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이 사라졌다, 4대강과 우리 욕망
    노동도 책임, 각성과 저항 필요하다
        2010년 06월 04일 03:4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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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숙소인 원불교 여주교당을 향해 하리의 남한강변을 걸었다. 여주는 청동기 시대부터 쌀농사가 시작된 기름진 땅이다. 여주 사람들은 이 지역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남한강을 여강이라고 부른다. 남한강에서는 강천보, 여주보, 이포보 이렇게 세 구역에서 보 공사를 하고 있고, 거의 모든 구간에 걸쳐 준설 공사를 하고 있다. 여주 전역이 거대한 공사장인 셈이다.

    우리가 걷는 강변도 공사 중이다. 하천부지에서 포클레인이 땅을 파헤치고 있다. 포클레인 주변으로 뿌리를 드러낸 나무들이 군데군데 수북하게 쌓여 있다. 한창 연두색 이파리를 달고 있어야 할 나무들은 물기를 잃고 쓰러져 있다.

       
      ▲ 벌목된 나무들이 수북하게 쌓인 여주 남한강변 (사진=이상엽 작가)

    여주교당은 남한강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다. 여주교당에 도착하자 유홍덕 교무께서 일행을 반긴다. 그녀는 매일 아침 여강의 생명들을 위해 백일기도를 하고 있다.

    “천지에는 꽃이 피고 자연은 도를 다하는데 사람들은 이렇게 엄청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강바닥에 다이너마이트를 폭파시켜서 생명들은 몸살을 앓고 죽어가고 있어요. 그래서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강이 강으로 흐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녀는 밤새 공사 소음으로 방 구들이 울려 잠들지 못했다고 한다. 여주보 인근과 이 지역은 발파작업으로 인한 소음 때문에 주민들의 민원이 제기된 곳이다. 최근까지 24시간 내내 공사가 진행되었다. 4대강 사업을 되돌릴 수 없게 하기 위해, 그리고 현 대통령 임기 내에 공사를 끝마치기 위해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하면서까지 속도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가 일어나야 한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홍성태 교수가 여주교당을 찾아왔다. 그의 고향은 두물머리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두물머리 지역은 드넓은 자갈밭과 모래사장이 아름다웠던 곳이라고 한다. 물도 깊지 않아 삿대 하나만 있으면 배를 타고 건널 수 있었다. 그는 두물머리에서 2백년 이상 터를 잡고 살아온 최씨 집성촌이 댐 수몰로 사라진 비극을 들려주었다. 홍성태 교수는 한국사회를 토건국가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연구를 심화하고 있다.

    “한국은 토건국가적 성격을 빼곤 이해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가 부패지수가 높은데, 태반이 토건업에서 비롯됩니다. 건설과 관련해 엄청난 돈이 거래되죠. 토건업이 실질적인 부패의 원천이라는 것이 꾸준히 확인되고 있어요.

    우리나라 재벌은 모두 토건재벌입니다. 거대 건설회사 하나씩 다 가지고 있어요. 지배구조 문제뿐만 아니라 재벌 비자금의 중요한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부패와 투기의 사슬이 만들어져서 사람들에게 이권을 제공합니다.

    토건국가는 박정희에 의해 형성되고 군사 정권을 거치며 확립되고 민주화 시기를 거치며 확대돼요. 특히 노무현 때 엄청나게 확대돼요. 이름을 다 외울 수 없을 만큼 많은 신도시를 건설하고 확장했어요. 그것을 능가하고 모든 지역을 아우르는 토건사업을 만들려다 보니까 강 죽이기가 나온 것이죠.”

    토건 국가의 문제를 개혁하지 않으면 막대한 혈세를 탕진하고 국토를 파괴하는 일이 계속 자행될 것이다. 그는 특히 자본의 책임과 함께 노동의 책임이 있다며 4대강에 대한 노동자들의 각성과 저항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 여주 보 공사현장 (사진=이상엽 작가)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각, 나는 강변을 산책하기 위해 밖을 나섰다. 어디선가 기이한 소리가 들려온다. 강 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강 건너에서 야간 조명등을 켜고 포클레인 몇 대가 땅을 파고 있다. 차들이 뜸하게 다니는 새벽의 도로 위에서 공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지만 강변에서 새벽까지 공사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4대강은 물질 노예의 현장이죠

    다음 날 아침, 유홍덕 교무는 손수 답사 일행을 위한 식사를 차렸다. 아침을 마친 후 그녀에게 간밤의 공사장 모습에 대한 인상을 전했다. 그녀는 매일 보는 모습이라고 한다.

    “우리 교당에도 인부가 있는데 24시간 날을 새서 일을 한대요. 주말에도 교당을 못 와서 우리도 본 지가 오래 됐어요. 그 사람 말이 몇 달 동안 10년은 늙었대. 공사장에 CCTV가 다 설치돼 있다니까.”

    이 지역 종교인들과 환경단체는 남한강을 살리자는 뜻에서 8년 전부터 여강 길을 도보 순례하며 마을을 찾아다녔다. 마을 이장과 주민들을 꾸준히 만나며 환경을 지키기 위한 행보를 이어왔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이 시작되면서 이장들과 주민들의 여론은 한순간에 돌아섰다. 그녀는 그때 더 잘 알렸어야 한다며 후회한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생겼기에 주민들이 한순간 등을 돌린 걸까?

    여주도 팔당지역처럼 상수원으로 인한 피해를 안고 살아왔다. 지역 주민들에게 강과 물은 지역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남한강 4대강 사업은 이런 지역 주민들의 정서를 이용한 것이다.

    “4대강도 물질 노예의 현장이죠. 원불교에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문구가 있는데 정신의 자주력을 키워야 돼요. 전에는 우리가 자급자족했는데 이제는 모든 게 다 사유화되고, 뭐든지 돈이 있어야만 하니까. 내가 살 만큼 풍족해도 저 사람과 비교해도 충족이 안 되니까 자기 본성과 멀어지는 거예요. 정신의 힘을 키워야만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신륵사의 수궁장례도

    일행은 여주교당에서 나와 하리 강변을 걸었다. 일흔 가량 돼 보이는 순박한 인상의 노인 한 분이 나무 의자에 앉아 강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다. 노인의 이마에 난 주름이 강물처럼 굵고 선명하다. 그에게 잠시 말을 걸었다.

    “여기 물이 오염됐고, 물이 부족하대. 물을 깨끗하게 해서 사람들 먹게 하려고 공사하는 거지. 난 원래 여기 강가에서 나고 자랐어. 매일 여기 나와서 이렇게 몇 시간이고 앉아 있어. 시원하고 좋잖아.”

    노인은 정부에서 홍보하는 내용을 그대로 믿고 있다. 그가 하루에도 몇 시간씩 바라보는 강의 저편에선 공사가 한창이다. 노인이 앉은 의자 왼편에 눈여겨보지 않으면 찾기 어려운 작은 시비 하나가 서 있다. 시비엔 여주 출신 문장가 이규보의 시 한 편이 적혀 있다.

    한 쌍의 말이 기이하게 물속에서 나왔다 하여 고을이름이 황려라 하네. 시인은 옛 길을 즐겨 번거롭게 표현하지만 오고 가는 어부야, 어찌 알리요.

    시의 한 구절에서 여주 지명의 유래를 밝히고 있다. 여강이라는 강 이름도 고을 이름 ‘황려’에서 나온 말이다.

    한참을 걷다 뒤돌아본다. 멀리 작은 점처럼 작아진 노인이 변함없이 의자에 앉아 강변을 바라보고 있다.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 노인과 강 저편에서 분주히 오가는 건설 기계들이 묘하게 대조적인 풍경을 만들고 있다.

    일행은 버스를 타고 신륵사로 향했다. 신륵사 입구에 ‘흙과 불의 예술, 여주도자기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신륵사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강변에 자리 잡고 있는 사찰로 알려져 있다. 강의 품에 안긴 신륵사는 여주8경 중 첫 번째로 꼽는 절경이다. 신륵사 맞은편엔 남한강이 몸을 틀면서 만든 금모래은모래 강변이 아름답다.

    신륵사엔 환경연합, 녹색연합, 생태지평연구소 등에서 열 명 남짓한 환경운동가들이 상주하며 현장 조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시민들에게 4대강 공사의 실체를 알려주기 위해 매일 공사 진행상황을 살펴보고, 생태계 훼손을 감시하고 있다. 저녁이면 당일 활동사항을 사진과 영상, 글로 적어 블로그, 트위터 등에 올린다. 활동 결과는 외국 환경단체와 국제기구에 알리는 역할도 하고 있다.

       
      ▲ 신륵사 앞. 강 건너로 공사 현장이 보인다 (사진=이상엽 작가)
       
      ▲ 신륵사 앞 (사진=이상엽 작가)

    이들의 활동은 도리섬 공사를 일시 중지시키기도 했고, 환경부에서 6공구 전체 구간에 대해 전수조사를 요구하는 성과를 얻어냈다. 생태지평연구소의 명호 씨가 남한강 여주지역의 상황을 설명한다.

    “여주 강변은 원래 여울과 소, 습지가 아름답게 남아 있는 곳인데,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고요. 정부에서는 4대강 공사를 생태적으로 고민해서 하는 사업이라고 말하는데 현장에서 보면 단순한 토목사업입니다. 밤낮으로 강바닥을 파내는 일입니다.

    300m * 600m 구간에 어류가 18만 마리 산다고 해요. 물고기들이 떼죽음당하고 있는 상황이죠. 저희들도 공사 현장에 계속 있다 보니 메말라져가요. 물고기들 죽은 거 보고 밤에 여기 오면 밥이 안 넘어가요.”

    명호 씨와 얘기를 나눈 후 강 건너 은모래금모래 백사장이 보이는 신륵사 둔치로 내려갔다. 강 건너 공사장에서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이 분주히 오간다. 공사장을 바라보면서 미술인들이 작품을 만들고 있다. 여강을 찾아온 미술가들은 자신들을 스스로 강에 파견했다는 뜻에서 파견 미술가라고 부른다.

       
      ▲ 사진=이상엽 작가

    이들이 만들고 있는 작품은 ‘수궁장례도’이다. 나무와 나무 사이 연결한 줄마다 여러 모양의 물고기들이 걸려 있다. 바람에 나부끼는 물고기들은 강에서 쫓겨난 듯하다. 어떤 물고기들은 강변 쪽을 향하고 있고 어떤 물고기들은 뭍으로 헤엄치고 있다. 공중에 걸린 물고기들이 끝없는 행렬을 이루고 있다. 물고기들의 장례 행렬일까? 강변 끝엔 미술가 이윤엽이 만든 반토막난 배로 만든 상여가 세워져 있다.

    우리에게 죽비를 내리쳐 주십시오

    강변 산책을 마친 일행은 여강선원 천막에 앉아 수경스님에게 귀를 기울였다. 삼보일배로 벌써 지구를 한 바퀴쯤 돌았을 법한 그의 얼굴은 여강 앞에서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그가 여강선원에 온 것은 뼈아픈 자각을 통한 환계의 한 방식이었다.

       
      ▲ 수경 스님 (사진=이상엽 작가)

    “4대강 문제, 저 현상을 자세히 보면, 저것은 분명 우리가 만든 것입니다. 한반도 사람들이 일상에서 산 내용이 여과 없이 그대로 나타난 것입니다. 저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우리가 만든 내용들을 참회하고, 앞으로 저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삶의 변화 없이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계속 악순환을 거듭할 수밖에 없어요. 저는 제 자신의 삶의 모습이 저런 현상으로 나타난다고 보기 때문에, 먼저 제 안에 있는 폭력성이라든지 끝없는 욕망이라든지 어리석음이라든지 탐진치 삼독을 녹여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제가 만들어놓은 몫이라도 녹여내겠다는 생각으로 여기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번 방문했을 때 그는 4대강을 우리들의 ‘거울’이라고 말했다. 4대강은 우리들의 욕망이 투영된 거울이기에 저마다 자신의 내면을 4대강이라는 거울에 비춰보길 간곡하게 요청했다. 수경스님은 일행을 향해 마지막 한 마디를 남겼다.

    “여기까지 이르게 된 데에는 종교계와 지식인 사회에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죽비를 내리쳐 주십시오.” 기록자로서 우리는 이 길을 왜 걷고 있는지, 이 길이 어디로 이어져야 하는지 자문하면서 수경스님과 헤어졌다. 저마다의 거울이 길 위에서 흔들렸다.

    강은 사라지고, 없었다

    일행은 이호대교를 향하고 있다. 버스 차창 밖으로 모래가 쌓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신륵사 맞은편 강변에서 파헤친 모래를 가져와 쌓은 것이다. 우리를 안내하는 환경운동가 정나래 씨가 설명한다.

    “처음엔 언덕 정도 높이였는데 지금은 거의 산이 되고 있습니다. 여기 쌓인 모래는 불과 두 달 동안 파낸 양입니다. 이런 준설 작업이 2년 동안 계속될 것입니다. 농사짓는 땅을 적재장으로 써도 주민들이 반발하지 않는 것은, 땅 주인이 외지인인 경우도 많고 농민들에게 임대하는 것보다 몇 배로 정부에서 보상해주거든요. 땅을 빌려 농사짓는 임대농들은 억울해하지만 모여서 싸울 수도 없는 형편이죠.”

    그녀가 말을 마칠 즈음, 아까부터 뒤를 따르던 갤로퍼 차량 한 대가 일행이 탄 차를 앞지른다. 현대건설에서 일행을 감시하기 위해 내보낸 차량이다. 건설사에서는 환경운동가들을 동행한 답사팀이 올 때마다 차량을 붙여 감시하고 있다. 감시차량은 우리가 이동할 때마다 동향을 체크하며 보고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강천보 가까이 이르자 차창 밖으로 현대건설 현장사무소와 숙소가 보인다.

    여주에서는 환경운동가들과 공사 현장의 일꾼들 사이 크고 작은 갈등이 빈번하다. 한 번은 공사현장의 물고기들을 구조하기 위해 양동이에 담아 올린 것을 공사 관계자들이 빼앗아 내팽겨쳤다. 4대강 사업은 강과 함께 인간의 심성마저 파헤치고 있다. 강천보 공사 현장은 2주 전 방문했을 때보다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강은 사라지고, 없었다. 습지가 있던 자리는 나무 한 그루 찾아볼 수 없다. 물과 습지를 잃어버린 강은 반토막난 채 양동이에서 버려진 물고기처럼 가쁜 숨을 헐떡이고 있다. 처음 강천보에 왔을 때 나는 미처 상상하지 못한 공사 현장을 보고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모습은 개발을 좇는 인간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이르렀는지 일러주고 있었다. 구불구불 흐르던 강은 다이너마이트와 불도저, 포크레인에 의해 거대한 두부 같은 여러 개의 네모난 구획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공사 과정은 이렇다.

       
      ▲ 여주 공사 현장 (사진=이상엽 작가)

    강을 일직선으로 반으로 가른다. 가른 강의 한편에 있는 흙탕물을 맞은편 강으로 내보낸다. 강바닥의 물이 빠져나가면 준설을 시작한다. 요즘은 물이 다 빠지기도 전에 바로 준설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물이 빠진 바닥에 들어가 모래를 빼내고, 암반을 만나면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한다. 폭파한 암반을 빼내고 바닥을 고르게 수평화한다.

    공사장에서 강 쪽으로 흙탕물을 보내기 위해 주황색과 노란색의 오탁방지막이 설치돼 있다. 오탁방지막 사이로 빠져나온 흙탕물이 긴 행렬을 이루며 강을 따라 흘러가고 있다. 지난 3월엔 폭약에서 나온 성분이 섞인 녹색물이 강물에 흘러가는 것을 환경운동가들이 발견했다.

    일행이 있는 공사장 입구 건너편에 뼈 같은 철 구조물을 드러내며 보 기단 위로 교각이 육중하게 서 있다. 보름 전만 해도 교각을 볼 수 없었다. ‘순식간’이라는 표현 그대로 며칠만 지나도 풍경이 금세 뒤바뀐다고 한다.

    이무기가 살지 않는 바위늪구비

    일행은 도리섬을 보기 위해 적근리로 이동했다. 강천마을 해돋이길을 걸어간다. 한두 사람 정도 나란히 서서 걸을 수 있는 소로길이다. 자연스레 긴 열이 만들어진다. 논밭과 마을을 가로지르는 산길이다.

    길은 적요로웠다. 문명이 침범하지 않은 구불구불한 길이다. 직선과 수평의 도로에 익숙해져 있는 나에게 구불구불한 길은 쉼을 주었다. 직선의 도로는 앞을 향해 달리기 위한 길이지만, 구불구불한 길은 너럭바위며 논둑에 앉아 멈추고 쉴 수 있는 길이다.

    도로의 소음 대신 새소리며 물 흐르는 소리는 자연이 주는 하나의 악기다. 아무리 달려도 단조롭기 그지없는 도로가 아닌, 얕은 고개들로 이어지는 해돋이길은 고개를 넘을 때마다 감추고 있는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강바닥의 길도 이 길과 다르지 않다. 4대강 사업은 구불구불한 강변길과 강바닥의 길을 일률적으로 평평하게 해서 강의 도로를 만드는 일이다. 도로를 만들며 그 자리의 새소리, 풀벌레소리를 없앴듯 수로를 만들어 물고기들의 소리, 먼 이국에서 찾아온 철새들의 소리를 없애는 일이다.

    우리는 새벽해가 떠오르는 길의 풍경을 상상하며 해돋이길을 걸었다. 마을을 벗어나 한동안 걸어간 후에야 공사중인 도리섬이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낸다. 멀리 보이는 도리섬을 보면서 정나래 씨가 지난 2월 만난 일본의 환경학자에 대한 일화를 들려준다.

    “저희가 일본의 환경 전문가들과 함께 팔당, 여주, 안동 등지를 같이 답사했어요. 그중 한 학자가 은퇴한 노교수인데, 젊었을 땐 댐을 건설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댐 찬성학자였대요. 일본에서 댐을 지은 후 수달이 사라졌는데, 나이가 들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지금은 환경운동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분 말씀이 자신이 댐을 찬성하던 시절의 논리로 보더라도 4대강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해요.”

    일본의 늙은 학자가 뒤늦게 깨달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이 일조한 댐을 보면서 그가 겪었을 고통을 헤아리며 나는 여강을 바라보았다. 그처럼 누군가는 훗날 깊은 후회로 걸어야 할 강길이다. 이 사업은 언젠가는 반드시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수십 년에 걸쳐 원래의 강으로 복원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뒤늦은 후회 대신 그 학자로부터 우리가 미리 배울 수는 없는 걸까? 역사는 종종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하고 끝없이 되풀이되는 후회를 기록했다. 늙은 학자가 바라보았을 여강을 우리들도 바라보며 비로소 인적 드문 산으로 들어서는 길을 따라 걷는다. 강은 소리 없이, 아니 아직 남아 있는 제 소리를 조금씩 뱉어내고 있고 강을 바라보는 산은 구불구불 바람소리, 새소리를 보태고 있다.

    우리가 가는 길을 따라 맞은편에서 이어지는 바위늪구비 역시 사라지고 있다. 바위늪구비는 이무기가 살고 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그 전설의 상상력과 신비로움도 이제 사라지고 있다.

    나무들의 공동묘지

    바위늪구비는 자갈길과 모래길이 이어지는 길이다. 지난 번 찾아왔을 때는 각지에서 찾아온 소셜 미디어들과 함께 졸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는 여울과 소가 있는 바위늪구비 길을 걸었다. 검은머리물떼새가 짝을 찾고 알을 낳을 때였다.

    길을 걷던 도중 고라니 한 마리를 만나기도 했다. 그날 우리들은 신발을 벗고 모래길과 자갈길을 거닐었다. 그때만 해도 파헤치지 않은 길과 수목이 남아 있었다. 길을 따라 무성했던 버드나무 군락은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뿌리째 뽑힌 버드나무들이 쌓여 있다.

    나무들의 공동묘지다. 무연고자 묘지처럼 제 이름을 잃은 죽은 버드나무들이 버려져 있다. 포탄이 무수히 떨어진 구덩이 옆에 쌓인 흙더미 같다. 현장 관리자들이 보기에도 흉했는지 파란 장막으로 덮어둔 것도 있고, 일부는 다른 곳으로 옮겼다. 강 저편의 묘지 길과 이편의 적요롭고 아름다운 길이 묘한 대조를 이루며 여강 길을 더욱 쓸쓸하게 만든다.

    도리섬이 가까워지자 공사장 소음이 들려온다. 포크레인, 불도저, 덤프트럭 등 수십 대의 기계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해돋이 산길을 빠져나와 뿌연 먼지를 날리며 대형 덤프트럭이 분주히 오가는 공사장 입구에 다다랐다. 입구에 ‘단양쑥부쟁이 서식지’라고 쓰여진 노란 푯말이 보인다.

    도리섬 가는 길은 여기까지다. 공사 현장은 인부들이 막고 있다. 도리섬 가는 길은 막혀 있다. 갇혀 있는 도리섬을 마냥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일행은 버스를 타고 마지막 답사 구간인 부처울 습지로 향했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아름답니?

    부처울로 향하는 마을길 입구에서 명호 씨가 기다리고 있다. 부처울은 남한강 여주 구간에서 자연 지형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여기서도 강 건너 공사 중인 기계들이 보인다. 부처울 모래사장엔 고라니, 너구리, 삵, 그리고 철새들의 발자국이 찍혀 있다. 강물을 마시기 위해 그네들이 다녀간 흔적이다.

       
      ▲ 부처울 모래사장에 찍힌 철새들의 발자국 (사진=이상엽 작가)

    우리는 생물들의 발자국 위에 우리들의 발자국을 찍으며 강을 향해 걸어갔다. 이곳도 머잖아 본격적인 공사를 앞두고 준설 구역을 표시하는 빨간 깃대가 곳곳에 꽂혀 있다. 빨간 깃대 사이로 나무가 무성한 습지와 곳곳에 형성된 하중도가 보인다. 강가에 서서 명호 씨가 주변 풍경을 가리킨다.

    “저런 곳이 야생동물들과 철새들이 쉬어가는 곳입니다. 4대강 사업은 한강 개발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식생대와 지형을 단순화시키는 일입니다. 지형이 단순화되면 생물종이 단순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습지 안에 들어가면 굉장히 많은 종의 흔적이나 잠자는 공간을 발견할 수 있어요. 수질도 중요하지만 지형이 얼마나 다양하냐에 따라 종 다양성이 높아집니다.

    철새들은 유전적으로 왔던 장소를 다시 찾아오고 알을 낳습니다. 지형이 바뀐 줄도 모르고 새들이 이곳을 찾아오겠죠. 많은 종들이 바뀐 환경을 따라가지 못하고 사라지게 돼요. 강에도 붕어, 잉어, 베스 같은 물고기만 남게 되죠. 4대강 사업은 동식물들의 생태계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나는 모래사장에 앉아 강물을 바라보았다. 어릴 적 읽은 동화가 떠올랐다. 왕녀가 마법의 거울을 보며 읊조리던 주문은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아름답니?” 거울은 언제나 솔직하게 대답했고, 왕녀는 그때마다 분노했다.

    남한강이라는 거울은 우리에게 어떤 대답을 들려줄까? 사람들은 강이라는 거울에 자신들의 욕망을 투영하고 주문을 왼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고 말해주지 않는 거울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가? 강물이라는 거울은 말없이, 고통스럽게 흐르고 있다. 이 강물을 바라보며 나는 또 무슨 욕망을 투영하고 있을까? 그러나 강은 저대로 흐르고 있을 뿐이다.

    신륵사에는 파견미술인들이 걸어둔 현수막 하나가 있다. 현수막엔 송경동 시인의 시 한 편이 적혀 있다.

    그 땅들에게 그 땅의 흙눈들에게 물어 보았니
    그 땅에 살고 있는 지렁이 한 마리
    여린 풀포기 하나, 감자 한 톨, 벼 한 포기에게
    물어 보았니. 당신들의 가슴을 찢고 가르고 짓밟고
    강제로 물고문까지 시켜도 좋겠냐고 물어 보았니
    누군가의 직선을 위해 당신의 가슴을 파헤쳐도 좋겠냐고
    콘크리트로 꽁꽁 숨 쉴 구멍을 막아도 좋겠냐고
    사지를 절단 내 지하에 파묻어도 좋겠냐고
    물어 보았니
    – 「너는 누구에게 물어보았니」 중에서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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