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이들의 연애는 풍요의 증진
    레즈비언 연애는 궁핍의 번식"
        2010년 06월 09일 02: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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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정치’에서 성소수자 공동체 내에서도 거의 언급하기를 꺼려하는 주제를 다뤄보기로 했다. 그것은 여성 동성애자들과 남성 동성애자들 간의 이질감이다.

    처음에는 이런 차이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필자가 이쪽(!) 사회로 입성한 것은 학부 시절 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부터였는데, 동아리에 자주 나오는 여성 멤버가 없다는 사실에 당시에도 조금 의아했었다. 레즈비언은 보통 30대 때 활동하기 시작한다는 말을 듣고 (이 말이 얼마나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신뢰하지 않는다) 당시에는 더 크게 고민하지 않았었다. 가입하자마자 첫 연애를 시작했고, 처음으로 성소수자 공동체에 접하는 설렘과 함께, 우리만의 문화에 흠뻑 빠져드느라 정신없었다. 

       
      ▲ 영화 <친구 사이>의 한 장면

    시간이 흘러 필자가 이 모임의 회장이 되었는데, 신입회원들을 받아보면서 여성 학우들도 종종 가입하는 것을 보고 지금까지 여성 회원들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여성이 (그것도 레즈비언이) 남자들만 있는 동아리로 들어오면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만큼, 이 분들에 대해서는 남성 신입회원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특별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레즈비언 활성화 프로젝트’를 선포하고 나름 많은 정성을 기울인 끝에 자주 나오는 여성 회원이 0명에서 여섯 일곱 명으로 늘어났다. 이 수준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고, 누적된 여성회원은 상당수에 이르렀다.

    그런데 왜 나는 이렇게까지 해야 했던 상황에 대한 반성이 당시에는 없었을까. 그저 뿌듯하기만 했다. 우리 모임이, 우리 여성 회원들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깨어있는’ 내 자신이. 

    내가 ‘깨어’있었다고? 혼수 상태였다

    진보신당에 입당하고 성정치위원회에서 활동하게 됐다. 이번에는 그 반대의 상황을 겪었다. 레즈비언 과잉! 여기도 레즈비언 저기도 레즈비언 사방팔방 레즈비언! 성소수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레즈비언들에게 머릿수가 밀린 적은 처음이었다.

    그 많은 게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필라테스 강습? 아무튼 또 의아한 상황이었지만, 이마저도 그냥 넘겼다. ‘뭐 원래 여자들이 더 똑똑하니까 이런 데에도 여자들이 더 관심을 갖겠지.’ 완전히 틀린 생각은 아니었지만, 완전히 맞는 생각 또한 아니었다. 왜냐하면, 훈훈한 동지애 속에서 내가 간과하고 있던 것은, 레즈비언은 여자라는 사실이었다.

    이는 어느 날 회의를 하면서 내가 ‘남자스러운’ 말을 하면서 부각되었다. 남자스러운 말이 뭔지 알 것이다: 여성에 대한 무지, 무개념 속에서 나오는, 자연스럽게 내뱉는, 개인의 폭력보다 사회의 폭력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말. 너무 자연스럽게 내뱉은 나머지, 그 말의 내용이 기억 안 난다. 그 자리 레즈비언 동지들의 ‘교육’이 쏟아졌다: 그건 네가 게이니까, 남자니까 가능한 거지. 여성은 달라. 우리는 달라.

    그제야 방 안에 코끼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 진보적인 모임에 레즈비언이 더 많은 것은 당연했다. 진보는 억압당하는 자들에게 더욱 절실하고, 그래서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절실하고, 그래서 이 모임에는 그나마 특권자인 게이보다 억압된 자인 레즈비언들이 더 많이 모여 있는 것이었다. 사회에서 아무리 게이가 여자보다 더 차별 받는다 하더라도, 사회로부터 게이라는 것을 숨기는 것보다 여자라는 것을 숨기는 것이 훨씬 어렵다. 

    문제는 남성중심주의야, 바보야

    어떻게 보면 상당수 게이들은 편한 인생을 산다. 커밍아웃이나 강제 아웃팅을 당하지 않는 한, 게이는 일단 남자고, 현대 한국 사회에서 남자로서 누리는 모든 혜택을 누린다. 또한 게이라면 웬만해서는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지 않으니, 일반 남자와 똑같은 돈을 벌면서도 처자식 먹여 살릴 일 없어서 모든 돈을 자기 자신에게 투자할 수 있다. 게이가 ‘사교육비’를 부담한다면, 자기 스스로를 위한 사교육비다. 게이는 기하급수적인 골드미스다.

    물론 모든 게이가 그렇게 살지도, 살 수도 없지만, 남성의 권력적 우위로 환원되는 게이들의 경제적 우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결혼하지 않은 일반 남자보다도 여유 자금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게이의 데이트 상대도 남자니까,

    즉 취업, 사회생활, 경제생활 등에서 여느 한국 남자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여자들의 머리를 짓밟고 올라간 남자니까, 남자들이 조금이라도 부담하는 경제적인 책임이나 역할조차도 자연스럽게 분배된다. 계산서가 도착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두 남자는 동시에 카드를 내민다. 어머, 자기는 플라트늄이네? 근데 이건 내가 살께. 이걸로 항공 마일리지 쌓이면 방콕 다녀오자.

    자녀보육비에 사교육비에 핵가족을 수용할만한 아파트의 전세 대출 상환에 허덕이는 일반인이 보기에 아니꼽다면, ‘여성’도 모자라서 ‘싱글 여성’의 이중 굴레 밑에서 버텨야 하는 레즈비언들은 어떻겠는가. 대한민국 비정규직의 과반수를 여성이 떠맡고 있고, 특히 결혼이라는 어설픈 인생역전에조차 기댈 수 없는 레즈비언 여성에게는 경제적인 풍요와 거리가 먼 삶을 살 확률이 더 높다.

    회의 때 나온 말을 인용하자면, 남성 두 명이 사귀면 부의 증진이 되지만, 여성 두 명이 사귀면 궁핍의 번식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것은, 빙산의 일각

    이제야 학부 시절 그 보이지 않던 레즈비언 학우들이 어디 있었는지 알 것 같다. 그들은 도서관에 있었다. 독서실에 있었다. 그들은 공부하느라 못 나왔다. 이 징그러운 남자들의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주변 남자들보다 더 높은 취업 스펙을 쌓기 위해서, 평생 남자 없이 살 수 있는 자립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공부하고 있었다. (실제로, 내가 영입한 레즈비언 회원 한 분은 단과대 수석이었다.) 나의 흐뭇한 ‘레즈비언 활성화 프로젝트”의 자아도취와 그들의 독서실 칸막이는 평행우주였다. 얼마나 많은 다른 우주들이 내 옷깃을 스쳐갔을까.

    뭉쳐도 시원치 않은데 콩가루처럼 흩어지는 것이 이 땅의 진보의 현실이다. 하지만 어찌 흩어져있는 것을 보고 뭉쳐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폭력이다. 그리고 게이 사회는 그것을 직시해야 한다. 속은 게이면서 겉의 남성성으로 사회로부터 부당한 이득을 챙기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이성애자 남자들보다도 더 악한 짓이다. 당신이 진정한 소수자라면, 적어도 우리 같은 소수자라면, 다른 소수자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입지에 있지 않은가.

    게이 자매들이여. 코끼리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 * *

    필자소개 – 정일 / 진보신당 성정치위원회

    2003년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 ‘사람과사람’의 회장이었을 당시 1년의 노고 끝에 모임을 학내 공식인준 동아리로 이끌었다. 그 이후 성소수자들과 관련된 크고 작은 인권 활동에 틈틈이 참여하면서 한 개인의 ‘액션 수위’를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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