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이명박 승리? 낯 뜨겁다"
        2010년 06월 06일 08: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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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선거결과에 가장 아쉬움을 가진 노조의 딜레마

    선거는 끝났다. 서울도시철도 조합원들은 대다수가 뜬 눈으로 선거결과를 지켜보며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실질적인 사용자인 서울시장 선거에 많은 희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단협이 된 지 1개월이 지나가고 전임자 현장 복귀, 조합비 공제 거부, 노조사무실 폐쇄가 진행되고 있고, 흑자 경영 목표로 인한 공공성 훼손 및 각종 비리 의혹, 성과주의제의 전면 도입에 따라 숨막히는 사업장이 되어버렸다.

    나아가 또다시 대규모 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MB의 반노조 정책을 더욱 강하게 현장에서 실현하는 사장에 대한 증오감이 하늘을 찌르는지라 야당의 승리를 누구보다도 기원했던 조합원들이었다.

    선거가 끝나고 조합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는 다시는 "노회찬 대표를 초대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세액공제는 앞으로 진보신당에 하지 않겠다"는 불만의 목소리였다. 그렇다고 내가 “옳은 얘기입니다. 조합원 여러분”이라고 맞장구 쳐야하나.

    2. 왜 노회찬 대표가 욕을 먹어야 하나?

    그런데 언론에 나오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선거평가를 보면 가관이다. 이제까지 진보정치 동토의 땅에 묵묵히 진보의 싹을 틔우기 위해 땀 흘린 사람들에 대한 평가를, 시민들의 일반적 정서로 평가하고 재단하는 것을 보니 참을 수가 없다.

    먼저 민주노총의 이번 선거에 대한 평가는 반MB 전선에서의 승리와 진보정당 후보들의 약진, 즉 민주노총 후보들의 많은 당선이 있었으므로 ‘목표 성취’로 보는 모양이다.

       
      ▲ 서울도시철도노조 허인 위원장 (사진=이은영 기자)

    한 가지만 묻자!
    반MB라면 자유선진당의 약진, 박근혜계의 약진도 상관없는가! 결국 민주당의 약진이 민주노총이 말하는 반MB의 내용이란 말인가! 민주노총이 민주당과 노동자의 이해와 요구를 중심으로 ‘정책 협약’을 맺고 이에 대한 실천프로그램을 마련했다면, 그와 같은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그것도 아닌 것으로 안다.

    결국 ‘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의 관철을 위해 민주노총은 어떤 연대전략과 실천을 진행했는지를 분명히 하지 않고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국민들의 반MB를 자신의 성과인 양 뒤늦게 선전하는 것은 ‘남의 성공 얘기를 자신의 성공인 것처럼’ 떠들어대는 것에 불과하다.

    민주노동당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서울도시철도노조는 작년 말부터 공공운수연맹과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함께 ‘진보적 서울만들기 노동모임’을 결성하고 ‘진보적 서울의 의제 발굴’, ‘노동조합 후보의 추천’, ‘진보정당의 후보단일화’ 그리고 종국에는 진보의 단일화를 통한 ‘야당의 정책연합’까지를 구상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5+4회의가 무산된 이후에도 민주노동당 서울시당과 진보신당 서울시당과의 정책단일화와 후보단일화를 위한 내용을 생산하였고 ‘사실상 합의’에 이르렀었다. 그러나 ‘사실상 합의’가 있은 후 며칠 후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내용을 뒤집고 갑자기 한명숙 후보와 단일화를 선언하였다.

    서울의 구청장과 시의원 후보 등에 대한 양당 간의 조율이나 공동정부 수립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프로그램도 없이 말이다.

    그러다 보니 모두가 아시다시피 서울에는 진보 양당의 구청장이나 시의원이(비례대표를 포함하여) 한 명도 당선 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 당적으로 야4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사회당) 단일 후보이며 서울도시철도노조 추천으로 노원구에 출마한 강호원 후보의 경우, 결국 시의원과 교육감 선거 이외에 시장이나 구청장 등에 대해서는 어떤 얘기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렇듯 최소한의 ‘실리(?)’도 챙기지 못하고 그동안 그렇게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부르짖었던 진보양당의 통합, 진보양당의 후보단일화 과정에 대한 태도 변화와 협상력의 부재 결과 등에 대한 평가 없이 한명숙 후보가 당선되지 않은 책임을 고스란히 노회찬 후보에게 쏘아대는 ‘광풍’에 은근히 동참하는 태도는 ‘자신의 잘못을 더 큰소리로 성내며 회피’하려는 좋지 못한 태도이다.

    3. 더욱 왜소해진 ‘우리’

    이러한 과정은 향후 진보정치에 있어 몇 가지 큰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선거 후 진보 양당의 연대와 통합 등의 논의는 더욱 어려워 질 수밖에 없다. 결국 양당은 이러한 문제로 인해 더욱 고립된 소수가 되든지 아니면 국민참여당, 시민사회단체 등에 이니셔티브를 내주면서 각자 선택의 길로 가든지 할 것이다.

    즉, ‘진보적 가치’를 내세우며 그 어렵던 시절 꿋꿋이 진보정치를 일궈온 훌륭한 동지들이 이제 각자의 판단에 따라 제 살길을 찾아갈 것이라는 것이다.

    둘째, 노동조합의 정치공간에서의 개입력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분당은 이미 이러한 문제를 예견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정책적 내용의 접근과 정치공간에서의 연합전략을 통해 나아가는 것이 순서일진대, 민주노총은 통합을 위한 조합원 서명운동에 매진하였는데, 그 성과가 지금 어떻게 나타났는지 되돌아 볼일이다.

    시류를 중심으로 더욱 오른쪽으로 간 민주노동당은 이제 노동조합이 더욱 다가가기 힘든 존재가 될 가능성이 크고, 정규직노조와 민주노총의 우경화에 방점을 찍으며 더욱 멀어져가는 진보신당은 사실상 조직된 노동진영에서의 존재감은 더욱 희미해지고 있다.

    결국 단위노조이건 상급단체이건 어떤 조직을 통해서도 현재와 같은 경향에서는 노동조합의 정치적 개입력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각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환영할 일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우리의 비극이다.

    4. 동기진(同其塵) 화이불류(和而不流)

    서울시 산하의 공공기관 노조 조합원들도 일반적인 시민 다수와 마찬가지로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정서가 팽배해 있다. 따라서 조합원들이 "최악이 아니라면 제발 차악이라도 괜찮다"는 절박한 심정도 다수 시민들과 똑같다. 나 또한 야당이 패배한 서울시의 선거는 너무나도 아쉽다.

    물론 2002~2003년 서울도시철도노조 위원장으로 활동했을 당시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우리에게는 나아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절감하였지만, 당장 무단협과 탄압의 강도가 쓰나미를 능가하는 상황에서 희망이나 반전 없이 또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과녁에 활이 맞지 않으면 자신의 자세를 돌아볼 일’이지 남이 맞춘 화살을 보고 부러워하고 즐거워하며 박수만 치고 있을 일은 아닐 것이다.

    이제 끝을 맺자면 오늘 몇몇 언론의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의 선거 평가를 보지 않았다면 굳이 이런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제발 부탁인데 그나마 우리가 이제까지 진보적인 운동을 일구는데 일조하였고, 또 앞으로도 큰 틀에서 함께하고자 한다면 이번 선거 과정에서의 냉정한 성찰적 평가를 차분하게 진행해야지, 진보진영을 함께 일궈온 많은 사람들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돌멩이를 던지며 우리 자신들의 잘못을 피해가서는 안될 것이다. 앞으로도 함께해야 할 일이 많다.

    ‘빛을 부드럽게 하여 먼지와도 동화될 수 있는 자세를 가지되, 시류에 휩쓸리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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