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정당 분열 속에 최선의 선택"
    "무력화된 지침, 집행체계도 엉망"
    By 나난
        2010년 06월 08일 11: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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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지방선거에 대한 민주노총(위원장 김영훈)의 정치 방침을 놓고 내부에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민주노총이 자기 중심성을 잃어버리고 우왕좌왕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가 하면, 또 다른 측에서는 “현재 민주노총이 처해 있는 현실과 국내 진보정당정치의 조건에 비춰 최선의 방안”이었다고 입장이 혼재하고 있다. 

    엇갈리는 평가

    민주노총의 당초 선거방침을 바꿔가면서, 반MB 노선에 경도됐다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진보정당 자체의 ‘분열’ 상태에서 그 후유증이 대중 조직에게 그대로 이전되는 상황에서 조합원들의 의견 등을 감안한 적절한 대응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민주노총은 선거 전인 지난 3월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진보정당 통합(추진)을 대중적으로 책임 있게 공식화하는 정당 중 요건에 충족되는 자”와 “지역본부 및 지역사회, 진보정당 등의 동의(합의)로 선출된 ‘반MB연대 단일후보’ 중 민주노총 후보(지지 후보)와 배치되지 않고 민주노총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자”를 각각 민주노총 후보와 지지 후보로 결정하기로 했다.

       
      ▲ 31일 오전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에서 열린 ‘노동자 투표참여 및 정책선거 호소 기자회견’ (사진=노동과세계/이명익 기자)

    당시 민주노총은 진보정당의 통합을 강조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진보정당 통합과 큰 틀의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동의하고 실천한다는 ‘후보서약서’를 쓴 자”와 “동일 선거구 복수 출마일 경우 후보단일화 절차에 따라 선출되는 자”를 구체적인 조건으로 내걸었다. ‘진보대연합’에 무게를 실은 방침이었던 것이다.

    노동조합의 개입이 불가능한 진보정당 ‘통합’을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는데 일부 비판이 있었지만, 이는 두 개의 진보정당으로 갈린 뒤 민주노총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혼란과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에도 불구하고 다른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 가능성을 열어놨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 같은 결정이 선거를 한 달 여 앞두고 수정됐다. 지난 5월 13일 민주노총은 “반MB후보와 진보후보가 경합을 벌일 경우 둘 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방침으로 선회했다. “단, 민주노총 조합원에 대해서는 지지하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 같은 수정된 방침은 결과적으로는 ‘반MB연합’에 방점을 찍은 선거 방침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진보정당 분열 노조 내부로 증폭돼선 안돼

    당시 민주노총은 “진보정당의 분열이 노조 내부로 증폭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조합원 후보에 한해서만 지지 후보를 결정할 수 있도록 열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명박 정권 심판에 대한 요구가 노동계는 물론 국민적 정서로 표출되는 있다는 점과,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 역시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의 고민이 반영된 것이라는 말이다. 

    또한 진보정당의 분당 이후 힘이 약해진데다, 민주노동당은 반MB연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진보신당은 진보연합에 기초한 독자출마 노선을 고수하는 등 양당의 방침에도 차이가 있었다. 여기에 대중조직으로서 ‘반MB’라는 대중적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라는 시각도 많았다.

    강승철 민주노총 사무총장은 “100% 완벽하지는 않지만 최선의 방침”이었다며 “이는 MB심판은 물론 민주노총이 중심을 잃고 갈라져서는 안 된다는 기조에서 진보진영 단결과 통합을 모아가야 한다는 뜻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러한 기조 속에 민주노총은 후보 단일화의 역할과 MB 심판에 기여했고, 그 결과 단일 진보진영이었던 2006년보다 더 큰 성과를 올렸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이 같은 결정을 두고 내부에서는 “반MB 후보와 진보정당 후보가 경합할 경우 당연히 진보 후보를 지지해야 함에도 ‘모두 지지하지 않겠다’는 것은 민주노총 스스로 애초의 정치 방침을 뒤집은 것”이라는 비판적 의견도 표출됐다.

    "특정 후보 때문에 조직 방침 바꾼 것"

    민주노총 한 관계자는 당시의 결정에 대해 “처음 결정된 정치방침, 즉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동의하고 실천한다는 후보서약서’를 쓴 사람에 대해 우리 후보를 만들고, 그 외 진보정당 후보가 없는 선거구에서는 야권 후보 지지도 할 수 있다고 한 것까지는 아주 상식적이었다”면서도 “야권 단일후보와 진보정당 후보가 경합할 경우 양 후보를 지지 하지 않겠다는 것은 특정 지역이나 특정 후보를 두고 민주노총 방침을 짜 맞추는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문제는 이러한 내용이 앞으로 진보정치-노동자정치의 발전 방향을 놓고 볼 때 외연 확대라는 측면에만 매몰돼 있어 대단히 우려스럽다”며 “현장에서도 소위 진보정당이 없던 87년도의 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로 돌아가는 게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정용건 사무금융연맹 위원장은 “민주노총의 정치방침 입장 변화나 반MB 후보 지지에 대한 지적은 있을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한 원인은 진보정당이 분당하면서 나타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중조직은 조합원의 이익을 중심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진보정당이 두 개로 나눠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대중조직은 최소한의 수준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으며, 분당 이후 (민주노총은) 명확한 원칙을 세울 수 없을 정도로 현장은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분당으로 현장이 혼란스럽다

    하지만 논란 끝에 결정된 민주노총 방침마저 현장에서 무너졌다는 점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이 많다. 민주노총 경기본부는 민주노총 후보인 심상정 경기도지사 후보를 배제하고 유시민 후보와 정책협약식을 맺었으며, 민주노총 중앙은 이를 보도자료 형식으로 언론에 배포해 사실상 경기본부의 유 후보에 대한 지지 행위를 용인했다.

    경기본부는 더 나아가 유 후보와 심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인천에서는 민주노총 인천본부가 수정된 정치방침대로 송영길과 김상하 두 후보 모두 지지하지 않았지만, 일부 민주노총 인사들을 중심으로 송영길 후보의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정용건 위원장은 이에 대해서만큼은 “민주노총 경기는 지탄을 받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다른 정당과 정책협약식을 맺은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결정한 방침을 어기고 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민주노총의 또 다른 관계자는 “부산, 경기, 경남에서 지침이 지켜지지 않았음에도 위원장은 경남에 내려가 선거를 지원했다”며 “집행체계 역시 엉망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서울본부는 중앙에서 한명숙, 노회찬 후보와 정책협약식하는 것도 알지 못했으며, 선거가 진행될수록 지침은 사라져갔고, 민주당 지지로 흐름이 변화됐다”고 말했다.

    하부영 울산혁신네트워크 대표 역시 최근 ‘6.2지방선거 평가와 새로운 진보정당운동’ 토론회에서 “민주노동당 편들기 식으로 노회찬 후보를 민주노총 지지 후보에서 빼고 승산이 없는 경남 창원을 전략 지구로 정해 위원장이 직접 캠프를 차리고 김두관 후보와 함께 기자회견을 했다”며 “반쪽짜리 반MB연대에 얹혀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우회하려는 편법으로 진보대연합 정신에 역행하는 비일관된 모습을 보였다”고 비판했다.

    주목되는 민주노총의 선거 평가

    이어 그는 “또한 창원의 판세를 읽지 못한 어리석은 즉자적 대응으로 망신을 자초했다”며 “울산 거제 등 민주노총 계급투표로 승산이 있는 노동자 밀집지대에서 진보후보 단일화를 강제하여 기초단체장을 장악하는 것을 주된 전략적 목표로 삼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보진영 대통합과 이명박 정권 심판이라는 기조가, 하나로 봉합될 수 없는 시대 상황 속에 혼란은 당연했다는 의견도 있다.

    라일하 공무원노조 사무처장은 중앙의 선거방침이 지역에서 지켜지지 않은 것에 대해 “고육지책이었던 것 같다”며 “중앙에서 준비를 하기에 시간이 촉박하지 않았느냐는 비판도 있을 수 있지만 뚜렷하게 합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장에 내려가면 변형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말했다.

    이번 6.2지방선거는 “이명박 정권 심판”이라는 반MB 의제에 대해서는 성과를 얻은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진보진영의 독자적 영향력은 축소됐다는 평가가 많다. 영향력 있는 대중조직으로서 민주노총이 이번 선거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하는 것은 향후 2012년 선거에 대한 민주노총의 정치 방침 수립과 긴밀한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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