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 아니면 투항?…양자택일 넘기 위해"
    2010년 06월 09일 10: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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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씨의 선거 후 인터뷰에서, 그리고 반MB 야권 연합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또 다른 사람들의 글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 바로 진보신당의 ‘고립’이라는 문제입니다. 그렇습니다, 결과론적이긴 할지라도 진보신당은 이번 선거에서 고립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에 기초해서 야권연합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쪽은 진보정치의 존재 이유 자체를 부정하거나 그것을 대기론적으로 연기(그러나 언제까지?)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전혀 답할 수 없게 됩니다.

반대로 독자적 진보정치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진보신당의 현재와 같은 고립을 어떻게 설명하고 타개할 것인지를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는 곤혹스러운 문제와 맞닥뜨려야만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첫 번째 편에서 제기된 문제가 해결불가능한 문제라고 한다면, 두 번째 편에서 제기된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비대칭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진보정치(진보신당은 그 일부이며 여기서 민노당은 이제 제외하겠습니다)가 고립된 것은 진보신당이 단순히 5+4에 참여했거나 끝까지 참여하지 않고 도중에 테이블을 빠져나왔기 때문이 아니라, 5+4를 비밀주의와 대중에 대한 배제적 정치의 장소로 만들면서 ‘홀로’ 참여하고 ‘홀로’ 빠져 나왔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진보신당이 5+4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진보정치가 과연 현재와 같은 고립을 면할 수 있었을까요?

고립을 완전히 면하지는 못한다고 해도 어느정도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모종의 추동력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글쎄요. 저는 의심스럽습니다.

왜냐하면 5+4를 보이코트 하는 것 역시 정확히 정치 하기를 포기하는 쪽으로 귀결될 뿐이라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정치가 다양한 입장차이를 중심으로 갈등하고 충돌하는 것을 의미하는 한에서 자기들끼리 그 나물의 그 밥을 놓고 최후의 만찬을 엄숙하게 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정치다운 정치가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정치를 하기 위해서 진보정치는 처음부터 5+4에 갈등적인 방식으로, 충돌의 방식으로 참여했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서 5+4를 정치의 ‘쟁점’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참여했어야만 합니다.

진보정치의 현재적 고립은 사실 이렇게 봤을 때, 5+4를 대중정치의 장 및 쟁점으로 만들어 내지 못하고, 정치공학적인 선거구 분할 문제나 논의하는 밀실 속의 공간으로 만들어 냄으로써(또는 그렇게 만드는 데에 무력하게 동의해줌으로써) 대중들로부터 스스로의 고립(!)을 자처한 데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설사 이 밀실 안에서 정책적 이슈들에 대한 야당간 논쟁이 있었다고 해도(아마도 추측컨대 있었던 것 같기는 합니다), 그것이 사태를 전혀 변화시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이슈들은 여전히 대중적인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중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논쟁이 탁상공론 외에 다른 그 무엇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5+4의 틀을 깨고 나왔을 때, 진보신당은 사실 여부를 떠나 대중들의 눈에 그냥 자기들 밥그릇이나 챙기는 이기적 집단으로 밖에 인식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진보신당은 처음부터 이러한 비민주적이고 대중 배제적인 비밀주의를 거부하고 5+4를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민주적인 토론의 장으로 전환시킬 것과 함께, 보수야당 들러리 격인 시민단체들만이 아니라 다른 민중운동단체들을 대거 참여시킴으로써 5+4를 확장시킬 것을 요구했어야 합니다.

이러한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투쟁하고, 그 투쟁 속에서 제반 민중운동단체들의 조직화 그 자체에 또한 나섰어야 합니다.

만일 그랬다면, 보수야당들이 이러한 요구를 끝까지 거부할 때 진보신당은 그들의 비민주성을 비판하면서 거기에서 갈라져 나올 수 있는 절호의 정치적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적어도 만일 그랬다면, 진보신당이 갈라져 나왔을 때 그것이 자리싸움, 밥그릇 싸움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대중적으로 어느정도 각인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반대로 요구가 관철되어 논쟁이 공개적으로, 대중적으로 진행되었다면, 그 과정 속에서 현재 야당간 쟁점이 무엇인지를 알려나갈 수 있었겠지요. 그야말로 대중적인 방식으로 정치를 행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여전히 이러한 경우에라도 진보신당 및 진보정치는 최종적으로 고립되었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진보정치의 힘이 약했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그러한 ‘정치적’ 과정을 통한 고립이었다면, 적어도 이후에 그 고립을 극복할 수 있는 어떤 추동력을 얻을 수 있는 고립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어차피 "신자유주의 좌파"가 지방권력 및 정권 장악에 성공한다고해도 이들이 신자유주의를 반성하고 포기하지 않는 한에서 이들은 대중들 앞에서 우왕좌왕하다가 그들을 뽑아준 대중들 자신의 손에 의해 권좌에서 끌려내려올 운명에 처해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점점 심화되는 현재의 경제 위기 또한 이들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만들 뿐입니다.

민주노동당 또한 지금 보수야당과 함께 웃고 있지만, 오늘 그들이 들이키는 술잔이 머지 않아 그들에게 독배가 되어 돌아올 것 또한 분명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일이 일어 났을 때, 바로 그때 진보신당 및 진보정치가 대중들에게 어떤 대안으로 다가갈 수 있는가는 전혀 정해져 있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역사를 만드는 것은 대중이지만(계급이 아니라), 이 대중은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대중은 다시 우익적이거나 심지어 과거보다 더 우익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바로 그렇기 때문에 대중들이 더 좌익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가능성도 마찬가지로 열려있음을 봐야합니다.

누가 이 대중이라는 변덕 많은 행운의 여신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요?
누가 이 행운의 여신을 잡을 수 있는 역능을 자신의 내부로부터, 또한 외부로부터 찾아낼 수 있을까요?

물어 봅니다.

적어도 진보적 대중정치의 플랜을 지금부터 지체 없이 짜나가고, 좌파적이면서 구속력있는 대중조직들과 정당조직의 연합의 틀을 빠른 시일 안에 마련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차대한 과제라는 점을 이번에도 깨닫지 못한다면, 진보정치는 또 한 번 앞서 말한 딜레마, 즉 ‘고립인가? 투항인가?’의 딜레마 속에서 갈갈이 찢겨지는 일을 반복하게 될 것 같습니다.

‘고립인가? 투항인가?’ 이 양자택일을 넘어서는 일에 모두가 지혜와 힘을 모아야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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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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