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정치 1번지, 멀어진 진보양당
        2010년 05월 24일 06: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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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은 누가 뭐래도 진보정치의 1번지이자 중심이다. 전통적으로 강력한 노동조합을 보유하고 있고 그 노동조합의 힘을 바탕으로 2명의 북구청장과 3명의 동구청장을 만들어냈다. 즉, 울산 북구와 동구의 주민들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진보 지방자치를 경험해 본 사람들이다.

    진보정치,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다

    그러나 울산시민들은 단 한차례도 진보정치에 광역단체장을 양보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이 창당 이후 처음 맞은 2002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박맹우 후보는 당시 52.2%를 얻어 43.6%를 얻은 민주노동당 송철호 후보를 8.6%포인트 차로 이겼으며, 2006년에는 민주노동당 노옥희 후보가 27% 지지율에 그치며 박 후보에게 또다시 패배했다.

    그러나 울산에서 진보정치는 강하다. 광역시로 승격한 97년 이후 처음 치러진 98년 민선 구청장 선거에서 조승수 후보와 김창현 후보를 나란히 북구청장과 동구청장이 되었고, 이후 김창현 후보가 동구청장직에서 물러나자 그의 부인인 이영순 후보가 당선시켰으며, 2002년 선거에서는 민주노동당의 이름으로 이상범 후보와 이갑용 후보를 각각 북구와 동구청장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2006년 지방선거에서 진보는 북구와 동구를 모두 빼앗겼다. 동구에서는 당시 정몽준 무소속 의원의 지원을 받은 정천석 후보가 민주노동당 김종훈 후보를 꺾었고, 북구에서는 한나라당 강석구 후보에게 민주노동당 김진영 후보가 패배했다. 광역-기초의원에서 선전을 거두기는 했으나 사실상 진보정치 1번지를 한나라당에 내준 셈이다.

    전국적으로 한나라당 열풍이 불긴 했지만, 민주노동당이 8년 간 지켜온 2곳의 지자체를 빼앗겼다는 것은 뼈아픈 대목었다. 후보의 낙선보다 ‘진보정치 실험’의 실패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후 2008년 총선에서도 동구에 출마한 진보신당 노옥희 후보와 북구에 출마한 민주노동당 이영희 후보가 나란히 패배하면서 울산은 한나라당 일색이 되었다.

    그러나 울산에서 진보진영은 지난해 4.29 재보궐선거를 통해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한나라당 윤두환 후보가 선거법 위반으로 물러난 후 진보신당 조승수 후보와 민주노동당 김창현 후보가 조승수 후보로의 단일화를 이루어 내며 한나라당 박대동 후보에게 승리를 거둔 것이다.

       
      ▲북구청장 단일화 투표가 끝난 후 손을 맞잡은 경쟁자들.(사진=민주노총 울산본부) 

    구청장 선거 해볼만

    이는 울산에서 진보진영이 거둔 모처럼의 승전보로, 이와 같은 연장선에서 이번 2010년 지방선거는 진보가 반전의 계기를 타고 울산을 다시 찾아올지, 한나라당이 울산을 수성할지 여부를 판가름 할 수 있는 갈림길이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특히 울산 북구와 동구에서 진보진영이 구청장 후보단일화를 이루어 내며 사실상 한나라당과 1대1 구도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동구에서는 민주노동당 김종훈 후보가 진보신당의 서영택 후보를 경선을 통해 꺾고 단일화를 이루었고, 북구에서는 민주노동당 윤종오 후보가 진보신당 김광식 후보와 무소속 이상범 후보를 꺾고 단일후보가 되었다.

    여기에 이 지역 한나라당 후보들이 ‘여론조사 조작’ 혐의로 1심에서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500만원의 벌금을 받은 것도 호재다. 시의원 선거에서도 울산북구 3선거구를 제외하고 양 당의 후보조정이 이루어진 상태다. 다만 2~3인을 뽑는 기초의원 선거에서는 양 당이 후보조정을 하지 않았다.

    문제는 광역단체장이다. 현재 박맹우 현 시장이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3선에 도전하는 가운데 민주노동당 김창현 후보와 진보신당 노옥희 후보가 동시에 출마했다. 현재 판세는 박맹우 후보가 50~60% 정도로 압도적 차이로 1위를 달리고 있는 반면 김창현 민주노동당 후보가 13~23%, 노옥희 진보신당 후보가 6~10%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현재로서는 양 측이 단일화를 해도 박맹우 울산시장의 3선을 저지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양 측이 단일화 할 경우 지지율의 단순합산에 발생할 수 있는 시너지 효과까지 계산하면 박 후보의 높은 지지율에는 근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민노당, 진보신당을 꺾다 

    그러나 양 측이 모두 단일화에 소극적이다. 여기에는 양 당간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2월 양 당과 함께 민주당, 국민참여당이 후보단일화 논의를 시작했지만 3월 17일, 진보신당이 중앙당의 ‘5+4협상회의’ 탈퇴와 함께 후보단일화 논의 중단을 선언하면서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국민참여당은 3월 24일 김창현 후보를 야3당 단일후보로 추대하면서 양 측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이후 진보신당은 협상 복귀를 선언하면서 그동안 논의된 ‘경쟁방식’이 아닌 ‘정치협상’ 방식의 후보단일화를 제안했지만, 민주노동당이 이를 거부하면서 단일화가 무산되었다.

    진보신당이 ‘정치협상’ 방식을 주장한 것은, 경쟁방식으로 광역시장은 물론 울산 북구 등에서 민주노동당에게 이길 수 없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고수하고 있는 데다 울산지역에서 양 당의 조직률이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 경선으로는 패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로 경선을 통해 진행된 북구와 동구의 후보단일화는 모두 민주노동당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노동자 1번지인 울산에서 당의 입지 강화를 노리던 진보신당에겐 뼈아픈 패배인 셈이다. 애초 노 후보가 “광역단체장을 포기하더라도 울산북구에서 진보신당 후보로 단일화에 나서달라”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북구와 동구가 경선을 통해 단일화를 한 만큼, 여론에서 김창현 후보에게 밀리고 있는 노옥희 후보가 광역시장 후보 단일화에 쉽게 나설 수 없는 상황이다.

    진보신당 울산시당의 한 관계자는 “패배가 예상되는 경선방식을 받아 북구와 동구에서 후보단일화를 이루었는데, 민주노동당은 시의원 한 곳(북구3선거구)에 대한 양보의 의사도 없다”며 “없는 집에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시장 후보단일화는 어려울 듯

    노옥희 진보신당 울산시장 후보도 “지금 (김창현 후보와의)지지율의 차이는 ‘반칙효과’”라며 “야3당이 진보신당을 제외하고 합의를 이루어낸 것이 후보단일화의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노 후보는 “김창현 후보가 결단하면 단일화가 이루어진다”며 “민주노동당은 진보진영의 단결의 대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앞서 합의를 깬 것은 진보신당”이란 입장이다. 민주노동당 울산시당의 한 관계자는 “말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우리도 서운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서로 과거의 서운한 점을 뒤로 미루고 후보단일화에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선거도 1주일여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현실적으로도 광역단체장 후보 단일화는 멀어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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