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주의의 불편한 진실
By 나난
    2010년 05월 22일 01: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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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가 된 골목을 배경으로 눈물 흘리며 서 있는 흑인 아이의 얼굴이나 몇 조각의 생필품을 머리에 이고 국경을 넘나드는 난민의 뒷모습, 참혹한 테러나 살해로 폐허만 남은 사막 한복판의 도시…. 슬프고 잔인한 이 이미지 속에는 ‘인도주의의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월드비전, 옥스팜, 국경없는 의사회, 엠네스티, 적십자. 이들의 구호활동은 어떤 상황에서 무기력해질까? 『왜 인도주의는 전쟁으로 치닫는가?』(마티, 15,000원)의 저자 카너 폴리는 국제엠네스티, 유엔남민기구 등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방세계의 인도주의 활동과 그들의 인도적 개입이 그 사회에 어떤 식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를 비판한다.

   
  ▲ 책 표지.

이 책은 199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분쟁지역에 대한 인도주의적 무력 개입과 정치적 목적을 둘러싼 논란의 배경, 그리고 구호 활동가들이 겪는 아이러니한 현실과 그 이면에 존재하는 문제의 핵심을 드러낸다.

『왜 인도주의는 전쟁으로 치닫는가?』는 그저 식량이 부족한 곳에 인도주의 활동가가 상주할 리 만무하다고 말한다. 난민이나 집단 살해, 아사는 언제나 첨예한 정치적 문제, 민족 문제가 대립하는 곳에서 벌어지게 마련이고, 그런 곳으로 활동가들이 투입된다.

때문에 저자는 책에서 “군사적 행동에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다는 국제엠네스티의 방향에 우리는 여러 번 좌절했다”면서도 “인도주의 위기에 개입하는 정부를 ‘위선, 이중기준, 선택적 조처’ 등의 이유로 비난하려면, 우선 엠네스티부터 명확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 법”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 따르면 1990년대에 인도주의 활동이 급속하게 확대됨과 동시에 인도주의 기구가 떠맡은 구호품 배급자로서의 준공무원적 역할로 인해, 인도적 개입의 정당화 요건과 개입의 시점에 관한 인도주의 기구의 잠재적 영향력은 폭발적으로 커졌다.

몇몇 분쟁국에서는 구호기구가 보건, 교육, 복지 행정까지 도맡는 등 거의 정부의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다. 때문에 저자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것이 과연 현실 가능”한지에 대해 이 책을 통해 고민한다.

저자는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은 유엔을 통한 인도주의적 개입이 지닌 정당성을 크게 훼손했다고 지적한다.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는 데 실패하자 영국과 미국의 정치인들이 내세운 침공의 법적 근거가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고 유엔이 드러내놓고 이를 비판하기도 힘들었다. 이라크 전쟁으로 유엔과 같은 다자기구의 권위를 무시하고 약화시키려는 이들에게 이용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후세인을 제거하는 것이 이라크 국민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논리가 등장했다.

이에 저자는 국가 내의 인권을 문제 삼아 인간의 생존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전쟁을 일으키는 무력개입이 정당화될 수 있느냐고 반문하며, 인도주의적 개입의 책임과 의무만큼 그 개입에 뒤따르는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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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카너 폴리

인도주의 활동가 카너 폴리는 국제앰네스티와 유엔난민기구(UNHCR) 등 각종 인권단체와 인도주의 기구에서 근무하면서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콜롬비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우간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지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법조인을 위한 고문방지 매뉴얼』(Combating Torture: A Manual for Action, 2003), 『아프가니스탄 재산권법 가이드』(A Guide to Property Law in Afghanistan, 2005) 등이 있다.

역자 – 노시내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조지워싱턴 대학교에서 정책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과 미국, 일본을 거쳐 현재 오스트리아 빈에 살며 번역과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 『일본의 재구성』, 『다부진 나라 스위스에 가다』(공역) 등이 있다.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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