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이 노조운동 대의를 가로 막나
        2010년 05월 28일 08:3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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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년 전의 악몽

    지금부터 18년 전. 노동운동은 정치세력화라는 큰 대의를 실천하는 과정 속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1992년 총선과 대선에서 당시 전노협으로 대표되던 민주노조운동은 조직적 방침을 내리지 못한 채, 민주당과 정책연합에 이끌려 결국 민주당을 지지했다.

    흔히 비판적 지지론이라고 불리웠던 보수정치세력에 대한 지지로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는 깃발조차 올리지 못했다. 물론 당시에도 고민은 존재했다. 통합민중당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지니는 한계를 부정할 수 없었으며 당시 전국연합은 독자적 정치세력화보다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통한 민주정부 수립을 정치 방침으로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전노협은 노태우 정권 아래에서 민주노조운동을 무력화시키려는 탄압을 막아내는 것조차 힘겨운 상황에서, 정치방침을 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전노협이 내세웠던 노동해방과 평등사회라는 운동의 대의와 전략적 목표는 선거의 당락으로 제한되는 것은 아니었다.

    전노협과 노동정치

    노동자운동에게 선거는 노동자대중을 정치적으로 훈련시키고, 당면한 운동을 일보 전진시키기 위한 열려진 정치적 공간으로 의미가 존재한다. 하지만 당시 민주노조운동은 보수야당인 민주당을 포함한 전국연합 후보 그리고 대선에서 김대중을 지지했으며, 통일된 정치-조직적 방침을 지니지 못함으로 인한 조합원의 혼란도 깊어 갔다.

    그리고 10여년이 흐른 뒤 민주노조운동은 노동자정당을 지니게 되었으며, 더 이상 보수야당에 대한 지지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민주노조운동은 다시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정책연대 혹은 반MB후보 단일화라는 이름하에 보수야당 후보를 지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다시 물어보자. 노동자운동은 왜 선거에 개입하는가? 시장이나 의회 의원을 1명을 늘리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이명박 정권에 반대하는 이른바 ‘민주세력’의 힘을 몰아주기 위해서인가? 그렇다면 민주당과 국민참여당과 노동자운동의 연대를 통한 민주후보의 당선이 선거에 개입하는 목적인가?

    어쩌면 1992년 당시 상황과 이토록 닮아 있는가? ‘악몽’이 재현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래야 버릴 수가 없다. 노동자운동은 스스로에게 그리고 조합원들에게 다시 질문해야 한다. ‘왜 선거에 노동자운동은 개입하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반복되는 역사, 민주노총의 패착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 노동자운동이 잘못된 실천을 반복한다는 것은 앞서 말한 질문에 대해 스스로 묻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자운동이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그 앞에 어떠한 수사를 가져다 붙이더라도,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을 위한 조건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분절되고 파편화된 그리고 연대를 두려워 하는 노동자들에게 정치적 논의의 장을 만들고 이들을 정치적 주체로 설 수 있는 계기가 선거이다. 바로 노동자운동은 조합원들이 한 표를 찍는 수동적 주체가 아닌, 노동해방이란 정치적 과제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거 속에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이러한 노동자운동의 선거에 대한 태도와는 거리가 먼, 민주당과 단일화를 통한 반이명박 후보 추대에 방점이 맞추어져 있는 듯하다.

    지난 13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에서는, “진보정당이 포함되어 ‘반MB 단일화’를 이루어낸 후보와 진보정당의 후보가 중복 출마했을 경우, 양측 모두 지지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결정했다. 다만 “진보정당의 후보가 민주노총 조합원일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해당 후보를 지지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 3월 ‘진보정당 통합(추진)을 대중적으로 책임 있게 공식화하는 정당의 후보를 민주노총 후보, 지지후보로 한다’는 내용의 ‘6.2지방선거 선거방침’과도 거리가 존재한다.

    침묵의 카르텔?

    문제는 지역에서 노골적으로 보수야당과 연합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다. 민주노총 경기본부는 5월 25일에 유시민 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후보와 사회공공서비스 확대를 통한 좋은 일자리 창출 등을 골자로 한 정책협약을 체결했다.

       
      ▲ 지난 26일 수원역 남측 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투쟁 승리 결의대회 (사진=민주노총 경기도본부)

    하지만 이미 민주노총은 심상정 후보를 민주노총의 지지 후보로 정한 뒤에, 당사자인 심상정 후보를 배제하고, 국민참여당 후보를 대상으로 정책 협약식을 체결했다. 민주노총 측은 진보신당 후보의 경우 민주노총 후보로 민주노총의 가치와 정책에 동의한다는 서약서에 서명도 했기 때문에 따로 협약식을 체결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지만, ‘보도 자료’라는 이름으로 이를 언론에 알린 것은 민주노총의 유시민 후보 지지라고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26일에 강원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민주당 이광재 후보와 민주노동당 엄재철 후보는 민주노동당 후보가 민주당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후보단일화에 합의했다고 한다. 애초 민노당과 진보신당은 13일에 여론조사를 통해 진보진영 후보단일화를 이룬 바 있다.

    결국 민주당 후보 지지선언을 할 것이었다면 진보진영 후보 단일화를 위한 비싼 돈을 들여가며 여론조사는 무엇 때문에 했는가? 또한 두 노동자정당을 지지하던 조합원들에게는 어떻게 보수정당 후보에 대한 지지 선언을 설명할 것인가?

    92년 노동자운동이 겪었던 비극들은 2010년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지만, 민주노총 내부는 조용하기만 하다. 이것이 보수야당과 연대라는 ‘침묵의 카르텔’이라고 부르면 과도한 말일까?

    노동해방, 노동자운동의 대의를 다시 생각해보자

    솔직히 나는 2000년대 이후 ‘비판적 지지’니 ‘보수야당에 대한 연대’ 등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민주노총은 노동자운동의 대의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그것은 노동자운동이 노동자들의 자신의 해방을 스스로의 단결과 연대가 아닌, 보수정치세력의 힘을 빌어 이루려는 노동자운동의 노동해방이라는 대의를 망각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후보단일화와 연대를 구하려는 세력은 한미FTA, 불안정노동자 확대, 사회적 양극화, 의료급여제도 등 신자유주의를 통해 주변계급을 대량으로 낳은 동시에, 이들에게 시민권도 부여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노무현을 중심으로 하는 참여정부 정치세력을 ‘실패한 진보’처럼 미화하지만, 이는 엄연히 존재하는 보수정치세력의 과거사를 왜곡하는 것이다.

    노동자운동의 자기 해방은 산업, 지역, 성별, 임금, 노동조건 등 자본주의가 강제하는 차별을 스스로의 힘에 의해 극복해 나아가는 지난한 연대라는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지금 민주노총은 연대의 손을 내밀어야 할 불안정노동자, 여성노동자 그리고 이주노동자가 아닌,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에게 연대를 구하고 있다.

    스스로 누구와 연대해야 할지 모르는 노동자운동은 결국 역사 속에서 노동해방을 지체시킨 세력으로 기록될 것을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나보다. 과연 민주노총 내부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 자기성찰적인 사유를 할지는 두고 보아야 할 문제지만, 민주노총이 다시 노동해방이라는 노동자운동의 대의에 대해 생각해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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