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 중심 선거, 서민 쫓겨난다?
        2010년 05월 27일 01: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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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선거법」을 개정하면서 합동연설회, 정당·후보자 등에 의한 연설회 방식을 없애버렸을 때, 제시된 명분은 이랬다. ’선거방송토론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미디어를 통한 선거운동을 활성화하면, 예전 방식보다 ‘더 많은 유권자에게 더 효율적으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6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제도 변화는 우리의 선거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

    가장 피부에 와 닿는 변화는 선거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유권자의 일상이 아주, 많이 조용해졌다는 것이다.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과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 울려대던 마이크와 확성기 소리가 대부분 사라졌다.

    유권자를 배제하는 현행 선거법

    개정 전 「선거법」을 이번 지방선거에 적용해 보면, 서울시의 경우 선거구마다 시장선거 후보자 합동연설회 2회, 시의원선거 후보자 합동연설회 2회, 구청장선거 후보자 합동연설회 1회, 구의원선거 후보자 합동연설회 1회를 합하여 최소 6회가 개최되었을 것이다.

    거기다 2004년 이후 도입된 교육감선거 및 교육의원 선거까지 합하면 2~3회가 더 추가되어 선거구마다 모두 8~9회의 합동연설회가 있었을 게다. 또 선거구마다 1회씩 개최할 수 있었던 정당·후보자 등에 의한 연설회까지 합하면, 매일같이 선거구 이곳저곳에서 누군가는 연설을 하고 누군가는 듣고 있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일상을 파고드는 낯선 소음들이 유권자의 입장에서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니었다. 합동연설회는 그나마 지정된 공공장소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소음은 있었어도 일상을 크게 침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경쟁적으로 개최되었던 정당 및 후보의 개별연설회는 더 많은 유권자들을 찾아다녔기 때문에, 일상의 곳곳을 불쑥불쑥 파고들었다.

    유권자들은 굳이 듣고자 하지 않아도 저절로 들려오는 소음들 속에서 누군가의 주장을 들어야만 했다. 길을 가다 낯선 소리에 문득 멈추어 서거나 생계를 위한 터전 근처에서 생업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듣게 되는 그 소음으로, 원하지 않아도 정보를 얻고 호불호를 가지게 되었다.

    2010년, 우리는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으면 선거가 있는지도 모르게 지나갈 수 있는 평온함을 누리고 있다. 관심이 있는 사람은 모월 모일 지정된 시간에 맞춰 공중파 텔레비전을 켜는 수고를 하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은 케이블방송이나 인터넷에서 하는 정책토론회를 검색해서 보면 된다. 단, 케이블방송이나 인터넷을 설치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 한해서다.

    언론사와 유력 후보들만의 자유

    ‘약간의 능력과 특별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그냥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보내는 홍보전단지를 참조해 투표하든지 아니면 투표장에 가지 않아도 될 자유를 더 많이 얻게 되었다. 원하지 않아도 정보를 쏟아 주었던 선거운동들이 대개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편 ‘특별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든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현행 「선거법」에 따르면, 언론사들이 누구를 초청해 토론을 붙이건 그건 언론사의 ‘자유’다. 후보들은 ‘선거방송토론위원회’의 토론 참석만이 의무일 뿐, 다른 토론에 응하건 말건 그건 그의 ‘자유’다.

    언론사와 후보들이 법이 허용한 자유를 맘껏 누린 결과로, 서울의 경우 투표일을 1주일 앞둔 지금까지, 서울시장 후보들이 모두 참석한 정책토론은 단 한 번도 없었고, 4명이 참석한 토론은 딱 1번 있었다. 공중파 방송인 KBS, SBS에서조차 2~3명만을 놓고 간신히 토론을 개최했을 뿐, CBS, MBN, 한국인터넷신문협회 등의 토론회 시도는 오늘까지 모두 무산된 상태다.

    현직 서울시장이자 차기 서울시장 후보가 토론을 거부할 ‘자유’를 맘껏 누린 까닭이다. 4명이 참여한 단 1차례의 토론 이후 1:1토론이 아니면 받지 않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고 한다. 동시에 실시되는 8개의 선거에서 가장 범위가 큰 시장선거가 이러하니, 다른 7개 선거의 후보자들에게 미디어는 그림의 떡이다.

    당연한 결과다. 언론사가 시청률을 중심으로 선거에 임하고 후보들이 자신에게 이로운 전략만을 추구할 자유를 허용한 것이 현행 「선거법」이다. 이런 제도에서, 이런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언론사와 특정 후보가 특별히 공익과 유권자의 알 권리를 중시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관심과 능력 있는 유권자들만 와라

    아니 특정 언론사와 특정 후보들이 특별히 공공성이 높다 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대한민국의 공중파, 케이블방송, 인터넷매체가 극점까지 발달한다 하더라도, 8개의 동시선거 후보자들을 과연 얼마만큼 수용할 수 있을까?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들을 모두 노출시키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또 이 모든 매체들을 통해 정보를 전달받을 수 있는 유권자의 범위는 얼마나 될까? 시간 맞춰 TV 앞에 앉는 수고를 감당할 수 있는 유권자들도, 기껏해야 시장후보 2~3명의 토론만을 1~2회밖에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결과적으로, 2004년 미디어중심 선거운동으로의 전환은 ‘더 많은 유권자에게 더 효율적으로’ 정보를 제공한 것이 아니라, ‘더 관심 있고 능력 있는 유권자들에게만 더 제한된’ 정보를 제공하게 되었다. 과연 이런 결과가, 해보니 알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2004년의 입법자들은, 대한민국의 모든 매체가 최대치까지 발전해도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조건들에 대해서 몰랐을까? 서울이 이럴진대, 지방의 미디어 환경은 더욱 열악하다는 걸 몰랐을까? 언론사들이 기껏해야 2~3명에게만 마이크와 카메라를 허용할 것이란 것이 예측 불가능했나?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만약 몰라서 그랬다면, 적어도 2010년의 입법자들은 제도를 바꾸었거나 바꾸려고 노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관심 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만 정보를 얻고 투표장으로 오라는 것이, 현행 「선거법」의 일관된 취지다.

    돈과 시간을 들일 의지와 능력이 없는 유권자를 굳이 투표장으로 불러들이는 친절은, 적어도 현행 「선거법」에는 발견하기 힘들다. 입법자들과 정당들과 정치인들은, 적어도 이런 제도를 유지하면서 투표율 하락을 걱정하는 위선은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선택하고 판단할 최소한의 정보조차 제공하지 않으면서, 연예인들을 동원해 투표 독려 캠페인을 벌이는데 세금을 쏟아붓지는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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