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파 찍은 동네 아줌마들 욕망 아나?
        2010년 05월 24일 07: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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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에 잘 알려진 중견 탤런트 ‘대발이 아버지’가 우리 동네에 국회의원 출마를 했었다. 그 때, 나는 엄마가 토산품을 팔던 면목시장의 가게 앞에서 매일 팽이를 치고, 자전거를 타고 놀곤 했는데 갑자기 당시 공전의 시청률을 자랑했던 주말 드라마의 배우들이 모두 등장한 것이었다.

    탤런트와 아나운서 후보

    나는 자전거를 타며 그들의 유세를 따라다녔다. 사인이라도 받아야 했다며 후회했었다. 그리고 그가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4년 동안, 내가 다닌 고등학교에는 강당이 하나 새로 지어졌다. 그 뿐이었다고 동네 아저씨들이 가게 앞에서 욕을 하곤 했다.

    재작년이었다. 총선이 있었고, 마찬가지로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유세가 계속 되었다. 평소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양복쟁이’들이 알록달록한 점퍼를 뒤집어쓰고 나타났다. 면목시장과, 도깨비시장 등에 출몰하기 시작했다. 지나다니며 시장 아줌마들에게 말을 걸고, 음식을 먹어보기 시작했다. “힘드시죠?” 혹은 “수고하십니다.” 그들은 곧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버스 정류장 앞에서도 유세는 진행되었는데, 당시 출마했던 어떤 후보의 선거 운동이 굉장히 신기했다. 그 후보는 그냥 지나가는 아줌마들을 살포시 안았다. 그리고 등을 두드리며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옆에서 익숙한 구호로 “기호 몇 번 누구, 특급 사랑이야!”라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사람들과는 뭔가 분별되는 행동이었다.

       
      ▲ 지난 2008년 총선 당시 노원 병 선거 벽보

    늘 일요일 아침 노래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1번 후보는 달라져 있었다. 보기만 해도 후광이 나는 낯빛과 익숙하면서 차분한 목소리는 동네 아줌마들을 장악해 버렸다.

    엄마는 그 후보를 찍겠다고 해서 아빠랑 한 바탕을 했고, 아빠에게는 그를 안 찍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하지만 한국의 투표는 무기명 비밀 투표다.) 그리고 선거가 끝났을 때 진행자 출신의 후보는 우리 동네의 국회의원이 되었다. 전임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내고 동네에서 3선으로 국회의원을 했던 후보와, 민주당의 후보는 참패했다.

    딴따라한테 혹한 아줌마 때문이라고?

    자신들의 정강정책들도 변변히 내밀지도 못하는 자료집과, 한 번도 ‘정치’ 아니, ‘공적 영역’이라는 곳에서 활동조차 하지 않았던 그들은 손쉽게 국회의원이 되었다. TV에 나왔던 인기를 가지고 말이다.

    ‘야당 성향’의 동네 아저씨들은 슈퍼마켓 앞에 있는 파라솔에 모여 오징어 땅콩에 맥주를 마시며 1992년 총선을 떠올리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 “미친 여편네들 때문에 XXX가 되고” 그런데 그게 ‘딴따라’에 혹한 아줌마들 때문인 건 맞는 걸까? 혹은 다들 보수적으로 변한 것일까?

    아줌마들이 어차피 자신들의 고단한 하루를 들어주지 않고 말해주지 않는 ‘잘 알지도 못하는’ 후보들에 끌리지 않는 게 당연했을 수는 있다. 차라리 TV에서 주말 연속극을 통해, 그리고 노래 프로그램을 통해 장사와 공장일 때문에 노곤해진 심신을 위로해준 사람들보다 나은 후보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는 진실을 온전히 설명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통계가 있다. 손낙구의 서울시 통계(http://blog.ohmynews.com/balbadak/)를 따르자면 강남구의 대졸자 혹은 대학생은 61%다. 중랑구의 대졸자 혹은 대학생은 29%다. 참고로 서울평균은 41%가 대졸자 혹은 대학생이다. 강남구의 기능직과 단순노무자를 합치면 11%인데, 중랑구에서는 그 비율이 28%이다. 서울평균은 18%이다.

    또 강남구에서는 가구 중 54%가 아파트에 살고, 중랑구에서는 가구 중 27%만이 아파트에 산다. 그나마도 신내동에 밀집되어있는(예를 들어 신내 2동에서는 전체의 97%가 아파트에 산다) 아파트 단지를 빼면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중랑구가 투표율이 낮은 이유

    쉽게 이야기를 해보자면, 내가 사는 동네의 사람들은 대체로 ‘가방끈이 짧고’, ‘노가다’를 많이 하고, ‘아파트 구경’은 거의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학력을 가지고 다시 이야기하자면 강남구의 인구 중 61%를 채우는, 대학에서 형성되었을 386세대도 별로 없다. 본인들의 ‘이익’을 영리하게 사고할 만한 사람들도 많지 않다.

    게다가 중랑구는 취업자 중 사업장에서 일하는 비중은 가장 낮고, 야외나 거리 또는 운송수단에서 일하는 비중은 가장 높다. 쉽게 말하자면 매일 매일 돌아다니면서 정해진 장소의 ‘회사’도 없이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말은 ‘퇴근 시간’도 확실하지도 않고, 휴일도 일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재정자립도 25개 자치구 중 꼴지를 늘 경합하고 ‘공공적’이랄 게 거의 없는 동네. 영화관도 거의 없고, 도서관도 거의 없는 동네. 책을 읽을 시간도, 영화를 볼 시간도 거의 없는 동네. 많은 이들이 <광부 화가들>의 노동자들 같은 삶을 살지만 그 작품을 볼 수도, 아니 알지도 못하는 ‘노동자들’. 문화적으로 ‘방치되어버린’ 삶. 이는 서울 변두리에서, 그리고 수도권 바깥의 지역에서 계급과 상관없이 대체로 관철되기도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가지고 볼 때 2008년, 한나라당이 당선되었던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손낙구의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에 따르면 2004년, 2006년의 가장 투표율이 낮은 동네에 중랑구가 꼽힌다. 2008년 총선과 교육감 선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노인들의 투표율은 ‘상수’에 가깝기 때문에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2002년, 2004년도에 투표 참관인을 했었는데 가장 열성적으로 투표하는 사람들은 늘 노인들이었다.

    우파 찍은 아줌마들의 보이지 않는 욕망

    반면 매일 돌아다니면서 일하는 사람들이 투표장까지 가는 것은 어려웠다. 게다가 ‘가방 끈 길고’ 어떤 ‘가치’를 중심으로 혹은 정치적 ‘이념’을 가지고 투표를 하려고 집단적으로 시도할 386세대도 별로 없었다. 대학생들은 도서관에 갔고, 또 대학에 가지 못한 많은 20대들은 ‘비정규직 44만원 인생’ 덕택에 출근을 했다.

    내 친구들은 총선은 뭔지도 몰라서 투표 안 하거나 아빠가 시킨 정당을 찍었다. 더 많은 애들은 투표를 아예 안 했다. 간만에 휴일이라고 술을 마시고 TV를 보거나 게임을 했다. 더 결정적으로는 전통적인 ‘야당 지지자’ 몇 명을 빼면 역동적으로 어떤 자신들이 욕망하는 바를 투표를 통해 표출해야할 사람들이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에 전혀 흥미를 못 느낀 것이다. 아무도 보수적으로 변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런 조건들은 ‘결핍’ 혹은 ‘좌절’을 안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말하는 것만 같다. 다만 그들이 ‘투명인간’일 따름이다. “생각하면 있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투명인간들”. 선거의 결과로는 우파와 보수정당을 찍지만, 사실은 다른 욕망을 말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욕망이 보이지 않을 따름이다.

    TV에 나오는 연예인에 ‘홀려서’ 찍었을 것 같은 그 아줌마들의 욕망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다만 그 욕망을 자극하는 새로움이 없기 때문 아닐까. 자꾸만 판에 박힌 걸로 해석하는 태도의 문제는 아닐까. 단순히 ‘고용안전’, ‘복지’, ‘무상급식’, 혹은 ‘교육의 공공성’이라는 구호로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이미 많은 실험들은 진행되고 있다. ‘희망의 인문학’이든 아니면 ‘민중의 집’이든. 또 이를테면 10대들에게 책 몇 권을 사고, 영화를 보거나, 음반을 사거나, 연극을 보거나 하는 것을 다 공짜로 만들어 쿠폰처럼 지급하면 어떨까.

    소비재가 아닌 순간에, 문화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지 않을까. 문화적 배제에서 벗어나 ‘존엄성’을 회복시켜주는 것을 가장 가까운 동네부터 해보는 게 어떨까. 다만 문제는 그것들을 진보정당이 계속적으로 ‘정치적인 것’과 잘 엮어내지 못함이 아닐까. 매번 선거 국면의 급박한 상황에 와서야 화 낼 일은 아닐 성싶다. 동네사람들은 다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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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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