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진보의 깃발을 내리라고 하는가?
        2010년 05월 31일 04: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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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표일이 벌써 이틀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간 선거판은 숨 막힐 듯 긴박하게 돌아갔습니다. 저희가 참여한 ‘진보신당 175명을 지지하는 107인 교수 ‧ 연구자 선언'(이하 교수 ‧ 지식인 선언)이 발표된 게 불과 닷새 전인데 그 와중에도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심상정 경기도지사 후보가 사퇴를 함으로써 175명의 후보가 아니라 ‘174명’의 후보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악정과 과거의 실정

    저희는 이번 지방선거가 2012년을 내다보며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과거’와 이명박 정권의 ‘현재’를 극복할 ‘미래’의 씨앗을 틔워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수 ‧ 연구자 선언’을 통해, 진보신당이 기호 “1번, 2번에 의해 빼앗긴 우리의 꿈을 되찾아주는 발판을 만들” 것을 확신하며 진보신당 후보들을 지지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미래’가 싹 트는 것을 내리누르는 ‘과거’와 ‘현재’의 중압은 우리가 우려했던 것보다도 더 격심했습니다. 보수 야당들은 ‘현재’의 악정(惡政)에 대해 ‘과거’의 실정(失政)은 이것보다 좀 덜했다는 것을 환기시키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막판 선거 전략을 오로지 진보신당 지지층을 어떻게든 흡수해보려는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그 중압감 속에서 ‘175명’은 ‘174명’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진보신당을 알리고 그 독자적인 목소리로 유권자의 평가를 받고자 하는 ‘174명’에서 희망을 봅니다. 유혹과 동요와 고통이 더욱 심각해질수록 이러한 확신은 더욱더 강해집니다. 그것은 며칠 전 ‘교수 ‧ 연구자 선언’에서 이미 밝힌 다음과 같은 정치적 판단에서 지금도 한 점 한 획 바꿀 게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수 ‧ 연구자들은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이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고 희망찬 내일을 가져올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난 10년의 실정을 책임져야 할 민주당의 경우 이명박 정부를 등장시킨 원죄가 있음에도 반성을 통한 자기혁신을 외면한 채 ‘민주당 중심의 묻지마 반MB’를 내걸고 이번 선거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성찰과 혁신 없는 반MB, 다른 의견을 억압하는 반MB의 퇴행적 틀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독약일 따름입니다. 진보의 결집에 책임 있게 응답해야 할 민주노동당은 ‘묻지마 반MB’의 길로 떠나가 버렸습니다. 진보의 길을 포기한 이 부끄러운 선택이, 진보의 정치적 전진을 오랫동안 가로막아 온 과거의 비판적 지지와 뭐가 다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보신당 175명을 지지하는 교수 ‧ 연구자 선언’에서)

    우리는 특히 한나라당, 보수 야당들과의 정치적 차별성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진보신당의 광역단체장 후보 여덟 분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고 응원합니다. 그 중에서도 서울시장 선거에서 분투하고 있는 노회찬 서울시장 후보에게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회찬 후보는 지금 오만한 한나라당과 무능한 민주당에 맞서 미래 희망 정치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는 너무도 무거운 짐을 양 어깨에 온통 짊어지고 있습니다.

    누가 진보의 깃발을 내리라고 하는가

    심상정 경기도지사 후보의 사퇴가 있고 나서 노회찬 후보에 대한 이른바 ‘후보 단일화’ 압박이 더욱더 가중되고 있다고 합니다. 심후보의 사퇴를 ‘고뇌 어린 결단’이라고 치켜세우면서 노회찬 후보에게도 그 ‘고뇌 어린 결단’이란 것을 강요한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그러나 저희가 보기에 지금 그야말로 ‘고뇌 어린 결단’에 따라 외로운 가시밭길을 선택한 것은 노회찬 후보입니다. 단지 반 MB라는 명분 하나로 반성도 희망도 없는 민주당의 손을 들어주고 진보의 깃발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현 정권을 낳은 한국 정치의 한계 자체를 극복하기 위해 당장은 외면과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진보의 길을 당당히 가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고뇌와 결단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명숙 민주당 후보가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를 이기지 못한다면 이는 노 후보가 한 후보의 손을 들어주지 않아서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민주당이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고 당내 경선과 텔레비전 토론조차 거부하는 등 잘못된 전략으로 서울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노회찬 후보를 비롯한 진보신당의 후보들, 힘을 내십시오. 자신감을 가지십시오. 우리의 정치가 낡은 보수독점의 정치로 되돌아가고 있는 어둠의 시대에 진보정치의 불씨가 지켜지기를 기원하는 많은 유권자들이 당신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발걸음 하나 내딛기조차 힘들지라도 당신들의 그 발걸음 하나하나가 진보정치의 불씨가 지키고 이를 다시 부활시키는데 최후의 보루가 될 것입니다.

    아니, 그래서 말합니다. 힘드십시오. 생각 그 이상으로 쓰겠지만 당장의 고독과 고통을 달게 받으십시오. 그 무게가 당신들을 바라보는 외롭고 절박한 이들의 눈길의 무게라고 생각하십시오. 장담하건대, 그 무거움이 진보정치에 대한 인정과 애정, 격려와 지지로 돌아오고야 말 것입니다. 저희도 여러분이 외면하지 않은 그 힘들고 외로운 길, 하지만 반드시 역사의 본류로 몰아치고야 말 그 길에 함께 하겠습니다.

    2010년 5월 31일

    노중기 (한신대 교수, 사회학)
    손호철 (서강대 교수, 정치학)
    신정완 (성공회대 교수, 경제학)
    이성백 (서울시립대 교수, 철학)
    장상환 (경상대 교수, 경제학)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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