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상정 '사태' 뿌리는 더 깊은 곳에 있다
        2010년 06월 01일 11: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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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상정 경기도지사 후보가 사퇴했고, 진보신당은 내홍에 휩싸였다. 당원들은 게시판에서 창당 이래 가장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심상정 후보의 제명(출당) 조치를 요구하는 강경 반대파, 공식적인 논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개인적’ 결단의 형태로 사퇴한 것을 비판하는 온건 반대파, 반MB 전선에서 진보신당의 고립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이해하는 온건 지지파, 심상정 후보가 보유한 캐스팅 보트의 위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판단하는 적극지지파 등.

    하지만 진보신당 내부의 논쟁은 당의 간판인 심상정 후보의 사퇴로 갑자기 불거진 것이 아니었다. 그간 계속 진행되어온 논쟁이 더욱 격렬한 형태로 표출된 것이었다.

    심상정 ‘사태’의 징후들

    멀게는 선거전이 본격적으로 개시되기 전, 진보신당 창당에 앞장섰던 홍세화 당원이 ‘민주대연합’이라는 용어까지 동원해가며 반MB 단일화의 불가피성을 암시했을 때부터, 가깝게는 부산시장 후보 김석준 당원이 지역판 5+4 테이블에서 후보단일화에 합의하고 내부 경선을 거친 뒤에 후보직을 사퇴하고, 이에 대한 항의 표시로 이용길 당원이 충남지사 후보직과 부대표직을 사퇴한 것까지.

    대표적인 진보신당의 리더들이 이 같은 정치적 판단과 행위들은 6. 2 지방선거전에 뛰어든 진보신당 내부의 정치적·조직적 합의가 얼마나 취약한 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이 글은 심상정 경기도지사 후보의 사퇴 전술이 적절했는가 여부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위한 것은 아니다. 이는 선거 이후에 수행하게 될 평가 과정에서 논의될 핵심 쟁점일 것이다.

    이 글은 먼저 진보신당의 내부 사정이 심상정 후보의 정치적 판단과 행위를 제대로 판단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대단히 취약한 상황임을 세 가지로 제시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진보신당에 가장 시급한 것이 심상정 후보 사퇴 전술에 관한 논쟁을 당의 선거 승리와 당 발전을 위한 논쟁으로 전환시키는 것임을 역설할 것이다.

    먼저 6.2 지방선거전에 임하고 있는 진보신당의 문제는 크게 세 가지로 지적하겠다.

    1.

    첫째,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진보신당은 6.2지방선거를 애매모호한 전략과 전술을 가지고 임했다. 진보신당은 ’18개 광역지자체선거에 전원 출마’, ‘전면적 선거연합’, 뒤늦게 제기된 ‘진보대연합’, 몇 가지의 최소한의 전략과 전술적 언급만을 가지고 6.2 지방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이 같은 전략의 애매모호함을 더욱 강화시킨 것은 당 지도부의 행보였다.

    이 사안을 두 가지 방향에서 살펴보겠다. 먼저 이번 선거전에 임하는 진보신당의 연합정치 구상이 무엇이었을까?

    진보신당은 초기에 5+4 논의 테이블에 합류했다가 5+4 논의 테이블에서 빠져나왔다. 문제는 테이블 합류와 테이블 이탈을 관통하는 진보신당의 일관된 전략이 대중적 공론장에서 전혀 부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테이블 이탈 이후에 지역 차원의 논의는 각 지역 사정에 따라 수행한다는 언급은 당내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또한 선거 과정에서 진보신당이 말하는 ‘진보대연합’의 의미도 새롭게 규정되었다. 창당 초기 진보신당이 말하는 진보대연합은 사회당, 초록연대, 사노준처럼 민주노동당의 왼편에 있다고 간주되는 정치세력과의 연합을 뜻했다.

    그러던 것이 5+4 구도에서 탈퇴한 뒤에 당의 고립을 막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민주노동당과 회동하는 순간에는 그간 민주노동당이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진보대연합’(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재결합)과 동일한 것으로 규정되었다.

    애매모호한 지방선거 전략

    여기서 민주노동당이 조직적 논쟁을 거쳐 진보대연합론을 당론으로 확정하고 정치공세를 본격화했을 때 진보신당이 아주 미온적으로 반응했던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진보신당의 민주노동당과의 회동은 민주노동당의 대의가 옳았다는 것, 즉 진보신당의 독자적 연합정치구상이 부재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주었다. 5+4 논의 테이블에 들어갔다가 나오고, 나온 뒤에는 궁여지책으로 민주노동당을 찾아가 진보대연합을 선언해놓고도 실질적으로는 거부당하고.

    이번에 진보신당 지도부의 행보와 발언이 보여준 연합정치 전략의 애매모호함이 어떻게 당내의 혼란을 가져왔는지 살펴보자. 특히 지역에 따라 지속적으로 연합 논의를 가져간다는 언급은 이런 혼란을 더욱 부추겼다.

    부산의 김석준 후보는 지역판 5+4 구도에 끝까지 참여했고, 충남의 이용길 후보는 민주당 등이 참여하는 선거연합에 지지할 수 없다고 후보직과 당부대표직을 사퇴했다. 심상정 경기도 지사 후보는 선거 사흘을 남기고 독자적으로 사퇴했다. 지금 서울의 노회찬 후보는 끝까지 완주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처럼 후보들은 당 대표단이 언급한 그대로 지역마다 저마다 각기 다른 전술을 구사하게 되었다. 부산 김석준 후보의 사퇴가 확정되자 그제서야 당 부대표는 진보신당의 연합 상대는 민주노동당까지였다고 무기력하게 말했다. 그 민주노동당과의 연합조차도 사실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대표단이 보여준 행보에 따른 추론에 불과한 것이었다.

    2.

    명확한 선거 전략의 부재는 두 번째 문제인 당원들 사이의 공론화 부재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진보신당은 당원들 내외부의 논쟁을 통해 지방선거 전략을 공론화하는 과정을 제대로 밟지 못했다.

    진보신당은 2007년 대선 결과에 실망한 나머지 먼저 당을 탈퇴한 이른바 ‘선도탈당파’, 심상정 비상대책위원회의 성공으로 민주노동당을 혁신하고자 했던 소위 ‘혁신파’, 그리고 ‘지못미열풍’과 ‘촛불시위’ 등을 거치면서 당에 합류하고 사실상 당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게 되는 새로운 당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공론화 부재

    이들은 모두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반대하고, 민주노동당이 대안이 아니다는 점에선 합의하고 있었지만, 전 방위적 공세를 펼치고 있는 이명박 정부 아래서 어떤 정치적 전략과 전술을 구사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따라서 당원들의 자발적 공론화 노력을 격려하는 방식이든, 지도부가 적극적으로 공론화를 활성화하는 방식이든 가깝게는 6.2 지방선거 전략에 대한 논쟁, 멀게는 2012년의 대선·총선 시기까지의 선거 전략에 대한 논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당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그런데도 전국위원회와 같은 공식 의결기구를 통한 적극적인 공론화 시도도, 진보신당 내외를 막론한 다양한 사회적 공론화 시도도 부재했다.

    3.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문제는 선거 과정에서 다양한 혼란으로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도 당 지도부는 당내 혼란을 적극적으로 수습하여 당의 통일적인 대응책을 간구하는 노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부산의 김석준 후보가 부산시당 운영위원회에 후보단일화에 합의해달라고 요청한 뒤에 부산시당과 중앙당 게시판에서 논쟁이 개시되었을 때도, 후보단일화에 합의하고 사퇴했을 때도 진보신당 지도부가 이 문제에 대한 공식적으로 개입하여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당 지도부 적극적 노력 부재

    당 대표단의 일원이 사후적으로 김석준 후보의 정치적 행위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밝힌 적은 있지만, 당 중앙이 적극적으로 수습과 해결의지를 표명한 것은 아니었다. 이때에 당 게시판에서는 김석준 당원의 제명(출당)을 요구하는 강경한 입장이 등장하였다.

    또한 경기도의 심상정 후보도 지속적으로 ‘역동적 단일화’, ‘승리하는 단일화’에는 응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며 정치적 결단을 시사하고 있었다. 이때도 진보신당 지도부가 공식적으로 나서서 심상정 후보의 정치적 판단과 행위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후보 사퇴가 확정되고 나서야 진보신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는 유감을 표명하고, 선거 이후 평가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밝혔을 뿐이다.

    4.

    요컨대 진보신당은 이명박 정부라는 새로운 조건에 입각한 전략과 전술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했다. 그 결과 과거 민주정부 시기의 전략과 전술에 대한 ‘정서적 합의’ 수준에서 선거전에 돌입하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민주노동당이 구사해온 전략과 전술, 즉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엔 샛강이 흐르고,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사이엔 한강이 흐른다는 관점에 입각한 전략, 이른바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전략적 목표를 위한 독자후보 전술"에 막연한 합의 수준으로 말이다.

    문제는 민주정부 치하에서 진보가 독자정립을 위해 싸우던 시기의 전략과 보수정부 치하에서 진보가 보수정부의 패배와 진보정치의 교두보 확보라는 이중 과제를 위해 싸우는 전략이 동일할 수 없는데, 명확한 전략적 합의도 없이 선거전에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진보신당 중앙선대위 안이한 대응

    그 결과가 지금 진보신당 게시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격렬한 논쟁과 내홍이다. 이 와중에서 심상정 후보의 사퇴 전술에 대해 진보신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가 표명한 공식입장이 “유감”이었다. 이는 진보신당의 조직 상황에 대한 안이한 대응이자 심상정 후보가 노리는 정치적 효과를 살리지 못하는 수세적인 대응에 불과하다.

    지금 진보신당이 해야 할 일은 당원들의 논쟁에서 어느 편을 두둔하는 논평을 발표할 것이 아니라 당원간의 논쟁을 ‘성장통’으로 인식하고 이를 당 발전을 위한 논쟁을 발전시킬 대책을 궁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투표일을 하루 앞둔 이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심상정 후보 사퇴로 조성된 국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즉, 심상정 후보와 김석준 후보 사퇴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게 패배를 안기기 위한 진보신당의 적극적인 노력임을 부각시키는 것은 물론, 각급 지방 선거단위에서 뛰고 있는 진보신당 후보들의 당선과 진보신당에 대한 정당투표율 상승의 호재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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