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꽉 막힌 벽들, 그 사이에서
    By mywank
        2010년 06월 08일 10: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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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이 강남3구의 몰표로 당락이 바뀌게 된 것은 마치 지난 교육감 선거에서 서울시 교육감이 강남3구의 힘으로 공정택이 되었던 상황을 고스란히 다시 보는 듯했다. 그러나 그 강남3구도 이번만큼은 교육감이 더 민주진영의 단일화 후보가 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교육감과 교육의원 자리를 좀 더 민주적인 사람들이 일하도록 했다고 해서 학교가 하루아침에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가령 우리가 바라는 교육 현장에서의 민주적 절차, 무상급식, 무상교육이 이미 이루어져있는 프랑스에서 학교를 그린 영화 <클래스>를 짚어 보자.

       
      ▲ 영화 <클래스>의 포스터

    학생은 교사에게 ‘포주’라고 하고, 교사는 학생에게 ‘나가요 아가씨’ 같다고 한다면? 서로 팽팽히 맞서겠지만 아무래도 학생이 지는 싸움이 되는 건 학교가 기본적으로 ‘감시와 처벌’의 기구이기 때문이다.

    실제 교사 출신 원작자가 직접 주연을 맡고, 실제 학교가 이름 그대로 배경이 되어, 실제 학생들과 교사들이 출연해 만들어진 이 영화의 한국어 제목은 어째서 <클래스>일까? 원래 프랑스어 제목은 <Entre les Murs>, 그러니까 말 그대로 옮기자면 ‘벽 사이에’ 쯤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The Class>가 되었다.

    한국 제목을 굳이 프랑스 원제에 기대지 않고 ‘클래스’라는 영어 제목을 그대로 옮긴 것은 왜일까? 프랑스어보다는 영어로 해야 근사해 보일까봐? 아니면 이제 ‘클래스’ 정도는 그냥 외국어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소통에 아무 문제가 없는 일상적 말이 되어서?

    인종의 벽, 세대의 벽, 문화의 벽

    학교를 배경으로 한 로랑 캉테 감독의 2008년 작품 <클래스>는 흔히 학교를 전제로 생각할 때 떠올릴 수 있는 ‘학급’이나 ‘수업’이라는 뜻 안팎에 촘촘히 깔려있는 의미와 관계를 고민하게 만든다. 백과사전을 보면 ‘class’는 사회학적 용어로, 계급 (階級), 일반적으로 사회적 생산체계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 생산된 부를 유용할 수 있는 몫의 크기 및 그 획득 방식에 의해 서로 구별되는 인간집단을 일컫는 말이다.

    2008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수여한 <클래스>에 등장하는 학생들은 프랑스 파리 실제로 아시아, 아프리카, 아랍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파리 외곽20구역에 있는 돌토 중학교의 학생들로 출신지는 아랍 지역, 아프리카 말리, 중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프랑스어 교사 마랭 역할을 맡은 원작자 프랑소와 베고도 말고 나머지 교사들도 모두 돌토 중학교에 재직 중인 교사들이고, 학부모 대부분도 출연 학생들의 실제 부모다.

    직업 배우가 아닌 출연자들은 연기를 하기보다 자신을 드러내며 참여하고, 카메라는 극적인 연출을 하기보다 인물들을 따라가며 포착한다. 원작 소설이 있는 극영화지만 액션과 리액션을 여러 번 나누어 찍으며 편집해서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대신, 현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인물들의 반응을 핸드 헬드 방식으로 따라 붙는 다큐멘터리의 제작방식을 끌어들여 현실과 가공의 경계를 없애 버린다. 그렇게 해서 인종의 벽, 세대의 벽, 문화의 벽, 계급의 벽으로 온통 가로막힌 사회가 학교 안에까지 어떻게 깊은 단절을 만들어 놓는 지를 보여 준다.

       
      ▲ 영화의 한 장면

    영화는 새 학기가 시작하면서 교사들이 맡은 과목과 학생들에 대해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긴장은 보이지만 설렘은 보이지 않는다. 막상 교사가 수업이 시작될 교실에 들어서면 학생들도 뭐 그리 반가워하거나 기대를 보이기는 고사하고, 예의를 갖추는 척도 하지 않는다. 마랭이 맡은 과목은 프랑스어. 그 나라에서는 국어라지만 다인종, 다문화 사회에서 이민자 출신이거나 하층민 출신이 대다수인 학생들 가운데 까탈스런 프랑스어를 재미있어 하는 학생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도 마랭은 놀랄만한 참을성으로 한국 관객의 입장에서 보자면 ‘어수선하고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들을 어떻게든 가르쳐보려 한다. 책을 읽어 보라면 왜 자기만 지목해서 시키느냐, 올바른 문법을 알려주면 요즘 그런 표현을 누가 쓰느냐, 숙제를 해오라면 자기는 그런 거 하기 싫다, 불평도 많고 집중도 안 되는 수업이 이어진다. 그래도 마랭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아이들을 수업에 끌어들이려 애쓴다.

    환상이나 기대의 여지 없는

    이쯤 되면, 훌륭한 교사가 문제아들을 만나 사랑과 교육의 힘으로 세상을 향해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하는 과정에서 교사 자신이 오히려 성장했노라는 <언제나 마음은 태양 To sir with love>이나 <위험한 아이들 Dangerous minds>같은 헐리우드 영화나 최근 방영된 화제의 드라마 <공부의 신> 정도의 감동적 스토리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클래스>는 ‘교육을 소재로 영화를 만든 것은 한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며, 시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하는 법과 세계와 맞서는 법을 배우는지’에 집중하며 어떤 환상이나 기대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교사는 마냥 관대하지 않으며, 아이들은 불만과 욕망을 절제할 줄 모른다. 나름 열심인 학생의 부모는 불법체류로 추방될 위기에 처해 있고, 가장 문제가 많은 학생의 부모는 프랑스어를 몰라 학교에서 보낸 가정통신문의 경고를 지나친다.

    학생은 교사에게 무례하고, 교사와 학교는 학생에게 가혹해진다. 그렇게 해서 한 학생이 퇴학당한다. 그 학생이 퇴학당하면 프랑스 사회에서 뽑혀나가 본국으로 돌려보내질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한 학기가 끝나고, 교사와 학생들은 벽으로 에워싸인 좁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한다. 마지막으로 카메라가 보여주는 빈 교실, 어떤 의자는 제대로, 어떤 의자는 쓰러져 있는 교실. 그리고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이들의 웃음과 환성.

       
      ▲ 영화의 한 장면

    영화를 보는 내내 눈을 돌릴 수 없도록 하는 <클래스>의 힘은 어떤 대상을 향해 책임을 돌릴 수 있는 분노나 문제 해결이 가능하리라는 드라마화된 희망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클래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자신과 사회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것을 부끄러워하도록 만드는 것, 그래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에서부터 새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것이 아무리 첩첩이 둘러쳐진 벽들로 막혀 있다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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