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쫄리면 사퇴하시든지”
        2010년 05월 27일 06: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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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림씨 아십니까?”, 여유롭던 오세훈 후보의 표정이 굳었다. “양회성씨, 한대성씨, 윤용현씨, 이성수씨, 김남훈 경사, 아십니까?”, “네 알고 있습니다”

    지난 18일 방송된 <MBC> ‘서울시장 토론회’에서 노회찬 진보신당 후보는 유일하게 용산참사 문제를 거론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오세훈 후보가 서울시장을 역임하며 벌였던 디자인 정책, 복지, 교육 부분의 맹점에 대해 지적하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노 후보 한 명의 가세로 오세훈-한명숙 후보 간 단조롭게 이어진 토론의 내용이 풍부해졌다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 노회찬 진보신당 서울시장 후보가 지난 25일 낮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사무실이 입주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앞에서 ‘오세훈 후보가 노회찬 후보의 TV토론 참석을 가로막고, 예정된 TV토론을 의도적으로 무산시키고 있다"며 규탄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자)

    오세훈 캠프의 ‘4차원 설명’

    그런데 이후 서울 유권자들은 노회찬 후보를 토론회에서 볼 수 없었다. 그리고 28일 마지막으로 열리는 서울시 선관위 주최 <KBS> 토론에도 노회찬 후보의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각 방송사 별로 토론회 참석 기준이 있지만, <MBC> 이후의 모든 토론에 노 후보가 참석하지 못한 이유는 또 하나가 있다. 오세훈 후보의 거부다.

    28일 <KBS>토론의 기준은 ‘국회의석 5석 이상, 4월19일~5월19일 평균 지지율 5% 이상’이다. 진보신당의 당세와 노 후보의 지지율, 모두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예외 조항이 있다. ‘TV토론에 참석하는 다른 후보들이 동의할 경우’에 한해 노 후보는 토론회에 참석할 수 있다. 그런데 오세훈 후보가 끝내 사인을 거부했다.

    이로 인해 미약하지만 서울에서 지지율 3위를 기록하고 있는 후보이자 원내 정당의 후보, 가장 먼저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으며, 정책공약집을 통해 지난 4년 간 서울시정을 책임있게 비판해 온 노회찬 후보의 정견과 정책을 들을 기회를, 유권자들은 빼앗겼다.

    토론회를 보고 유권자들이 어떠한 판단을 내릴지는 알 수 없다. 이는 온전히 유권자의 몫이다. 하지만 방송사의 높은 토론 참석 기준과 오세훈 후보의 의지로 노 후보는 유권자들 앞에 설 기회도 박탈당했다. 김문수 한나라당 후보-유시민 한나라당 후보의 동의로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는 심상정 진보신당 경기도지사 후보와 비교해 볼 때 진보신당이 그를 "비겁하다"고 쏘아붙인 것도 무리가 아니다. 

    노회찬 후보를 빼려는 오 후보 측의 이유도 4차원이다. 보도에 따르면 “야당에게만 유리하기 때문”이란다. “다른 후보들이 (노 후보 참석에) 동의를 한 것은 셋이서 우리를 공격하면 더 좋으니깐 얼른 동의서를 써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당 후보는 당연히 1명이다. 무서우면 여당 후보를 2명, 3명, 4명 내면 될 것 아닌가?

    "무서우면 여당 후보를 많이 내든지"

    더욱이 오 후보가 4년의 서울시정에 자신이 있다면 상대방 토론을 회피할 이유가 없다. 어느 후보든 근거를 들어 문제점을 제시하면, 더 나은 근거를 들어 이를 반박하면 되는 일이다. 그것이 오 후보에게 더 큰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토론이다.

    결국 오 후보가 동의서에 사인하지 않은 것은 노회찬 후보의 존재가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비교적 토론에 약한 한명숙 후보와의 토론으로 우월감을 즐기겠다는 것이고, 다소 무게감이 떨어지는 지상욱 후보를 압도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오 후보의 거부는 노회찬 후보가 그동안의 서울시정에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해 ‘딱히 할 말 없다’는 답변으로 들리기도 한다. 앞서 오 후보 측의 설명도 그와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영화 ‘타짜’의 대사 하나를 빌리자면, “쫄리면(무서우면) 사퇴하시든지”

    결국 노회찬 후보는 28일, <KBS> 스튜디오가 아닌 선본 사무실에서 진중권 전 중앙대 겸임교수와 우석훈 2.1연구소장과 함께 ‘서울시민을 위한 노회찬 인터넷 초청토론회’를 단독 개최한다고 밝혔다. TV카메라가 아닌 <칼라TV> 카메라 앞에 서게 된다.

    이 자리에서 노 후보는 방송이 시작되기 한 시간 전인 10시부터 오세훈 시정을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천안함 등 현 정국에 대해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아울러 토론이 시작되는 11시부터는 오세훈, 한명숙 후보의 발언에 대해 노 후보가 견해와 대안을 밝히고, 두 패널이 이에 대해 평가하는 식으로 토론에 ‘참석’한다.

    KBS 대 칼라TV

    재미로 치면 <칼라TV> 쪽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실한 내용도 풍부하게 나올 것 같다. <KBS>와 <칼라TV> 시청률 경쟁을 한번 벌여보자고 말하고 싶지만, 접근성에서 한쪽이 너무 불리한 조건이라 여기서 ‘기염’을 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칼라TV> 조회수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선거 때만 되면 ‘투표율을 높이자’고 주장하는 한나라당 후보들은 정작 자신들의 ‘토론에 참여하지 않을 자유’를 누려가며 유권자들의 선택을 방해하고 있다. 오세훈 후보 역시 자신은 토론회에 참석하지만, 다른 후보들이 동의하는 노 후보의 토론 참여를 막아섬으로써 유권자들의 선택의 폭을 축소시키고 있다. 큰 격차의 지지율 1위 후보치고는 꽤나 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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