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대 성과 거둔 진보, 그러나…
        2010년 06월 03일 05:0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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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MB 견제 심리는 강력했다. 2일 전국에서 치러진 지방선거는 한나라당의 패배와 민주당 특히 친노 인사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민주당 이광재, 안희정 등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강원도지사와 충남도지사에 당선되었고 역시 노무현 정부 때 행자부장관이었던 김두관 무소속 후보는 경남에서 한나라당을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친노 인사 약진 두드러져

    서울도 패배했지만 한명숙 후보의 추격은 강력했다. 오세훈 당선자와 한명숙 후보의 표 차이는 불과 26,000여표 0.6%포인트에 불과했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후보 역시 20만여표, 4.4%포인트 차이로 따라붙었다.

    이는 그동안 재보궐선거를 통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왔던 반MB 정서가 전국적으로 표출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서울과 경기를 차지한 한나라당이지만 당 지도부가 사퇴를 할 만큼 한나라당은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예민하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존재를 감춤으로서 오히려 존재감을 과시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행보도 주목된다.

    진보진영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많은 의석을 얻었다. 민주노동당은 “단체장 3석 포함 69~93석”을 목표로 제시했지만 결과는 이를 훌쩍 뛰어넘었다. 인천 남동구와 동구청장을 배출하며 수도권에 진보정치 교두보를 만들어내었고, 울산북구도 탈환했다. 민주노동당은 총 142명의 당선자를 배출했다.

    진보신당은 광역 3~4곳과 기초 25~30곳을 목표로 했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 3석의 광역의원과 22석의 기초의원을 배출했다. 기존의 목표에 크게 뒤지지 않는 선전이다. 정당지지율도 민주노동당은 6%대 중반을 예상하고 있고, 진보신당은 3%대 초반을 예상하고 있다. 모두 2008년 총선 지지율보다 상승한 것으로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둔 셈이다.

    그런데 진보정당 내부에서 쉽게 이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말하지 않고 있다. 단체장 3석을 얻어낸 민주노동당의 표정은 진지하고, 진보신당의 경우에는 패배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나오고 있다. 기초단위에서 얻어낸 성과가 적지 않지만, 전체적인 선거 구도가 다시 보수양당 구도로 회귀했기 때문이다.

    진보양당, 성공 속의 실패

    또한 선거과정에서 ‘반MB연대’에 대한 입장을 놓고 진보진영 전체가 사분오열되었다. 분당 이후 어려움을 겪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은 초기 이번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진보정치 재통합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내고자 했으나, 반MB연대의 참여여부를 둘러싸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다시 갈라졌고, 지역에서의 감정은 더욱 악화되었다.

    이로 인해 진보정치권의 단일화로 승리할 수 있었던 거제 등의 지역에서 양 당의 단일화가 실패했다. 아울러 울산과 호남지역에서도 진보양당은 독자 출마 했다.

    민주노동당의 경우 지난 2008년 정책당대회만 해도 ‘진보정치대연합’을 중심으로 한 선거방침을 확정했었다. 그러나 각 지역은 물론 중앙당도 ‘5+4협상’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지난 3월 대의원대회에서는 “주도적인 반MB연대 실현”을 목표로 전면 내걸었다.

    이로 인해 진보연합의 움직임이 전면 중단되었고 일부 후보들은 진보후보 단일화에 앞서 “민주당과의 단일화”를 선결조건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민주노동당의 한 지역 인사는 “반MB가 필요하다고 해도, 그 내용을 어떤 것으로 채우느냐가 중요하다”며 “그러나 몇몇 지역에서는 사실상 보수정당에 백기투항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선거 이후 민주노동당 내부 논쟁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실리’를 택한 민주노동당으로 이번 선거는 호성적이 틀림없다. 특히 반MB연합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지지율 3위를 달성한 것도 적지 않은 성과다. 우위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이번 선거는 결코 자신할 수 없었음에도 국민여러분들이 정당지지율 3위를 만들어 주셨다”며 “당에 대한 기대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민노, 진보정치 통합 노력 미진" 내부 비판도

    하지만 ‘반MB’구도에 묶여 당의 정체성이 훼손되었다는 지적과 함께, 이번 선거연합을 계기로 앞으로의 당의 생존전략 자체가 ‘연합정치’에 매몰되는 것 아니냐는 안팎의 우려가 있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는 “후보사퇴는 공당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결정”이라면서도 “그럼에도 이명박 한나라당 정부 심판의 요구가 너무나 컸다”고 말했다.

    당의 한 관계자는 “MB심판이라는 여망에 당이 적극적으로 부응한 것은 평가할 만하지만 당면한 MB심판 때문에 진보정치 대통합과 혁신을 이루는 것에 매우 미진했다”며 “주도적이고 강력한 반MB연대를 위해 진보정치 단결과 혁신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지금의 선거결과는 ‘반MB’ 일변도로 흘러 민주노동당의 독자성을 약화시켰다”고 평가했다.

    진보신당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진보신당은 진보의 씨앗을 키우는 과제’와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자는 국민의 염원’을 함께 떠안고 갔지만 어느 것 하나 성공하지 못했고 오히려 당의 내분만 심해졌다. 당의 선거방침은 ‘반MB 대안연대’, 즉 진보대연합으로 굳어졌으나 상대 없이 좌충우돌 했고 일부 당의 핵심 정치인들은 ‘반MB 연합’에 합류했다.

    특히 선거 3일 전 심상정 전 경기도지사 후보의 전격적인 사퇴는 진보신당을 충격에 몰아넣었다. 앞서 김석준 부산시장 후보가 당원들의 의사를 몇 차례 거부하고 민주당 김정길 후보의 지지를 선언했고, 경기 고양에서도 반MB선거연합이 있었지만, 당의 얼굴인 심 전 후보의 사퇴와 비할 만한 충격파는 아니었다.

    중앙당도 초기 ‘5+4협상회의’에 참가했다가 탈퇴하는 등 선거연대와 관련된 혼란스런 모습을 드러냈다. 진보신당 지역의 한 관계자는 “컨트롤 타워, 전략, 능력이 없었던 선거였다”며 “치러본 선거 중 최악의 선거가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진보신당, 심상정 충격 어떻게?

    진보신당은 진보정당으로서의 존재감도 부각시키지 못했다. 한나라당이 압승을 거둔 대구에서 조명래 후보가 10% 득표를 했을 뿐, 서울과 충북, 대전 등 에서는 1~3%선에 그쳤다. 특히 노회찬 대표가 출마한 서울의 지지율은 3.26%에 불과했다. 이는 결론적으로 캐스팅 보트로 작용했지만 실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수준이다.

    신언직 서울시당 위원장은 “이번 선거를 통해 진보신당은 국민들의 평가를 받았고, 그 평가는 냉혹했다”며 “이번에는 MB를 비판하는 국민들이 한나라당을 심판하며 민주당에 지지를 보냈는데, 이 가운데에서 진보신당이 어떤 전략을 가지고 반MB에 임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 위원장은 이어 “왜 이런 평가를 받았는지, 뭐가 문제인지 토론하고 문제를 찾아야 한다”며 “전략의 부재를 고민하면서 이번 선거를 차분하고 냉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의 또다른 관계자는 “구도 자체가 반MB연합을 중심으로 흘렀고, 이로 인해 우리의 정책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하지만 진보정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선거를 완주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었고, 이번 노 대표의 14만3천 표도 진보정치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지방선거가 끝남에 따라 각 정당은 선거평가를 두고 후폭풍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은 7월 대표단 선거가 예정되어 있고, 진보신당도 심상정 후보의 사퇴 이후 당 내 노선투쟁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진보신당의 경우 심 후보의 결단에 대한 판단이 향후 노선투쟁의 방향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당의 핵심 관계자는 “심 후보의 징계가 불가피 한 것 아니냐”는 입장인 반면, 또 다른 관계자는 “이는 당의 노선투쟁과 관련된 문제로, 징계사유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이래저래 진보정치의 폭풍은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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