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를 가장한 집단 폭력"
        2010년 05월 25일 08: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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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륜녀에 이어 발길질녀까지 등장하고, 이에 따른 파문이 인터넷에 확산되자 ‘도대체 왜?’냐고 묻는 매체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일까?

    20대 여성의 얄미운 언행에 대한 인터넷 여론의 극단적인 분노가 사태의 내용이다. 이제는 전설이 된 개똥녀 사건이 있었고, 군삼녀, 루저녀, 패륜녀, 발길질녀 사태로 이어졌다. 네티즌의 분노가 신상털기 및 사회적 매장으로까지 이어지는 것도 항상 같다. 해당 여성의 생활공간에 쳐들어가 퇴학을 요구한다든지, 취업할 길을 막기도 한다. 인생을 끝장내는 것이다.

       
      ▲ SBS 뉴스 화면 캡쳐

    한국 사회 젊은이들이 앓고 있는 정신병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사회적 스트레스 지수, 분노 지수가 치솟고 타인에 공감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있으며, 점점 약자를 무시하게 되고, 사회성이 사라지고 있다. 대신에 중요한 건 ‘나’다. 나의 분노, 나의 짜증만 중요하다. 화가 나면 앞뒤 안 가리고 터뜨려버린다. 타인이 받을 상처는 헤아리지 못한다. 약자의 처지 따위는 더더욱 ‘아웃 오브 안중’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왜 이렇게 망가졌을까? 외환위기 사태 이후 한국사회가 망가졌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한국사회는 무한경쟁 체제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교육까지 망가져버렸다. 초등학생 때부터 전면적인 입시경쟁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경주마가 된 아이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중학교 때까지 학원은 상상도 못했다. 방과 후엔 친구들과 놀아도 됐다. 고등학교 2, 3학년 경에 처음으로 단과 학원을 한두 타임 듣는 친구들이 몇 명 나타났다. 그래도 그때까지 학원은 재수생이나 다니는 것으로 알았다.

    2000년대 들어선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초등학생이 학원에 다니느라 아버지보다 집에 늦게 들어오는 사태가 생긴다. 학원에 안 가면 친구가 없어서 놀지도 못한다. 그러면서 왕따 현상이 나타나고 학원폭력이 심화되어갔다. 친구를 1박2일 동안 계속해서 폭행하는 끔찍한 사건들도 생겼다. 단지 약간의 잘못을 한 것에 대한 징벌이 그 이유였다. 10대들의 정신지체아 같은 약자들에 대한 집단폭력 사건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입시경쟁이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을 거세해버리기 때문이다. 입시경쟁은 타인을 밟고 올라가 너 혼자 출세하면 그만이라고 세뇌한다. 타인은 내가 이겨야 할 경쟁의 대상일 뿐이다. 승자는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이 당연하고, 패자는 비참하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 약자는 존중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버러지 같은 패자일 뿐이다. 인간의 소중함 따위는 웃기는 소리다. 10억 이상 가진 사람만 소중하다.

    이렇게 세뇌 받은 아이들이 커서 네티즌이 되고, 대학생이 된다. 대학생이 돼도 여전히 사회성은 배우지 못한다. 그때부턴 스펙 경쟁이다. 여전히 ‘나’만 중요하다. 승리자는 경배의 대상이고 루저는 경멸의 대상이다.

    타인은 남이고 약자는 패자일 뿐

    이런 평생경쟁·무한경쟁 체제에서 젊은이들은 사회성, 판단력, 인성을 잃어간다. 대신에 이기심만을 배운다. 그리고 가슴을 꽉 채우는 분노, 스트레스, 우울. 자살과 정신병이 늘어간다. 사이코패스도 늘어간다.

    20대 대학생은 과거에 사회와 약자의 처지를 먼저 생각했다. 대학생이 자신의 출세욕을 대놓고 드러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현재의 대학생은 사회와 약자를 잊었다. 학교 앞 노점상이 지저분해 보여 학교의 이익을 깎아먹는다는 이유로 철거를 주장할 정도다.

    한 대학의 총학은 민중대회 행렬의 학내 진입을 막으면서 ‘우리의 학습권을 지켜주세요’라는 구호를 내걸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도서관 앞에서 꽹과리를 치고 민중가요를 불러도 뭐라는 학생이 없었다.

    각종 ‘00녀’들은 이런 사회가 길러낸 괴물들이다. 괴물이 나타나면 네티즌은 분노한다. 그러면서 ‘죽여! 죽여! 죽여!’를 연호한다. 이들도 우리 사회가 길러낸 괴물이다. 사소한 잘못에 대한 징벌로 1박2일 동안 폭행하는 10대와 비슷하다.

    이번 패륜녀 사건만 해도 그렇다. 패륜범죄는 부모를 죽이거나 그에 준한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그 여대생은 그런 것도 아니고 그 외 살인, 강도, 사기, 납치 등 중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았다. 그저 말을 재수없게 했을 뿐이다. 그런데 네티즌은 사회적 극형을 주장했다. 신상을 까발려! 매장해버려!

    정의를 가장한 집단폭력, 집단 화풀이다. 분노에 가득 찬 젊은이들이 앞뒤 안 가리고 그 분노를 터뜨리는 것이다. 상대방이 뭔가를 잘못했다는 이유로 기다렸다는 듯이 인권유린을 시작한다. 분노의 유령이 한국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씹어 돌리기 딱 좋은 00녀

    그런데 왜 하필 ‘00녀’일까? 흉악범죄는 남성들이 훨씬 많이 저지른다. 권력을 쥐고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도 남성들이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공분의 대상이 되는 건 젊은 여성들이다.

    이건 인터넷 여론을 주도하는 것이 남성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남성은 젊은 여성을 ‘씹어 돌리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00녀’는 씹어 돌리기 딱 좋은 ‘섹시한’ 소재다. 남성들이 평소 여성들에게 갖고 있던 억하심정이 ‘00녀’ 사건을 기회로 터지는 것이기도 하다.

    한 포털의 ‘00녀’ 관련 기사 밑에 달린, 추천을 무려 2100회 이상 받은 베스트 댓글을 봐도 그것을 알 수 있다. 그 댓글은 ‘00녀’의 잘못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한국여성의 일반적인 문제점에 대한 것이었다. 한국여성이 책임감이 없고, 돈을 안 내고, 남자의 외모와 재산을 따지고, 자기만 안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것들에 대한 평소의 분노가 ‘00녀’ 사건을 대대적인 인터넷 대란으로 만드는 원인이다.

    무한경쟁 속에서 남성의 처지가 점점 궁하고 다급해지는데, 남성에게 원하는 것은 점점 많아지는 여성들에 대한 원망이다. 김옥빈이 아직까지 비호감녀로 찍혀있는 것은 할인카드 발언 때문인데, 그것은 남성들의 경제력이라는 역린을 건드렸다. 남성들의 외모 콤플렉스를 건드린 루저녀도 역시 매장 대상으로 찍혔다. 이런 된장녀들이야말로 제일 척결 대상이다.

    남성들은 ‘버릇없는 녀’, ‘밝히는 녀’, ‘양다리 걸치는 녀’, ‘소비지향적인 녀’ 등을 혐오하며 간간이 그 표적이 나타날 때마다 본때를 보인다. 이건 화풀이이면서 동시에 다른 여성들에 대한 위력시위다. 인생 끝장나기 싫으면 알아서 기라는 경고. (물론 남성들에게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오크녀’도 씹어 돌리는 대상이다.)

    타인을 생각하는 감수성을 잃어버리고, 처지가 다급해지고, 평생 동안 분노를 쌓아온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무한경쟁 체제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걸리면 죽는’ 사회가 됐다. 우울증, 자살, 패륜, 묻지마 폭력, 집단사냥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빛이 보이지 않는다. 당장은 적어도 중학교 때까지는 시험경쟁을 금지하고, 사람과 어울리고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이나 좀 익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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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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