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膽) 약하면 조용히 물러나시라”
    2010년 05월 26일 09: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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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운동이 한창입니다. 한쪽에선 세상을 바꾸어 보겠다고 결기를 세우고, 다른 한쪽에선 가진 것을 내놓지 않으려고 눈을 부라립니다. 그러나 죄송한 말씀이지만 적어도 광역단체장 선거에선 진보정당은 대충 쫑났습니다. 야당후보 단일화가 유일한 쟁점이 되는 바람에 진보후보들은 힘 한 번 못써보고 관심 밖으로 밀려나 버린 거죠. 그 진보후보들도 실은 자신이 단일후보가 될 꿈을 꾸고 있었는데 억지춘향 노릇을 하게 됐으니 참 진퇴양난입니다.

사실 이번 선거에는 진보정당에게 매우 유리할 수 있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올해의 운기(運氣)입니다. 올해 경인년은 혁명의 기운이 강한 해거든요. 세상을 바꾸어보겠다는 진보정당이 아무래도 혁명의 기운과 가깝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진보정당들 스스로 혁명보다 ‘연합’을 찾아다니는 바람에 혁명의 기운은 오히려 여당 쪽에서 받아먹는 것 같습니다. 진보정당의 지도자들이 관변언론의 창간기념 행사에서 건배하고, 구정권의 봉분에 조문하고….

그러는 동안 경인년의 강한 운세는 진보의 밥그릇을 떠나 보수의 입안으로 들어간 듯합니다. 이아무개씨 보세요. 천안함 사태를 놓고 정의의 화신이라도 되는 양 오히려 서슬 퍼렇게 설치지 않습니까? 우리가 보기엔 한없이 가증스럽지만 올해는 그게 먹어주는 해라는 거죠.

경인년은 혁명의 해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람이 혁명의 초심을 잊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게 사실 마음만으로 되지는 않습니다. 몸도 따라줘야 됩니다. 우리 몸에서 혁명의 기운과 가장 관계있는 장기는 쓸개, 즉 담(膽)입니다. 그러니까 혁명가는 담의 기운을 타고 나거나 길러야 하는 겁니다.

담은 청정지부(淸淨之府)라 더러운 것을 씻고 막힌 것을 뚫어냅니다. 거칠고 질긴 음식을 소화하도록 돕습니다. 통풍 같은 병을 치료하는 것도 담의 힘입니다. 통풍이란 게 찌꺼기가 쌓여서 생긴 병이거든요.

담은 굽지 않고 곧게 쭉 뻗어서 말단까지 맑고 힘찬 기운이 전해지도록 합니다. 남성의 발기력이 한 예입니다. 발기는 말단까지 혈액이 쭉 가서 충만해줘야 되는 건데 그런 일을 담이 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질긴 거 소화 잘 못시키고 발기가 잘 안 되는 분은 담의 기운이 약해졌다고 봅니다. 이런 분은 세상을 바꾸려는 방법도 많이 부드러워졌을 겁니다. 나이가 들면서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2010년 한국에서 진보 정치라는 게 슈크림같은 부드러움만으로 이뤄낼 수 있는 건 아닐 터. 천상병 시인도 아니면서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며 여기 저기 손 내밀다간 아름답지 못한 뒷모습만 남길 수도 있단 말입니다.

덜 익은 푸른 귤이나 탱자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 푸른 빛이 바로 혁명의 결기를 담은 색깔입니다. 담즙도 비슷한 색깔이죠. 약간 살기를 품은 듯하면서 냉철하고 정제된 기운이 느껴지는 색. 그분들은 이런 것들 좀 잡숫고 담의 기운을 키우시든지 아니면 옆으로 물러나 도우시는 게 낫겠습니다. 공연히 부담스런 자리 지키다가 담석증이라도 생길까 걱정됩니다.

탱자의 푸른 빛, 혁명의 결기

물론 세상을 바꾸는 게 결기만 가지고는 안 되겠죠. 사람도 필요하고 권력도 필요하죠. 사람 없이 뭐가 되겠습니까? 사람을 모으고 조직을 만들어내야 하고, 선거를 통해 정치권력도 획득해야 하고….

조직도 권력이고 정치권력도 권력입니다. 인체에서 권력을 담당하는 기관은 간(肝)입니다. 혁명을 담당하는 담과 권력을 담당하는 간은 둘 다 목(木)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둘이 모여 하나의 목(木)이 됩니다. 서로 상보적이란 뜻이죠. 동전의 양면처럼 반대쪽을 보지만 둘이 모여서 하나의 기능을 합니다.

가령 간은 뿌리처럼 영양분을 모아들이고, 담은 줄기처럼 그것을 흩어서 말단까지 공급합니다. 정치에선 사람을 모으는 게 간이고 그 모인 힘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한 길로 치고 나가는 게 담입니다. 중간에 걸리적거리는 것을 제거하는 것도 담의 옵션입니다. 그래서 약간은 살기를 띄게 되는 겁니다.

간과 담은 서로 조화를 이뤄야겠지만 그게 쉽지 않습니다. 주로 간이 비대해지는 게 문제가 됩니다. 그게 본능에 더 가깝거든요. 간이 비대해진다는 건 흩어주는 것보다 긁어모으는 게 더 중요해졌다는 거고, 정치에선 혁명보다는 권력 자체가 더 소중해졌다는 겁니다. 본말이 뒤집어진 거죠.

우리 몸에서 간이 비대해지고 상대적으로 담의 기능이 약해지면 간을 비롯한 여러 조직들, 특히 말단 조직들에 찌꺼기가 끼기 시작합니다. 지방간이니, 통풍이니 하는 현상이 생기는 거죠. 더 진행되면 조직은 피로(갈등)를 스스로 해결할 힘을 잃어갑니다.

비대해진 간은 쉽게 분노합니다. 사적인 분노죠. 공적인 분노는 담의 결기를 강하게 하지만 사적인 분노는 간을 딱딱하게 만듭니다. 유연함을 잃은 간에는 피가 모이질 않습니다. 정치에서 피는 사람이죠. 갈 길을 잃은 피는 엉뚱한 곳에 모여서 팽창하다가 터져버리기도 합니다. 식도정맥류 출혈이란 건데 지혈이 잘 안됩니다. 간경화 환자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쓸개와 간, 그리고 진보정당

담의 청정한 기운을 되살려내야 진보정당이 삽니다. ‘와신상담’이란 말처럼 쓰디쓴 맛을 마다 않고, 질긴 섬유질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다시 한 번 담의 결기를 키워보지 않으시려는지. 주변에 소심하고 겁 많은 아이가 있다면 이런 방법을 한 번 써보시길 권합니다.

담의 기운은 측면으로 흐릅니다. 옆구리 쪽이죠. 조직으로 보면 전면에 나선 간판스타도 아니고, 뒤를 따르는 충성스런 다수 조직원도 아닙니다. 직책이나 뚜렷하게 기여하는 바도 없이 옆에 붙어서 잔소리하는 입들, 이런 불평가들이 조직의 균형감각과 청정함을 유지케 하는 힘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불평가들이 다 좋은 입을 가진 건 아니겠지요.

올해 경인년(庚寅年)의 경(經)은 금(金)의 숙살(肅殺·숙청과 살생)기운을 뜻하고 인(寅)은 목(木)의 혁명, 용맹함을 뜻합니다. 무시무시한 백호에 비유합니다만 꼭 그렇지 않습니다. 겨우내 얼어붙은 땅을 뚫고 나오는 연약한 싹이나 어린 가지가 바로 경인의 모습입니다. 밟아버리면 흔적조차 남지 않을 것같이 미약해 보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창대한 나무로 자라날 소중한 시작이기에, 두꺼운 겨울땅을 맨몸으로 뚫고 나온 기상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기에 모두가 경이롭게 바라보는 겁니다.

지금의 모습만으로도 결코 부족함이 없습니다. 혹 못미더워서 덩굴식물처럼 자신의 몸을 배배 감으며 다른 나무의 굵은 가지에 기대려 하다간 나중에도 제 하늘을 갖지 못할까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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