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 싸우는 평화주의자들
        2010년 06월 04일 09: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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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의 공포, 상기시키는 이명박 정권

    아마 초등학교 1학년 때였을 것이다. 나라에 전쟁이 났다고 싸이렌이 울리고 한바탕 난리가 났다. 수업도 중단되고 허둥지둥 신발 주머니를 챙겨들고 아무도 없는 텅빈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울면서 집으로 뛰어 왔던 일이 생각난다.

    그 때 그 운동장은 왜 그리도 넓던지.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 1983년 북한의 공군 이웅평 대위가 남한으로 귀순하면서 벌어진 한바탕 해프닝이었던 것. 어린 마음에 ‘전쟁’이란 놈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내게 밀어닥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경험이었는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나에게 그 어린 시절 공포의 기억을 연일 상기시켜키며 국민을 불안에 떨게 만든다. 대통령과 국가 원로들이 식사하면서 "전쟁을 두려워 말아야" 한다느니 한중일 3국 정상회담자리에서 "전쟁을 두려워 하진 않지만, 전쟁 원치 않는다"느니, 말장난 같은 전쟁 망언을 늘어놓는다. 조중동 극우신문들도 그 장단에 맞춰 춤을 추며 아예 사설에서 전쟁하자고 선동한다.

    불안한 건 둘째 치고 가슴 속에서 분노가 치밀었다. 국민의 안보를 가장 우선으로 걱정해야 할 국정최고책임자가 함부로 ‘전쟁’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다니. 국민을 전쟁의 광기 앞으로 작정하고 몰아세우려는 것이 아니라면 어찌 전쟁기념관에서 담화문을 발표하는 ‘정치쇼’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국민들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이정희 국회의원이 만든 전쟁반대서명하기 인터넷 사이트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번 6.2 지방선거를 통해, 더 이상 공포정치에 근거한 권력놀음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었다. 한나라당의 참패는 국민들의 기본적인 생명권인 ‘안보’를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는 국민들의 단호한 심판이다.

    이제 그만 죽음의 굿판을 걷어 치워라.

    민족의 최대비극 한국정쟁(6.25) 발발 올해로 60주년. 인구의 6/1이 줄어들고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된 비극의 땅 한반도에서 남과 북은 각각 분단의 상처를 안은 채 21세기를 맞아야 했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역대 정권들이 한결같이 자신들의 부패한 정권을 유지하는데 ‘북풍’을 이용해 왔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그나마 지난 10년간 ‘햇볓정책’으로 대변되는 남북화해와 경제 및 민간교류의 여정들 속에서 적어도 이 땅에는 ‘평화통일’의 작은 씨앗들이 움트는 듯 했고, 국민들은 적어도 남북대결의 숨막히는 긴장감을 잊은 채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매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든 탑도 한순간에 무너진다고 했던가. 집권초기부터 대북 적대정책으로 일관하고 지방선거 앞두고 허겁지겁 천암함 침몰의 범인으로 북한을 지목하며 그 증거로 내놓은 것이 아주 허접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이 정도면 도올 김용옥이 정부의 결과발표를 두고 ‘웃기는 개그’라고 비웃었던 게 이해가 간다.

       
      ▲ 한국의 전쟁반대 퍼포먼스

    집권 후 2년 반 만에, 이렇게 초고속으로 남북관계를 완전히 두동강 내놓고 미국, 일본, 중국 등등 강대국들에게 자기편 좀 되어달라고 외교적 실수를 연발하는 것을 보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두 동강난 것은 천안함 뿐만이 아니다. ‘한반도 평화’도 ‘합리적인 외교’도 모두 두동강났다.

    한반도, ‘여성반전평화운동’이라는 희망

    지금 세계가 한반도를 주시하고 있다. 미국, 독일, 영국 등 해외언론 여기저기서 천안함 사고의 원인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해설들이 분분하다. 그것은 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역사적 배경이 자칫 세계적인 큰 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는 화약고와도 같기 때문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여러 나라가 개입한 한국전쟁(6.25) 이후의 오랜 휴전 상태, 미국이 움켜쥐고 있는 남한의 전시작적권, 세계최고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이웃나라들, 객관적인 지표들이다. 한반도의 주인, 바로 대한민국 국민이 강력하게 전쟁에 반대하고 적극적으로 평화를 지키는 운동을 펼쳐나가지 않는다면 세계가 불안해한다.

    이에 나는 앞으로 더더욱 한반도에서 여성을 중심으로 한 커다란 반전평화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흔히 전쟁의 가장 큰 희생자는 여성, 어린이, 노약자들이라고 한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 가장 큰 희생양이기도 했지만 또한 평화를 지키고 전쟁을 막을 수 있는 희망이 바로 여성들의 힘에서 나왔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것을 알기에.

    세계 곳곳에서도, 이 땅에서도, 폭력과 전쟁에 반대하는 여성반전평화운동은 역사적으로 큰 물줄기를 이루어 왔다. 우리가 누리는 ‘공기’와도 같은 평화를 온몸으로 지켜내고자 했던 여성들의 역사.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평화를 요구하는 여성들!

    지면관계상 이 자리에서 하나하나 다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안타까워, 다음 두 권의 책을 ‘강력추천’하는 것으로 필자의 욕심을 대신하고자 한다.

       
      

    세계 곳곳의 전쟁과 폭력에 맞서 당당하게 투쟁하는 여성들의 생생한 드라마 <여성, 총앞에 서다>(삼인)와 여성주의와 평화주의적 관점으로 한국여성평화운동사를 서술한 <한국여성평화운동사>(한울아카데미). 우리는 이 책들에서 전쟁의 ‘희생양’으로 남기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용감하게 일어선 여성들을 수도 없이 만나게 될 것이다.

    여성들의 반전평화운동은 국적, 민족, 인종, 성별을 넘어서서 연대한다. 2002년 부시정권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여성들이 만든 미국의 반전평화단체 ‘코드 핑크’(Code Pink)는 당시 백악관 주변을 대대적으로 행진하며 부시행정부의 삐뚤어진 전쟁책동에 항의했다. 그녀들은 자국의 역사적 범죄행위에 결코 침묵하지 않았다.

       
      ▲ 백악관으로 행진하고 있는 미국의 반전평화여성단체 코드핑크 회원들

    평화를 방해하는 세력과 단호하게 싸우기

    어린 시절의 전쟁의 트라우마 때문이었을까. 한반도의 역사를 배우면서 평균 2년에 한 번꼴로 이 땅에서 전쟁이 있어 왔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래서 이 땅에서 서른다섯이 될 때까지 전쟁을 겪지 않았다는 것에 대하여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의 참상이 결코 남의 나라 일 같지 않았고, 그에 대한 분노와 슬픔은 내 연극작품의 강한 화두가 되기도 했다.

    무대에서 나치깃발, 욱일승천기(일본의 제국주의 상징기), 이스라엘 국기, 성조기 등을 찢는 과격한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고, 평화를 염원하는 시를 쓰기도 했다. 사실 예술가들에게 평화에 대한 사랑과 전쟁에 대한 혐오는 매우 오래된 예술적 주제이기도 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보라. 오노 요코의 ‘반전 퍼포먼스’를 보라.

       
      ▲ 피카소의 게르니카, 1937년 독일의 폭격에 의하여 폐허가 된 에스파냐의 북부 도시 게르니카를 그린 피카소의 대표작품
       
      ▲ 2차 세계대전 전범국가 일본에서 열린 오노요코의 전쟁반대 집단 퍼포먼스

    바로 엊그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으로 향하는 민간 구호선을 공격하여 국제적 비난을 사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이 들려 왔다. 나는 그때 예전에 나에게 다가온 하나의 강렬한 문구를 떠올렸다.

    “그리하여 또 다시 자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결코 평화롭지 않다는 점을, 평화는 저절로 오지 않으며 평화를 얻고 지키려면 평화를 방해하는 세력과 단호하게 싸워야 한다는 지극히 자명한 사실을.”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공숙영의 <전쟁과 평화> 중에서

    우리들의 평화를 방해하는 세력들은 누구인가. 그들의 실체는 생각보다 명확하다. 우리들은 그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여성들은 지금보다 더욱더 세차게 반전평화운동을 해나갈 것이며 끊임없이 그들에게 항의하고 압력을 가할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함께 연대하며.
    여성들은 외친다. Stop The War! War is Over! 지금, 여기서, 모두에게, 평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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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소개 레드걸

    급진적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연기를 무기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혁명가이자 몽상가. ‘투쟁 없이는 아무것도 쟁취하지 못한다’가 신조인 팔색조의 천상배우. 언제나 “예술의 정치화”를 화두로 연기 및 극작, 퍼포먼스, 연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 페미니스트 창작집단 <붉은 여신들>대표 http://cafe.naver.com/redgoddess
    현, 진보신당 성정치위원회 운영위원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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