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받았다, 출마했다, 당선됐다, 그리고
    김석준 고뇌와 심상정 눈물이 이해됐다"
        2010년 06월 06일 08: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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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출마소회

    이번 6.2 지방선거에 해운대구 구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민중당-진보정치연합-민주노동당-진보신당으로 이어지는 나의 정당운동 역사에서 공직후보로서의 출마는 처음이었다. 출마의 이유는 단순(?)했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후보들에게만 짐을 씌우기 싫어서였다. 민주노동당에서 금정지역위원회 분회장, 부위원장, 사무국장으로 활동할 때에는 출마 권유를 받고 결심했다가 막판에 고사를 했다. 왠지 모르겠으나 공직후보 출마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주로 우리들, 좌파운동권만의 리그에 익숙한 생활을 하는 나에게 정당의 후보자로 선거에 나서는 것보다는 뒤에서 판을 짜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졌고, 정당후보의 선거공약집보다는 각종 정파세력의 ‘찌라시’가 훨씬 피부에 와닿았으며, 이런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작자’가 나였다.

    당 정책과 민생 현황에 관한 책자보다는 맑스주의와 비제도권 좌파의 학술서적이 더 흥미로운 나에게 당연히 행동도 부자연스럽고, 인간 관계도 부담스럽게 만드는 후보로서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전혀 매력적이지 못한 포지션이었다.

    열받아서 덜컥 출마를 하다

    신자유주의에 관한 논문을 쓰고 석사학위를 받고 나서는, 밤을 새면서 라캉과 슬라보예 지젝을 보고, 니체와 레비나스 철학에 빠져 덜커덕 철학과 대학원에 또 입학하는 대책없는 인간이 구의원 후보로 출마할지는 나는 물론 내 주변의 누구도 상상 못했던 일이었다.

    "사람이 없다"며 김석준 부산시장 후보 홍보팀장 맡으라고 했을 때 못하겠다고 버티기다가 결국에 수락하고 캠프에 들어갔다. 사람이 없긴 정말 없었다. 부산시당 상근자들은 그날 하루하루의 업무 처리하기에 급급했다. 돈도 없고 사람도 없는 조직에서 김석준 시장 후보는 매일 밖에서 왜 분당했느냐, 단일화해야 되지 않는냐라는 요구와 심지어 "매번 나오는 것 보니 정치에 환장했냐"라는 냉대에 얼굴에는 시름이 잔뜩 깊어지고 있었다.

    더욱 견디기 힘든 일은 선대본은 매일매일 힘들게 전투를 치루고 있는데 당원들은 의외로 느긋하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지역에서는 후보 하나 만들기도 힘들었다.

    나는 김석준 시장 후보와 이창우 선대본부장에게 사퇴할 것이라면 차라리 능력과 실력이 안 돼서 사퇴한다고 해야지, 민주당과 경선에 들어가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주장을 하고, 야권연대와 공동정부의 화두를 던진 이창우 선대본부장 ‘경질’에 앞장 섰다.

    이런 나에게 말로만 떠들지 말고 출마해서 몸으로 실천을 보여주라는 모 당직자의 한마디에 그야말로 열받아서(?) 덜컥 출마를 해버리고 말았다. 

    2. 선거소회

    후보로 선거를 해보니 선거운동원으로서 선거에 임할 때와 너무도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 확 느껴졌다. 제일 서글픈 사실은 많은 유권자들이 진보신당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시다시피 부산의 모든 진보신당 후보들은 ‘야권단일후보’로 출마했다.

       
      ▲ 김광모 당선자(사진 가운데 마이크를 잡고 있는 이)

    명함의 슬로건이 야권단일후보이고, 기호 7 진보신당 김광모를 넣었는데 선관위에서 제동이 걸렸다. 야권단일후보라고 하면 모든 야당이 단일화 되었다고 유권자들이 오해할 수 있으니, 야5당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야5당(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을 아주 작게 명시한 명함을 유권자들에게 나누어 주니 동네 유권자들은 야5당이 단일화한 정당 명칭을 ‘진보신당’으로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진보(민주당도 진보?)+신(새로울)+당으로 이해하더라는 것이다. 팔짝뛸 노릇이었다.

    진보신당의 당 대표를 이회창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부지기수고, 진보신당을 야5당이 단일화해서 만들어진 정당이라고 하니 슬퍼도 너무 슬펐다. 더 힘든 일은 한나라당 이외에 범야권에서 진보신당만 나왔으니 어차피 찍어도 당선 안 될 테니 투표 안 하겠다는 유권자들을 만날 때였다.

    물론 이런 유권자를 친 민주당 성향의 사람으로 간단하게 치부하면 그만이겠지만, 그러면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로부터 득표를 할 수 있느냐라는 문제에 봉착했다. 특히 일요일에는 더욱 힘이 빠졌다. 지역의 특성상 8만여 명의 신도가 있는 수영로 교회 앞에서의 명함선전전은 불가피했다.

    김석준의 고뇌와 심상정의 눈물이 심장에 닿다

    수영로 교회 앞 아파트촌인 이 곳 동네는 이랜드 투쟁 때에 떠나갈 듯이 몇 달을 치고 받았던 곳이다. 당연하다는 듯이 냉대가 쏟아졌다. 교인으로서 진보신당이 주는 어떤 것도 받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거절하는 교인들은 양반이었다.

    뒤에서 아줌마 교인들이 험담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젋은 신도들은 공직후보 출마자에게 "교회 나오세요"라며 역으로 설득하기도 했다. 60세 이상 어르신들은 "북한에 퍼주고 천안함 사태나 만드는 한심한 놈들"이라며 안 찍겠다 하고, 교회에서는 교회 안 다니는 놈들 못 찍어주겠다고 하고, 재래마을에서는 토박이가 아니라고 못 찍겠다고 했다.

    나와 우리 당원들에게 진보신당은 삶의 가치관과 존재의 형식에서 하나의 중요 명제이지만, 지역의 주민들에게 진보신당은 알지도 못할 뿐더러, 알아도 왜곡된 어떤 무엇으로 인식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제야 김석준의 고뇌와 심상정의 눈물이, 경직된 나의 뇌구조를 뚫고 심장 속으로 들어왔으며,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공세적으로 야권단일후보를 중심에 둔 선거운동을 펼쳤다. 고백하자면, 지금 잘 알지도 못하는 ‘진보신당은 어떤 정당이다’라고 알리는 것보다 야권단일후보로서의 포지션을 잘 활용해서 당선되어 4년 동안 진보신당만 주구장창 외치면 된다는 ‘비겁한’ 생각이 들었다.

    독자적인 정당으로서의 진보신당 후보가 아니라 해운대 지역의 단일화된 야권 정당인 진보신당의 후보를 유권자들이 지지한다는 것이 실감이 났기 때문에 어쩔수 없다라고 스스로 자기합리화를 시켰다. 이기고 싶었다.

    대놓고 한나라당을 찍으라는 대형교회가 있고,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신세계 백화점이 있고, 평당 500~600만원 하는 아파트가 대다수인 부산에서 평당 2000~3000만원짜리 아파트가 즐비한 부산의 강남이라는 해운대 우동, 중동에서 사고 한 번 치고 싶었다.

       
      ▲ 김광모 당선자가 선거운동 기간 동안 사용한 명함

    선거결과는 2등 당선이었다. 8명이 출마한 3인 선거구에서 3등 당선을 목표로 하였고, 15% 득표만 해도 당선 가능하다는 예상보다 훨씬 높은 22%의 득표로 당선되었다. 무엇보다 기쁜 일은 해운대 기초후보로 출마한 3명 모두가 당선되었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해운대에서는 진보신당이 제1야당이 된 것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기는 선거를 하게 되었다.

    3. 독자노선과 연대전략에 대하여

    이번 선거에서 후보로 느낀 소회는 역설적으로 진보신당의 정체성은 의회 진출 때문에 목을 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선거용 정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선거에 올인하는 전략은 결국 우리의 정체성만을 부각시키는 것에 중심을 두게 되며, 유권자인 국민들의 마음을 어떻게 얻겠다는 것을 놓치기 쉽다.

    사후(事後) 해석이 되겠지만 이번 선거에서 아쉽게도 국민들의 마음은 한나라당 심판이었다. 한나라당만 심판한다면 민주당이든, 민노당이든, 국민참여당이든, 진보신당이든 단일화해서 나오라는 것이 국민들의 뜻이었다.

    이와 같은 국민들의 뜻은 MB의 폭정이 여전히 진행된다면 2012년 총선까지 이어질 듯하다. 그렇다고 진보신당이 자유주의 세력인 민주당의 하위 부대로서 역할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심지어 단일화와 통합의 화두를 먼저 움켜쥐고 진보신당을 압박하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에게도 힘을 쓰지도 못하는 우리로서는 이래도 저래도 갑갑한 현실이다.

    정체성을 부각시켜 독자노선을 가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국민들에게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비제도권 정당으로 스스로를 격하시키는 꼴이 되고, 연대전략은 진보정치가 자유주의 세력의 하위분파로 자리매김 시킴으로써 보수 양당구조에서 한쪽에 기생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이제 당원들 각자가 생각하는 패를 꺼내어서 솔직담백하게 때로는 격하게 토론해야 하는 때가 왔다.

    나의 입장은 선거에서는 연대전략을 취하되, 대중운동에서는 명백한 좌파의 아이덴티티를 거머쥐고 돌파하는 이중전선을 갖추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연대전략을 구사하되,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연합정치와 우리의 운명

    4대강 반대, 무상급식 등 자유주의 세력과 함께 할 수 있는 사안에 적극적으로 임하되, 비정규직 투쟁을 통한 노동자정치의 대중적인 확대와 같은 분명히 자유주의 세력과 분립되는 당 고유의 색깔을 가지고 추진할 수 있는 사업도 이어나가야 한다.

    2012년 총선에서 정당득표율 5% 이상 획득을 목표로 하고 야권연대 실현을 통해 지역구에서 최소 5석 이상은 획득해야 우리는 한국사회에서 유의미한 좌파정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사안별 대중투쟁과 지역 정치사업에서 아래로부터 복무하되 선거투쟁에서는 때에 따라서는 사안별 연대전략을 취하는 지혜로움을 가져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야권단일화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무차별적인 통합공세를 제어할 수 있는 묘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미 FTA,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자본통합법), 비정규직 양산, 이라크 파병 등을 추진한 세력과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 앞에서 또 다른 의문을 던져야 한다. 위의 의제들에 대해 분명히 반대의사를 가졌으나 그럼에도 이들을 지지하는 우리 국민들은 단지 계몽의 대상인 우매한 민중이 아니다.

    결국 차선을 선택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우리의 실력 없음을 탓해야 한다. 자신있게 진보신당을 선택할 수 있도록 우리의 파이를 키워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비가 오는 도로 위에서 흙탕물에 옷이 더럽혀지는 것을 너무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정체성이 훼손될까 두려워서 스스로 움츠려 든다면 우리는 결코 대안수권세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고, 우리가 가야할 험난한 도정에 더 많은 동지들과 국민들이 기꺼이 동참할 수 있도록 소통의 폭을 넓혀나가야 된다. 비록 지금 우리의 독자노선이 훼손되어도 말이다.

    야권연대가 노무현 정권 때 산화하신 선배열사들의 정신을 망각하는 야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사회에서 찍어주면 승리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진보정당을 갈망하는 민중들 앞에 죄인이 되어서도 안 된다. 이것을 운명이라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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