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생존 길로 가되, 진보 연합을
        2010년 06월 04일 12: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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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보신당은 독자적으로 생존해야 하는 정당인가, 개편을 위한 플랫폼인가

    일단, 나는 진보신당이 독자적으로 생존하며 세력을 넓혀 나가야 하는 정당이라고 생각한다. 두 가지 측면인데, 첫 번째는 ‘같이 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없다’는 점이다.

    진보신당은 사회민주주의 혹은 사회주의 지향을 가진 활동가 당원들 소수와 반MB, 반민주당, 노동조합-운동권에 대한 반감, 반민족주의, 자유주의 정서 등의 다양한 조합을 가졌으나 하나의 세력으로 뚜렷한 정치적 지향을 갖지는 않은 사회인 평당원 다수로 이루어져 있는 정당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신당의 운신의 폭은 넓은 것 같으면서도 좁다. 지금보다 오른쪽으로 가면 활동가 당원들에게는 ‘투항’이 되고, 왼쪽으로 가는 것은 사회인 평당원들의 반발 없이 이루어지기 힘들다.

    나는 더욱 왼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행보는 (진보신당 출범 초기의 기획처럼) 당 대 당 통합이 아니라, 독자 정치세력이 서로의 차이와 연대 지점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타협을 거친 후 이루는 연대연합 형태가 바람직할 것이다.

    진보신당 독자 생존 길로 나가야

    또 한 가지는 역설적으로 ‘진보신당의 조직망이 미약하다’는 점이다. 내부적으로 볼 때 진보신당이 탄탄한 시민사회단체보다, 예를 들어 환경운동연합이나 경실련보다 더 단단한 조직을 갖고 있는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이런 상태에서 심 전 후보의 구상과 같이 민주노동당과의 결합을 중심으로 한 통합정당을 꾸린다면, 그것은 민주노동당에 흡수되는 것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반 민주노동당적인 정서를 가진 당원(특히 활동가 당원)들의 탈당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심각한 경우 민주노동당 내의 정파 역할조차도 못하거나 1기 민주노동당 때보다 더 약한 위상을 가질 수 있다. 왼쪽과 당 대 당 통합을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 지향을 가진 진보신당 평당원들과 소수조직에 익숙한 활동가 당원들 사이의 마찰은 지금 있는 조직력마저 갉아먹을 우려가 있다고 본다.

    생각해 볼 점 :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의 오른쪽인가, 왼쪽인가? 활동당원들은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의 노동계급에 대한 시각을 어느 정도 계승하면서 민주노동당 식의 맹목적인 민족주의에 반대하고 생태주의와 소수자 운동까지 포괄한다는 이유로 진보신당을 민주노동당의 왼쪽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원들 상당수와 외부의 시각은 진보신당이 맹목적인 민족주의(혹은 친북적 성향)에 반대하기 때문에 더 ‘시민적’이고, 더 오른쪽에 있다고 생각한다. 진보신당은 그야말로 한국적 정치지형을 보여주는 모순 속의 정당이다.

    2. 심상정 징계는 어떤 조건에서 가능한가.

    심상정 징계는 1에 대한 합의 하에서 가능하다고 본다. 지금 심상정을 징계하고 1년 혹은 2년 후 우리가 민주노동당-국참당 일부와 합당하는 진보정치 지형을 만든다면 그게 뭐하는 꼴인가. 진보신당 독자생존에 대한 합의 없이 징계한다면 조직적 절차를 어기고 타당 후보를 지지한 것에 대한 징계일 뿐인데, 그렇다면 징계의 수위도 내용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또, 심상정 징계야말로 원칙을 갖고 접근하지 않으면 큰일 날 진보신당 내부 폭탄일 수밖에 없다. 당장 ‘타당 후보 지지’를 문제 삼는다면 부산시당(김석준 후보만이 아니다. ‘부산시당’이다. 다른 지역도 단일화의 수준에 따라 문제가 생길 수 있다)이 걸린다.

    또 ‘조직적 논의 없는 사퇴’를 문제 삼으면 이용길 충남도지사 후보가 걸린다. 두 가지 모두이기 때문에 더 무거운 징계를 받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두 가지 모두이기 때문에 질적으로 다른 징계를 받아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독자생존 전략 찬성률 40% 이상, 노회찬 지도부 사퇴

    ‘이용길이나 김석준과 심상정은 다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감정의 논리적 정당화일 것이다. 게다가 심 쪽에서는 (이건 안 그래도 벼르고 있는 문제인 듯하지만) 노회찬 지도부의 선거 전략전술의 부재를 비판할 수밖에 없다.

    심상정 징계가 당내 분란과 당의 약화를 일으키지 않고 깔끔하게 이루어지려면
    – 대의원대회에서 최소 40%의 대의원이 독자생존 전략에 합의한다.
    – 노회찬 지도부가 선거 전략 부재와 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
    – 합의된 동일 원칙에 의거해 서로 다른 수준으로 심상정, 김석준, 이용길의 징계가 이루어진다.
    적어도 이 정도 조건은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볼 점 : 나는 ‘독자출마, 최대후보 출마’라는 전국위원회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지방선거 준비위원회는 될 지역과 안 될 지역을 냉정하게 평가해서 될 지역과 상징적 의미를 갖는 몇 지역을 선택하고 그곳에 당력을 집중하는 안을 냈어야 한다. 하지만 결정단위는 전국위원회다. 노 지도부뿐 아니라 전국위원회도 잘못된 결정에 대한 책임을 나누어 져야 한다.(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책임져야 할까?)

    3. 진보신당이 독자생존이 ‘가능한’ 정당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솔직히 나는 당의 물적 기반에 대해서는 그리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지켜보면서 물적 기반, 즉 돈과 인력, 즉 조직을 챙기지 않으면 진보신당이 독자 생존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은 갖게 되었다.

    잠시 과거를 돌이켜보면, 2004년 대선 깨끗한 정치자금의 상징은 ‘희망돼지’였다. 그러나 나중에 민주당의 대선후보 자금지원이 밝혀지면서 그 ‘희망돼지’가 얼마나 기만적인 면피였나 아는 사람은 다 알게 되었다.

    나는 우리의 ‘진성당원제’가 그 ‘희망돼지’의 역할을 하지 않나 의심한다. 당원들의 당비가 값지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선거만 놓고 볼 때 경기도당에서 4천명 남짓(정기적으로 당비를 납부하는 당권자를 셈하면 규모는 더 줄어든다)의 당비와 중앙당을 거쳐 내려오는 보조금, 특별당비, 노조를 통한 세액공제 등의 자금원에서 당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많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독자생존 불가능

    당비와 보조금을 합쳐 경기도당과 지역 당원협의회들이 평상시에 간신히 현상유지를 해나가는 수준이었고(다른 지역 당은 더 어려울 것이다), 대의원대회를 거쳐 조직적으로 결의했다고는 하나 결국 당원들의 임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특별당비와 노조를 통한 세액공제를 비교해 보면 도당으로서는 후자에 훨씬 더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또 노조를 통한 세액공제는 노조의 조직적 결의라기보다 당과 노조에서 오래 활동했던 당원들의 ‘연줄’을 탄 것으로 알고 있다. 빚 안 지고 선거하기 힘든 조건이다. 나중에는 도당 운영위나 선대본 회의 한번 갔다 오면 로또를 사게 되었다.

    게다가 인력으로 말하면 더욱 처참하다. 단적으로 경기도 전역을 돌아다녔던 심상정 유세팀에 당원은 한 명도 없었고, 심상정 후보는 운전해줄 사람과 수행을 구하지 못해 한참 고생해야 했다. 평상시에도 상근자를 둔 지역 당원협의회는 거의 없고(이것은 전국적으로 비슷할 것이다) 서울시당의 상근자 수는 모르겠으나 경기도당은 네 명의 상근자가 20개 당원협의회를 책임져야 한다.

    이런 식으로 조직이 2년마다 선거라는 큰 행사를 치러내며 영속성을 가질 수 있을까? 나는 힘들다고 본다. 어떻게 해서든 조직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힘들다. 평당원들의 자발적인 활동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역, 정책, 제도

    우선은 지역이다. 당선자 수와 정당 지지율로만 본다면,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진보신당이 지역에서 터를 잡기 위한 최소한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본다. 광역의원 세 명과 기초의원 20명은 적은 수가 아니다. 지역의 의정활동, 해당 지역 당원협의회와 기초의원들의 활발한 의견교환, 다른 지역 당원협의회들과의 조직 노하우 교환과 공유 등 당선지역의 성과가 비당선 지역에 공유되고 전파되도록 해야 한다. 해당 지역 당원협의회의 조직력 강화는 말할 필요도 없다.

    정책적으로는 이장규 당원의 말대로 결선투표제를 주장-관철시키고 비례대표제를 강화해야 한다. 비록 진보신당이 비례대표제로 언제 재미(-_-)를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정당지지표가 사표가 되지 않는 경험만이 유권자가 단일화론, 사표론, 몰표론을 이겨내고 자신과 정치적 지향이 같은 집단에 표를 줄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결선투표제도 마찬가지다. 승자독식의 정치에 균열을 낼 수 있는 현실적 조건으로 결선투표제를 정착시킨다면 우리 당뿐만 아니라 자기 정책과 노선을 지닌 군소정당들의 조직적 역량이 비약적으로 향상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노조다. 민주노동당 시절 비민주적인 민주노총 상층부에 할 말을 못하고 휘둘렸던 모습 때문인지, 정규직 노조와의 연대는 당내에서 제대로 이야기조차 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동안 당의 노동정책은 비정규직 조직화-연대라는 커다란 원칙과 몇 가지 사업 이상으로 가시화되지 못했다.

    그리고 선거 때가 되자 우리가 민주노총에 정책이라든지 조직적으로 투자한 것도 없으면서 민주노총이나 산하 조직이 우리에 호의적이지 않다고 분개했다. 이건 아니다 싶다.

    해준 거 없이 민주노총 욕할 거 없다

    노조에 종속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솔직히 우리 당의 조직적 역량이 노조보다 훨씬 떨어지는 현실에서 정당이 노조에 줄 수 있는 것은 당파적-친노동계급적인 노동정책밖에 없다. 민주노총의 조직력이 얼마나 센지는 모르지만 예전처럼 ‘철의 조직’은 아니라고 알고 있다.

    좋은 정책과 단호한 친노동계급적 정치노선은 민주노총 전체를 당장 데려오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민주노총 산하 개별노조들과 굳건한 연대를 가능하게 할 것이고, 노조의 조직 역량도, 우리의 조직 역량도 키워주는 윈윈 게임일 것이다.

    우리 당은 노조에 대해, 노동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는가(노파심에 덧붙이지만, 물론 비정규직 노동운동을 포기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민주노총에서 기대할 것이 없다고 비정규직만을 바라보는 것 또한 노동계의 전체 문제를 포괄하지 못하는 역편향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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