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호만 요란, 실체 없는 반MB연합
        2010년 05월 26일 09: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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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초 이번 지방선거에 관심을 두지 않으려 했다. 역대 지방선거가 대부분 정부여당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이번에는 아무리 봐도 기대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설령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이긴다고 크게 달라질 게 없다.

    게다가 선거 때만 되면 재발하는 민주대연합을 보면 암담하다. 무엇보다 명색이 지방선거인데 지방정치는 중앙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가 실종되어 버렸다.

    지방정치는 실종되고 반MB만 남은 선거

    그동안 수 차례에 걸쳐 지방정치의 중요성과 ‘반MB 연합’의 몰가치를 주장했지만 투표일이 채 일주일도 남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는 우이독경이다. 그래서 부르주아 정치에서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 아니다. 비록 1990년대에 지방자치가 부활하여 민주주의를 일부 진전시켰지만 지방선거와 민주주의 사이에 항상 상관성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 지난 6일 정세균 민주당 대표, 이재정 국민참여당 대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송영오 창조한국당 대표가 모여 6.2 지방선거 ‘단일후보 공동 선거지원’에 합의하고 있다 (사진=민주노동당)

    지방자치의 핵심은 지역정치의 민주화다. 지역정치의 민주화는 중앙으로부터의 실질적인 권한 이양과 재정자립도를 높여서 중앙권력으로부터 지방정부의 자율성을 제고하는 것이다. 또한 주민들의 주체의식에 의한 주민자치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를 보면 지방정치는 실종되고 ‘반MB 연합’만 남았다. 문제는 구호만 요란하고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반MB 연합’을 신성화함으로써 선거를 민주 대 반민주라는 구태의 대립구도로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대연합은 진보세력을 독자적 정치권력을 추구하는 세력이 아니라 외곽 세력으로 파악하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토사구팽으로 제격이다. 지금의 위기는 반MB를 안 해서 온 것이 아니고, 대동단결을 못해서 이명박이 독주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 국민참여당처럼 자연인 노무현, 정치인 노무현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대중들의 한 조각 낭만을 판돈으로 다시 과거 노무현 시절로 돌아가자는 선동은 정말 추악하고 우매한 짓이다. 코 묻은 돈 빼앗는 것처럼 경멸해마지 않는 비열한 짓이다.

    한국 사회에 진보정당의 출현은 인물정치를 타파하고 진보의 가치와 정체성 중심의 정치를 목표로 했던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민주당과의 연합은 진보의 가치를 결정적으로 훼손하고 정체성을 상실하는 것이며 나아가 진보진영 내부의 혼란을 조성하는 것에 불과하다.

    비록 민주당과의 연합이지만 일부 기초단체장과 지방의회 획득이 진보진영의 일보 진전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는 궤변은 이제 그만두자.

    과거 민노당이 대선에서 참패한 핵심적인 이유는 한국 자본주의 모순 악화와 사회양극화에 따른 노동자 민중들의 삶의 파탄에 대해 반자본주의적 노동자 정치의 강화로 대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우경화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민노당이 열우당 2중대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무능한 정치세력으로 인식되어 동반 몰락하지 않았던가.

    반MB에는 진보가 없다

    과거 민주 대 반민주 대립구도가 명확하던 시절에는 민주대연합이라는 단일대오를 형성하는 것은 계급구성의 조건에서나 대의명분 상으로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계급분화가 진척되고, 시민사회의 이해관계가 다변화된 사회에서 ‘반MB 연합’을 만들어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이명박 정권의 독선적 국정운영과 반민주적 정치행태를 두고 선거연합이 필요하다는 정치적인 판단은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반MB 연합’에서는 진보의 가치와 정체성을 찾을 수 없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정권이었던 민주당과의 연합이 선거공학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 강기갑 민주노동당대표와 유시민 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후보(사진=정택용 기자 / 진보정치)

    아무리 이명박 정권을 ‘악마화’하고 반MB 연합을 ‘신화화’하려 해도 한미FTA, 비정규입법, 해외파병 등을 솔선수범했던 민주당과 연합하는 것은 창피하고 낯 뜨겁지 않은가.

    엄밀히 말해서 노무현 정부와 현 정부와의 질적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명박 정권은 개념과 원칙없이 자신에게 유리한 것은 김대중, 노무현 10년 뿐만 아니라 진보진영의 일부 담론마저 먹어 삼키고 있다. 그렇다면 반신자유주의 전략이 반MB연합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은 매우 협소하다.

    선거 결과 설령 수십 개의 단체장과 수십 석의 지방의회 의석을 획득해도 선거평가는 동일한 지점에서 형성될 것이다. 물론 정치는 생물이라서 다수를 따라다니는 찌질한 세력이 존재하겠지만 진보적 가치를 평가 기준으로 놓고 보면 맹목적 성과주의는 용납할 수 없다. 그들은 이미 진보의 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진보적 가치를 다시 생각하자

    과거 사회운동에서의 독자후보, 정치참여에 대한 우려는 국민적 지지 기반의 부족을 이유로 한 시기상조론이었고 따라서 민주연합론으로 논리적 귀결이 이루어졌다. 그것은 진보정치세력의 지지 기반 부족과 현실론의 과잉 그리고 그로 인한 현실적 규정력 상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비판적 지지’와 ‘후보단일화’로 나뉜 사회운동진영의 차이 없는 입장에서 출발한 민주대연합은 일부 정치세력의 전통이 되어 이제는 후대에 물려주어야 할 중요한 유물이 되어 버렸다. 앞으로 그들과 무엇을 같이 할지 고민스럽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자유주의 개혁정당으로 커밍아웃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사회운동의 지원에 힘입어 보수 야당이 승리하더라도 사회운동에 견인되거나 사회운동의 요구를 반영한 경우는 거의 없었으며, 오히려 사회운동의 다수가 일방적으로 ‘자유주의 부르주아’에 흡수·편입된 뼈아픈 상처를 안고 있다. 그럼으로써 사회운동이 정치적 분열과 이로 인한 정치력의 손상으로부터 결코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짊어지고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 진보의 역사는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 진보적 가치와 정체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재구성하자. 역사는 진보하기 마련인데, 그 진보를 앞당기는 것은 노동자 민중들의 적극적인 참여이다. 우리가 꿈꾸어 온 정의 세상, 평등 세상, 평화 세상은 단순한 의회와 선거라는 부르주아적 틀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현장에서의 적극적인 참여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대중들의 의식 성숙도와 적극적인 참여가 결합되어 화학적인 반응을 일으키면 사회 변화를 동반하고 민주주의를 성숙하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 국면에서 진보진영은 대중들에게 새로운 세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진보적 가치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진보세력의 정치적 역할은 지지도로만 환산되는 것이 아니다. 희망적인 대안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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