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진보적 정치리더십 필요할 때
    대중 급진화, 차이 인정 반MB 연합을
        2010년 05월 25일 07:5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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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얼마 전 여의도에서 택시를 탔다. 한나라당 당사 부근에 있는 커피숍으로 가고 있었는데, 편하게 한나라당 당사 앞에 내려달라고 했다. 택시 운전사는 내가 한나라당에 근무하는 줄 알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의 말인 즉, “지금 구도는 60년대 공화당과 민주당‘의 구도와 같다. 공화당이 아무리 잘못해도 그 지지자들이 민주당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민주당이 비젼도 없고 새롭지 않기 때문이다”는 것이었다.

    요즘 나는 조금 다르면서도 유사한 분석을 하고 있었다. 단지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었다. 즉 60년대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는 저항운동이 가열차게 전개되었다. 예컨대 60년대 중반 한일회담 투쟁 때는 박정희 정권을 붕괴시킬 우려를 자아낼 정도로 발전하기도 했다.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할 때

    그러나 60년대에는 민주당이나 신민당(67년에 만들어짐)이나 윤보선 후보가 박정희를 넘어설 수 없었다. 그것은 박정희를 넘어서는 대안적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퇴행적 정당으로 비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정작 반독재 민주화운동은 한단계 비약은 바로 70년대 김대중과 김영삼이 주창했던 ‘40대 기수론’이 나타나면서였다. 박정희를 대체하는 정치적 리더십의 ‘희망’이 보일 때 대중들은 움직이기 시작하고 반독재 민주화운동도 거대한 발전을 해가게 된다. 이렇게 ‘희망으로 발동이 걸린’ 반독재 운동을 수용하기보다는 폭력으로 진압하고자 했기 때문에, 박정희 정권은 무너졌다.

    87년 이후 지난 20년 동안 반독재 세력을 대표하여 민주당으로 상징되는 반독재 개혁자유주의 정당이 있었다. 그런데 평가가 어떠하건, 정작 반독재 민주정부를 거치면서 그 정당의 새로움과 비전이 고갈되었고, 자유주의 정당의 단일 리더십이 깨졌다. 그리고 그것을 대체하는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이 부재하다는 것이 바로 현단계 한국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정체 지점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MB정부 하에서의 고통을 넘어서기 위하여, 자연히 반MB 연합을 위한 노력들이 나타났다. 힘이 부치니 연합해서라도 희망을 만들어보고, 단일 리더십이 없으니 집단 리더십을 가지고라도 MB에 대항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5+4로 상징되는 반MB 연합 시도는 민주당의 리더십 부재와 민주당 내부의 다양한 이기심들로 인하여 좌초했다. 그렇게 되자 불안이 커지는 시점에서, 국민들은 수도권의 유력 후보들, 예컨대 김진표-유시민의 단일화에 대해서도 반가움을 느꼈고, 결과의 예측 불가능성이 더 해져, 단일화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

    노회찬・심상정, 전진 보폭 만큼 반MB는 풍부해져

    이러한 상황의 반전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내 시각에서 보면, 전 정권의 두 정체성을 상징하는 연합만으로는, 자칫 ‘전 정권 대 현정권’의 대립구도로 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친노세력이 부상하면 한나라당이 오히려 승산이 있다고 하는 한나라당 일각의 분석도 고민해보아야 한다.

    유시민-김진표의 연합이나, 한명숙과 이상규의 연합만으로는, 한나라당을 압도하기에는 충분히 풍부하지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민주당-열린우리당으로 상징되는 부분을 넘는 더욱 높은 수준의 희망을 상징하는 세력이 성장하고 그들이 우뚝 대중들 사이에 서고, 그 기초 위에서 연합을 해야 그때의 반MB가 MB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이다. 현재의 반MB가 국민적인 것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충분히 새로운 대안적 리더십들이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이후 보수언론에 의해 과잉 폄훼당했던 참여정부를 국민들이 재평가하고 있지만, 분명 참여정부 하에서 실망한 국민들도 존재한다. 한나라당이나 참여정부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나 빈민들도 존재한다.

    물론 MB정부의 신권위주의에 절망하는 젊은 세대, 그리고 정치 일반에 대해 허무주의적으로 느끼는 젊은 유권자들도 또 따로 존재한다. 이러한 다양한 국민들이 새 정치라고 느낄 수 있어야, MB정부에 실망한 국민들에게 온전한 희망으로 다가갈 수 있다.

    노회찬과 심상정의 외로운 투혼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이 ‘어려운 완주’를 하건, 완주하지 않고 ‘막판 단일화’를 하건, 그들의 전진의 보폭 만큼, 한국정치의 희망이 자라고 반MB는 풍부해진다. 그들의 어깨에 MB를 넘어서는 희망이 걸려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79년과 07년, 한단계 높은 민주주의로 가는 병목지점

    약간 구조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한국사회가 아시아의 여러 민주화 국가들과 비교하면 87년 이후 지난 20년 동안 ‘자유민주주의적 개혁’단계를 상대적으로 성공적으로 거쳐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한단계 높은 민주주의 단계로 이행하는 병목지점에 도달한 것이다.

    돌이켜 보면, 70년대 이후 반독재 민주화운동이 발전해왔지만, 79년 박정희의 죽음이라는 계기가 주어졌을 때, 결국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가는 병목지점을 통과하지 못하고, 전두환 정부라고 하는 ‘우회로’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전두환 정부 하에서 국민들이 고통받으면서 반독재 민주화운동과 대중 자신의 거대한 변화가 나타났고, 결국 민주화의 대전환점인 87년 6월 민주항쟁이 도달하였다. 현단계 한국사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사실 노무현 정부 말미에 이미 한단계 높은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병목지점’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추동하는 대중적 힘이 부족하였고 결국 MB정부라는 ‘우회로’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이제 MB정부 하에서 고통받으면서 진보개혁운동과 대중 자신이 변화하면서 또다른 추동력을 얻어, MB정부를 넘어서야 한다.

    포스트-민주화 시대의 두가지 도전

    변화와 새로운 도전의 성격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나는 ‘포스트-민주화’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87년 이후 지난 20년간을 ‘민주화’ 시대라고 표현한다면, MB정부 이후 한국사회는 ‘포스트-민주화’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포스트-민주화 체제 하에서는 여전히 많은 민주개혁의 과제-예컨대 보수언론의 개혁 등-가 남겨져 있음으로 해서 ‘(민주)개혁 대 반개혁’의 구도가 일정 측면 유효하게 남아 있지만, 이제는 새로운 대치선을 형성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대치를 현실화하기 위해 두가지 주체적 변화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의 출현이다. 앞서 노회찬·심상정의 투혼을 강조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반독재 개혁자유주의세력의 정치적 리더십을 대체하는 더욱 새로운 진보적인 정치적 리더십을 출현시켜야 한다.

    아니 87년 6월 민주항쟁에 담겨진 민주주의적 과제를 더욱 급진적으로 해석하고 한단계 높은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리더십을 창출해야 한다. 반독재 민주세력의 정치적 리더십의 소진은 이들이 “독재와 싸우는 데는 선전(善戰)하였으나 결국 세계화의 도전에 선전하지 못한" 데서 주어진다.

    즉 반독재 민주정부 시기에 반독재 자유주의세력이 대중들의 민주개혁적 정치요구를 일정하게 실현하였지만,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프레임을 수용하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파괴적 현상들-예컨대 양극화와 고용불안정 등-에 급진적인 사회경제정책으로 응전하지 못함으로써 대중들이 이반해 버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의 의미로 대중에게는 더 이상 희망의 언어가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다. 최장집의 표현을 빈다면, “한국의 민주정부는 급진적 신자유주의의 발전으로 인하여 민주주의의 기반 자체를 허무는 위험지역에 접근”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민주주의 담론을 자신의 정당성의 기반으로 두고 있는 반독재 민주세력(개혁자유주의세력)들의 정치적 주도권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였고, 이명박 정부의 출현에서 상징되듯 새롭게 보수세력이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는 결과로 나타났다고 생각된다.

    최근 ‘연합정치’의 공간은 반독재 개혁자유주의세력이 세계화의 도전 앞에서 좌절했으나, 진보정치세력이 그 리더십을 대체하지 못함으로써 출현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나는 지난 20년 간의 정치적 리더십을 넘는 새로운 리더십을 진보정치세력이 주도적으로 형성하고 담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 모두는 87년 6월 민주항쟁의 견결하고 급진적인 계승자로서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 혹은 지난 10년 동안 대중들이 좌절하였던 문제들에 대해서 새로운 극복의 희망을 담지하는 세력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않된다. 여기에 지난 민주정부 시기에 더욱 급진적인 입장에 서서 새로운 희망을 만들고자 했던 세력들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하겠다.

    세금폭탄이라는 ‘선동’에 주눅들지 않는 국민

    둘째의 과제는 국민들의 진보적 변화가 이루어지도록 진보적 세력들이 아래로부터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진보적 세력들이 대중적인 기반을 가져가는 과정과 동일한 과정이다. 이를 필자는 ‘대중의 급진화’로 표현한다.

    이명박 정부라는 ‘우회로’를 도약의 계기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 한단계 높은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담지하기 위해, 대중들 자신이 새롭게 변화해야 하며, 진보세력은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예컨대 한단계 높은 민주주의는 ‘증세와 복지확대’를 피해갈 수 없다. 그럴 때 ‘세금 폭탄’이라고 하는 보수언론의 ‘선동’에 주눅들지 않고 과감하게 ‘부유세’를 요구하는 대중이 출현해야 한다.

    민주정부 10년에 약간 제도화된 복지에 대해서 보수언론들이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융탄폭격할 때 “또 장난치는군”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진보세력은 지역 풀뿌리 수준에서, 그리고 보수 일색인 대중들의 생활세계 현장에서까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어려운 ‘하방(下方)적 실천’을 해야 할 것이다.

    ‘차이 속 연합’의 중요성

    마지막으로 나는, 앞으로의 정치연합이나 반MB연합은 ‘차이 속의 연합’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 연합 논의는 사실 대중 앞에 충분히 차이가 드러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MB를 압도할 수 있을 정도의 차이들이 충분히 드러나지 못했고,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과 다른 정치세력들이 대중 앞에 부상하고 대중 속에 기반을 갖지 못한 것이 문제이다.

    대중들의 좌절된 요구와 이해가 수렴될 수 있는 새로운 ‘차이로 이루어진 희망’을 만들어내야 한다. 나는 진보의 전진을 위해서 반MB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토론회에서 김민웅 선생이 반MB야말로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핵심적인 구성부분이라고 한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반MB가 ‘폭력적으로’ 작동해서는 않된다. ‘제2의 6월 항쟁’을 기대한다거나 민주세력이 다시 결집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묻지마식 반MB’에 대해서는 전략적 입장에서도 그리고 실리적 입장에서도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

    서둘러 반MB로 모인다고 그 연합이 대중적 효과를 갖는 것도 아니다. MB가 잘못한다고 우리에게 기회가 오는 것이 아니며(지금도 많이 잘못하고 있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역전의 노장’들이 모인다고 지지가 다시 모아지는 것도 아니다.

    결국 차이를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 앞에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을 넘는 ‘차이’를 갖는 세력들이 대중적으로 부상하고, 그 바탕 위에서 연합이 이루어져야 MB를 뛰어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릴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 이 글은 <한겨레>에도 동시에 게재되며, 신문에 실린 것은 이 원고의 전반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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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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