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의 욕망부터 성찰하라"
        2010년 06월 08일 11:06 오전

    Print Friendly

    부자와 강한 자가 이길 수밖에 없는 너무나도 불평등한 경기 규칙, 가장 순수해야할 영역조차도 욕망과 이익의 대상이 되고 수단이 되는 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실, 시간과 공간의 빈틈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는 광고의 무차별 공격, 스스로 창자 속에 남은 마지막 기름까지 쥐어짜게 만드는 유혹들, 그리고 휴머니즘의 탈을 쓰고서 마치 가족인 양 어깨를 감싸는 털북숭이 손….

    2010년 한국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풍경들입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의 자본주의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천박하고 잔혹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봉건적 잔재가 청산되기도 전에 제국주의 세력의 폭력적인 지배를 받아왔고, 다시 외세의 지배와 독재, 전쟁과 오랜 군사정권 등 지난 100여년의 역사적 모순과 잔재가 그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으니까요. 거기다 신자유주의는 마지막 남은 인간성마저 시장에 내다 팔아야 겨우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욕망과 자본주의

       
      

    삼성, SK로 대변되는 자본은 이제 우리의 모든 것을 지배합니다. 자발적으로 펼쳐지던 월드컵 응원도 이젠 “올레”를 외쳐야 함께 할 수 있고, “다시 한 번 일어나~”를 합창해야 겨우 붉은 물결에 낄 수가 있습니다. 자본은 권력과 의식주를 넘어 우리의 놀이와 꿈조차도 지배합니다.

    자본이 갖는 이 거대한 힘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인간의 욕망입니다. 민주주의란 나무가 피를 먹고 자라듯 자본주의는 욕망을 먹고 자라는 불가사리입니다. 그래서 자본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욕망을 부추깁니다.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내고, 욕망을 긍정하게 만듭니다.

    금기의 벽을 하나 둘씩 무너뜨리는 것도 자본입니다.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내기 위해 자본은 금기 저 너머 있는 것들에 눈을 돌립니다. 금기이기에 저항도 있지만 상품성도 그만큼 큽니다. 그것은 곧 앞서가는 가치가 되고 머지않아 대중의 보편적인 욕망이 됩니다.

    기존의 도덕률은 봉건적이고 억압적인 것으로 인식됩니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는 해서는 안되는 일이 없고 가능하지 않은 일도 없습니다. 욕망은 꿈, 자유, 문화, 여유, 멋 등의 단어로 포장되어 찬양되고 신앙됩니다. 욕망을 부정하는 자는 이단이며, 문명세계의 마녀입니다.

     

    질병과 세상의 병

    더욱 슬픈 일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겠다는 사람들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자신들의 욕망이 사실은 자본에 의해 추동된 것이며, 자신들의 욕망 실현이 자본을 먹여 살리고 세상을 더욱 깊은 모순으로 빠져들게 한다는 걸 그들은 잊고 삽니다. 얼리어탑터이자 탁월한 소통가로 칭송되는 사람들도 한편으로 보면 자본이 만들어낸 욕망의 추종자요, 전도사입니다.

    그들이 자본주의의 대항 논리로 학습해온 마르크스주의도 알고 보면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물신주의에 근거한 것입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욕망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소유의 주체와 형태를 문제 삼을 뿐이죠.

    욕망을 성찰하지 않는 삶은 자본이 주도하는 질서에 종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속에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언급한다는 것이야말로 모순입니다. 자본의 지배를 넘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자신의 욕망부터 성찰해야 합니다. 그러나 보시다시피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의사인 제가 자본과 욕망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한의학에서 말하는 질병과 세상의 병이 같은 욕망의 패러다임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욕망의 유형과 그 각각이 초래하는 질병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세상의 모순을 극복하기위해서라도, 내 몸을 내가 지키기 위해서라도 욕망을 성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도 시급한 일입니다.

    재물욕-색욕-권력욕

    욕망은 그 사회의 문화와 깊은 관계가 있으므로 문화권마다 욕망의 유형과 체계는 다릅니다. 가령 기독교의 욕망관이 있고 유교적 욕망체계가 있습니다. 개체 중심의 욕망분류가 있고, 공동체적 욕망론이 있습니다. 가장 몹쓸 욕망론은 진화론적 욕망 단계론인데 다음 기회에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보건대 욕망을 가장 잘 분류한 사람은 2세기 인도 승려인 용수(나가르주나)입니다. 그의 욕망 분류는 재(財) 색(色) 권(權) 3분법입니다. 이것을 실용적으로 가장 잘 응용한 사람은 한의사인 금오 김홍경입니다. 그는 재 색 권 3분법을 한의학의 태음 소음 궐음 삼음체계와 연결시켰고, 각각을 다시 둘로 나눠 6분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금오의 6분법을 기본으로 욕망의 체계를 설명해보려 합니다.

    인간의 욕망은 크게 재물욕 색욕 권력욕으로 나눕니다. 각각을 본능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혹은 1차적인 것과 2차적인 것으로 다시 나누면 6가지가 됩니다. 이 6가지 욕망의 만족과 불만족에 따라 12가지 감정이 생기는데 이것은 한의학의 12경락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재물욕을 금오 선생은 태음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식욕과 물욕으로 다시 나뉩니다. 식욕은 몸을 채우는 것이고 물욕은 소유욕을 채우는 것입니다.

    자기 욕망의 성찰

    색욕은 소음욕이라 부릅니다. 생식욕과 문화욕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권력욕입니다. 금오 선생은 이것을 궐음욕이라 합니다. 권력욕은 지배욕과 지식욕으로 나눕니다.

    왜 모두 음인고 하니 음은 무겁고 많은 것이라 욕망을 음으로 분류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여기에 등장하지 않은 소양이니 태양이니 하는 것의 성질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가령 소양은 궐음의 짝이면서 반대기능을 합니다. 권력(지식)에 저항하는 것이거나 권력(지식)을 버리는 것이죠. 앞서 말한 간의 권력이 궐음이요, 담의 혁명정신이 소양인 겁니다.

    이제 각각의 욕망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2차 분류의 이름들은 제가 임의로 붙인 것입니다. 금오의 명명과 약간씩 다릅니다. 읽는 분들도 맘대로 새로 이름을 붙이셔도 됩니다. 가령 1차 재물욕, 2차 재물욕 등으로 부르셔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제가 붙인 이름은 다른 상징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이어질 설명과 관계가 있습니다. )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