불가능했다.

       
      ▲’직장인 선본’은 소품을 활용해 다양한 선거운동을 전개했다.(사진=진보신당 마포당협)

    진보정치는 지역 내에서 가장 진보적인 유권자인 당원이 함께 참여하는 선거를 만들어야 한다. 당원들의 폭발적인 참여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자신의 시간을 조금씩 쪼개서 함께 선거를 경험해야 조직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다. 본선 기간에는 관심이 많아서 당원들의 참여가 활발할 수 있지만, 2월부터 시작한 예비선거운동은 외로운 투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외로운 투쟁을 당원들이 함께 감내했다.

    오진아 후보는 직장인 선본의 당원들이 결합하지 않으면 한발자국도 밖에 나설 수가 없었다. 위원장과 상황실장이 해주는 역할이라고 해봐야, 후보가 지역 내에서 혼자 점심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러 급파되는 정도였다.

    90일간의 선거운동 기간, 당원들은 월차를 내고, 아침잠을 줄이고, 퇴근 후 술 약속을 취소했다. 주말에는 아이를 데리고 나와서 함께 후보를 수행했다. 짧지 않은 기간이기에 모두들 지쳐갔다. 5월 전까지 상근활동가 없이 두 명의 후보를 직장인 선본에서 책임졌다. 그리고 결국 두명의 후보 모두 20%를 넘게 득표할 수 있게 만들었고, 그 중에서 오진아 후보를 1등으로 당선시켰다.

    본선 기간에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며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저녁이 되면 진보신당의 세상이었다. 퇴근한 당원들이 몇 개조로 나뉘어 선거운동을 진행했고, 지지자들이 안긴 선물보따리를 한아름씩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얼굴이 점점 시꺼멓게 타들어가는 서로를 바라보며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마포지역 최초의 진보정당 후보의 당선, 그 꿈을 실제로 현장에서 실천하며 이룬 건 다름 아닌 지역 내 가장 진보적인 유권자인 ‘당원’들과 ‘당원들의 가족’이었다.

    후보의 개인기도 빼놓을 수 없는 승리요인

    정치는 어쩔 수 없이 ‘개인적인 매력이 작동하는 영역’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선거에서 후보는 좋은 정책과 더불어 개인의 매력을 최대한 발산시켜야 한다. 후보의 이미지를 만들고, 알려나가는 작업은 소홀히 할 수 없는 대목이었다.

    마침 전문가 당원이 있어서 후보의 이미지 컨셉을 만들기 위해서 머리 스타일, 옷차림 등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오진아 후보는 아이 엄마, 전문가, 기분좋은 깐깐함을 컨셉으로 유권자들에게 호소하기 시작했고 훌륭한 반응을 이끌어 냈다.

    오진아 후보의 개인기도 빼놓을 수 없는 당선의 요인이었다. 해당 지역에 상인회와 노동조합을 제외하고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유권자가 없었지만, 후보 개인이 요소요소에서 지지자를 묶어 냈고, 관계망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진보신당 마포당협뿐 아니라, 대부분의 진보신당 지역 조직은 상근활동가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거나 아예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세밀한 지역이 조직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후보의 개인기에 의지하는 부분도 많을 수 밖에 없다. 오진아 후보는 그런 당의 요구사항에 훌륭하게 부합했다.

    매일매일 비공개 선본게시판에 지지자를 업데이트 했고, 활동일기를 기록했다. 후보 본인이 지역을 연구하고 탐구했고, 대안을 제시했다. 사무실로 찾아오는 유권자가 많아졌고, 후보가 그들에게 비전을 제시했다. 지역을 다니면서 공약을 발굴해 내고, 유권자들과 얘기할 사안을 생산하고 정리해 냈다.

    선거는 끝났다. 마포구 18명의 구의원 중 겨우 한 명일 뿐이다. 공약도 실천해야 한다. 당선된 후보의 첫 번째 방문지는 홍대앞 작은 용산이라고 불리는 ‘두리반’이었다. 최근 오진아 당선자는 성미산 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농성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처음 선거를 치른 당원들이 절대 다수였다. 쉽지 않았지만, 모두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치열한 정치의 한복판에 뛰어 들었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한달에 한번 동네 모임하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다”라고 얘기한다.

    당선도 중요한 성과지만, 조직 전체가 선거를 치렀다는 경험도 값진 성과다. 그 기운이 유실되지 않게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남은 중요한 숙제다. 당내 노선투쟁이 가시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선수’ 외에도 애정을 지닌 다수 당원들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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