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도 교수님, 강사님 나눠 부른다"
    By 나난
        2010년 05월 31일 03: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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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한 지방대 시간강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은 교수 임용 탈락이 이유라고 밝혔다. 그리고 서모(44) 씨는 유서에서 교수 임용 과정에서 공공연히 발생하는 금품 요구와 논문 대필을 폭로했다.

    언제부턴가 교수 임용 과정의 부정부패와 임용 탈락, 흔히 ‘보따리 장사’라 불리는 장기간의 비정규직 생활로 인한 생활고로, 시간강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언론 기사가 심심찮게 보이고 있다. 1년에 평균 4명의 시간강사가 이 같은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한다.

    서 씨의 죽음으로 시간강사의 생활이 재조명되고 있지만 시간강사들은 스스로의 삶을 공개하기 꺼려한다. “어차피 바뀌는 것은 없지 않느냐”는 거다. 그리고 “언론에 인적사항이 노출되면 교수 임용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달라진 건, 없다

    “10년 이상 같은 얘길 반복하다 보니 이야기할 때마다 입에서 단내가 나는 것 같아요. (시간강사들의 처우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중에 (기사를) 보면 아주 슬프던데… 그래서 잘 안 하게 돼요. 희망을 얘기해야 하는데… 한심하다고 할 수 있죠.”

       
      ▲ 임성윤 씨.(사진=이은영 기자)

    임성윤(45) 씨는 2년 전까지 성균관대학교에서 시간강사로 서양사를 가르쳤다. 1997년 첫 강의를 시작하고 1년 만에 “(박사)학위가 없다”는 이유로 잘리기도 했던 그는 현재 비정규교수노조 성균관대 분회장으로서 노조 활동을 주로 하며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임 씨는 시간강사를 시작하며 1977년 교육법 개정과 함께 박탈당한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 회복을 위해 끊임없이 이야기 해 왔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지난 2007년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 회복을 담은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발의되며 한 때 작은 희망이라도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법안은 4년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비정규직 교수 7만 명

    때문에 그는 서 씨의 죽음에 대해 더욱 안타까워했다. “죽어야 될 사람은 따로 있는 것 같은데 엉뚱한 사람이 죽었다는 생각이 든다”며 “전임교수를 시도했다 몇 차례에 좌절한 사람들은 대부분 체념하지만, 심할 경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며 말했다.

    현재 한국사회 비정규직 교수, 즉 시간강사는 약 7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임 씨가 재직했던 성균관대만도 800명 정도며, 많을 때는 1,000명 가까이를 차지하기도 한다. 의대 교수를 제외하고 전임교수가 600명인 것을 감안하면 최소 30%에서 최대 50%를 차지한다.

    하지만 전임교수와 시간강사의 처우는 하늘과 땅 차이다. 그나마 전국에서 강사료와 처우가 제일 낫다는 성균관대지만 전임교수와 시간강사 간 임금 격차는 10분의 1에 달한다. 시간강사의 1시간 강사료는 5만6,000원으로 9시간씩 4주간 수업할 경우 200만 원이 조금 넘는다. 물론 세금을 공제하지 않은 금액이다.

    “몇 년 전 성균관대 교무처장이 국회에서 전임교수 한 명에 1년간 들어가는 비용이 2억이라고 말한 적 있어요. 성대에서 9시간 강의했을 때 한 달에 200만 원, 16주 강의 두 학기면 1,600만 원입니다. 교무처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최대 9시간을 강의해도 시간강사의 임금은 전임교수의 10분의 1이 채 안 됩니다.”

    물론 전임교수에 들어가는 비용은 연봉과 연구실(부동산) 비용, 컴퓨터 등 각종 집기, 사회 보장제도 등이 모두 포함된 금액이다. 하지만 시간강사에게는 8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공동강사 연구실 하나 외에 그들을 위한 공간은 없다. 컴퓨터는 물론 기본적인 사회보장제도로부터도 웬만하면 다 배제돼 있다.

    낮은 임금과 제한된 강의시간

    그래도 성균관대의 경우는 상황이 좋은 편이다. 4년제 대학보다 2년제의 강사료가 훨씬 적으며, 2년제 중에서도 2만 원 안팎인 곳도 허다하다. 성균관대에 비하면 3배나 차이난다. 국립대나 서울시대 주요 사립대에서 20시간 이상 강의를 해야 연봉 2,500~3,00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학은 시간강사가 1주일간 강의할 수 있는 시간이 최대 9시간으로 정해져있다. 성균관대 역시 최대 12시간까지 강의할 수 있지만 9시간이 초과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강사료가 지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시간강사가 일주일 최대 9시간 강의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시간강사의 수가 많다보니 평균 맡는 강의 시간은 5시간”이라고 말했다. 낮은 임금과 함께 강의 시간제한 역시 시간강사들의 생활고를 초래하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직장인이라면 당연히 보장받는 사회보장제도에서도 배제돼 있다. 임 씨는 “고용보험과 산재보험만 적용될 뿐”이라고 말한다. 의료보험은 지역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연금은 해당사항이 없다.

    “강사료 외 다른 수입이 있는 사람은 그나마 연금이라도 부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연금을 내기에 수입이 너무 적습니다. 저는 연금을 거의 내보지 않았아요. 이대로 계속 가다간 가난한 인생으로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는 형국이 되기 십상입니다.”

    "강사 주제에"

    시간강사들의 인생 최대 목표는 ‘전임교수’가 되는 것이다. 이 학교 저 학교를 떠돌아 다녀야 하는 보따리 장사와 당장 다음 학기에 백수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 적은 강사료에 따른 생활고가 가장 큰 이유다.

    또 똑같이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교수에는 주어지는 교원의 법적지위가 시간강사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당연히 사회는 물론 학생들까지 전임교수와 시간강사를 분리해 인식하고, “스승” 을 “교수님”과 “강사님”으로 구분돼 부르기 시작했다.

    간혹 일부의 학생은 “강사 주제에”라며 스스로 스승의 계급을 구분한다. 임 씨는 “강의평가를 하다 보면, 만족하는 학점을 받지 못한 학생들 중 일부가 ‘강사 주제에’라는 말을 쓰며 항의하기도 한다”며 씁쓸해했다.

    “서운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어쩌겠어요. 특히 일부 학생들이 교수와 강사를 구분해 부르는 경우가 있어요. 그냥 ‘선생님’이라 부르면 될 텐데…. 애들이 사람을, 자기 선생을 천대하는 거 아닌가요? 자기를 가리키는 사람은 모두 스승인데, 스승에 대해 차별적으로 대접하는 것은 썩 좋은 모습을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그는 이내 학생들의 이러한 태도를 “당연한 것”이라 했다. 대학 내는 물론 사회적으로 시간강사에 대한 교원 지위가 인정되지 않고 차별적 대우가 ‘정상인 듯’ 행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학생들조차 교수와 강사를 구분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전임교수 되기=금메달 따기

    “교수와 강사에 대한 처우가 다르다면 학생들이 다르게 부르는 것도 자연스러운 게 아닌가 싶어요. 문제는 지금의 차별적인 구조가 바꿔질 때만이 호칭과 존경심도 차별 없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어차피 전임교수와 강사에 대한 처우가 이렇게 다르다면 학생들이 그렇게 반응을 보이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고 봅니다.”

    때문에 시간강사들은 기를 쓰고 전임교수가 되고자 한다. 그는 시간강사가 전임교수가 되는 것을 “올림픽 금메달”에 비유했다.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 명이 올림픽에 참여하지만 금메달을 따는 선수는 단 한 명이다.

       
      ▲ 임 씨는 시간강사에 대한 근로처우 개선과 사회적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교원의 법적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사진=비정규교수노조)

    “될 것 같거든요. 하지만 10명 중 1명만이 신분상승을 할 뿐 9명은 나와 같은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신분상승을 한 1명의 정규직 교수는 웬만한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지만 강사로 남은 사람은 ‘워킹푸어’ 즉 근로를 하면서도 실업자 범주에 빠져 생존의 경쟁사회에 머물게 되는 거죠.”

    전임교수가 되면 근로처우 외에도 또 하나의 ‘특권’이 주어진다. 각 대학의 교수 임용 권한은 실질적으로 전임교수에게 있다. 때문에 논문이나 강의 등의 공식적 심사 기준 외에 인맥은 물론 금품 및 논문 대필 등을 통한 임용이 버젓이 발생하고 있다.

    "어제의 동료, 내일의 상전"

    시간강사는 자신의 목숨 줄을 잡고 있는 전임교수의 눈에 들기 위해 강의와 상관없는 또 다른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임 씨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어제의 동료가 내일의 상전이 된다”고 말했다.

    최근 목숨을 끊은 서 씨 역시 유서에서 “대필과 돈 요구” 등을 지적하며 경찰 수사를 의뢰했다. 특히나 대학원에서 전공을 바꾼 서 씨의 경우 대한민국 학벌사회에서 더더욱 교수되기가 힘겨웠을 것이고, 부당한 요구 역시 많았을 것이다.

    “서 선생의 경우 학부를 서울의 한 대학 중문과를 나와 지방에서 영어영문학으로 석·박사를 한 것은 한국사회에서 핸디캡입니다. 전공을 바꾼 것은 학벌사회에서 학벌이 없는 패를 집어든 측면이죠. 그 패를 들고 전임교수가 되기는 굉장히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설사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해도 시간강사들은 쉽게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다. “징벌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강사를 고용하고 부리는 데 있어 칼자루를 쥔 고용주” 전임교수에게 거부나 문제제기를 할 간 큰 시간강사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박사학위가 문제되면 ‘학위를 딸 때까지 참고 지내자’며 삭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문제제기를 했다 학위 따는데 힘들어질 수도 있고, 딴 후에도 강의를 맡으려할 때 옛날에 찍힌 것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할 수 있습니다. 대학사회가 그런 걸 오래 기억합니다. 혼자 삭이고 삭이다가 결국 안 되면 일부 강사처럼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죠.”

    평생직업 된 시간강사

    때문에 어느덧 시간강사는 전임교수가 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 아닌 ‘평생직업’화 되고 있다. 임 씨에 따르면 평균 마흔 전에 전임교수가 되지 않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가능성 역시 떨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새 ‘시간강사’라는 평생직업을 가지고 퇴직금도 없는 혼자만의 은퇴를 하게 되는 것이다. 마흔 중반에 접어든 그 역시 “전임교수에 대한 꿈은 접었다.”

    “시간강사가 전임교수가 되는 과정 속 한 단계가 아니라 어느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시작이자 마지막일 수 있습니다. 연구자로서 교육자로서 살아가는 삶의 시작이자 마지막 단계라는 거죠. 이제는 대학의 교육과 연구를 담당하는 이들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시강강사에게 적절한 대우를 해줄 때만이 학문적 수준은 물론 대학의 교육과 연구수준도 올릴 수 있습니다.”

    교원 지위 회복으로 ‘차별’을 해소하는 것만이 신 빈곤층으로 전락한 시간강사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서 선생이 극단적 선택한 것도 전임교수가 됐을 때와 되지 못했을 때의 (삶의 차이가) 극명하기 때문”이라며 “그 차이가 좁혀진다면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는 분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교원의 지위는 법률로 정하게 돼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강사에 대해서는 법적 규정이 없습니다. 법적인 교원직위를 부여하다 보면,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하게 되됩니다. 급여의 문제, 사회보장제도 적용 등 각종 차별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핵심 고리는 교원의 법적 지위 부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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